-독서 리뷰-
<사랑을 믿다>
-권여선 作-
***동우***
2016.11.28 04:05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그저께 신문에서 '권여선(1965~ )'이 47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안녕 주정뱅이'라는 소설집으로.
권여선은 제법 한다하는 술꾼이라는군요.
그녀의 이런 말, 나 또한 한사람의 술꾼으로서 매우 공감합니다.
<"도대체 사람이 만나서 술을 안 마시고 뭘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런 말도.
<"술을 먹는 이유는 겸손해지기 위한 것이다.">
2008년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인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처음 읽을적 서사와 메세지가 애매하였는데, 두번째 읽으니까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군요.
객설은 후편 마저 올리고나서.
참, 어제 쿠바의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더군요.
아흔살로 고종명(考終命).
혁명아치고는 오래 살았습니다.
그의 혁명동지 체 게바라는 서른아홉에 총맞아 죽었는데.
월요일.
나라가 시끄럽고 걱정스럽지만.
모쪼록 좋은 한주를.
***동우***
2016.11.29 04:50
어린시절 정능의 우리동네, 실연의 절망감으로 양잿물을 마신 동네 누나가 우리 병원에 업혀왔습니다.
그 누나는 살아났습니다만 옛날에는 말이죠, 사랑을 잃은 아픔으로 자살하는 선남선녀 없지 않았습니다.
핫하고 쿨한 덕목이 지배하는 요즘 청춘에게서 그처럼 순결하게 처절한 절망이 가당할까요마는.
그렇지만 자살은 않더라도 사랑을 잃고 숨쉴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절망적인 감정은 고금(古今)이 여일(如一)할듯 합니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가 히트하는걸 보면.
사랑을 믿다.
3년전, 넘쳐흐르는 감정보다 한 오라기의 자존심으로 사랑을 표출하지 못한 남자와 여자.
상대를 향한 감성적 추이에 있어서, 남자는 그저 호의(好意) 쯤이었을듯 싶지만, 여자의 그것은 매우 절절한 것이었습니다.
그 절절함을 남자는 눈치채지 못한채 그들은 헤어졌습니다.
“넌 그때 어땠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계속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 거야?"
3년후 해후한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였고 실연의 고통으로 괴로워 하였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다른 여자와의 실연의 아픔을 경험한 남자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그런 고통을 안겨주고 유유히 빠져나온 적이 있다는 사실>을.
여자의 큰고모네 3층 건물.
1층에는 돼지갈비집, 2층에는 여행사, 3층에는 고모의 살림집 그리고 옥탑방에는 점쟁이 집이 있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밟을 때마다 그녀는 뭔가에 들씌운 듯 중얼중얼 빌고 또 빌었다. 희귀병을 앓는 친지의 완쾌를, 유괴된 손자의 생사를, 바람난 남편의 귀가를, 자식을 앞세운 뒤 늙어가는 부부의 평안과 명랑을 빌었다. 그녀가 타인을 위해 이토록 절박하게 빌어본 적은 없었다.>
그리하여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그녀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3층 건물에다 실연으로 숨쉴수 없을만큼 괴로운 절망덩어리를 부려놓고 온 것처럼.
<나는 그녀가 낯선 여자들과 마주 앉아 있는 동안 그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녀 또한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게 무엇이던 어디보자 하고 덤벼들면 보잘것없는 것이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를 바꿔놓았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후 고모부는 자살하였고, 그 1년후 고모님마저 뜨거운 물을 삼키다 세상을 떴습니다.
그때 찬물을 먹었어야 했는데, 라는 유언을 남기고서.
여자의 저 돈오(頓悟,갑자기 깨달음)의 의미를 확연하게 이해할수는 없습니다만.
삶의 배후, 다양한 얼굴과 그 진실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랑은 삶의 한 조각일뿐, 세상사 번다한 것들이 죄 고통스럽고 아픈 것들이다... 사랑을 잃는다고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대하여 부쩍 성숙해 진 여자.
여자는 이제 사랑을 믿지 않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 대하여는 훨씬 더 관대하고 자연스러워졌고, 더 이상 사랑 따위는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남자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를 읊조립니다.
혼술을 마시면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따위나 더듬는 덜 떨어진 남자입니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겼다는 건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지만 청춘에 대해서는 만종과 같다. 사랑을 믿던 한 시기가 끝났으며, 뒤를 돌아보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서른다섯이라는 인생의 한낮을 지나고 있다.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리지만 이미 저묾과 어둠을 예비하고 있다. 내 생애의 조도는 여기가 최대치다. 이보다 더 밝은 날은 내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 얼마후에는 색이 바래 없어질 것이고, 남자도 철이 들어 완벽하게 사랑을 믿지 않게 될테지요.
사랑의 신앙을 벗어나면서 남자의 마지막 세리프는 이쯤일듯...
<사랑을 잃은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런데 희한한 건 그녀의 큰고모님부부와 나의 질긴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옥상에 옥탑방을 얹은 낡은 삼층짜리 건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며 가벼운 실수나 후회거리가 생기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때 찬물을 먹었어야 했는데.>
무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그 사랑이라는 것.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 것 없다면 위로도 보잘 것 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 것 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한때는 사랑을 믿었었다. 그러나 철들고 보니 사랑은 믿을게 못되는 물건이더라...
이 소설, 사랑의 보잘것 없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일까요?
페이소스 감도는 일종의 연애소설로 읽으시렵니까?
내게는 짙은 패러독스도 읽힙니다만.
삶을 살게 하는... 사랑이라는 물건.... ㅎ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배후에는...
그래, 사랑이 있습니다.
기형도의 '빈집'을 베껴 씁니다.
++++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독서 리뷰-
[[권여선]] -2-
<문상> <당신은 손에 잡힐 듯> <그것은 아니다>
<문상>
-권여선 作-
***동우***
2017.06.26 04:21
권여선(1965~ )'의 '문상'
<머릿속에 살짝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깊고 은밀한 접촉을 당한 듯 불쾌해지는 질감의 소유자>
그런 불쾌하고 징그러운 대상이 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외모의 노처녀 우정미는 자기인식과 개념에 있어서 일종의 불구인, 혐오스러운 여자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스스로 도취되어 자기 이야기만 주절거리는 여자, 사형 당한 정치범의 딸이 바로 자신이라고 끊임없이 떠벌리는 여자, 섹스를 나눈 후 '기술 좋으시던데 어떤 여자한테서 배웠어요?'하는 해괴망칙한 질문을 집요하게 물어대는 여자.
꼬랑내 진동하는 양말, 역겨우면서도 그 냄새를 자꾸 코에 가져다 대는 심리를 아시나요?
‘사랑만큼 혐오도 실물의 대상을 갈망하는 까닭'일 것’이 우리 존재의 비루한 실상이라는군요.
<나를 봐요! 나를 들어요! 나를 느껴요! 당신들은 모조리 죄인들이에요! 당신들의 죄가 만들어낸 이 괴물을 좀 보라구요!>
가만히 나를 들여다 봅니다.
냄새나는 추접스러운 것들, 그렇다고 내 안의 그것들을 타자화 할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정미의 혐오스러운 것 그것들 역시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들일는지 모릅니다.
오, 감득할수 업슨 자아의 이중적 내막(內幕)이여.
추(醜)와 미(美).
자훼(自毁)와 자애(自愛).
추함과 자훼의 늪에 잠겨서 올려다보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운 것으로 보일런지도 모릅니다.
<덫에 걸리기 전에 부른 콧노래를 덫에 걸린 후에도 부르는 경우는 없으니까. 하지만 덫은 또 다른 죽음을 살게 한다. 걸린 부분은 묶되 나머지는 푼다.>
이 세리프도 시니컬합니다그려.
좋은 한 週를.
<당신은 손에 잡힐 듯>
-권여선 作-
***동우***
2017.11.16 00:11
"도대체 사람이 만나서 술을 안마시고 뭘 할 수 있단 말인가요."
명색 술꾼인 내 말이 아니라, 유니크한 작가 권여선(1965~ )의 말이지요. ㅎ
'당신은 손에 잡힐 듯'
<그는 자신이 맛치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에겐 맛이라는 것도 결국 규칙적이고 의례적인 무내용의 교환에 불과했다. 그가 만든 냉국은 결코 삼겹살집 냉국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는 주어진 음식을 얌전히 수용하는 항수일 뿐 직접 칼을 휘두르거나 혀를 놀리는 변수가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그에게 맛이란 말은 빈칸 같은 단어였고 생각을 중단시키는 블랙홀이었다는 것을 그는 그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마치 죽음을 모르듯 그는 맛을 몰랐다.>
생전 누구의 남편이라거나 아버지가 되어 보지 못하고(않으면서) 세월의 뒤안길로 들어선 사나이.
트라우마, 의식의 분열.
잡설은 내일.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참, 어제 오후의 지진, 부산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고독의 최후가... 무서웠어요.
모두 흔들렸겠지만 지극히 개별적인 그 고독의 최후가.
***동우***
2017.11.17 23:47
<삶은 의외로 간명했다. 그가 죽음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서면서 느낄 고통이나 공포만 제외한다면. 그는 하루하루 늙어 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한발한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은 두려웠다.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죽음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곤 했다. 어머니는 죽을 때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 어쩌면 고통의 강도는 그리 가공할 만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삶에서 겪는 고통, 이를테면 폭행이나 고문, 수술에 의한 고통이 더 끔찍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통들은 아무리 심각하다 할지라도, 모름지기 견뎌 내기만 하면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막간의 고통인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고통, 소멸을 향해가는 고통, 그 끝에 오로지 공허만이 입 벌리고 있는 고통은 그 강도나 크기와 무관하게 매우 특별한 종류의 고통임에 틀림없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사위어 가는 재의 고통일까, 번쩍하는 폭죽의 고통일까. 어머니의 죽음은 아마도 전자였으리라. 그렇다면 죽음은 다만 사라짐인가, 다른 차원으로의 건너감인가. 그는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대해 애정이 적어졌고 그만큼 관대해졌다. 너그러워진다는 것은 품위와는 관계없는, 둔감한 무관심에 가까웠다. 결혼을 한 적이 없는 그는 사소한 일로 누군가와 다투고 안달하고 토라지고 속을 썩는 식의 경쾌한 열정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죽음으로써 그의 눈앞에서 이 조잡한 세상은 사라지겠지만, 중요한 건 그가 사라지는지 아닌지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남편도 누군가의 아버지도 아닌채, 세상과 맺어 꾸리는 관계를 거부하고 삼시 세끼는 매식(買食)으로 떼우면서 일생을 살아 온 사나이.
그의 삶은 어떤 변화도 아무런 내용도 없는, 일종의 관성으로 살아가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손에 끌려 큰아버지를 찾아가던 날의 기억.
관계의 외피를 이룬 상투성들...
그리고 어머니와의 분리불안...
<캄캄한 어둠 속을 끝없이 헤매던 그의 귀에 갑자기 큰 새가 울부짖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목이 잘린 남자 마네킹이 내지르는 비명처럼 처참했다. 섬뜩한 그 소리는 그의 머릿속 가느다란 신경줄을 타고 정수리 끝까지 올라왔다. 머리끝이 쭈뼛 곤두선 그가 어머니!하고 소리쳐 부르려 할 때 그의 손에서 모래처럼 어머니의 손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자신이 잊고자 하고 모른척 하였던, 그 트라우마에 다가간 순간 그의 의식은 분열됩니다.
비명 소리.
여자의 것인지 남자의 것인지.
절망 앞에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의식에 담겨지는 목소리.
고작.
“어디...아프니...아가?”
나도 언젠가 비명을, 아니 지금도.
아파요, 어머니. 죽도록!
이 소설, 엿장수 맘대로 읽고 느끼는 바 그렇다는 말씀.ㅎ
<그것은 아니다>
-권여선 作-
***동우***
2018.04.19 06:58
각광받는 여성작가 '권여선(1965~ )'의 '그것은 아니다'
어느 고시생의 일상의 뒷면에 괴어있는 막다른 의식.
두번은 읽어야 만져질듯 합니다그려.
2회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8.04.20 00:17
이 장마가 마지막 장마다...이 장마가 마지막 장마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시방 음습하고 습기 가득한 장마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는겐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나면 그의 장마는 걷히는걸까.
그런데 합격한 사법연수원생 수찬이는 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을까.
수배사범.
연극과 영화.
안기부.
방위복무.
사법시험.
고시촌.
임박한 시험일자.
고시촌을 술에 취하여 방황하는 고시낭인 준석.
사랑을 연기로 위장할수 밖에 없는 하은이.
여수의 비린내...
비린내에 지처서 떠나버린, 사랑하였던 여자선배 부영.
헬조선.
청춘이 살아내는 삶의 미봉책들.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니다
아, 술에 취하여...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하고 읊조리는 넋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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