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무라카미 류]] 1.2 (1,4,3,3,1)

카지모도 2020. 9. 11.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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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무라카미 류]]

<오퍼스 원> <장어와 키위파이와 죽음> <백조>

 

 

<오퍼스 원>

-무라카미 류 作-

 

***동우***

2014.01.07 05:29

 

나보다 서너살 아래 연배인 '무라카미 류'(村上 龍. 1952~ )

그의 처녀작 '한없이 투명한 블루'는 20대 초반쯤 읽었을터인데, 나는 너무 놀라웠고 몹시 부러웠다.

패전(敗戰) 일본, 전후의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의 그 개별성과 그 호사로움이라니.

원폭(原爆)을 두드려맞고 얼마나 지났다고.

아메리카나이즈한 스타일, 부르주아의 일상을 사는 젊은이들

그 무렵 일본이 그리도 풍요로웠던가,

재즈... 명품 브랜드... 서양요리들...

먹고 걸치는 입거리 먹거리 문화... 자유분방한 놀이문화... 폭력... 섬세한 감각으로 즐기는 섹스..,

 

'이시하라 신타로'(늙어 극우파 동경도지사가 되었지만 젊어서는 '태양의 계절'이라는 소설로 나를 놀래켰던 작가)

후에 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는 더욱 세련되게 부각되는 부르주아적 삶의 양태...

 

아, 일본 최상류층 극소수의 이야기인가.

 

'오퍼스 원'은 '와인 한잔의 진실'이라는 단편집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와인 여덟 병을 모티브로 하는 모듬소설)에 수록된 소설이다.

 

술에는 상당히 익숙하지만 와인에는 서툴기 짝이 없는 나.

와인은 내게 범속한 술이 아니라 신(神)의 음료라는 넥타(nectar)의 경지인 듯

와인 뿐이랴, 위스키는 또 어떠한가.

소주와 맥주와 빼갈에 익숙한 내 술맛에는.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와인, 오퍼스 원 빼고는 이름들도 어려워라.

오퍼스 원, 샤토 마르고, 라 타슈, 로스 바스코스, 체레토 바롤로, 샤토 디켐, 몽라셰, 로버트 베일 양조소 트록켄베렌아우스레제..

 

개별들의 삶,

삶의 양식이야 어떠하든 저마다 상처받은 내면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절망과 고독...

치유되지 못한... 자아의 아픔...

 

그리하여 술은 일락(逸樂)일까, 도피일까.

그렇구나, 내가 즐기는 빼갈이나 쏘주는 직유적(直喩的)으로 비명을 내지른다.

술은 내게 직유다. 으흠, 대체로 한국인이 술이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엘레강스한 통증의 은유(隱喩)로서의 와인일까.

대체로 일본인의 다테마에가 그러한듯 하다.

 

모두(冒頭)의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확연하게 만져지지는 않지만)

[하와이에는 문화가 없어, 하고 당신은 말했어요. 그리고, 그건 나쁜게 아냐, 라고 덧붙였죠. 하와이에는 조화만 있지 대립과 충돌이 없어. 역사적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점 일수도 있지.]

 

말미(末尾)의 문장은 아름답다. (확연하게 만져진다)

[와인글라스에 오퍼스 원을 따릅니다. 서서히 경련이 잦아드는 새의 심장이 떠오릅니다. 저녁놀이 모든 풍경을 녹이고 오퍼스 원이 나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녹여갑니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소설, 모호함으로 그냥 아름답다.

 

'무라카미 류'는 홍애님이 좋아하는 작가이고, 와인은 은비님이 사랑하는 술이다.

 

 

<장어와 키위파이와 죽음>

-무라카미 류 作-

 

***동우***

2014.01.13 05:42

 

경험하였던 사물과 기억, 그리고 심층의 감정모체가 혼합되어 날뛰는 데포르마숑된 드라마.

나는 단 오분의 수면에도 꿈을 꾸는 사람이다.

무슨 恨이 그리도 크고, 무슨 갈등이 그리도 깊고, 무슨 원시적 욕동이 그토록 뜨겁길래.

 

나 또한 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꿈을 기록한 적이 있었고 그 노트가 열권도 넘게 남아있다.

소싯적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기를 쓰고 정독하였었다.

 

맞다.

꿈의 미묘한 뉘앙스는 영상적인게 아니고 심리적이다.

방어기제, 무의식의 검열을 거쳤더라도 꿈의 현장은 원시의 욕동, 이글거리는 '이드(id)'의 불덩어리다.

 

무라카미 류의 '장어와 키위파이와 죽음'

딸에 대한 애정과 죄의식은 섹스와 관련되어 나타난다,

파충류로 변하는 여자의 얼굴은 무엇인가.

장어는 징그럽지만 맛있는 페니스의 심볼일까.

키위파이의 맛은 생시의 기분좋은 상큼함인가.

잠은 죽음의 은유, 일상의 속살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리비도일까.

자아의 본질은 그곳에 있는가.

 

산책과 음악감상과 독서...

꿈만이 일상의 카테고리를 파괴할수 있다.

 

[드러난 여자의 하얀 어깨를 만져볼까도 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목마름을 참고 여자의 말대로 좀더 자자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자의 하얀 어깨, 만져라. 목마르면 마셔라.

꿈 속에서는 딸과 교접까지 하면서 무얼 참는가.

 

어쩌면 삶이란 잠에 은유되어있다.

어쩌면 잠은 죽음의 은유이다.

아아, 나는 잠 속에서 마냥 리베르탕이 되고 싶다.

 

이 소설 내 엿장수 가위 장단으로 재미롭구나.

 

***저녁산책***

2014.01.17 12:23

 

지은이는 현실보다 꿈을 더 잘 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ㅎ

더 적극적이고 솔직하게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진 주인공의 생활,

꿈은 자세히 뉘앙스까지 기록가능하면서

현실에서는 모든것이 기억이 모호한 주인공...

 

동우님의 리뷰를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아봅니다.

 

오늘은 초미세 먼지 때문에 외출하기가 좀 망설여 지네요ㅜ

좋은 하루보내셔요, 동우님^^

 

***동우***

2014.01.18 05:33

 

저녁산책님이야말로 이 소설을 적확하게 읽으시는 것 같아요.

현실적 기분의 모호함과 꿈 속에서는 어떤 분위기의 뉘앙스까지 선명한 기억...

장자의 호접몽이 떠오릅니다.

 

'무라카미 류'는 별로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좋아질까 말까 하고 있습니다.ㅎ

홍애님은 요즘 이 작가에 꽂혀있는 것 같던데..

 

***홍애(虹厓)***

2014.01.20 10:00

 

짐작으로 이 소설은 무라카미류의 초기작이거나 청년작가 시절의 작품같습니다.

어느 글에서, 글쓰는 주제를 확 바꾸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제가 무라카미류에게 꽃힌 이유도 무라카미류가 써내려고 하는 주제가 요즘 사회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기 때문이에요.

재맜는 소설이지만, 근래 읽는 무라카미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서도 흥미롭습니다.

이런 식으로도 썼구나 하게 됩니다

 

***동우***

2014.01.21 05:08

 

'무라카미 류'에게서 어떤 사회성을 읽게된다면 좀 뜻밖일것 같군요.

글쓰는 주제를 바꾸었다니,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홍애님의 리뷰를 다시 찾아 읽어야겠습니다만, 읽으시는 것들도 포스팅 부탁드립니다.

 

홍애님의 최근 번역은 스마트폰으로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모바일 댓글은 손가락질 서툴러 쓰지는 않습니다만. ㅎ

 

 

<백조>

-무라카미 류 作-

 

***동우***

2017.03.10 03:21

 

'무라카미 류'(村上 龍. 1952~ )

젊어 읽었던 그의 처녀작 '한없이 투명한 블루'는 충격이었고 부러움이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성적 자유분방함이 충격이었고 그들의 부르주아적 일상의 양태는 부러움이었었지요.

입거리, 먹거리, 듣거리(음악)들, 그들의 취향은 당시 나 따위로서는 보도듣도 못한 유명 브랜드와 럭셔리함...

 

백조, 이 소설 역시 동성애의 묘사가 다소 충격적입니다.

 

주인공의 아버지.

연하의 상사에게 질책을 받고 회사를 그만 둔 아버지는 단 한발자국도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 칩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조용히 울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상처받는 영혼.

소심하고 유약한 아버지에게서 이마이 유카리는 삶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비극성을 느꼈던 걸까요.

 

유카리는 열두살 연상의 다카아키에게는 왠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가 봅니다.

그때 그들 남녀는 알몸이었고, 아버지 얘기를 하는 이마이 유카리는 울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듯 유카리는 다카아키를 사랑하지만 아버지가 오버랩된 이미지로 그녀는 불안합니다.

 

그리하여 헤어지게 되고, 유카리는 실연에 절망하여 자살을 생각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당첨된 공짜여행에서 만난 아리따운 여자 이마무라 유미코.

호텔 남의 빈 방에 스며들어 두 여자는 짜릿짜릿한 스릴 속에 레즈비언의 정사를 나누고 지극한 쾌락을 맛봅니다.

그녀들의 정사, 에이즈의 공포를 감내할 무엇이 있었을까요.

 

삶속에 언제나 잠복되어 있는 상실감과 외로움과 절망감.

부딪치는 낯선 것들에 대한 두려움.

여린 자아의 아픔은 섹슈얼한 일탈이 아니고서는 치유되지 않는겐지요.

 

남자의 동성애, 그 디테일을 상상하면 혐오스럽지만 여자의 동성애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내가 남자인 까닭일테지요.ㅎ

어쨌거나 유카리에게 이제 수면제는 필요없습니다.

 

타나토스와 에로티시즘.

 

<섹슈얼리티는 권위에 대한 반란이며, 사회의 경직된 것에 대한 반란이고, 또한 모든 잠재되고 억눌린 것들에 대한 해방이다. 어쩌면 자아와 개성의 죽음이며, 이러한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려는 예술혼이다. 이 예술혼이란 위대한 분노이며 동시에 처절한 자기파괴이며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기사랑이다. -어느 책에서 베껴쓴 것->"

 

운하를 유영하는 백조....

느끼건대 무라카미 류는 매우 자극적이지만 투명하고 우아합니다.

 

 

 

 

-독서 리뷰-

 

[[무라카미 류]]

<늑대는 천사의 향기> <69, Sixty Nine>

 

  

<늑대는 천사의 향기>

-무라카미 류 作-

 

***동우***

2017.06.06 04:39

 

이 소설은 "무라카미 류(村上 龍, 1952~ )의 단편집 '무라카미 류의 영화 소설집'에 실린 것 중 한편이라는군요.

영화와 함께 연상되는 작가자신의 이야기를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지요.

 

과문(寡聞)의 나는 '장 루이 트란티냥' 주연 '르네 클레망' 감독의 '늑대는 천사의 향기'라는 영화를 이 소설에서 처음 들어봅니다. (daum에 검색하여도 뜨지 않으니...)

 

그 옛날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한 블루'와 '이시하라 신타로' (얼마전 동경도지사를 지냈던 극우인사)의 '태양의 계절'은 내 청춘의 충격이었습니다.

아메리카나이즈한 젊음이들의 모습들, 그들이 즐기는 음악이라거나 먹거리 입거리들은 너무나 부르주아스러웠고 자유분방한 섹스는 당시 궁핍하고 비좁은 도덕의식으로서는 사뭇 다른 별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전후파(戰後派)의 데까당은 언감생심, 우리의 사조라는건 생존에 기반한 최소한의 것이었지요.

 

<장래의 일을 생각하는 남자한테는 재능 같은 게 없는 법이야. 셰프는 언제나 시 쓰는 일과 그것을 뒷받침할 생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잖니. 그건 너도 알지?>

 

핑크 플로이드, 블라인드 페이스, 레드 제플린, 짐 모리슨...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지만 나는 락(rock)을 모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죄 스탠다드 넘버, 초등학생 수준의 반듯한 것들.

분방하게 나누는 섹스라던가 엘에스디니 대마초니 하는 류의 것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것들...

내 경우 고작 아티반류나 삼키고 잠을 청하는...

말하자면 일상의 이탈, 독립변수로서 주체적 문화향유는 꿈도 꾸지 못한 종립변수의 삶.

 

그러나 이 소설.

1970년대 일본 젊은 세태의 풍경화에 녹아있는 열여덟 짜리의 의식.

모호한채로 어딘가 애틋한 정서를 자극합니다.

섬세하고 아릅답습니다.

감성적으루다. ㅎ

 

경직된 것들, 억눌린 것들, 고독한 것들, 갇힌 자아, 발현하지 못하는 개성...

도피적이거나 자기파괴적이거나 자포적이거나...

아프락사스의 아픔같은.

혹은 짙은 니힐리즘같은.

 

 

<69, Sixty Nine>

-무라카미 류 作-

 

***동우***

2017.06.07 00:15

 

"무라카미 류' (村上 龍, 1952~ )

이 번에 몇 편 읽어보니 흥미롭습니다..

 

이 장편소설 '69',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감각적으로, 직관적으로 접수되는.

 

69는 1969년을 말하는 것이지요.

무라카미 류는 1952년생.

나보다 5년 늦게 태어났습니다만, 남자나이 아래 위 10년쯤은 맞먹어도 좋은, 같은 연배라 하여도 좋을듯. ㅎ

1969년 즈음, 그 시절 우리 세태와 그 때 우리 감수성과 견주면서 읽는 재미도 없지 아니합니다.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 대략 6회 정도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함께 읽어요.

 

***눌언***

2017.06.13 08:55

 

시대에 대한 작가의 유머가 넘치는 소설로 기억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교코','지상의 마지막 가족'을 읽으며 한때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찾아 읽던 때가 있었습니다.

동우님. 全文 고맙습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동우***

2017.06.14 09:23

 

무라카미 류의 소설 많이 읽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그의 소설 텍스트 파일 여럿 다운받아 놓았는데 차츰 읽어 보지요.

읽어 주셔 고맙습니다, 눌언님.

 

***동우***

2017.06.08 06:39

 

이 소설, 철학연(?)하지 않아 재미롭습니다.

색감은 다르지만 그 옛날 키득거리면서 읽었던 조흔파의 '얄개전'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동정(童貞)인 주제에 이런 똥폼으로 거들먹거리는 녀석.

<가장 바람직한 북고 학생 상은 북고 영어연극부 여학생을 걸 프렌드로 하고, 준와의 제복을 입은 여학생을 정부로, 야마노테학원 여학생의 상처 난 그것을 구경한 경험을 가지고, 코가 여학교와 아사히고의 여학생에게는 돈을 내게 하는 것이었다.>

 

그 영화를 한편도 보지 않았으면서 장 룩 고다르를 떠벌이고...

<이 당시부터 나는 타인을 속이는 기술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할 때, 상대가 모르는 세계를 일부러 내세우는 것이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았다. 문학에 강한 녀석에게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야기를, 록에 강한 녀석에게는 메시안 이야기를, 클래식에 강한 녀석에게는 로이 리케텐슈타인 이야기를, 팝 아트에 강한 녀석에게는 장 주네 이야기를 적당히 얼버무리면 지방도시에서는 절대로 논쟁에서 지지 않는다.>

이런 수법은 아마 나도 써 먹었지 싶습니다.

 

이 소설의 무대, 일본 해군기지(패전후에는 미군기지)로 유명한 사세보는 옛 직장생활중 출장지였던지라 그 도시의 분위기도 내게 익습니다그려.ㅎ

 

***동우***

2017.06.11 00:48

 

서른 두살의 '무라카미 류'가 열 일곱살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면서 쓴 자전적 소설 '69'

 

1969년도.

그 해 나는 군대에 있었습니다. (그 때 육군의 복무기간은 딱 3년이었지요. 67년 입대한 나는 그 때 제법 고참이었을겁니다.)

자원입대로 내 등을 떠민 것은 3선 개헌반대 데모의 後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해마시기를.

3선개헌의 정치적 의미를 천착할 소양도 없었을뿐더러 나는 눈곱만큼도 정의감이나 정치적으로 어떤 신념을 가진 학생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해 둡니다.

홀을 빼곡하게 채운 학생들로 상당히 성황을 이루었던, 남포동의 어떤 예식장을 빌려 치룬 모종의 행사때문이었는데.

영화와 음악... 그 행사라는 게 호리도 정치적인 색채가 섞여있지 아니 한 것이었지요.

이를테면 이 소설 주인공 야자키 녀석의 저 '페스티벌'같은 것이었을텐데. ㅎ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세상의 젊은이들은 요동치고 있었지요.

나는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당시 세계 학생들의 사조를 알게 되었습니다만.

팍스 아메리카나.

자본주의의 안락함에 젖어있던 서구사회는 젊은이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을 기화로 히피의 반전시위가 미국을 휩쓸었고 파리의 대학은 학생들에게 점거되었고 베를린에는 붉은기가 오르고 도쿄에서는 격렬한 학생들의 구호로 가득하였습니다.

'베평련(베트남 평화를 위한 시민연합)'이라거나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위원회)'는 이 소설에도 등장하거니와, 극렬한 일본의 '적군파'라거나 독일의 '바더 마인호프 그룹'도 생겨나 납치와 살인과 테러를 자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엄혹하게 통제된 우리나라는 별유천지(別有天地)였지만 서구에서 모택동과 게바라의 초상은 성화(聖畵)가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에 안돈하고 있던 보수세력은 아연 긴장하지 않을수 없었지요.

 

그러나 지극한 사적(私的) 감수성에서 벗어나려하지 않는.

'야자키 겐스케' (무라카미 류)는 나와 같은 종족입니다. ㅎ

 

나중 지껄이기로 하고, 이 소설 끄트머리에 있는 작가의 후기를 미리 덧붙입니다.

굿나잇.

 

++++

<후기>

-무라카미 류-

 

이 책은 1969년 내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일부 기록한 것이다. 1969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지금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치고 사회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그런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어 주길 바란다. 이 책은 정말 즐거운 소설이다. 이렇게 즐거운 소설은 다시는 쓸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거의 다 실제 인물뿐이지만, 당시 즐겁게 살았던 사람은 좋게, 즐겁게 살지 않았던 사람들(선생, 형사, 그 외의 어른들, 그리도 말 잘 듣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나쁘게 썼다.

즐겁지 않은 것은 죄이다. 나는 고교 시절에 나에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소수의 예외적인 선생을 제외하고, 그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을 나에게서 빼앗아가 버렸다. 그들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게 열심히 수행하는 <지겨움>의 상징이었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오히려 옛날보다 더 심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 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그들을 두들겨 패보아야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쪽이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도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결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동우***

2017.06.12 04:34

 

<가게 안은 흑인 냄새가 가득했다. 우리는 블루스의 냄새라고 말했다.>

미군기지, 양색시, 흑인, 재즈바... 사세보는 에전 동두천 기지촌과 비슷한 분위기인듯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유의 인간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무엇이든 한번 믿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학살과 고문과 강간을 일삼은 것도 이런 유의 인간들이다. 이런 유의 인간은 낙서 따위 때문에 울지만, 중학교 동창생 여학생이 졸업과 동시에 흑인병사와 놀아나는 일에 대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입으로는 저렇게 씨부리지만. 주인공 야자키 겐스케에게는 추호도 정치적 의식은 없습니다.

 

<페인트로 글이 적혀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울먹인단 말이냐? 이 학교 건물이 너의 신전이라도 된단 말이냐?

알제리아도 베트남도 나에게는 너무도 멀었다. 여기는 평화로운 일본이다. 확실히 팬텀기의 폭음이 들리기는 한다. 동급생이었던 여학생이 흑인 병사의 좆대가리를 빨고 있다. 그러나 피는 흐르지 않는다. 폭탄도 떨어지지 않는다. 네이팜 폭탄으로 등줄기가 타버린 어린이도 없다.>

 

야자키 겐스케라는 녀석.

그에게 '바리케이드 봉쇄'는 '축제'와 다름없습니다.

마츠이 가즈코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의식있는 남자인척...

 

패전한 나라의 젊은이로서 자의식은 좀 엿보이지만, 점령군 나라의 문화에 경도되어 그를 동경하는 모습 또한 여실합니다.

재즈에 심취하여 '나는 왜 흑인으로 태어나지 못했단 말인가'하고 탄식하면서 울기도 합니다. (야자키 겐 자신은 아니지만)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나는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을 내게서 빼앗아 가버렸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사는 것이 권력에 지지 않는 방법이라는군요.

그러나 그걸 60년대말 학생운동 좌절의 반작용으로 생각해 줄수는 없군요.

내겐 왠지 '부러우면 지는거'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무라카미 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자본을 향유하는, 작금의 대단한 문화권력이 아니겠습니까? ㅎ

 

이 소설의 분위기.

실패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반항하는 청춘의 페르소나가 숨어드는 골방과 같은, 그런 칙칙하고 심각한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경쾌하고 재미있을 뿐입니다.

그 옛날 트로이 도나휴 나오는 헐리웃 청춘영화를 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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