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버스 정류장. 철도원. 나락]] (1,4,3,3,1)

카지모도 2020. 9. 2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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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마루야미 겐지]]

<버스정류장>

[[아사다 지로]]

<철도원> <나락>

 

 

<버스 정류장>

-마루야마 켄지 作-

 

***동우***

2015.03.30 04:20

 

버스정류장, 참으로 좋은 소설이다.

 

'마루야마 켄지'(丸山 健二, 1943~ )

스물세살 젊은 나이로 '아쿠타카와'상('여름의 흐름'으로)을 받고, 시골에 은둔하여 디립다 소설만 쓰는 작가.

그는 "소설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 이라고 말하였다지.

 

버스 정류장.

도시의 환락가에서 돈을 버는 딸은 사흘간 지지리 궁상 고향에 머물다가 돌아가는 길이다.

청춘에게 (더구나 시골에서 진출한) 도회(都會)는 허황하고 잔혹하지만 풍요로움 넘실거리는 환락의 곳이다.

 

일본 시골의 '버스정류장'의 풍경화.

칠팔십년대 우리 것과 그대로 겹쳐지누나.

 

차창 밖으로 어머니에게 지폐를 던지는, 저 불안하고 위태롭고 거만한 청춘이 나는 애잔하다.

 

<버스 안은 시원했다. 직사광선을 쬘 염려도 없고 바람도 끊임없이 불어왔다. 나는 코에 손을 대 보았다. 어머니도 아까 그곳을 만졌다. 그러나 모습을 바꾸기 위해 삽입한 플라스틱 때문에 코끝은 썰렁했다. 이미 나는 건강을 회복했다. 다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얼음 조각에 묻어둔 캔 맥주를 입에 가져갈 때의 느낌을 상상하자 목 주위가 싸아, 해졌다.>

 

그녀의 영혼이 익숙하여 편안한 것은 어느 쪽이었을까.

여름 무더위 흙먼지 속에서 버스 꽁무니 뒤를 한참 바라보고 섰을 어머니, 그리고 얼음 조각에 묻어둔 캔 맥주를 입에 가져갈 때 목구멍의 싸아한 느낌.

 

전자(前者)는 여름 불볕처럼 뜨겁고 불편하고 그저 좀 아픈 것이었을까.

 

 

<철도원>

-아사다 지로 作-

 

***동우***

2019.02.21 05:02

 

'아사다 지로(淺田次郞, 1951~ )'의 '철도원(鐵道員: ぽっぽや)'

영화로도 감동을 준, 유명한 소설입니다.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비온다창닫아***

2019.02.21 23:08

 

영화로만 봤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글로 읽을수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비공개로 퍼갑니다.

다시 한번 큰 감동을 느끼게 될거같아요.

고맙습니다. 꾸벅~

 

***┗동우***

2019.02.22 06:44

 

비온다창닫아님.

반갑습니다.

읽어주시니 내가 고맙지요.

나 역시 다시 소설을 읽으려니 영화 철도원의 눈 덮힌 영상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자주 들러 주십시오.

 

***동우***

2019.02.22 06:36

 

충직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뽀뽀야 (ぽっぽや, 이를테면 칙칙폭폭 man?).

홋카이도 지선(支線) 깊은 산골 쬐끄만 기차역의 늙은 역장 오토마츠.

이제 그 노선은 폐선(廢線)되고 역은 곧 사라질겁니다.

 

어느 새벽 老뽀뽀야는 플랫홈의 눈 속에 파묻힌채 숨을 거둔채 발견되었습니다.

축복처럼, 17년전 갓난아이로 죽은 딸과 해후(邂逅)한 연후에.

 

++++

<'.... 너 어째서 거짓말을 했니?"

얼어붙은 창에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눈발이 흩어졌다.

"무서워하실까 봐서.... 죄송해요."

"내가 왜 무서워하겠니. 세상 어디에 제 딸을 무서워하는 아비가 있겠니?"

"죄송해요, 아버지."

오토마츠는 천장을 올려다보아도 막을 수 없어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유키코.... 어제 저녁부터 차례차례 자라가는 모습을 이 아비에게 보여준 게로구나. 저녁 참에는 책가방을 메고 아비 눈앞에서 차렷 해 보였지. 그리고 한밤중에는 좀더 자란 모습을, 그리고 이번에는 비요로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십칠 년간 성큼성큼 자라는 모습을 아비에게 보여준 게로구나...."

소녀의 목소리는 내려 쌓이는 눈발처럼 조용했다.

"왜냐면요, 아버지는 변변히 기쁜 일 한 번 없으셨잖아요. 저까지 자식 노릇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죽어버렸구요. 그래서....."

오토마츠는 셀룰로이드 큐피 인형을 가슴에 품었다.

"이제 생각나는구나. 이 인형, 네 어미가 울면서 네 관에 넣어주었던 것이지."

"예, 제일 소중한 친구였어요. 아버지가 비요로에서 사다주셨지요? 어머니는 레이스 달린 드레스를 만들어주셨구요."

"그까짓 게 뭐 대단하다고.... 아버지는 네가 죽었을 때도 플랫폼의 눈만 쓸어내고 있었단다. 이 책상에서 그냥 여객일지만 쓰고 있었어. 오늘 아무 이상 없다고...."

"그야, 아버지는 철도원이시니까요. 아버지 직업이잖아요. 그런거,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토마츠는 의자를 돌려 돌아보았다.

유키코는 솜 두른 빨간 겉옷의 어깨를 움찔하며 서글프게 웃었다.

"유키코, 그래 잘 왔다. 어서 밥 먹자. 밥 먹고 목욕하고, 오늘은 이 아버지랑 함께 자자. 유키코, 정말 잘 왔다.">

++++

 

그날 오토마츠는 일지에 '이상 없음'이라고 적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한밤중에 눈이 멈추었고, 호로마이 앞산에 은빛 보름달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 그리고 평생 그 직업을 사랑하였던 오토마츠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 나 젊을 적만 해도 가끔 회자(膾炙)되었던 평생직장... 이란 이제 멀고먼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뿐이리까.

生死를 초월하여 恨의 매듭을 풀어주는 저 관계의 아름다움, 산것들끼리 우정과 존경과 사랑으로 따숩게 나누는 저 관계의 아름다움.

그런 것들도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을런지요.

 

영화 철도원.

주연 다카구라 겐의 무뚝뚝하지만 자상한 표정이 떠오릅니다.

미장센도 좋았지요.

눈 덮힌 홋카이도 산야와 시골 역사와 소박한 식당...

'테네시 월츠'의 선율도,

 

우리나라에도 철도원과 산골 간이역의 모습을 그린 옛 영화가 있었지요.

김진규 이경희가 출연한 '추풍령'이라는 흑백영화.

가난한 선로보수원의 애오라지 아들의 신분상승을 위한 열망...

 

느끼건대.

한국영화는 영화에다가 조금이라도 사회성을 가미하는데 반하여 일본영화는 순전한 인간적인 측면에서 어프로치하는 경향....

대체로, 대체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ㅎ

 

 

<나락>

-아사다 지로 作-

 

***동우***

2017.03.28 04:31

 

'아사다 지로 (浅田次郎, 1951~ )'는 '철도원'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송해성 감독, 최민식 장백지가 출연하였던 영화 '파이란'의 원작도 아사다 지로의 소설이었지요.

원작과는 캐릭터의 설정과 서사의 전개가 다소 달랐지만 참으로 빼어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이라면 아쿠다카와상(芥川賞)과 나오키상(直木賞)을 들수 있을텐데, 전자가 순수문학을 지향한다면 나오키상은 다소 대중적인 색채를 지녔다고 할까요.

알다시피 아사다 지로는 이미 오래전에 나오키상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많이 읽히는 미미여사(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에쿠니 가오리, 오쿠다 히데오등 인기작가들도 나오키상을 받은, 아사다 지로의 새까만 후배 작가들입니다.

 

나락​(奈落).

빌딩 38층의 빈 엘리베이터 통로에 추락하여 죽은 회사원.

실족인지, 자살인지.

목격자에 의하면 그가 추락하기 직전에 웃고 있었다나요?

 

전부 대화체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의 소설입니다.

대화 속에서 그의 역정과 상황, 그에 대하여 얘기하는 사람들의 불편 불안한 심리가 선뜻하게 느껴집니다.

 

사노(社奴)라던가 사축(社畜)이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아사다 지로의 '나락'

오늘 내일,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momo***

2017.04.03 23:40

 

아사다 지로의 '희곡 같은 소설'이네요!^^

아쿠다카와상과 나오키상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우***

2017.04.04 03:59

 

모모님이 백석과 기형도에 심취하듯이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한 몇사람 일본작가들에게 매혹되곤 하지요.ㅎ

그러나 아사다 지로는 별로 읽어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동우***

2017.03.29 03:24

 

풍요와 안정과 체면을 보장해주는 일류회사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주는 곳입니다.

한 인간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직장, 그리고 헌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그런 일본을 배우려고 한때 우리는 열심히 일본을 드나들었지요.

회억건대 촌스럽고 유치하였어라.

아침마다 모여서 '나는 곧 社다, 社는 곧 나다'라는 구호를 외쳤던 기억.

상명하복이니 단체회식이니 무슨 대회니 회의니 모임이니하는 것들, 집단적 획일적 분위기는 한국이 더 하였던 것 같습니다.

 

지극히 私的 성향인 내 아들녀석.

그런 한국의 직장문화가 끔찍하여 일본직장에서 10여년 개기다가 들어왔는데,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개별성을 존중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라서 할만하였다고 합니다.

히타치 계열사에서 근무하였는데 적어도 회사 밖에서는 사적공간은 철저하게 보장된다고 하여 옛날 내 직장과는 사뭇 다른 곳이구나하고 안도하였었지요.

그런데 후쿠시마의 자연재해를 겪고서는 일본에 대하여 두루 환멸이 엄습하였던가 봅니다.

뿐 아니라 동일본 대지진은 녀석의 인생관에도 큰 영향을 끼친듯 하였습니다.

일본열도 북쪽의 처참함과 소개(疏開)하여 간 남녘 오사카의 태평함의 극도의 대비를 며칠새 몸소 겪고나더니, 삶에 내재된 운명론적 비극성이랄까 허무감같은걸 진하게 느꼈던가 보아요.

아비로서 느끼는바, 돌아온 녀석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어딘가 심드렁한 포즈가 배어있습디다.

 

어쨌거나.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었지요.

평생직장이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이제는 옛말이 되었지 싶습니다.

 

재능과 실력보다 앞서는 건 아부와 줄서기, 더럽고 비열한 음모들...

그로 인하여 자살인지 타살인지 실족인지에 의하여 한 사원이 죽습니다.

남아있는 자들의 불편함 불안함 죄책감.

 

죽은 자의 암시에 걸린건가요.

동양물산의 회장은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어딘가로 추락합니다.

 

평생직장.

회사적 인간.

 

사노(社奴), 사축(社畜).

나락(奈落)으로 떨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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