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김유정 1.2.3 (1,4,3,3,1)

카지모도 2020. 11. 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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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김유정]]

<동백꽃> <두꺼비>

 

 

<동백꽃>

-김유정 作-

 

***동우***

2013.02.06 04:35

 

맹랑하고 당돌한 계집아이 점순이..

동백꽃처럼 이뿌고나.

 

***송현***

2013.02.06 09:30

 

제 고향 춘천.

고향을 가다보면 김유정역이 있습니다

문학관도 있고.

옛이름은 실레마을이랍니다.

부모님 묘소가 그곳에 있고요

징허게 리얼한 고향의 말씨.

부모님들 옛 생각에 젖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동우 오라버님.

 

***동우***

2013.02.07 04:58

 

징허게 리얼한 말씨...ㅎㅎ

부모님 유택도 게 자리잡고 있으시다니.

 

동향사람인 김유정.

송현님께는 좀 더 유별한 가까운 마음일 듯.

그 시대 궁핍하고 피폐한 농촌이나 산골을 그리고 있지만 김유정의 강원도적 서정을 송현님으로서는 남보다 더 짙게 느끼실겁니다.

강원도의 동백꽃은 남녘의 동백꽃처럼 깍정이 같은 붉음이 아닐듯 합니다.ㅎ

 

참, 송현님.

메일로 보내주신 사순절메시지 잘 읽었습니다.

마침 생일아침이라 잠시 고개를 숙였더랬습니다.

고맙습니다.

 

 

<두꺼비>

-김유정 作-

 

***동우***

2013.08.08 04:55

 

김유정의 해학(諧謔)은 강원도 벽촌 이야기 속에만 녹아 있었던게 아니었구나.

 

김유정은 당시 기생이었던 명창(名唱) 박녹주를 향하여 열병같은 짝사랑을 앓았다고 한다.

미치도록 박녹주가 좋았던가 보았다.

그러나 박녹주는 이미 남의 여자가 되어 있었고 김유정의 수많은 연애편지에도 그녀의 마음은 녹을줄 몰랐다고 한다.

 

<어디 사람이 동이 났다고 거리에서 한번 흘깃 스쳐 본, 그나마 잘났으면이거니와, 쭈그렁 밤송이 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렷다. 그것도 서로 눈이 맞아서 들떴다면이야 누가 뭐래랴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여겨 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 달 동안 썼다. >

 

느끼건대 남정네들이 노류장화(路柳墻花)에 빠져드는 심리란 자못 묘한 구석이 있다.

많은 경우, 본실(本室)에 비하여 첩실(妾室)은 그닥 절색도 아니고 성적매력이 짙은 것도 아니더라.

사내짜리의 그 심사 알듯모를듯. ㅎ

 

화류계의 세태 풍속도 재미있고, 자신의 내적 외적 경험을 저와 같은 해학적 이야기로 형상화한 김유정은 천상 '소설가'였다.

 

<이후 각종 잔병치레와 폐병, 고질적인 치질로 몸이 안 좋아질 대로 안 좋아진 김유정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들병이들과 어울리며 살다 다시 춘천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당시 천재 신인 작가로 칭송받던 김유정은 같은 잡지에 글을 실었던 박봉자에게 반해 그녀에게도 열렬히 구애했지만 박봉자는 단 한 통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때 이미 김유정의 몸은 언제 죽을지 모를 상태였기 때문이다. 세도 있는 가문의 아들로 모두의 축복 속에 왔지만 결국엔 쓸쓸하고 불행하게 돌아간 김유정. 그 때 당시 같이 폐병을 앓고 있던 시인 '이상'이 찾아와 동반 자살 제의를 하지만 "나는 내년 봄에도 소설을 쓰겠다"고 거절한 김유정은 결국 돈 100원이 없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봄의 하늘로 돌아갔다. -인터넷에서 주어 온 글->

 

***동우***

2013.08.08 04:57

 

다음 글은 이상(李箱)이 쓴 '김유정'론이다.

 

++++

<소설체로 쓴 김유정론>

-이상-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기림이라.

좋은 낯을 하기는 해도 적이 비례(非禮)를 했다거나 끔찍이 못난 소리를 했다거나 하면 잠자코 속으로만 꿀꺽 업신여기고 그만두는 그러기 때문에 근시 안경을 쓴 위험 인물이 박태원이다.

업신여겨야 할 경우에 ‘이놈! 네까진 놈이 뭘 아느냐’라든가, 성을 내면 ‘여! 어디 덤벼 봐라’쯤 할 줄 아는, 하되, 그저 그럴 줄 알다 뿐이지 그만큼 해두고 주저앉는 파(派)에, 고만 이유로 코밑에 수염을 저축한 정지용이 있다.

모자를 홱 벗어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의 볼따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 여력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이다.

누구든지 속지 말라. 이 시인 가운데 쌍벽과 소설가 중 쌍벽은 약속하고 분만된 듯이 교만하다. 이들이 무슨 경우에 어떤 얼굴을 했댔자 기실은 그 즐만(?慢)에서 산출된 표정의 디포메이션 외의 아무것도 아니니까. 참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이분들을 설복할 아무런 학설도 이 천하에는 없다. 이렇게들 또 고집이 세다. 나는 자고로 이렇게 교만하고 고집 센 예술가를 좋아한다. 큰 예술가는 그저 누구보다도 교만해야 한다는 일이 내 지론이다.

다행히 이 네 분은 서로들 친하다. 서로 친한 이분들과 친한 나 불초 이상이 보니까 여상(如上)의 성격의 순차적 차이가 있는 것은 재미있다. 이것은 혹 불행히 나 혼자의 재미에 그칠는지 우려되지만 그래도 좀 재미있어야 되겠다.

작품 이외의 이분들의 일을 적확히 묘파해서 써내 비교교우학을 결정적으로 여실히 하겠다는 비장한 복안이어늘, 소설을 쓸 작정이다. 네 분을 각각 주인으로 하는 네 편의 소설이다.

그런데 족보에 없는 비평가 김문집 선생이 내 소설에 59점이라는 좀 참담한 채점을 해놓으셨다. 59점이면 낙제다. 한 끗만 더 했더면…… 그러니까 서울말로 ‘낙제 첫찌’다. 나는 참 낙담했습니다. 다시는 소설을 안 쓸 작정입니다 는 즉 거짓말이고 …… , 이 경우에 내 어줍잖은 글이 네 분의 심사를 건드린다거나 읽는 이들의 조소를 산다거나 하지나 않을까 생각을 하니 아닌게 아니라 등허리가 꽤 서늘하다.

그렇거든 59점짜리가 그럼 그렇지 하고 그저 눌러 덮어 주어야겠고 뜻밖에 제법 되었거든 네 분이 선봉을 서서 김문집 선생께 좀 잘 말해 주셔서 부디 급제 좀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김유정 편-

이 유정은 겨울이면 모자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탈모인가? 그의 그 더벅머리 위에는 참 우굴쭈굴한 벙거지가 얹혀 있는 것이다. 나는 걸핏하면, “김형! 그 김형이 쓰신 모자는 모자가 아닙니다.”

“김형! (이 김형이라는 호칭인즉은 이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 어떡하시는 말씀입니까”

“거 벙거지, 벙거지지요.”

“벙거지! 벙거지! 옳습니다.”

태원도 회남도 유정의 모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벙거지라고밖에! 엔간해서 술이 잘 안 취하는데 취하기만 하면 딴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은 무엇을 보고 아느냐 하면…….

보통으로 주먹을 쥐고 쓱 둘째 손가락만 쪽 펴면 사람 가리키는 신호가 되는데 이래 가지고는 그 벙거지 차양 밑을 우벼파면서 나사못 박는 흥내를 내는 것이다. 하릴없이 젖먹이 곤지곤지 형용에 틀림없다.

창문사에서 내가 집무랍시고 하는 중에 떠억 나를 찾아온다. 와서는 내 집무 책상 앞에 마주 앉는다. 앉아서는 바위 덩어리처럼 말이 없다. 낸들 또 무슨 그리 신통한 이야기가 있으리요. 그저 서로 벙벙히 앉았는 동안에 나는 나대로 교정 등속 일을 한다. 가지가지 부호를 써서 내가 교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불쑥, “김형! 거 지금 그 표는 어떡하라는 표구요” 이런다.

그럼 나는 기가 막혀서, “이거요, 글자가 곤두섰으니 바루 놓으란 표지요.” 하고 나서는 또 그만이다.

이렇게 평소의 유정은 뚱보다. 이런 양반이 그 곤지곤지만 시작되면 통성(通姓) 다시 해야 한다.

그날 나도 초저녁에 술을 좀 먹고 곤해서 한참 자는데 별안간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 1시나 가까웠는데…… 하고 눈을 비비고 나가 보니까 유정이 B군과 S군과 작반(作伴)해 와서 이 야단이 아닌가. 유정은 연해 성히 곤지곤지 중이다. 나는 일견에 ‘익키! 이건 곤지곤지구나’ 하고 내심 벌써 각오한 바가 있자니까 나가잔다.

“김형! 이 유정이가 오늘 술 좀 먹었습니다. 김형! 우리 또 한잔 하십시다.”

“아따, 그러십시다그려.”

이래서 나도 내 벙거지를 쓰고 나섰다.

 

-아래 계속-

 

***동우***

2013.08.08 04:58

 

-위에서 받음-

 

나는 단박에 취해 버려서 역시 그 비장의 가요를 기탄없이 내뽑은가 싶다. 이렇게 밤이 늦었는데 가무음곡으로써 가구(街衢)를 소란케 하는 것은 법규상 안 된다. 그래 주파(酒婆)가 이러니저러니 좀 했더니 S군과 B군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언사로 주파를 탄압하면, 유정은 또 주파를 의미 깊게 흘깃 한번 홀겨보더니, “김형! 우리 소리 합시다.” 하고 그 척척 붙어 올라올 것 같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강원도아리랑〉 ‘팔만구암자’를 내뽑는다. 이 유정의 〈강원도아리랑〉은 바야흐로 천하일품의 경지다.

나는 소독젓가락으로 추탕 보시깃전을 갈기면서 장단을 맞춰 좋아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한쪽에서 S군과 B군이 불화다. 취중 문학담이 자연 아마 그리된 모양인데 부전부전하게 유정이 또 거기가 한몫 끼이는 것이다. 나는 술들이나 먹지 저 왜들 저러누, 하고 서서 보고만 있으니까 유정이 예의 그 벙거지를 떡 벗어던지더니 두루마기 마고자 저고리를 차례로 벗어던지고는 S군과 맞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싸움의 테마는 아마 춘원의 문학적 가치 운운이던 모양인데 어쨌든 피차 어지간히들 취중이라 문학은 저리 집어치우고 이제 문제는 체력이다. 뺨도 치고 제법 태권도들 한다. B군은 이리 비철 저리 비철 하면서 유정의 착의일식(着衣一式)을 주워 들고 바로 뜯어말린답시고 한가운데 가 끼어서 꾸기적꾸기적하는데 가는 발길 오는 발길에 이래저래 피해가 많은 꼴이다.

놀란 것은 주파와 나다.

주파는 술은 더 못 팔아도 좋으니 이분들을 좀 밖으로 모셔 내라는 애원이다. 나는 S군과 협력해서 가까스로 용사들을 밖으로 끌고 나오기는 나왔으나 이번에는 자동차가 줄지어 왕래하는 대로 한복판에서들 활약이다. 구경군이 금시로 모여든다. 용사들의 사기는 백열화한다.

나는 섣불리 좀 뜯어말리는 체하다가 얼떨결에 벙거지 벗어진 것이 당장 용사들의 군용화에 유린을 당하고 말았다. 그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전선주에 가 기대서서 이 만화를 서서히 감상하자니까……

B군은 이건 또 언제 어디서 획득했는지 모를 5홉들이 술병을 거꾸로 쥐고 육모방망이 내휘두르듯 하면서 중재중인데 여전히 피해가 많다. B군은 이윽고 그 술병을 한번 허공에 한층 높이 내휘두르더니 그 우렁찬 목소리로 산명곡응(山鳴谷應)하라고 최후의 대갈일성을 시험해도 전황은 여전하다.

B군은 그만 화가 벌컥 난 모양이다. 그 술병을 지면 위에다 내던지고 가로대, “네놈들을 내 한꺼번에 죽이겠다.”고 결의의 빛을 표시하더니 좌충우돌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S군, 유정의 분간이 없이 막 구타하기 시작이다.

이 광경을 본 나도 놀랐거니와 더욱 놀란 것은 전사 두 사람이다. 여태껏 싸움 말리는 역할을 하느라고 하던 B군이 별안간 이처럼 태도를 표변하니 교전하던 양인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B군은 위선 유정의 턱밑을 주먹으로 공격했다. 경악한 유정은 방어의 자세를 취하면서 한쪽으로 비키니까 B군은 이번에는 S군을 걷어찼다. S군은 눈이 뚱그래서 이 역(亦) 한켠으로 비키면서 이건 또 무슨 생각으로, “너 유정이! 덤벼라.” “오냐! S! 너! 나한테 좀 맞어 봐라.” 하면서 원래의 적이 다시금 달라붙으니까 B군은 그냥 두 사람을 얼러서 걷어차면서 주먹비를 내리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일제히 공세를 B군에게로 모아 가지고 쉽사리 B군을 격퇴한 다음 이어 본전(本戰)을 계속 중에 B군은 이번에는 S군의 불두덩을 걷어찼다. 노발대발한 S군은 B군을 향하여 맹렬한 일축(一蹴)을 수행하니까 이 틈을 타서 유정은 S군에게 이 또한 그만 못지 않은 일축을 결행한다. 이러면 B군은 또 선수(船首)를 돌려 유정을 겨누어 거룩한 일축을 발사한다. 유정은 S군을, S군은 B군을, B군은 유정을, 유정은 S군을, S군은…….

이것은 그냥 상상만으로도 족히 포복절도할 절경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만 내 벙거지가 여지없이 파멸한 것은 활연(豁然)히 잊어버리고 웃음보가 곧 터질 지경인 것을 억지로 참고 있자니까 사람은 점점 꼬여드는데 이 진무류(珍無類)의 혼전은 언제나 끝날는지 자못 묘연하다.

이때 옆 골목으로부터 순행하던 경관이 칼 소리를 내면서 나왔다. 나와서 가만히 보니까 이건 싸움은 싸움인 모양인데 대체 누가 누구하고 싸우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경관도 기가 막혀서, “이게 날이 너무 춥더니 실진(失眞)들을 한 게로군.” 하는 모양으로 뒷짐을 지고 서서 한참이나 원망(遠望)한 끝에 대갈일성, “가에렛!”

나는 이 추운 날 유치장에를 들어갔다가는 큰일이겠으므로, “곧 집으로 데리구 가겠습니다. 용서하십쇼. 술들이 몹시 취해 그렇습니다.” 하고 고두백배한 것이다.

경관의 두 번째 ‘가에렛’ 소리에 겨우 이 삼국지는 아마 종식하였던가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태원이 “거 요코미쓰 리이치의 ?기계(機械)?같소그려”하였다 (물론 이 세 친구는 그 이튿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는 듯이 계속하여 정다웠다).

유정은 폐가 거의 결단이 나다시피 못 쓰게 되었다.

그가 웃통 벗은 것을 보았는데 기구한 유신(庾身)이 나와 비슷하다. 늘, “김형이 그저 두 달만 약주를 끊었으면 건강해질 텐데.” 해도 막무가내하더니, 지난 7월 달부터 마음을 돌려 정릉리 어느 절간에 숨어 정양중이라니, 추풍이 점기(漸起)에 건강한 유정을 맞을 생각을 하면 나도 독자도 함께 기쁘다.

++++

 

 

 

-독서 리뷰-

  

[[김유정]]

 

<소나기> <땡볕> <만무방> <심청> <야앵> <솥> <전차가..>

-김유정 作-

 

***동우***

2013.12.17 04:39

 

김유정(1908~1937)의 소나기(소낙비)

 

외간남자에게 몸을 파는 아내도, 그녀의 남편도 아무런 도덕적 윤리적 갈등이 없다.

富와 貧의 경제계급적 모순에 따른 농촌의 피폐한 현실....

김유정은 그런걸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회적 문제보다 나는 그가 묘사하는 해학적 장면에서 슬몃 웃음이 세어 나오지 않을수 없다.

일부러 소낙비에 젖은 여체를 드러낸채 이주사의 욕정을 자극하는 장면.. 외간남자에게 몸팔라고 남편은 자기 손으로 아내를 곱게 단장하는 장면 etc..

하하. 나는야 구제못할 위인이로세.

 

***홍애(虹厓)***

2013.12.20 13:27

 

사실주의 문학 어쩌구 하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구체적 진실에 관해서라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김유정의 소설 ㅎㅎㅎ

 

***동우***

2013.12.21 05:51

 

나도 그래요, 홍애님.

김유정에게서 느껴지는 바는 한줌 슬픈듯 가여운 서정적 리얼리즘, 사회적 리얼리즘은 찾아지지 않아요.

 

 

<땡볕>

-김유정 作-

 

***동우***

2014.05.20 04:28

 

쇠뿔도 녹이려는 뜨거운 중복의 땡볕.

먹고살길 없어 농촌을 버린 이농민(離農民)이 되어 도시의 밑바닥을 떠도는 유민(流民)

 

땡볕은 1930년대 참혹한 도시빈민의 현실, 사회적 현실의 가열찬 메타포인가.

병원과 덕순이부부...

하이라키적 사회모순의 극명한 컨트라스트일런지.

 

그러나 내게는 김유정의 사회의식이 뚜렷하게 만져지지 않는다.

이 소설 마음이 사뭇 애긍하여 김유정의 해학 또한 그다지 만져지지 않는다.

 

덕순이는 빗발같이 내려붓는 등골의 땀을 두 손으로 번갈아 훔쳐 가며 끙끙 내려올 제, 아내는 지게 위에서 그칠 줄 모르는 그 수많은 유언을 차근차근 남기자, 울자, 하는 것이다.

인식의 뿌리에 근거한 가시버시의 윤리학이 먼저 만져진다.

 

나의 느닷없음은 홀연 밀레의 '만종'이 떠오른다.

 

 

<만무방>

-김유정 作-

 

***동우***

2015.04.04 04:45

 

'만무방'은 '막 돼먹은 놈'을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라고 하네요.

빚에 쫓겨 마누라와도 헤어지고 노름과 절도로 세월을 보내는 만무방 응칠이.

자신이 가꾼 벼를 자기가 도적질할수 밖에 없는 소작농 응오.

황소를 훔치자는 형의 유혹을 거절하는 동생 응오를 엉엉 울면서 몽둥이질을 하는 응칠이.

 

김유정의 옛글투 사설은 풍자적이지만, 식민지 농촌의 현실은 참 가혹합니다.

 

 

<심청>

-김유정 作-

 

***동우***

2016.04.23 04:22

 

‘심청’은 김유정(1908~1937)이 생애 최초로 탈고한 소설이라는군요. (1932년)

심청은 효녀 심청이 아니라 심청 사납다 할 적의 그 심청, 심술스런 성질을 의미하겠지요.

 

1930년대 초의 서울 종로통.

거지나 깍쟁이를 못 참아하는 그 ‘심청’은 제 꼬라지도 변변치 않은 주제의 동병상린, 자격지심 때문일까요.

 

학교적에는 톨스토이가 되느니 칸트가 되느니 떠들며 껍적이던 자신의 지금 추레한 몰골에 비하여 ‘나리’ (필경 순사일 터)가 되어 거들먹거리는 친구.

거지를 치워준 친구를 베드로급의 영예로 칭송해 줍니다만 그 심사(心思)를 뉘 알리오?

화창한 봄날 물찌똥 갈기며 지저귀는 제비의 노래가 무슨 곡조인줄 아무도 모르듯.

 

김유정의 작품들은 저작권 만료되어 public domain이 되었다니, 따로 <리딩북>에다 전문을 남겨둘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좋은 주말을.

 

 

<야앵(夜櫻)>

-김유정 作-

 

***동우***

2016.06.07 00:43

 

'김유정'의 '야앵'(夜櫻) <1937년 발표>

야앵.

밤벚꽃놀이.

창경원의 저 풍경화는 1960년대 초까지도 여일(如一)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창경원의 밤벚꽃 놀이는 나 어릴적만 하여도 참으로 성황이었지요. <그 무렵 창경원은 거의 유일한 종합유원지였을겁니다. 동물원 식물원 놀이기구 뱃놀이, 연못가에는 고급요리집도 있었다고 기억됩니다..>

 

젖엄마 손을 잡고 인파 속을 걷던 기억.

활짝 벙글어 후두둑 후두둑 낙화하는 사쿠라의 색감은 전등불빛에 참 선연하였고 화향(花香)은 참 짙었습니다.

 

정숙은 저기서 잃어버린 자식을 만났지만 창경원 벚꽃놀이하면서 인파 속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는 사람도 더러 있었을겁니다.

 

사람의 심성(心性)이야 예나 지금이나 무에 그리 다를까마는 사람들 사는 모습은 요즘과는 사뭇 달랐을테지요.

영애와 경자의 성격과 대화, 정숙의 심사, 그리고 남자와 어린 딸 모정이, 히야까시 놓는 학생들...

저 모습들 아련하게 재미있고.. 한켠으로는 아련하게 슬프고.. 그립기도 합니다.

낫살의 센티멘탈리즘이 말입니다. ㅎ

김유정 작품의 저작권은 '퍼블릭 도메인'으로,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솟 (솥)>

-김유정 作-

 

***동우***

2017.03.13 08:17

 

김유정의 솟 (솥).

 

가난한 농사꾼 근식이. 들병이. 근식이 안해 (아내). 들병이 남편.

들병이에게 빠저 마누라 속곳까지 갖다바치는 근식이.

 

<안해는 분에 복바치어 고만 눈우에 털썩 주저앉으며 체면 모르고 울음을 놋는다. 근식이는 구경군쪽으로 시선을 흘낏거리며 씀 입맛만 다실 따름- 종국에는 두 손으로 눈우의 안해를 잡아일으키며 거반 울상이되었다. 「아니야 글세, 우리것이 아니라니깐 그러네 참!」>

 

한사코 자기네 솟(솥)이 아니라는 근식이의 표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슬픈 해학입니다.

 

이 소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중 하나라지요

 

 

<전차가 희극을 낳아>

-김유정 作-

 

***동우***

2017.04.03 03:58

 

아, 전차.

그래요, 한시절 우리 도시에는 전차가 있었습니다.

서울, 청량리에서 독립문까지(?였던가)

부산, 영도에서 동대신동까지.

서울에서 중학교 통학은 주로 버스로 하였었지만, 부산의 고등학교 적에는 주로 전차로 학교를 오갔었지요.

 

얼마전 포스팅한 '오 헨리'의 소설 '지옥에서 적에게 (Squaring the Circle)'를 보면, 도시의 차가움을 직선으로 은유하였지요.

 

<미는 자연의 완전한 모습이며 둥글다는 것은 미의 특징이다. 보름달, 매혹적인 황금공, 장려한 사원의 굴뚝, 결혼반지, 서커스의 무대. 웨이터를 부르는 벨소리, 그리고 술을 ‘돌려 마시는' 것을 보라.>

 

회억건대 전차는 지극히 곡선적이었습니다.

승객도 전차차장도 직선적 속도감이나 색채적 쿨함 같은건 없었습니다.

 

김유정의 '電車가 喜劇을 낳아'

 

<첫여름 밤의 해맑은 바람이란 그 촉각이 극히 육감적이다. 그러므로 가끔 가다가는 우리가 뜻하지 않엇든 그럼 이상스러운 작난까지 할적이 있다.>

 

초여름 밤, 전차차장의 저 정도의 심술 쯤은 이해해 주기로 합시다그려.

 

<그러나 나는 생각컨대 그 행동이 단순히 심술굳은데서만 나온 것이 아닐 듯싶다. 물론 저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시달리는 몸으로 교외로 산보를 할수있는 젊은 남녀를 볼때 시기가 전혀 없을 것도 아니요 또는 표찍고 종치고 졸고 이렇게 단조로운 노동에 있어서 때때로 그만 유모어나마 없다면 울적한 그 감정을 조절할 길이 없을 것이다. 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은 이성에 대한 동경과 애정의 발노일는지 모른다. 누군 말하되 사랑이 따르지 않는곳에는 결코 참된 미움이 성립되지 못한다 하였다. 그럼 이것이 그 철리를 증명하는 한개의 호례이리라.>

 

작금의 대중교통에서야 저런 사설(辭說) 어림이나 있겠어요?

 

국경일이면 꽃단장을 하고 냉냉거리면서 도심을 달리던 전차에 욕망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그려. ㅎ

욕망이 직선적이고 노골적으로 승하지 않았던 시절, 그립습니다.

전차는 아마 1960년대 말 즈음 사라졌을겁니다. 군대시절에는 전차를 탔던 기억이 없으니까.

 

도시의 풍광과 도시인의 정서.

김유정의 저 시대와 나의 시대는 세월의 차이는 상당하지만, 그러나 도시풍광과 정서에 있어서 그 차이가 그리 현격하지는 않습니다.

허지만 세상은 가속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내 어머니와 나와의 정서적 차이에 비하면 내 자식들과 나와의 차이는 매우 큰 것이지요.

내 딸과 그 자식인 비니미니에 이르면 더욱 엄청난 것일테고.

 

4월의 한주, 밝은 시작을.

 

 

 

 

-독서 리뷰- 

 

[[김유정]]

<노다지> <가을> <안해> <필승前> <두포전>

 

 

<노다지>

-김유정 作-

 

***동우***

2017.10.20 04:12

 

김유정의 '노다지'

1935년 발표한, 그에게 일약 천재소리를 듣게 한 작품입니다. (금을 소재로 한 김유정의 다른 소설, '금' '금따는 콩밭'도 있지요.)

 

한밤중 휴광(休鑛)에 잠입하여 금을 훔치는 잠채꾼 꽁보와 더펄이.

건강하고 힘 센 더펄이 덕에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 나약하고 소심한 꽁보.

시집 간 제 누이를 빼돌려 더펄이에게 줄 생각을 할 정도로 평소에 깎듯하게 형님으로 모십니다.

 

그렇지만 하룻밤 사이 돌변하고 맙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형님을 죽도록 내버려두고 꽁보는 노다지를 들고 구덩이를 빠져나와 내빼버리고 맙니다.

황금을 보고 눈이 뒤집힌 거지요.

 

존 휴스턴 감독의 옛 영화 '시에라의 황금'

나는 그 영화가 김유정의 이 소설에서 모티프를 차용한게 아닌가 하였습니다. ㅎ

카사블랑카에서의 그토록 멋진 젠틀맨 험프리 보가트가 시에라의 황금에서는 후줄근한 악당으로 나오지요.

황금 앞에서는 신사고 나발이고 없는가 봅니다. 하하

 

배부른 사자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지 않지만, 인간은 있는 놈의 식탐이 오히려 더 기승입니다.

신자유주의, 인간의 탐욕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가 봅니다만.

 

노다지.

생각건대, 황금 앞에서의 인간 심리라는게 대체로 저 ‘꽁보’에서 오십보백보이지 싶습니다.

나 역시 별수 없을테구요.

인간존재의 부박함(浮薄)과 나약함이 그러할진데 그 또한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닐런지요.

 

 

<가을>

-김유정 作-

 

***동우***

2017.12.11 04:28

 

김유정 '가을'

 

제 마누라 팔아먹는 놈.

남의 마누라 돈주고 사는 놈.

그 매매계약서를 써 주는 놈.

또는 마누라에게 매춘을 강요하거나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서방이라는 작자.

 

김유정의 소낙비, 솟... 김동인의 감자...

궁박한 시절, 농촌현실이 그리도 참혹했던가 봅니다.

 

노름에 눈이 뒤집힌 놈들은 더 했다지요.

심지어는 제 딸 까지 청루(靑樓)에 팔아먹는 놈까지 있었다더군입쇼.

 

저토록 딱한 상황 속에 깃든 김유정의 해학(諧謔)

슬프면서도 슬몃 우습습니다.

 

근데 더 웃기는 건 주재소에 가서 무얼 어쩌자는 건지.

기약위반(계약위반) 어쩌구하면서...

혹여, 그 시절이라고 마누라 매매 계약서가 법률적으로 유효하였던건 아니겠지요.

 

그런 계약은 절대적 무효이지만, 글쎄 어떤세월에서는 그 기약서(계약서)의 효력을 타투던 때도 있었으려나. ㅎ

 

우리 민법 103조,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왕년의 민법 강의 가락으로 줄줄 외웁니다그려.ㅎ)

 

 

<안해>

-김유정 作-

 

***동우***

2018.07.27 23:38

 

김유정 (金裕貞,1908~1937)의 '안해(아내)'

척박한 시절, 따라지 인생 저 가시버시의 모습.

작가의 슬픈 해학...

웃음과 더불어 마음 한켠에서는 눈물이 납니다.

 

아내의 매춘을 부추기는 남편, 김유정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지요.

몸파는 여자, 기중 가장 천한 등급 '들병이'

 

김유정의 글 '조선의 집시', 그 부제가 '들병이 철학'이랍니다.

빈궁한 농촌사회를 유랑하면서, 성에 굶주린 사내들에게 잔술과 함께 몸을 파는 들병이.

김유정은 그 존재의 순기능적 측면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지요.

 

 

<필승前>

-김유정 作-

 

***동우***

2018.09.10 05:33

 

김유정(金裕貞,1908~1937)은 이 편지를 쓰고나서 열하루만에 죽었습니다.

 

++++

필승前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 하다. 밤에는 不眠症으로 하여 괴로운 時閒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猛熱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는 안되겠다. 달리 道理를 채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病魔와 최후 담판이다. 興敗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時急히 必要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百圓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助力 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探偵小說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外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中 아주 大衆化되고 흥미 있는 걸 로 한둬 卷 보내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五十日 以內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 허거든 네가 極力周旋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勿論 이것이 無理임을 잘 안다. 無理 를 하면 病을 더친다. 그러나 그 病을 위하여 엎집어 無理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三十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 살모사 구렁이를 十餘뭇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 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드렸다. 나로하여금 너의 팔에 依支하여 光明을 찾게 하여 다우.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기다리마.

三月 十八日 金裕貞으로부터

++++

 

필승이는 김유정과 휘문고 동문인 '안회남'이라고 합니다.

이 편지를 받고 안회남이 친구들과 닭값을 갹출하는 사이 유정은 죽은겁니다.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새파란 젊은이의 저토록 살고싶어하는 간절함...

 

일흔 넘은 나, 이 글을 읽을적마다 저 시대 한 예술가의 요절이 시리고 고깝습니다.

폐병이 무어라고, 닭 서른마리 구렁이 십여뭇이 무어라고.

거기 어디 한줌 에스프리가 있습니까.

 

무어라 해싸도 인간은 유물론적인 존재입니다.

 

이 시대, 물질적 풍요 연장된 수명...

헬조선만 뇌일게 아니라 감사할줄도 알아야지요.

 

 

<두포전>

-김유정 作-

 

***동우***

2019.02.04 03:56

 

옛날 옛적에...

긴긴 겨울밤, 지붕위엔 소록소록 눈이 쌓이고 화롯불엔 고구마가 익어갑니다.

아랫목 따뜻한 이불 속 할머니 품에 안겨 듣는 옛날 이야기.

 

까치설날.

心像에 그려지는 이런 그림, 늙은이의 고답(高踏)일테지요. ㅎ

 

김유정의 '두포전'

이 동화는 김유정이 쓰다가 결국 마무리를 못하고 죽고말았답니다.

유정의 마지막 병석에서 이야기의 얼개를 들은 친구 현덕에 의하여 완성되었다지요.

 

내일 설날까지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요즘 아이들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면 삐까번쩍한 온갖 파노라마 현란할터인데 아랑곳 있을까.

필경 어른들의 읽거리일터. ㅎ

 

***동우***

2019.02.05 08:04

 

나라를 빼앗긴 백성, 김유정에게도 어쩔수없이 이조인(李朝人)의 면모 약여(躍如)한듯 합니다.

 

근왕사상같은...소년장수의 모습에서 왕권 회복의 기원을 읽는다면 다소 비약일까요만.ㅎ

 

설날.

해돋는 아침의 서기(瑞氣)

 

모두 복된 설 명절 쇠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