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최윤 (1,4,3,3,1)

카지모도 2020. 11. 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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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최윤]]

<회색 눈사람> <워싱톤 광장> <틈> 

 

 

<회색 눈사람>

-최윤 作-

 

***동우***

2013.05.23 07:24

 

최윤(1953년생)의 1992년도 동인문학상 수상작 '회색 눈사람'.

이어령은 그녀의 작품을 '이상적 단편소설의 전범'이라고 하였답니다.

 

1970년대초 유신체제하의 엄혹한 시절.

백도 흑도 아닌 회색, 싸늘한 눈사람...

눈사람에게 능동성은 없다.

지극히 私的인 가난과 외로움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여대생은 그저 관찰자적 화자(話者)에 머무를 뿐이다.

시대적 암흑 속에서 저항을 꿈꾸며 불안한 삶을 영위하는 민주화운동가.

그녀에게 나타난 그는 친절한 따뜻함이고 구원이었을 것이다 .

 

<한밤중에 여행을 할 때 당신은 불빛이 있는 쪽으로 걷지 않나요. 내가 그 불빛을 당신의 인쇄소로 정했다 해서 내 여행이 죄스러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가끔 당신에게는 하찮은 것이 위로가 될 때는 없습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목소리나 어떤 분위기 같은 것 말입니다. 내가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선망으로 바라보면서 약간의 안도와 위로를 얻었다고 해서 당신에게 누가 된 것이 무엇입니까.>

 

<"아, 그 길고도 긴 길의 우울한 초겨울 풍경이라니! 사방은 술병 바닥 두꺼운 유리의 짙은 색깔처럼 흐렸지만 나는 그 때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희망.

으흠, 희망의 가치.

희망은 희망입니다.

사람을 살수 있도록 하는. 

 

 

<워싱톤 광장>

-최윤 作-

 

***동우***

2013.09.02 05:43

 

'최윤'(1953~ )의 '워싱톤 광장' <전에 '최윤'의 '회색 눈사람' 포스팅한적 있어요>

 

옛 기억의 느닷없음.

어디선가 풍겨오는 모종의 냄새에서, 귓등을 스치는 유행가 한 소절에서, 어느 골목의 빛바랜 담벼락에서.

사무친 그리움이기도 하고, 머리칼 쥐어뜯고 싶은 부끄러움이기도 하고, 다시 떠올려도 숨 씨근덕거리는 분노이기도 한 그것들.

 

[나와 여자애가 부르던 이중창은 감히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불안정한 행복이었다.]

 

[바로 그날 어쩌면 우리는 그 토관 속에서 번개보다도 짧은 시간 동안 설익고 외로운 우리의 살을 맞대어 보았는지도 모른다.]

 

무기력한 도회의 삶.

<지하도에 엎드려 구걸하는 여인>은 어떤, 몽롱하게 아픈 자의식이었을까.

부끄러웁고 그리웁고 두려운....

 

***eunbee***

2013.09.02 10:42

 

한적한 지하철 객차에서, 이제 막 도착해 머물게된 건너편

사람이 복작대는 객차에 앉아 있는 불특정다수의 얼굴을 무망히 바라보며 앉아있는데.

갑자기 기차는 움직이고 속도를 더하고...그래서 휙~스쳐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시야의 사람들이 뿌옇게 몇줄의 선으로 흐려지고 뭉개져 달아나 버리는(영화속에서 휙휙 지나가는 장면들을 느린 속도로 보여주는 것 같은)......

그런 감상을 가져오게 해요.

모두 다 스쳐지나가버리고 말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래서 무언가 작은뭉텅이로 마음바닥에 갈앉는... 오늘 아침 소설 읽기네요.

 

첫 해외 여행에서, 아들을 위해 사온 독일제 하모니카를 나는 가끔 꺼내 불어요.

반음처리가 되지않아 애를 먹는 그 하모니카. 오늘은 워싱턴 광장을 한 번 불어보고 싶네요.ㅎ

 

9월이에요. 아름다운 날들로 채우시어요. 동우님.

 

***동우***

2013.09.03 05:15

 

거리를 걷거나 대중교통의 차깐에서 망연하게 바라보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세상에 똑같은 생김새와 표정의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데 그저 무망하게 스쳐가는 타인들. 또는 차창으로 스쳐가는 풍경화들.

특정한 이미지가 아니라 뭉뚱그려 흐려진 하나의 덩어리로써 우리 마음밭에 담기지만, 때로는 문득 그 덩어리 속에서 하나의 특별함을 발견(의식하게 되는 것이겠지요)하게 될 적 그것은 무엇일까요.

기억 속이거나 무의식의 감성 속에 들어 앉아있는 낯익은 어떤 대상(풍경)이 겹쳐졌기 때문일터인데.

시각이거나 후각이거나 청각이 아주 아주 사소한 실마리에서 캐취하여 끄집어 내는 무언가 익숙한 것들.

따뜻함이거나 차거움이거나 부끄러움이거나 두려움이거나...

 

은비님 하모니카의 '워싱턴 광장'을 들으면 무엇이 끄집어내 지려나.ㅎ

 

9월입니다 은비님.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세요.

 

***teapot***

2013.09.03 01:12

 

'워싱톤 광장'

이 노래 저도 불렀던 것 같아요!!

옛 어릴때의 이런 저런 기억은 누구나 있을텐데

기억력이 별로 안 좋은가봐요~

그리움은 외 할머니(얼른 커서 내가 모시고 살아야지 했는데~),

앞머리 복실복실 파마하고 노란 세타입고 가슴에 손수건 달고 국민학교 입학하러 갔던 일이 생각 나네요~

같은 반애가 필통에 깐다고 내 노란세타에서 털실 보뿌라기를 뜬는데도 말도 못하고....ㅎㅎㅎ

 

***동우***

2013.09.03 05:19

 

워싱톤 광장.

한때 유행하였는데 티팟님은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

흐음, 나보다는 한참 어리심은 분명할 터.ㅎ

'이시스터즈'라고 간드러진 음색의 트리오가 불렀다고 기억합니다만.

 

노란 쉐터입고 앞머리 복실복실 파마하고 가슴에 손수건 단 꼬맹이숙녀.

상상으로도 무지 귀엽습니다그려.

티팟님 국민학교 입학식의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건 외할머니의 사랑 때문일 겁니다.

내 손주들에게도 외할머니의 사랑은 오래 남아있을테지요.  

 

 

<틈>

-최윤 作-

 

***동우***

2018.10.17 04:59

 

'최윤 (1953~ )'의 '틈'

 

작가가 53년생이니 나와 시대적 그림이 여럿 오버랩됩니다.

戰後의 궁핍, 시장풍경, 화폐개혁, 미친여자, 분유배급, 월셋방, 벽지의 무늬, 이불틈새 묻어둔 가장의 밥그릇, 다방....

그러나 이 소설이 한 시대의 그림을 얘기하고 있는건 아닐테지요.

 

<일곱 혹은 여덟 살. 어느 누구도 그 나이의 한 여린 영혼의 진정한 성을 알 수 없다>

 

내게 남자라는 신체적 자각은 언제 깃들어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분명한건, 사타구니에 거웃이 돋아날 무렵보다는 빨랐을겁니다.

 

여자.

구멍 너머 저 쪽에는 방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방에는 바람 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오두카니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를 통하여 인식하는 여자라는 신체적 자각.

자궁의 모독감, 여성이라는 性이 가지는 슬픔들.

 

<바로 어두운 구멍에서 등을 돌린 그 순간 그, 그녀는, 그녀가 된다.>

 

그러니까 성적자각은 양성(兩性)의 신체적 성징(性徵) 이전, 意識의 영역에서 먼저 이루어졌을겁니다.

말하자면 사회에 가득한 남성중심적 상징질서들이 알게모르게 어린 영혼을 잠식했을 터...

 

<존재의 한 부분처럼 늘 몸에 지니고 있으나 너무 익숙해져 대부분 잊고 사는 그런 흠집이나 상처. 그것이 붙어 있는 몸이 더 커질 필요가 없어 성장을 그친 이후로도, 저 스스로의 조직과 삶이 따로 있듯이 조용하고도 외롭게 시간에 따라 자라나는 이상한 상처의 생리를 이 구멍은 지니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짙어지고 깊어지며 구멍은 어느 날, 마치 우주의 블랙홀이라는 것이 생기는 원리와 유사한 에너지를 부여받는다.>

 

모든 슬픔은 그 구멍에서 시작됐다....

 

<달 밖, 저 멀리로 연결된 길고도 투명한 은빛 사다리. 사다리 위에 한 여자가 앉아 그때까지도 소리없이 울고 있다.>

 

이제부터의 세상.

어린 내 두 손주가 지니고 있는 여자는 사다리 위에 앉아 울지 않을겁니다.

 

최윤의 '틈'

여성성의 고유한 심리가 묘사하는 섬세함.

애틋하고...시적은유 가득한 아름다운 소설입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