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무라카미 하루키 1.2.3.4 (1,4,3,3,1)

카지모도 2020. 10. 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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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빵가게 습격>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15 05:48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태엽감는 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1949~ )는 몇권이나 읽었을 것이고 내게 독후(讀後)의 탄성(歎聲)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전 기억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루키는 내게서 멀어졌다.

(특히 한국 젊은이들)의 광적인 애호,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 하루키 문학 모방의 얘기도 들리고, 매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등..

먹어가는 낫살이 그런 세풍(世風)을 싫어하였던지.. ㅎ

 

엊그제 그의 신작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가 출간되자 이건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스티브잡스의 신제품 발표 현장을 방불케 하는 열광..)

바야흐로 국내 출판사들도 판권 얻느라 박이 터질 판이다.

으흠, 내가 간과하였을, 이 하루키의 괴력은 어디에 근거하는건가.

속물인 나, 하루키를 다시 읽기로 하였다.

 

오로지 상큼하고 신선하고 기발한... 가벼움의 하루키. 내게는.

그렇지만 고루한 관념없는 또렷한 감정의 인식(認識)..

도회적 상업적 팝아트적 정서..

솔직 소박 감각적인 어투...

그에게는 분명히 문학적으로 식상(食傷)케 하는 구석이 없구나.

 

벗님들.

(리딩북 칙칙함의 쇄신을 위하여 틈틈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올릴 터이니 함께 읽어요.

다르게 읽히는 바 있으면 그를 눈치채지 못하는 늙다리 나를 향하여 윙크나 째끗 하여주시면..ㅎ

 

그나저나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글쎄.

아,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 또래, <1949년생>이란 말입니닷!!!

'나'라는 원시인의. 주눅을, 굴욕적 감성을 어이하리오마는.

 

***teapot***

2013.04.15 13:45

요즈음 동우님 방에 자주 못 온건지 동우님이 글을 많이 올리신건지 못 읽은 글이 많아

최근에 포스팅하신 글부터 거꾸로 읽으려 한답니다~ㅎㅎㅎ

 

이 작가가 유명한 작가인가 보지요? 저도 팝 아트적이란 표현이 아주 적절히 느껴지는데요.

 

동우님, 늙다리는 무슨? 말도 아니 되옵니다.

"노후에 멋진 신사" 이리 말씀 해 주시어요.

 

멋진 신사 동우님께 " 찡긋" 을 보냅니당!!!

 

***동우***

2013.04.16 05:22

하하, 티팟님의 깊은 감성을 세세히 알리 없습니다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딘가 티팟님께 어울리는 취향일듯.

티팟님 그리시는 그림이나 포스팅의 면모로 짐작건대. ㅎ

 

무라카미 하루키, 상당히 유명한 작가랍니다.

매년 노벨상 후보에도 빠지지 않고 거론되지요.

 

티팟님.

세상이 무엇으로 인하여 돌아가고 있는줄 아십니까?

끼익끼익 태엽감는 새가 태엽을 감기 때문에 째깍째깍 돌아가는 것이지요.

'태엽감는 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에요.

 

티팟님의 늙다리 멋진 신사라는 말씀은 고마운데, 컨디션은 전혀 멋지지 않으니, 원.

티팟님의 '찡긋'에 힘을 얻습니다그려.

 

***eunbee***

2013.04.16 10:41

어제 재미있게 읽었어요.

하루키의 소설은 '상실의 시대' '먼 북소리'만을 읽었을 뿐이지요.

위 소설은 휘리릭 읽히네요.ㅎㅎㅎ 딱 내 수준,입맛.

남자의 심정에 슬몃 웃음도 나고...

 

동우님의 감기몸살 퇴치를 위해 노래불러 드려요.

곡명 '사월의 노래' 자~~부릅니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동우***

2013.04.17 06:21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내일모레인데 연일 칙치한 날씨에 컨디션까지 이 지경.

그리고 은비님.

세상 또 어지러워질래나?

보스톤의 폭탄테러...

 

어찌되었건 소시민 나는.

은비님의 사월의 노래, 티팟님의 찡끗, 그리고 하루키의 새큼함으로 새 기운 진작할랍니다. ㅎ

은비님의 파리도 새롭게 새롭게.

 

***홍애(虹厓)***

2013.10.13 10:37

동우님, 소나기 찾으려고 태그 하였지만 서비스 문제 발생하여 덕분에 리딩북 목록을 찾게 되었어요

그리고 발견.

올 4월에 올리신 건데 못 읽었었어요.

 

사실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라는 단편집 제목의 책이 있었고 그때 이 단편도 읽은 것이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여자를 안았던 추억, 그리고 그녀가 이후 상당히 달라졌다, 는 얼개도 아닌 얼개 뿐이었습니다

무라카미 소설을 이 단편집으로 부터 시작해 탐독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우님 말씀처럼 저도 멀어져 버렸어요

상실의 시대 말고, 태엽감는 새 같은 경우나 양을 쫒는 모험, 그 후의 몇 몇 작품들도 읽고 나서 다 복합되어 버려서, 손에 잡히는 느낌이 없는 소설이었거든요

최근에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지만 그의 다른 에세이도 읽고 나서 다른 소설 읽을 때와 비슷해 차츰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멀어졌어요

몇 년 전 대 히트 했던 장편도 사 놓고 읽지는 않았구요

올 봄에 색깔 없는 다자키... 가 나왔을 때도 너무 요란해 보여 구입을 안 했는데요,

 

지난 주부터 그 책 읽고 있어요. 저.

그러니 이 소설은 제게 뭔가 새로운 재회 같아 보입니다.

이 단편집은 좋았다는 생각

이 단편집에 실린 어떤 글들이 장편이 된 경우가 있기도 해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다시 보고자 이 단편집의 일본어판을 사려고 하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복사해 갈게요.

 

***동우***

2013.10.14 05:50

홍애님.

"색갈없는 다자키..."는 어때요?

일본어로 읽고 계신거지요. 홍애님은?

 

무라카미 하루키.

좋았다가 시시했다가 다시 좋았다가 시시했다가...

그의 파일 여럿 가지고 있는데 내 리딩북 priority에서 뒷전으로 밀려요. ㅎ

 

***홍애(虹厓)***

2013.10.14 07:07

색깔없는 다자키를 잡은 후 , 여러 군데 놀러 다니느라 집중을 못해 지금 초반 을 읽었을 뿐인데요,

나쁘진 않지만,,,, 이것도 그냥 무라카미 같구나 그러고 있어요

 

무라카미 류 식으로 사회 문제를 사람 살이 들여다 보면서 치밀하게 그려내는 게 아니라

이번 주인공도 친구 문제로 애인과 이야기 나누는 설정이거든요

그래서 저로서는 읽기 쉬우니까 읽는데.. 아마 일본어로 읽으니까 읽는 맛이 있지 한국어로는 읽는 맛이 떨어질 거에요. 문장이 쉬워서요.

게다가 저로서는 이 일본어는 사전 찾아 읽어야 하니까 어렵게 도전하는 과목이 되어서 읽는 거겠죠.

 

다 읽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야기에 빠지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 면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훨씬 낫다 싶어요

 

저는 일본의 다른 작가도 많은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상 수상 후보, 이런 건 좀 의아한데 그거는 번역이 많이 되어 그런 거고 그럴만도 하다 생각하지만 고은이 노벨상 바라고 앉아 있는 건( 그가 바라지 않는다하더라도) 그와 노벨상을 둘러싼 가을마다의 헤프닝은, 왜 그런지 이해의 2 자도 못하고 있어요.

고은의 시를 다 모르면서 하는 소리겠지요. 하지만, 정초 신문에 나온 그의 시, 몇 개 본 적 있는데.. 그냥 읽다 말았던 기억이 남아 그러겠지요

옆 자리에 앉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 인상도 한 몫 하구요.

하여간 한국 사람은 사촌 땅 사면 배아픈 현상일까요.

저의 고은에 대한 편견이랄 수 있는 것.

일본에서도 무라카미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가진 사람도 많겠죠

 

***동우***

2013.10.15 06:12

홍애님.

'무라카미 류'는 좋아하시지요?

이 냥반 파일도 좀 업어온것 있는데 언제 올리겠습니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한 불루(인가? 아마 처녀작일 것)'를 읽고서 그 신선함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난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그 소설에 나오는 부르주아틱한 취향과 삶의 모습이 아주 낯설게 느껴졌더랬지요.

더불어 감각적이고 심리적인 젊은 남녀들의 섹스의 묘사. (낡은 그 책 어딘가 내게 있을거에요.)

 

하하, 홍애님.

나도 매년 가을마다 은근히, 허지만 몹시도 애타게 노벨 손짓을 기다리는 고은의 모습 상상하고는 쓴 웃음을 짓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래도 '고은'보다는 노벨에 한층 가까운가 봅니다.

 

그러나 홍애님과 내가 좋아하는 밀란 쿤데라, 그 냥반이 가장 먼저 받았어야지요.

그 소식 기다렸는데, 올해에도 나로서는 모르는 캐나다 단편작가 여성이. 흐음..

 

***홍애(虹厓)***

2013.10.15 18:33

한없이 투명한 블루, 는 무라카미류의 초기작도 읽고 싶은 나머지 구입해 두었습니다

소설 하나와 에세이집을 읽고 더럭 무라카미 류의 모든 것을 읽고 싶다 해서 저질렀는데

요새는 잘 안 읽어지네요 ㅠㅠ.

 

무라카미류의 처녀작은 작가의 그 나이 만큼의 글이겠지요?

지금 읽는 것과 작가의 나이 때 독자도 비슷한 나이에서 읽는 것과도 좀 다를 것 같네요

 

이후에, 같이 읽게 되면 할 이야기 해 봐요

근데, 미리 올리지 마세요

저 일본어로 읽고 난 다음에 ^^

 

***동우***

2013.10.16 05:50

무라카미 류 포스팅.

그럴께요.

홍애님 일본어로 읽고 난 다음. ㅎ

나도 아직 읽지는 않았답니다.

  

 

<빵가게 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17 05:37

새벽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를 잔득 읽었습니다.

여기저기서 그의 단편 텍스트파일들 업어와서 포스팅합니다.

 

공복이니 공산주의자니 바그너니...

이런 어휘에서 무슨 코드찾아내기 같은 거 그만두기로 합시다. 우리.

피곤할 뿐입니다.

하루키의 소설, 어떤 대목에선가 감성적 공명(共鳴)같으거 있으면 그것으로 족할겝니다.

그냥 편편하게 재미롭게 읽으면 오우케이 아닐까요? ㅎ.

 

하루키의 소설 읽으면서 나의 경우.

어떤 것은 상큼한데 어떤 것 진부한 것도 없지 않습니다.

좀 묵직한 느낌 드는 대목도 없지 않지만 너무 가비압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습니다.

주제니 은유니 들여다 볼 엄두 갖지말고 술술 읽으면 그냥 재미있어요.

 

술술 읽히다가도 (내 취향이나 기분학적으루다) 껄끄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요.

절대 낫살의 감성 탓만은 아니게 말입니다. ㅎ

 

하루키, 음악적 안목은 수준급, 마라톤도 그렇다지요?

 

***teapot***

2013.04.23 00:49

저 이 음악 모르는데 듣고 싶어 어쩌지요?

그리고 이 빵집 아저씨네 놀러가고 싶어요~ㅎㅎㅎㅎ

 

***동우***

2013.04.23 05:17

티팟님.

대체로 바그너 음악은 익숙한 사람에게 익숙한 음악이래요.

바그너는 국수주의(쇼비니스트)적이라고 알려져 있다지요? (음악이야 그럴리 있나요? 히틀러 때문에...ㅎ)

 

저 빵집 아저씨.

공산주의자이면서 바그너 음악광인 빵가게 주인.

거기에 무슨 코드가 있음직 한데, 글쎄요. ㅎ

 

***jamie***

2014.04.15 22:21

한 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빠져서 여러 권 읽었어요.

1Q84를 읽고나서...이제는 그의 작품은 그만,이라 생각했어요.

그의 단편은 처음 접하네요.

 

***동우***

2014.04.16 04:15

가볍게 느껴지면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 이상하면서 매혹적인 감성.

한 때 빠져든, 모종의 센시티브하고 색채적인 감성이 그려집니다그려. ㅎ

 

 

 

 

 -독서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퀴즈쇼> <택시를 탄 흡혈귀> <만년필>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17 05:45

'빵가게 습격과'는 습격의 동인(動因)이, 같은건가... 아닌가.

투명하면서도 풍부한듯한....

공복감.

특수한 기아(飢餓)의 그 계시적 이미지라는.

바다 위에 떠있는 배... 바다 밑으로는 해저화산의 꼭대기..

 

느닷없는 보들레르를 꺼내어 펼칩니다. (전혀 이 소설과 관계없는... 내 의식의 흐름...ㅎ)

항구에 어슬렁 부양하고 있는 배.... 찾을수 없네.

보들레르의 다른 대목 베껴씁니다.

 

<생각컨대, 하나의 배, 특히 어슬렁 움직이는 배를 바라보는 그 무한하고 신비로운 즐거움... 인간 정신의 절대적인 요구중의 하나- -중략- 바로 어떤 망망하고 광대하고 복잡스러운 허나 조화 이룬 존재, 온갖 갈망과 인간적인 대망을 안타까이 호흡하며 고뇌하는 천품에 넘친 어떤 짐승의 가정(假定) -보들레르 '내밀의 일기 '봉화'중->

 

하하,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

느닷없음이란 논리에 근거한 놈이 아니니까요. ㅎ

 

***eunbee***

2013.04.17 17:33

'항구에 어슬렁 부양하고 있는 배.... 찾을수 없네'

 

봄이 다 가기전에 찾게 되기를요.ㅎㅎ

동우님의 감성이라면......

 

널려있는 배.

 

안녕~~~^*^

 

***동우***

2013.04.19 05:34

한반도 아랫녁 항구도시의 봄은 내가 노상 투덜거리는 바인데, 올 봄은 유독 더 한것 같습니다.

한겨울보다 더 스산해요.

파리의 4월도 비가 잦은듯 하지만 비오는 파리를 몹시 사랑하는 은비님이신지라.. ㅎ

 

심상에 떠오르는 이미지.

하루키의 주관적인 이미지는 전혀 다른 나의 이미지가 되기도..

하루키는 좀 회화적(繪畵的)으로도 읽힙니다. 내게는.

 

<특수한 기아(飢餓)란 무엇인가? ① 나는 작은 보트에 타고 고요한 바다 위에 떠 있다. ②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 속에 해저화산의 꼭대기가 보인다. ③ 해면과 그 해저화산 사이의 거리는 그 다지 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④ 왜냐하면 물이 너무 투명해서 정확한 거리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24시간 영업의 레스토랑같은 데는 가고 싶지 않다고 아내가 말하고 나서, 내가 '하긴 그것두 그래'라고 동의 할 때까지의 2초나 3초 사이에 나의 머리 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아니므로 그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분석해 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계시적인 종류의 이미지라는 사실만큼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내가 새로운 먹을 것의 단편(斷片)을 찾아 부엌 안을 뒤지고 다니는 동안, 나는 다시 보트로부터 고개를 내밀고 해저 화산의 꼭대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보트를 에워싸고 있는 바닷물의 투명함은 나의 기분을 지독히 불안정한 것으로 만들었다. 명치 근처에 휑한 공동(空洞)이 생겨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들어가는 곳도 나오 는 곳도 없는 순수한 공동이다. 이 체내의 기묘한 지락감(遲落感) - 부재(不在)가 실재(實在)하는 듯한 감각 - 은 뾰족탑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느끼는 진저리 쳐지는 공포감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은비님의 봄 노래, 한곡 더 불러주시우.

쌈빡하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 감기. ㅎ

 

***teapot***

2013.04.23 01:07

한소설을 읽고 다른 소설을 생각해 내시는 동우님~

저는 왜 읽고 난 소설도 기억을 못하는걸까요? ㅋ

 

젊은이들의 장난같다 하며 읽었는데 깊은 뜻이 숨겨져 있나요??

 

***동우***

2013.04.23 05:19

하하, 티팟님.

깊은 뜻?

그런게 내게 있을리 없잖아요?

알았으면 무언가 있는 척 지껄였겠지요.

 

 

<퀴즈쇼>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17 05:47

전혀 다른 색감이지만, 김영하의 소설 '퀴즈 쇼'도 있었지요.

(김영하의 소설은 얼마 읽어보지 못하였는데) 그에게도 하루키가 있었는지...

 

이 소설 좀 유치하게 읽었는데, 내가 모를 다른 맛이 있는지도...ㅎ

 

***teapot***

2013.05.14 03:30

ㅎㅎㅎㅎㅎㅎㅎㅎ

그저 잼 있게 읽었습니다.

덤땡이 맞았습니다!

 

***jamie***

2014.04.15 22:41

ㅋㅋㅋ 웃기네요. 싱거운 농도 단편이라구요!

 

***동우***

2014.04.16 04:16

하하하 맞아요, 제이미님.

무라카미 하루키 것 치고는 이건 한참 싱거워요.

 

 

<택시를 탄 흡혈귀>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17 05:51

수많은 인종이 바글거리면 북적대는 대도시.

연애 사랑 음모 도둑 야합 배신 강도 도찰 강간 음주 마약 간통...

우리의 촉수에는 방송 신문에 회자되는 상식적 인프라의 도식(포맷)만이 잡힌다.

 

그런 도회에 드라큐라라고 없을손가.

 

참 진솔한 운전기사.

아무도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지 않는데, 우리 곁에 흡혈귀가 있는줄 알 도리가 있나?

여자에게 조심하도록 그 사실을 알려주는 남자도 참 진솔한 사람이다.

 

***저녁산책***

2013.04.27 08:50

"이 거대한 도시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산이 있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산이 있는 것이다..."

 

ㅎㅎ 정말 우리가 상상하면..

실중하지 않더라도 뭐든 일어날 수 있는 세계....짧은 글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ㅎ

 

***동우***

2013.04.28 10:45

저녁산책님.

어떤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삶의 내막이라던가, 인물의 정체에 대한 상상력...

후줄그레 한 일상을 반짝이게 하는, 저와 같은 상상력이 작가를 만드는 것이겠지요. ㅎ

 

***teapot***

2013.05.14 03:37

동우님의 해설에 아~ 그리 볼 수도 있구나!! 했습니다.

 

티비나 영화 책들에 뱀파이어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우리 애들도 여렸을때 재미있어하며 보더라고요.

물론 그 속에 사랑 이야기도 겻들이고 해서 그렇지만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었어요.

 

***동우***

2013.05.14 05:00

나는 어렸을 적에는 드라큐라 영화가 그토록 재미가 있었는데, 나이 들어서는 뱀파이어 영화처럼 시시한 것도 없는듯 하답니다.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뱀파이어는 너무나 시시하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좀 은유적인 상상력 깃든 뱀파이어쯤 돼야...ㅎ

 

 

<만년필>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17 05:56

<"인간이란 말씀이에요, 척추뼈 하나하나로 사물을 생각하고, 글자를 쓰는 법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척추에 딱 맞는 만년필밖에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고, 월급이 얼마인지를 묻는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이 만년필로 대체 무얼 쓸 작정이죠, 하고 묻는다.

석달 후, 만년필은 완성되어 내게로 왔다. 꿈처럼 몸으로 쏙 스며드는 만년필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 만년필로 꿈 같은 문장을 술술 쓸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루키의 글쓰기, 참 진지하다.

 

다음 글은 자신의 소설집에 쓴 하루키의 서문입니다.

 

++++

<서문.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여기 수록된 문장을 소설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내게는 약간의 저항감이 있다. 보다 확실하게 말하면, 이것은 정확한 의미에서의 소설이 아니다.

 

내가 소설을 쓰려고 했을 때, 나는 모든 현실적인 제재 - 그런 것이 만약에 있다면 하는 말이지만 - 를 커다란 냄비에 한 데 집어넣고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용해한 후에, 그것을 적당한 모양으로 찢어내어 사용한다. 빵가게의 리얼리티는 빵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소맥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 수록된 문장은 원칙적으로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었다. 물론 나는 당사자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세부를 여러가지로 주물렀기 때문에 완전한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얘기의 줄거리는 사실이다. 나는 들은 그대로의 얘기가 되도록 그 분위기를 깨지 않도록 하면서 문장으로 옮긴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문장을 -잠정적으로 스케치라고 부르기로 하자- 처음에는 장편에 착수하기 위한 워밍업 삼아 쓰기 시작했다. 사실을 되도록 사실 그대로 써 두는 작업은 나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일로 문득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처음에 나는 이 스케치들을 활자화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것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써서는 서재의 책상 속에 넣어둔 여타의 무수한 단편적인 문장들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될 처지였다.

 

그러나 하나 둘 써가면서, 나는 그 얘기들 하나하나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들은 <얘기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기묘한 체험이었다.

 

예를 들어 소설을 쓸 때, 나는 내 스타일과 소설의 전개를 따라 극히 무의식 중에 재료가 되는 단편을 고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소설과 나의 현실생활이 구석구석까지 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고보면 나 자신과 나의 일상생활도 딱 맞아 떨어지게 합치되고 있지는 않다), 아무리 해도 내 안에 소설로는 제대로 쓸 수 없는 앙금과 같은 것이 쌓이게 된다. 내가 스케치로 썼던 것은 그 앙금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앙금은 나의 의식 저 밑에서, 어떤 형태를 빌어 얘기될 기회가 오기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앙금을 모으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내 얘기를 하기보다는 남의 얘기를 듣는 쪽을 훨씬 좋아한다. 게다가 내게는 다른 사람의 얘기 속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재능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실, 대개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내 자신의 얘기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것도 특수한 사람의 특수한 얘기보다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얘기 쪽이 훨씬 재미있다.

 

이러한 능력-남의 얘기를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능력-이란 구체적으로 뭔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근래 몇년동안 소설을 쓰고 있지만, 소설가로서도 역시 이런 능력이 어떤 도움이 되었던 경험은 한번도 없다. 아니 몇번인가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생각은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얘기를 하고, 나는 그것을 경청하고, 그 얘기가 내 속에 쌓여갔을 뿐이다.

 

만일 이러한 능력이 나의 소설가로서의 특질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참을성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한다. 재미라는 것은 참을성이라는 필터를 통해야 비로소 표출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고, 소설의 문장이라는 것들 대부분은 그러한 위상 위에 성립한다. 재미라는 것은 뱀의 입을 비틀어 컵에 담아서는 자,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미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기우제의 춤같은 것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 문장의 취지와는 관계가 없다. 문맥을 원래대로 되돌리자.

 

사람들 얘기의 대부분은 사용할 길이 없는 채로 내 안에 쌓인다. 그것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밤에 내리는 눈처럼 그저 조용히 쌓여가는 것이다. 이것은 남의 얘기를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공통되는 괴로움이다. 가톨릭 교회사는 사람들의 고백을 천상이라는 대조직에 넘겨줄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편리한 상대도 없다. 자기 자신 속에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커슨 맥글러스의 소설속에도 조용한 벙어리 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누가 무엇을 얘기해도 친절하게 귀를 기울이며, 어떤 때는 동정하고, 어떤 때는 같이 기뻐한다. 사람들은 끌려들 듯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 여러가지 고백이나 숨겨 두었던 얘기를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청년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그에게 강요했을 뿐 누구하나 그의 기분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그러나 물론 내 자신의 모습을 그 벙어리 청년에게 오버랩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하는 일이 있고, 게다가 문장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금이라는 것은 몸 속에 확실하게 쌓여가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소설이라는 형태를 일시적으로 방기했을 때, 극히 자연스럽게 이러한 일련의 제재가 내 의식의 수면에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리라. 나에게는 이 스케치의 제재들이 의지할 곳도 없는 고아들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어떤 소설에도 어떤 문장에도 편입되는 일없이, 내 속에서 줄곧 잠들어 버린다.

 

-아래 계속-

 

동우

2013.04.17 05:58

 

-위에서 받음-

그러나 그러한 제재를 문장으로 만들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편안한 기분이 되느냐 하면, 그런 일은 없다. 이것만은 내 자신의 변변치 못한 명예를 위해서라고 말해두지 않으면 안되겠다. 나는 내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 이러한 스케치를 쓰고,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도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말해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나 자신의 정신이 해방되는지 어떤지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고, 적어도 지금 이런 문장을 씀으로써 나의 정신이 해방될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기 표현이 정신의 해방에 기여한다는 것은 미신이며, 호의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신화이다. 적어도 문장에 의한 자기 표현은 누구의 정신도 해방시키지 못한다. 만일 그러한 목적을 위해 자기 표현을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런 생각을 단념하는 게 좋다. 자기 표현은 정신을 세분화시킬 뿐이며, 그것은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만일 뭔가에 도달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사람은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쓰는 것 자체에는 효용도 없고, 그에 따른 구원도 없다.

 

그런 이유로 앙금은 변함없이 앙금인채로 내 안에 남아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을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꾸어 새로운 소설 속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넣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일 넣지 않는다면 그 앙금들은 내 속에 봉인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앙금을 이런 형태의 스케치로 정리할 수밖에 다른 수가 없다. 이것이 정말 올바른 작업인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진짜 소설을 썼어야만 하지 않았나, 하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행위는 선이다.>라도 말한 어느 살인범의 얘기를 인용할 수밖에 없다. 내게는 이러한 제재를 이러한 스타일로 정리하는 것 외에, 달리 취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여기 수록한 문장을 <스케치>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소설도 논픽션도 아니기 때문이다. 제재는 어디까지나 사실이고, 그것을 담은 그릇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만일 각각의 얘기 속에 뭔가 기묘한 점이나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면,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다 읽는데 그다지 인내가 필요치 않았다면 그것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그 얘기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어떤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앙금이란 그 무력감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이 이 무력감의 본질이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집어넣을 수 있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운행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 시스템은 동시에 우리들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회전목마와 흡사하다. 그것은 정해진 장소를 정해진 속도로 돌고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내릴 수도 갈아탈 수도 없다. 누구를 앞지르지도 않고, 누구에게 앞지름을 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회전목마 위에서 가상의 적을 향해 치열한 데드 히트(격심한 경쟁)를 전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사실이라는 것이 어떤 경우에 기묘하게,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비치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어떤 종류의 내제적인 힘의 압도적인 많은 부분은 그 발생과 동시에 없어져 버렸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아울러 그 공백이 우리 인생의 다양한 위상에 기묘하고 부자연스러운 왜곡을 초래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

 

***teapot***

2013.05.14 03:46

해설을 먼저 읽었는데요 긴 해설을 이해도 못했는데

소설은 어찌 그리도 짧은지요? 그래도 무언가 뜻이 있는 것은 같아요! ㅎㅎㅎ

 

글을 읽고 골프를 생각했습니다.

점수가 잘 안 나온다고 골프채만 바꾸지 말자 라고....ㅎㅎㅎㅎㅎㅎ

 

***동우***

2013.05.14 05:03

글쓰기의 진지함과 성실함.

"인간이란 말씀이에요, 척추뼈 하나하나로 사물을 생각하고, 글자를 쓰는 법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척추에 딱 맞는 만년필밖에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하하, 티팟님.

진지하고 성실하게 골프를 즐기시려면 티팟님의 척추에 딱 맞는 골프채를 찾아보심이 여하? ㅎ

 

***jamie***

2014.04.15 23:20

하이쿠같은 단편 소설이네요.

어려서 아버지가 주신 아주 좋은 몽블랑 만년필.

내용은 몰라도 확실히 글씨는 이쁘게 써졌거든요, 사각사각 글쓰는 감촉도 기막히고.

만원버스 안에서 책가방 받아준 어떤 놈이 필통째 훔쳐갔어요.

그 만년필을 안 잃었더라면 글을 쓰겠단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동우***

2014.04.16 04:24

아까워라, 여고시절 제이미님의 몸블랑 만년필.

안그래도 빼어난 제이미님의 글솜씨, 전업 작가가 되셨을껄.

 

검객에게 칼이 소중하듯, 글쓰는 이에게는 필기구가 참으로 귀중한 도구일겁니다.

어떤 시인은 만년필 글쓰기만을 고집하여 그만 만년필 수집광이 되었다지요.

작가 김훈은 언제나 뾰죽하게 깎은 연필이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한다지요.

 

문방구에 대한 애착이랄까.. 그런것 나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에야 키보드만 있으면 오케이이니, 그 애착도 부질없어졌지요. ㅎ

 

***jamie***

2014.04.16 12:31

제 막내동생이 들으면 그럴걸요,

명필이 붓을 탓하겠냐고요! ㅎㅎ

 

 

 

 

 -독서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로마제국의 붕괴> <렉싱턴의 유령>

 

<로마제국의 붕괴>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17 06:05

하루키 소설의 日常.

느끼건대, 그것은 참으로 나른한 범상함이고 자본적 수동성이다.

외로움과 허무의 느낌도 없지 않지만.

궁색함 별로 느껴지지 않는 물질주의..

대체로 색채적인 취향..

자본주의..

아메리카니이즈한, 그 중 '뉴요커'적 분위기..(내가 뉴요커의 진면목 알리 없지만 영화나 소설로 주어들은 느낌이 그렇다는.)

 

일상과 역사적 이벤트.

어렴풋, 그 보색(補色)과 배색의 잔감도 느껴지는듯...마는듯...

허지만 그 마티에르는 모르갔다.ㅎ

 

***저녁산책***

2013.04.18 23:38

동우님,,,신문에서 이분의 신작소설이 이미 100만부나 발행 되었다고 하며 화제이더군요.

하루키의 글이 많은 대중들에게 매력이 있나 봅니다.

동우님 설명으로 언급하신 그대로..

저야 몇권 안 읽어보아서 의견을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읽은 소설중에 항상 음악이야기가 나와 이점은 매우 반가와 한답니다.

(제가 음악에는 조금 민감하긴 한가 봅니다.ㅎ)

'상실의 시대'에서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란 노래, '1Q84' 에서는 야나체크의 음악이 언급되더라구요.

야나체크는 최근 상당히 우렵쪽에선 각광 받고 있는 작곡가라네요..

저는 아직 그다지 친근하지 않지만요..

 

나머지 올려놓으신 글도 읽어보고 갈께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동우***

2013.04.19 05:49

저녁산책님.

젊은이의 감수성에 그토록 어필하는 하루키 문학.

나보다 불과 2년 차이의 연배일 뿐인데.

아무래도 젊은이의 감성과는 다른 것이겠지만 내 정서에도 하루키의 감수성 끼쳐지는바 없지 않답니다.

독특하게 투명한 느낌이랄까.. 쿨한듯 짐짓 가볍게 건드리는듯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의 무거움도 잇는듯 하고..

 

하루키는 음악광이라고 합니다. 마라톤광이기도.

그래 그런지 음악적, 또는 회화적인 톤도 짙게 배어있는듯한 작풍..

 

어제 새벽에는 저녁산책님 정원의 음악을 배경으로 들으면서 하루키의 소설들 포스팅하였지요.

베토벤의 트리플 콘체르토.

꿈의 세 연주가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 수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이 연주로는 많이 들어보지 못하였는데, 참 참 좋았어요.

수없이 꺼내 들어 너덜너덜한 내 엘피 자켓트...

크라우디오 아라우와 야노스 스타커와 헨릭 쉐링의 연주.

고맥건대, 내게는 '트리플 콘체르트'에 진한 추억이 있다오,ㅎㅎ

 

조금 전,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 포스팅하였는데 저녁산책님 꼭 읽어보시기를.

거기에도 음악이 있으니.ㅎ

 

***teapot***

2013.05.10 06:47

뮌지 모르게 말초 신경을 건드리며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려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올려주신 이 작가의 글을 읽었을때(제목이 뭐더라?) 동우님께서 제가 좋아할 스타일이라고 말씀하신것이 생각나는데 영~저를 잘 못 보신것 같아요~ㅎㅎㅎㅎ

어떤 면은 아주 원칙주의 구닥다리 랍니다.ㅎㅎㅎㅎㅎ

 

***동우***

2013.05.11 10:38

하루키와 통통 튀는 감각을 지니신 듯한 티팟님.

하하, 아닌가요?

 

대개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스스로 보수꾼, 구닥다리 원칙주의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답니다.ㅎㅎ

 

 

<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19 05:22

약간의 우울과 권태.. 오래 된 것이 주는 신비로움과 안온함.. 고독의 일락(逸樂)... 풍족한 물질주의.. 충일한 감정밭....

렉싱턴 고택(古宅)의 분위기에서는 내 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고성(古城)의 냄새가 난다.

 

<"머지않아 이 집도 옛날 레코드 무게 때문에 어셔가처럼 뿌지직 뿌지직 땅속으로 가라앉을지 모르겠네." 리 코니츠의 오래된 10인치 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책상을 향하여 문장을 쓰고 있자니, 시간은 내 주위를 기분좋고 평화롭게 지나갔다. 마치 사이즈가 딱 맞는 주형에 자신을 끼워 맞춘 듯한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껏 가꾸어진 특별한 친밀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방의 온 구석구석, 벽에 난 조그만 돌기와 커튼 주름에까지 음악의 울림이 푸근하게 배어 있었다.>

 

렉싱턴의 저택,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가벼움에 결핍한 것은 무엇인지.

사랑의 상실, 허무함... 혹은 존재함의 무거움.

존재란 아득한 것, 그 무게마저 투명한가.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케이시는 얼굴을 들고 여느 때의 온화하고 세련된 미소를 입가에 띠고 말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 해도, 이 세상 어느 누구 하나, 나를 위해 그렇게 깊은 잠을 자주지는 않을 거네.">

 

또 느닷없으련다. 

'슈베르트'하고 발음해 보라.

그 느낌, 얼마나 푸르고 투명한지.

아, 슈베르트는 참으로 쿨하고 심플한 영혼이었구나하고 절로 느끼게 될 것이다.

 

***고향***

2013.04.19 07:37

동우님의 느닷없음이 참 천진스러우셔서

오늘 아침 즐거워지는군요. 색다른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구요.

 

***동우***

2013.04.20 04:53

천진스럽다 하시니 상찬인줄 알고 웃습니다.

 

케이시는 슈베르트의 무슨 곡을 좋아하였고 제레미가 슈베르트의 무슨 피아노 곡을 연주하였는지 작가가 좀 언급하였더라면 인물의 풍모와 아래 대사가 좀 더 확연하였을까. ㅎㅎㅎ.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 해도, 이 세상 어느 누구 하나, 나를 위해 그렇게 깊은 잠을 자주지는 않을 거네.">

 

고향님.

나는 정말 슈베르트를 사랑한답니다.

그의 리트를 듣고 있노라면 요즘도 눈물이 흐르지요.

늙은 주책이. ㅎ

 

***저녁산책***

2013.04.19 09:40

렉싱턴 고성의 이야기. ..일상속에 약간의 환타지를 버무린듯한 몽롱함이 느껴집니다.

죽음에 대한 성찰도 보이구요.

하루키 스타일... 은근 매력있어요.ㅎ

 

그런데 오타 인지 아닌지...보스턴 심포니 세이지 오자와가 오랜동안 지휘힌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니면 이것도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썼을 수도 있겠네요..저자가 앞서서 밝힌대로요.

하루키가 음악광이었군요.. 그래서 더욱 점점 흥미가 갑니다.ㅎ

 

오늘도 눈부신 날이 시작됩니다.

동우님, 봄날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동우***

2013.04.20 05:05

저녁산책님.

아랫녘에는 만끽할 봄이 없다오. ㅎ

어제는 바람불고 스산한 것이 똑 한겨울 같았어요.

 

다시 확인해 보았는데, 하루키가 쓴 보스턴 심포니 '오자키'는 오타 아니에요.

분명 작가는 '세이지 오자와'를 염두에 두었을 겁니다.

그리고 내 추측건대, 바로 그 <저녁산책님의 '오자키 유타카'>를 떠올려 그 이름을 차용한것 아닐까요?

오자키 유타카는 하루키가 관심을 가질만한 캐릭터였을듯..

 

하루키는 정말 재즈의 깊은 맛에 포옥 빠진 사람인가 보아요.

 

음악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좀 전 올린 하루키의 '토니 다키타니'에도 음악(재즈)이 나오지요.

 

***저녁산책***

2013.04.22 00:12

ㅎㅎ 역시 그

 

 

 

-독서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토니 다키타니>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구토 1979> <헛간을 태우다>

 

 

<토니 다키타니>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3.04.20 04:45

무언가 애태워 그리워하고, 뭔가로부터 미치게 벗어나고 싶기도...

'소외(疏外)'가 사회적 언어라면 '고독'이란 존재적 언어인가.

공허는.. 상실감은.. 사랑은..

 

‘토니 다키타니’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당한 기량의 소설가다.

 

스타일리스트 하루키는 투명하고 차갑다.

그러나 관조적 신비주의(?)같은게 있어 따숩다. 내게.

 

그러나 노벨문학상은 밀란 쿤데라가 먼저 받았으면 좋겠다.

하루키는 그 다음에..... ㅎ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6.12.25 03:52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의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저 양 사나이도 꿈을 꾸었나 봅니다.

성양상인(聖羊上人), 양 사나이, 양사나이협회, 양박사, 두명의 비틀이, 쌍둥이 여자아이, 바다까마귀니..

게다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니.

구멍은 무어고 구덩이는 무어고 샘물은 또 무업니까. 그리고 또 도넛은 왜들 그렇게 맛이 있는 겁니까?

 

양 사나이는 샘물 바닥과 헤딩하고서 나서야 이상한 주문에서 풀려났지만 꿈에서 깨어 난 것은 아직 아닙니다.

맥주가 있고 맛있는 케익이 있고 멋진 음악과 흥겨운 춤이 있는 즐겁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윽고 양 사나이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왠일?

꿈이 아니었네요.

방에는 실제로 하얀 새 피아노가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우편함에는 크리스마스 카드가 들어있네요.

"양사나이 세계가 언제까지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이라고 적혀 있는.

 

저 상징성을 상투적으루다 이해하는 척 못할바도 없을터이나 그건 이 동화에 대한 예가 아닐듯 합니다.

아이들 꿈나래가 그러하듯이 동화적 상상력이란 이리저리 산란하여 즐거운 빛이지요.

크리스마스의 반짝거림 시나브로 바래어 가는 늙은 마음 밭에도 그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ㅎ

 

메리 크리스마스.

사람세상들, 언제까지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구토1979>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7.10.19 04:42

무라카미 하루키의 '구토 1979'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쓰는.

그리고 친구의 애인이나 아내와 찰나적 섹스를 즐기는 사나이.

 

불현듯 어느날 구토를 시작하여 40일 동안 계속됩니다.

그때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는 그냥 끊겨버리는 아지못할 전화가 걸려옵니다.

 

<무라카미 씨는 그게 내 속에 있는 어떤 죄책감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죄책감이- 구토라든가 환청이라든가 하는 형태로 결상(結像)된 게 아닌가 하고 말하고 있는 거로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네.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지."하고 나는 정정했다.>

 

어느날 구토가 멎고 마지막 전화가 걸려옵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습니까?>

 

그는 누구인가요.

죄의식일까, 도덕선생일까, 양심일까...

 

지속적인 일기쓰기와 뷸륜의 찰나적 쾌락.

구토와 전화.

관계의 모호성.

혹은 대비되는 컨트라스트.

 

오랜 기간에 걸쳐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일기를 쓸 수 있다는 흔치 않은 능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

그래서 그는 구토가 시작되고 끝난 날짜를 정확하게 인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들여다 보고 싶습니다.

그의 일기를.

날짜처럼 객관적 사실 말고 그의 내면적 현실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그러면 구토의 원인과 전화의 정체를 유추할듯 싶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일기에 그런걸 유추할만한 단서는 기록되어있지 않을겁니다.

 

<"아마 정나미가 떨어진 거겠지. 아니면 탐정을 계속 고용할 만큼의 돈이 떨어진 걸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이건 가설이니까. 가설이라도 괜찮다면 백 개든 2백 개든 대줄 수 있지. 문제는 자네가 어느 가설을 취할 것인가 하는 거야. 그리고 거기에서 뭘 배우느냐 하는 거지."

"배운다?" 하고 그는 의외인 듯이 말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이마에 글라스의 바닥을 대고 있었다.

"배운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고백합니다.

나 역시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다는 흔치 않은 능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ㅎ

오래전 일부를 공개하면서 '변명 위장 신음 혹은 진실'이라고 똥폼의 제목을 붙였더랬습니다.

'변명 위장 혹은 구토'라고 붙여도 좋았을성 싶기도 합니다만. 나 역시 반성이라던가 하는 어휘는 쓰지 않았군요

어쩌면 그 따위 기록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모호한 가설일런지도 모릅니다.

인생자체가 가설이라는 사람도 있더군입쇼. ㅎ

 

무라카미 하루키, 은근히 기대하였을텐데 올해 노벨문학상도 물건너 갔군요.

그의 예술적 몽환성, 그런대로 괜찮습니다만. ㅎ

 

 

<헛간을 태우다>

-무라카미 하루키 作-

 

***동우***

2018.07.19 05:05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

이 작품은 최근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 (유아인 주연)의 원작 소설입니다.

'버닝'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기도 했지요.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8.07.20 04:21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1949~)'의 '헛간을 태우다(納屋を燒く)'

하루키 특유의 묘하게 공허한듯한 분위기의 소설입니다.

 

정기적으로 헛간을 태우는 걸 자신의 취미라고 말하는 남자.

<세상에는 헛간이 많이 있고 그것들이 모두 나에게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바닷가에 외로이 서 있는 헛간이며, 논 한 가운데 서 있는 헛간···. 어쨌든 여러 가지 헛간이에요. 15분만 있으면 깨끗이 다 타버려요. 마치 처음부터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에요.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요. 다만 사라지는 거예요. 휙 하고.>

 

부르주아 유한계급인 그에게 주기적으로 헛간을 불태운다는건 무슨 의미일까요?

물질적 풍족함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핍감이 갈급해하는 짜릿한 자극.

 

아마 여자들을 죽였겠지요.

일종의 사이코 패스일까요.

 

세상과 별로 연고도 없는듯한 여자...

여자는 건조한 삶에 대하여 권태로운 환상을 가지고 있는듯 합니다.

주인공은 불타버린 헛간을 찾지만 그건 발견할수 없고 다만 여자가 사라졌을 뿐입니다.

 

<결국 나는 포기했다. 거의 1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사라졌다. 나는 매일 아침 다섯 개의 헛간 앞을 뛰고 있다. 마을의 헛간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어딘가의 헛간이 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다시 12월이 오고, 겨울새가 머리 위를 가로 질러간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 밤의 어둠 속에서 나는 때때로 불에 타서 무너져가는 헛간을 생각한다.>

 

이 짧은 단편을 바탕으로 하여 이창동 감독은 장편영화 '버닝'을 만들었습니다.

느끼건대 '버닝'은 그의 다른 영화에 비하여 상당히 난해합니다,

인물의 설정과 캐릭터는 소설과 흡사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매우 다릅니다.

소설에 비하여 훨씬 더 격렬합니다.

 

가난한 청년(유아인)은 부잣집 한량(처음 보는 배우)보다 나이가 젊은 설정이고 노을을 바라보며 춤을 추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세리프도 여자(신인)가 합니다.

북의 대남방송이 들리는 파주, 후암동 후진 빌라의 방, 강남의 고급 맨션, 봉고트럭과 포르쉐, 카드빚, 광고도우미, 분노조절 장애로 공무원을 폭행하여 구속되는 아버지....

그리고 뉜가에는 허구이지만 뉜가에는 실존하는 우물이나 고양이같은 장치들..

한국의 현실 속, 젊은이들의 맹렬하게 버닝(burning)하는 분노를 영상으로 그리고 있는겐지..

 

영화의 종장, 나는 좀 느닷없었습니다.

유아인의 그 맹렬한 분노와 살인액션.

저무는 들녘, 유아인은 남자를 칼로 난자합니다.

자신의 옷가지를 홀라당 벗어 찻속에 밀어넣고 시체와 차와 함께 불을 지릅니다.

벌거벗은채 봉고를 몰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유아인...

 

엔딩 크레딧이 떠오릅니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무조건 엄지 척이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못하겠네요.

내 수준으로는 너무 어렵습니다그려.

어려운 영화는 싫어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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