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수상은 죽지 않는다. 몽계필담]] (1,4,3,3,1)

카지모도 2020. 11. 1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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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수상은 죽지 않는다> <몽계필담>

 

 

<수상은 죽지 않는다>

-이승우 作-

 

***동우***

2013.10.17 05:03

 

어제(2013.10.16), 44회 동인문학상은 작가 이승우(1960~ )가 받았군요.

이승우는 그 이름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어렴풋하게 나타나기도 한다지요.

 

독재자의 망상과 소설가의 환상의 접점(接點).

알레고리 형식의 단편, '수상은 죽지 않는다'

어딘가 카프카가 어른거리고 조지 오웰이 어른거립니다.

영화, ‘왕이 된 남자’가 연상되기도 하구요.

 

++++

<취조를 하는 사람이 그 테이프를 들려 주는 순간, k.m.s 는 돌연 기묘한 환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더듬어 볼펜을 찾아들었다. 그의 백일몽은 환경과 처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는 백일몽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본다. 원탁이 보인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있다. 그중 절반은 군복을 입고 있다.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절을 받은 사람은 의자 깊숙이 몸을 잠그고 앉아 있다. 그 사람의 손가락이 원탁 위에서 까딱거린다. 수상이다. 이내 일어선 사람이 보고를 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적성국과의 접촉이나 불순 세력과의 연계 조짐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단지 비현실세계를 천착하는 한 소설가가 공상 속에서 우연히 만들어 낸 작품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위험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뜻밖으로 정교하고 치밀하긴 하지만, 다른 의도나 배후는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소홀히 처리할 문제는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만일 그 작자의 구상이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적지 않은 파문이 야기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자를 세상과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하고자 합니다. 그 자는 적성국의 정보원으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암약하여 불순한 여론을 선동하려 했다는 혐의를 쓰게 될 것입니다. 작가가 이제까지 발표한 창작물들 가운데서 추려 낸 몇개의 문장이 국민을 미혹시키려 한 증거로 제시될 것입니다. 수상이 나지막한 소리로, 여전히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물었다. 그런 문장을 찾을 수 있소? 내 말은 모든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 한가 말이요. 보고자는 큰소리로 절도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정도는 식은죽 먹기보다 더 쉽습니다. 그는 보고를 계속했다. 동조 세력으로 출판사의 편집자와 그 자의 내연의 처가 함께 처형될 것입니다. 수상이 다시, 보고자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 자의 내연의 처라는 여자는 그대의 부인이지 않소? 보고자가 고개를 번쩍 쳐들어 큰소리로 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수상이 괜찮소? 하고 물었다. 그가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수상이 손가락을 까딱거리기를 멈췄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다음 보고자를 향해 차갑게 한마디 뱉었다. 그대도 그 명단에 포함시켜 같이 처벌하시오. 희의장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숨찬 고요가 원탁을 맴돌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상은 회의장을 떠났다...

취조관은 k.m.s 의 뺨을 두 차례 세게 쳤다. 백일몽에서 깨어나기에 족한 고통이 뺨을 얼얼하게 했다. 그는 억지로 일으켜 세워졌다. 조사는 끝났소. 당신은 당신의 탁월한 상상력을 원망하도록 하시오. 때때로 탁월한 것들은 단지 그 탁월성 때문에 희생되기도 하는 것이오. 그 탁월함의 내용이야 다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그런 희생을 받아 왔소. 그는 건장한 체격의 두 명의 젊은이들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끌려갔다. 취조관은 k.m.s 가 백일몽 속에서 끄적거려 놓은 글을 읽었다.

수상은 연기자가 아니다. 그는 한때 연기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는 연기자에서 수상이 되었다. 수상은 죽지 않는다...

취조관이 그 종이를 읽고 있을 때 그의 코앞에서 전화기가 울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전화기를 향해 거수 경례를 했다.

넷. 방금 보냈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놈입니다. 그렇습니다. 알았습니다. 곧 처형하도록 하겠습니다.>

++++

 

작가는 지난날 독재정권을 상정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곧바로 스탈린이 떠오르고 북한이 떠오릅니다.

상징조작이라면 바로 그들이 베테랑 선수들 아니겠어요?

그 쪽을 생각하면, 알레고리가 아니라 하나의 사실주의적 소설로 읽혀도 무방할꺼외다.

 

 

<몽계필담(夢溪筆談)>

-곽의진 作-

 

***동우***

2015.01.22 01:21 

 

처음, 제목이 몽계필담(夢溪筆談)인지라 무슨 고전적 고답(高踏)함을 연상하였습니다.

그런데 화자(話者)가 은거한 고향 진도에서의 삶의 모습을 한편의 수필처럼 들려줍니다.

한적(閑寂)하지 않은 그저 살이의 일상(日常)이고 작가의 사유는 그냥 진솔합니다.

배후에 어떤 어둔 색감 깔려있더라도, 필담이니 말씨의 표정은 알수 없습니다.

 

++++

<희룽이는 내 앞으로 뒤로 옆으로, 장난하며 따랐다. 나는 갯바위와 갯바위를 뛰어 고동이 닥지닥지 붙어있는 펀펀한 갯바위까지 건너왔다. 거기서는 엄지 손가락만한 고동들을 쉽게 잡을 수 있다. 나는 눈에 띄는 대로 고동을 잡아 봉지에 담고 바위 등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희룽이가 곁에서 한치 다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술 한 잔 하면 다리 하나 주지.”

말하며 나는 손바닥에 술을 따라 희룽이에게 주었다. 놈은 손바닥을 핥았다.

“이 놈 봐라. 제법이네. 그렇담 안주도 드셔야지?”

나는 희룽이에게 한치 다리를 찢어 주었다. 희룽이가 낼름 낚아챘다. 그리하여 나는 희룽이와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니 놈, 이제부턴 내 술 친구 해라. 알았냐?”

한 병의 소주를 나누어 마시는 중에 밀려들어온 밀물에 갯바위가 잠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알싸하니 취기가 올라왔다.

“가자. 해넘어 간다. 갯바위에서 잡은 고동 넣고 토장국 끓여 부친 저녁식사 준비해야허느니…… ”

나는 벌떡 일어서며 갯바위를 훌쩍 훌쩍 뛰어 갯가로 나갔다. 그런데 희룽이란 놈 조금 전에는 잘도 뛰어 넘던 바위와 바위 사이를 넘지 못하고 물에 빠져버렸다.

“희룽이 너 술 취했구나? 우아하하, 술 취한 강아지라니.”

나는 물에 빠져 두 발을 허우적거리는 희룽이를 보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멍충이 취할 정도로 먹지 말라 했지! 너무 마시면 안돼. 적당히 마셔야지. 적당히. 이거 중요한 단어야. 사는 것도 적당히, 죽는 것도 적당할 때…….”

내가 말이 많아졌다. 술에 흠씬 취한 증거다. 술 취한 나는 술취한 희룽이를 놀리면서, 술 취한 희룽이를 끌어내 주었다. 갯가로 나오자 희룽이 온 몸을 털었다. 희룽이 몸에 묻었던 바닷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알았냐? 적당히 마셔야지. 적당히…… 적당히 살아야 하는 것을……”

나는 휘청휘청 걸었다. 손에 들고 있는 고동봉지가 흔들렸다. 희룽이 내 뒤를 따랐다.>

++++

 

유령도 보고, 방도 늘이고, 낙지죽도 쑤고, 전어 맛도 탐식하고, 소주도 마시고, 가랑이 사이 아버지의 남성이 끔찍하게 혐오스럽고 슬프고..

그리하여 바닷가에서 강아지와 마시는 소주, 그 맛 알듯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술도 적당히, 사는 것도 적당히, 죽는 것도 적당한 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적당’이라는 건 ‘대충’이라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곽의진(郭義珍, 1947~2014)

처음 접하는 이름인지라 검색하여 보았습니다.

 

아하, 바로 종편방송 '유자식 상팔자'(헬스장 런닝머쉰 앞의 모니터 재방송 프로 자주 나옵니다)에 나오는 배우 ‘우현’(못난이 캐릭터로 어필하는)의 장모님이었군요. (나랑 동갑인데 작년 돌아가셨네요)

사위 우현과 함께 출연한 '백년손님'인가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쓴 작가였군요.

유자식 상팔자에 출연하는 그분의 따님(우현의 아내)은 새까만(?) 남편에 비하면 얼마나 후덕한 인상인지, 근데 외아들에게는 그리도 까칠한 엄마라지요?ㅎ

 

***송명숙***

2015.01.26 20:06

글이 참 따뜻하게 진실함으로 다가옵니다.

한줄기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어쩔 수 없을때 떠 맡아야하는. 맘이 약한 저와 동급인 저자를 위로합니다

‘이숲 저숲에서 하나 둘 개똥벌레 모여들어 어느새 수십마리 무리지어 춤췄다. 춤을 위한 음악은 어디서 오는가 숨 죽여 귀열었다. 풀벌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끼리 부딪는소리 작은 개울 흐르는 물소리 또 있다 들꽃 밤이슬 받아 마시는 소리 그것들의 한데 어우러짐은 거대한 한밤의 오케스트라다.’

어쩜 내 어린시절의 어둠의 풍경과 그리 똑같을까요. 공감 백배입니다.

나도 저리 외딴곳에서 좋은풍경 실컷 보며 살 날이 있을까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저는 그 풍경은 사랑하지만 내 정착지로는 그리 반겨지지 않을 듯.

늘 올려주시는 동우님께의 존경과 고마움... 아주 잘 읽었습니다

 

***동우***

2015.01.28 04:47

한밤의 오케스트라.

전에 지리산 산협에서 나도 경험한바 있어요.

보석같이 박혀있는 별무리 가득한 밤~

 

감동으로 읽으셨다니 탱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