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독> <젖은골짜기>
<독>
-허혜란 作-
동우
2016.02.02 12:07
허혜란 (1968~ )의 '독'
2004년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는데, 허혜란이라는 작가는 처음 읽었습니다.
아귀찜을 검색하다 모니터에 떠올라 업어다 온 소설입니다.
도회의 변두리에서 비비대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없이 사는 자의 일상의 비루함.
<가치의 절정에서 입주합니다....>
재개발 투기같은건 어느 별의 이야기인지.
사기 당하여 경매 딱지로 집을 날리고, 지하방의 살이 꼬라지는 발기하지 않는 임포턴트의 하루하루와 같습니다.
당신, 봉제 기술 배워볼래? 난, 요리 배우고....
남편은 우리 떠나자 떠나자 하고 지루한 노랫말 읊쪼리듯 아득하게 뇌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도 내일도 '노 웨이 아웃', 탈출구는 없습니다.
정처(定處)없는 분노는 아귀를 토막내어 매콤한 아귀찜을 요리합니다. (아시나요? 도마 위의 아귀는 도끼 내려찍듯 식칼로 힘껏 내리쳐야 토막이 난답니다. ㅎ)
++++
<아귀는 입술 끝에 독이 있다.
시장 남자가 한 말이다.
건성으로 지나가듯 내뱉은 말인데도 그 말을 들었을 때 목덜미가 서늘했다.
고작 팔뚝만한 생선에게 주둥이도 아니고 입도 아니고 '입술' 이라는 단어를 붙여서일까.
'독' 이라는 말 때문일까. 입술 끝에 있다는 독, 달콤하게 느껴진다.
얼음조각 위에 아귀가 몸을 뒤집고 누워 있다.
아귀의 뱃살이 통자루마냥 크고 납작하다.
남자는 꼬챙이로 아귀의 흰 배를 콕 찌른다. 아귀의 몸이 뒤집힌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시커멓고 우둘투둘한 등판, 두꺼운 턱뼈 위로 사정없이 벌어진 입, 그 속을 가득 메운 뾰족한 이빨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 좋은 놈입니다,
맛도 영양도 그만이죠. 남자는 꼬챙이에 꽂힌 아귀를 내 앞으로 바짝 내민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남자는 다시 얼음조각 위에 아귀를 내려놓는다.
남자의 무릎 근처에서 휘둘리는 꼬챙이가 쉭쉭, 소리를 내지른다.>
<남자의 목소리가 되살아나고 머릿속에는 어설픈 요리방이 펼쳐진다.
이미 말했다시피 아귀는 입술 끝과 내장에 독성이 있죠. 이걸 가위로 잘라내는 겁니다.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가위가 들려 있다.
두 조각의 가위 날이 아귀를 향한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서 아귀의 입과 내장을 도려내기 시작한다.
슬걱슬걱. 다 잘랐으면 아귀의 커다란 입에 물을 붓는 겁니다. 입으로 들어간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뱃속을 훑어 내려와 잘려진 내장으로 빠져나오면 쭈그려 있던 몸이 편평해지죠, 그 다음에는 도마 위에 놓고 본격적으로 자르기 시작합니다.
착실한 조수처럼 나는 그의 지시에 따른다.
위와 아가미를 떼어낸다.
가슴지느러미를 잘라낸다.
꼬리지느러미도 댕강 잘라버린다.
턱밑부터 껍질을 벗긴다.
본격적으로 아귀의 몸통을 토막내기 시작한다.
탱크 같은 머리를 자른다.
넓적한 배를 삼 등분한다.
뼈도 버리지 않는다고 남자는 말했다.
살 속에 숨은 뼈와 가시를 베어내려면 손에 힘을 가득 실어야 한다.
마치 사람의 굵은 손가락을 자르듯이. 눈을 뜬다.
깔깔대고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기껏 팔뚝만한 물고기 한 마리에게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다니.
아직까지도 이런 분노가 남아 있다니.>
++++
아귀찜(부산선 아구찜이라고 하지요)의 매콤한 맛은 쐬주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아구찜은 얼얼한 혀를 투명한 쐬주로 식혀가면서 자꾸 술을 당기게 합니다.
예전 월급쟁이 시절, '이짓 아니면 먹고살길 없나'하는 깜깜한 마음밭으로 퇴근 하였던 날들.
'당장 때려지우자'하고 허튼 객기를 부리면서 아구찜은 그리도 소주를 맛나게 부릅디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쓰린 속 부여안고 충혈된 눈으로 출근버스 타고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싫은 일에 목매인 월급쟁이는 아실터입니다.
아귀찜의 매콤하고 얼얼한 맛, 그것은 달콤한 독이었습니다.
<젖은 골짜기>
-이혜경 作-
***동우***
2017.01.02 04:05
이혜경 (1960~ )의 '젖은 골짜기'
새해 벽두부터 좀 어두운 소설입니다만 이게 이 시대 아버지들의 초상인걸 어쩌겠습니까.
신산하고 아슬아슬한 삶, 자칫 바닥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 속에서 갑질하는 것들에게 빌붙어 나누어 얻어먹고 사는 삶의 양태.
순장묘와 죽은 아버지와 아들과...
이너 서클로의 편입은 언감생심. 도무지 떨처내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의식.
권력이거나 금력이거나 있는자 가진자 들에게는 언제나 대체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꿩이거나 닭이거나, 밥이거나 빵이거나, 예술이거나 맘몬이거나, 도락이거나 진지함거나, 심각이거나 경박이거나...
그들의 후미에는 언제나 선택과 자유의 아우라가 빛을내고 있지요.
그러나 주류에서 벗어난 인생에 대체재가 있을리 없지요.
백척간두의 외길, 모든게 절대재입니다.
<왜 산길을 걷다가 마주 오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사람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가면 돼요. 하지만 정작 걸어보면 그 조금이 한 시간도 되고 한나절도 되지요. 젊었을 땐 그런 식으로 가르쳐주는게 답답했었는데, 나이를 좀더 먹으니까 그게 참 지혜로운 말 같군요. 멀든 가깝든 그곳을 물은 사람에겐 그곳이 목적지일 테니, 조금만조금만 하면서 걷는 게 차라리, 까마득하다고 지레 가위눌려 옴짝달싹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허허, 지금 잠깐 든 생각입니다. 어차피 걸어야할 길이라면 희망을 가지고 걸으라는 마음이었겠죠. 길 바깥으로 뛰어내릴 용기도 없으면 그저, 그 길을 끝나면 무언가 다른 풍경이 나오려니 하면서 걸을 수밖에요. 그래도 끝내 다른 무엇이 없으면 그저 그랬나보다. 그러고 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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