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우상 숭배자들>
-가브리엘 다눈찌오 作-
***동우***
2013.05.20 05:25
‘가브리엘 다눈찌오(Gabriele d'Annunzio, 1863년 ~ 1938년)’의 ‘우상 숭배자들’
편협한 신앙관으로 꽁꽁 의식화 되어버린 광기의 사람들.
동일한 신을 숭앙하는 같은 종교 안에서도 파가 갈리어, 벌이는 한마당 끔찍한 살육극(殺戮劇)
다위니즘의 근본주의자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만들어진 신’도 유명한 도킨스의 저작물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종교에 대하여 극도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는 지식인입니다.
유럽과 오스만제국의 쟁투, 십자군, 마녀사냥, 가이아나, 백백교, 오대양, 9.11 테러....
도킨스는 인류사 악의 근원을 종교라고 논박할 정도로 크리스찬으로서는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지요.
종교가 인류사에, 개별적 인간성에 끼친 순기능도 없지 않는데 말입니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편협된 종교관은 흔히 광기를 수반합니다.
가브리엘 다눈찌오의 ‘우상숭배자들’
이 소설이 묘사한 광기의 현장, 그로테스크한 지옥도에 다름 아닙니다.
++++
<그들은 재빨리 성체를 제단 위로 가져갔다. 근방에는 타오르는 화염이 반사되어서 주위가 온통 황갈색으로 물든 가운데 두번째 혼전이 시작되었다.
서로 맞붙은 몸뚱어리들이 마룻바닥에 이리저리 뒹굴며 엎치락뒤치락했고 아군과 적군을 가릴 경황도 없이 몇 명씩 뭉쳐서 의자들을 넘어뜨리고 부딪치며 아귀다툼을 벌였다. 돌층계에서도 고해성사하는 곳에서도 그들은 무더기가 되어 뒹굴었다. 성인을 모시던 신성한 방은 이제 고함소리와 뼈와 살에 부딪치는 소름끼치는 둔탁한 몸둥이 소리로 꽉 찼다.
급소를 찔린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소리, 두개골에 곡괭이가 떨어져 퍽하는 소리,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울부짖는 소리, 한 놈을 넘어뜨렸다고 좋아날뛰는 소리-이런 소리들이 혼전 속에서 불명확하게 울렸다. 이러한 가운데 짙은 향내가 풍겼다.
은으로 만든 성체는 아직 제단에 이르지 못했다. 제단 부근에서 적들의 정예들이 둘러서서 한사코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자코베는 몇 군데 상처를 입었으나 그가 미리 확보해 놓은 자리에서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커다란 낫으로 싸우고 있었다.
성체를 둘러맨 사람이 둘로 줄어들었다. 성체의 커다란 머리는 소용돌이에 말려든 물결처럼 흔들거렸다. 마스칼리코 사람들은 놀라울만큼 잘 싸웠다.
그때 성 판타레오네가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자코베는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 가슴이 쓰렸다. 피로 물든 낫을 치켜들고 자코베가 성체를 일으켜 세우려고 앞쪽으로 달려갈 때 악마 같은 모습을 한 마스칼리코의 청년 하나가 낫으로 그의 등을 찍었다. 자코베는 두 번이나 일어서려고 꿈틀댔지만 그때마다 낫이 등을 내리찍어서 넘어뜨렸다.
피가 그의 얼굴과 가슴, 손 할 것 없이 온몸을 빨갛게 물들였다. 어깨와 팔은 깊숙이 베어져 흰뼈가 드러났다. 그래도 그는 일어서려고 애썼다. 강인한 생명력에 노한 마스칼리코 사람들은 낫으로 그의 배를 마구 난도질했다. 하나, 둘, 셋... 마침내 그의 창자는 밖으로 터져나왔다. 이 광신자는 뒤로 엎어져서 이젠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를 치켜들어 성체 반신상 쪽을 향하고 손가락을 구부려 무엇을 움켜쥐겨는 듯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수그리고 말았다. 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무엇을 갈구하는 자세인 양 누워 있는 자코베의 주위에선 차차 함성소리가 멀어져갔다. 성 판타레오네는 이제 영영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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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문열의 해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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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공격성이 빚어내는 처절미>
-이문열-
<우상 숭배자들>을 읽은 것은 내게 색다른 문학체험이었다. 여기서는 우리가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보는 미학적 장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신앙은 거룩함을 지향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쉽게 아름다움으로 전화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신앙은 오직 광기로만 추구되고 있다. 비록 합리적이기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근거만 있으면 인간의 투쟁 또한 비장한 아름다움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투쟁은 아무 설득력 없는 공격성의 표출일 뿐이다.
해가 진 뒤에도 피빛으로 물든 밤하늘 아래 공포에 찬 사람들을 끌어내는 소설의 서두는 일견 괴기소설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줄까지 이어지는 것은 괴기미의 형상화가 아니라 사실적이어서 더 끔찍해 보이는 살륙극의 묘사다.
사건도 발단에서 결말까지 도무지 이성이 맥을 못추는 진행이라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만 인간의 광기와 공격성을 극단으로 과장함으로써 드러나는 작가의 새디즘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겸손하게 세계와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가 믿는 질서, 우리가 믿는 논리란 것이 얼마나 근거 없고 억지스러운가를 금세 알 수 있다.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는 누구도 우리 내부의 광기와 공격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적 논리로 세련된 신앙의 이데올로기도 광기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했고 여러 세기에 걸쳐 강조된 박애와 연민의 가르침에도 우리 내부의 공격성은 크게 줄지 않았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광기와 공격성을 드러낼 구실을 찾아 광장에 몰려 있는 라두사니 주민들이 웅성거리고 그들을 피의 제전으로 내몰려는 자코베가 수없이 기염을 토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영원히 구제받지 못할 우리의 맹목과 광기, 그리고 잠재울 길 없는 공격성과 가학성향을 한 무리의 우상 숭배자들을 통해 형상화하려든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그 벌거숭이 본성이 연출하는 끔찍한 살륙극은 우리에게 오히려 한 처절미로 다가오는 것이나 아닌지.
이 작품을 쓴 가브리엘 다눈찌오는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숭앙받았던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소설가이다. 그는 <봄>이라는 시집으로 문단에 나온 이래 일련의 장단편 소설과 스케일이 큰 희곡에서 고루 대중적 인기를 누렸는데 그의 사상은 니체의 초인주의와 흡사한 데가 있었다. 그의 삶도 그가 구사하는 언어만큼이나 현란하고 인상적이어서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전투기 조종사로 싸웠고, 한때는 피유메 지방의 항독군 사령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 실린 단편 <우상 숭배자들>외에 장편 <죽음의 승리>도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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