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맥주 푸념 (1,4,3,3)

카지모도 2020. 11. 2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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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맥주 푸념>

 

***동우***

2010.10.15.

 

오늘도 마셨다, 쐬주.

그리고 뒷가심 맥주.

그런데. 에라이~! 우리나라 맥주 맛은 내 오줌맛 만도 못하다.

어쩌다 내 오줌냄새가 참 구수하다고 느낀적이 있건만 우리나라 맥주는 그만도 못하다.

오늘도 그러하였지만, 나는 맥주를 맛으로 먹지 않는다.

다만 술이라는 명목, 탄산의 쏘는 맛과 차갑고 시원한 입가심의 느낌으로서만 마실 뿐이다.

우리나라 맥주에게서 코 끝에 은근하게 끼쳐오는 구수한 냄새라던가 입안을 감도는 감칠맛 나는 풍미를 기대할수 없다. (씨멘스클럽에서 마신 여러나라 맥주 맛을 내 혀는 기억하고 있다)

목구멍 넘어 갈때의 싸아한 느낌, 그것 하나로 맥주라는 명목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내게는 말이다.

 

이 나라 맛대가리없는 맥주에는, 대한민국 세법 등등 주류제조 판매에 관한 시스템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까닭이라고 하더라만.

방귀깨나 뀌는 맥주계의 인사들은 도무지 바빌로니아로부터 유구하게 이어져온 맥주라는 맛의 인문학에 대하여 무지한 족속들이로다,

다시 한번 에라이!

 

그런데 내 미각은 오래 전 우리나라의 어떤 맥주 맛을 기억하고 있다.

옛날 옛적의 ‘이젠백’맥주.

1970년대 중반, 오비와 크라운의 양대 맥주메이커가 있었지만 내 미각이 맛으로 기억하는건 오로지 이젠백 맥주뿐이다.

이젠백은 몇 년 동안 장안에 회자(膾炙)되더니 언제부턴가 슬며시 시장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남아있는 맥주 찌질이들 맛은 여전히 찌질이들.

 

1970년대 중반.

개발독재 열기 가득한 시대.

그 시절은 그랬다.

무언가는 들뜨고, 무언가는 이룰듯 하고, 무언가는 뒤집어지고, 무언가는 끙끙 신음하고, 무언가는 죽어가고, 무언가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무언가는 미쳐가는 듯 하고, 무언가는 흉측스럽고, 무언가는 아름다웠던...

 

이미 여우와 토깽이를 거느린 이십대 후반이 목맨 직장.

조선소의 말단 인스펙터.

열악한 환경 속에 고군분투하였던 1층의 사무실.

그 2층은 영국선주 미스터 벨(Mr. Bell)의 사무실과 로이드 선급검사관 미스터 솔트(Mr. Salt)의 사무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자동차와 기사, 그리고 영어가 가능한 한국인 여사원이 배정되어 있었고, 고급의 집기 비품은 물론 사무실 곁에는 간이(簡易) 어코모데이션(accommodation)의 설비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1층의 나는 말하자면 그들 두사람의 따까리(꼬붕) 역이었던 것이다.

 

내게 2층의 공간은 그야말로 황제의 공간이 아닐수 없었다.

땀에 찌든 작업복을 걸친채 선풍기 맞바람에 얼굴을 들이대던 1층의 현실과 달리, 그들 영국인들은 현장을 다녀오면 한여름 그 당시 드물었던 에어컨 바람이 늘 대령되어 있었고, 언제나 빳빳하게 풀먹인 작업복, 여사원의 시중, 그리고 한잔 들이키는 맥주가 2층에는 언제나 풍성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나도 자주 곁다리로 얻어 먹었던 그 맥주가 바로 이젠백이었는데 그들은 오비다 크라운이다 다른 맥주는 쳐다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미스터 벨은 오십전후, 거만하고 쌀쌀하여 사뭇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로이드 검사관 미스터 솔트는 삼십대 전반, 콧수염이 멋진 멋쟁이였고 호쾌한 사나이였다.

되지도 못한 영어(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기술계통의 소통이란 그 방면 전문용어의 나열로서도 대충은 이루어진다)로 소통하면서 그와는 제법 친하였다. (해양관련 외국인사들이 모이는 ‘씨맨스클럽’에도 나를 데리고 가기도 하여 그의 아내 미시즈 솔트가 나의 뺨에다 베푸는 키스를 얼굴 벌개진채로 받기도 하였던 기억.)

 

그러나 겉으로만 친한척 하였을 뿐, 그는 주로 오더를 하는 입장이고 나는 그것을 이행해야하는 따까리의 입장임에는 변함이 있을리 없었다. (어렵기도 푸근하기도 하여 형 같았던 미스터 솔트가 때로 그립다.)

 

그는 한국에 ‘이젠백’을 제외하고는 맥주가 없다고 하였다.

요구만 한다면 외국산 맥주를 씨맨스클럽 같은 곳에서 구해다 2층 냉장고에 가득 채워 놓을수도 있으련만 그가 찾는 것은 언제나 이젠백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맥주는 서민의 술이 아니었다.

다운타운에 포진하고 있었던 비어홀은 어쩌다 가게 되는 특별한 곳이었고, 말단 봉급쟁이의 상용주는 어디까지나 소주와 막걸리,

그러니 그 수준의 입맛에 오비나 크라운도 황감할 터이지만, 미스터 솔트의 영향으로 귀에서 입으로 혀로 목구멍으로 차츰 맥주의 맛을 헤아리게끔 되었을 것이다.

 

그 시절과 비교할수도 없는 성장, G22, OECD....

어떤 시스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의 시스템아.

이토록 후진적인 맥주맛 하나 바로 잡지 못하느냐.

40여년전 그 이젠백을 다시금 살려내라.

 

 

***멜라니아***

2010.10.16 01:17

 

우리나라 맥주맛이 오줌맛 만도 못한 것은 맥주 원료가 맥주원료여야 할 보리가 아니라 옥수수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미국 옥수수가 우리나라에 오면 소 사료도 되고 멸치볶음에 윤기 나게 하는 올리고당도 되고

옥수수 기름도 되고 맥주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맥주 보리는 내년부터 수매도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것 좋은 것 놔두고 싼 재료 써서 돈 벌면, 돈 번 기업의 주인들은 자기 회사 맥주를 마실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집니다

맛없는 국산 맥주 마실지 말입니다. 그들의 입은 내 입 보다 더 비싼 입일텐데.

일본에 있을 때 진짜 맛있게 느껴지는 맥주에 황홀해졌는데, 그건 그들의 원료가 정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주는 보리맥, 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동우***

2010.10.16 08:51

 

'麥'자는 보리 맥이 아닌가요? 옥수수라니.

아, 그 만능의 옥수수가 맥주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니.

정직한 원재료.

순전히 경제논리 때문인가요?

아침부터 내 주둥이가 새발새발합니다.

 

***서민정***

2010.10.16 03:33

 

이젠백 맥주?

처음 보는 이름에 궁금해서 또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독일식 맥주를 표방했던 맥주였다고 하네요. 쩝... 그게 살아있었다면 지금 한국 맥주의 맛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지기도 해요.

 

예전에 외국인 선생님들이 지나치듯, "한국은 다 좋은데 맥주가 맛이없어." 한마디를 하시면 마치 한국의 자존심이 다치는 듯 파르르 하면서 아니에요! 하고 쌍심지를 켰었죠. 그때는 없어서 못마시는게 맥주인데.... 소주 아니면 막걸리 마시다가, 맥주 마시면 얼마나 사치스러운 거였는데요...

 

여기 와서 일년 넘게 맥주 마시고나서 이번에 한국에 갔을때 정말 까암짝 놀랐어요. 맥주가 너무 싱거워서, 도저히 그것만 마실수가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쏘맥이 좋아요~)

 

그런데 홉을 수입하려면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만 알고 있었는데,

멜라니아님 말씀대로 옥수수가 맥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또 금시초문이었네요.

 

굳이 이렇게 외국에서 맥주를 수입해서 마시느니 한국 맥주의 품질을 높이는 편이 나을텐데... 한국 맥주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이 너무 적다보니 맥주회사들이 폭리를 취하는건 아닌가.. 싶어지네요.

 

동우님, 여기로 맥주 드시러 오세요~

그거 하나 끝내주게 좋답니다. 동네별로. 회사별로, 또 수입맥주는 수입맥주대로,

그걸로도 부족해서 계절별로 색다른 맥주까지... 마셔도 마셔도 종류가 끊임없으니

맥주맛은 제대로 골라드실수 있답니다!

 

***┗동우***

2010.10.16 08:56

 

그럴거에요, 서민정님.

아슴하지만 전에 신문에서 읽은적 있는데 세법상(?) '규모의 경제'로서 맥주제조회사를 정한다더군요.

몇 곳의 맥주제조회사.

그야말로 독과점의 불완전경쟁시장.

그러니 맛의 경쟁이 이루어질 턱이 없지요.

옥수수가 들어간다는 멜라니아님 말씀, 나도 금시초문입니다.

골프치러 해외로 나간다고 하더니, 맥주 마시러 비행기 탄다는 말도 헛소리가 아닐듯.ㅎ

 

***hohoya***

2010.10.19 20:41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이젠벡맥주 사장 딸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이미 회사가 망했다고 하던데 그래도 잘사는 축이었지요.

말수도 없이 하얀 얼굴에 공부를 꽤 잘했었는데

TV 에서 보곤했던 이젠벡맥주라는 회사가 그 친구때문에 제 기억속에 있었네요.

 

동우님이 글을 보니 그 회사가 왜 망했을까 궁금해지는데요?

 

***geobing***

2015.03.28 19:58

 

이젠백 맥주..삼촌 께서 사셨던 마산 들어가는 입구에 공장이 있었던 기억이 ..그 당시..어려서 맛보진 못했습니다..ㅠㅠ..맛있는 맥주였군요..

 

***┗동우***

2015.03.29 04:23

 

반갑습니다. geobing 님.

그래요, 옛날 이젠백 공장 마산에 잇었지요.

나도 기억합니다. 거기 높다란 굴뚝.

자주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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