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커피예찬 초치기 (1,4,3,3)

카지모도 2020. 11. 2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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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커피예찬 초치기>

 

 

***동우***

2006.02.04.

 

아네스님은 소설가인지라 커피 한잔 마시고 나면 두 눈을 반쯤 감게 되십니다그려.

커피의 향취 속을 넘나드는 지난 에피소드들과 사념들이 어울어 형상화되면 그것이 작품으로 태어나는 거겠지요.

 

커피에 대하여 쓰신 찬사들 아네스님의 책 속에서 읽은 바 있습니다.

그 커피에다 초를 좀 쳐야겠습니다.

어제 술한잔 걸죽하게 하였거든요.

용서를. ㅎ

 

커피.

누가 읊은 세리프인가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아름다우며 사랑처럼 달콤한 음료”라고라?

커피 예찬치고는 좀 그로테스크 합니다그려.

 

짙은 갈색 표피에 흐르는 자르르한 윤기.

아, 그건 분명 관능입니다.

블랙비너스라 불리운 (‘보들레르’의 미칠듯한 애증이 교차되었던) ‘잔느 뒤발’.

그와 같은 ‘팜므 파탈’의 넓적다리 피부색깔쯤.

커피향 떠도는 공간은 쌉싸름 달콤함 어우러진 섬세 화려한 로코코의 궁전쯤.

커피잔 들어 서로 나누는 언어는 사변어 교양어 예술어 혹은 연어(戀語)쯤.

 

어쨌거나 커피는 일단 문화적인 음료올시다.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아니, 당최 마실줄을 모른답니다.

어쩌다 커피 끓어 익는 향취에 속아서 한잔 마시고 나면 아랫배가 싸르르 아파오면서 사뭇 이상한 것이 속을 울렁거리게 하거든요.

 

그러니 나는 천성적으로 문화인 어름에는 끼지 못하는 인종이올시다.

 

한시절의 다방.

돈 한푼 벌 재주없는 장발의 젊은 녀석들은 커피 한잔으로 종일을 죽치고 앉아 스피커에서 쾅쾅 울리는 음악에 건들건들 다리를 흔들 다방 하나쯤 다운타운에 가지고 있었지요.

그 시절에는 나도 제법 문화인이었습니다.

커피를 홀짝이면서 조금쯤 선택받은 듯한 폼을 잡고 있노라면 고급문화의 언저리쯤 차고 앉아 있는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습니다만.

젊은 위장 역시 분별없는 질풍노도의 물건인지라 카페인의 성분 따위는 느낄 겨를이 없었던가 봅니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박박기고 제대하고 나서 철이 좀 들었는지.

문화적 폼잡기를 위해서 홀짝이기에는 커피라는 물건은 나라는 인종과는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걸 생체적으로 깨닫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그 때부터 커피는 내게서 완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다방에서 커피잔 앞에 놓고 열띤 사변적 토론을 벌이거나 밀어를 속삭이는 치들을 경멸하기로 하였답니다.

말하자면 서양 아류(亞流)의 유치함이라고 매도하였던 것인데, 우하하 저런!

아전인수 견강부회도 이쯤되면 귀엽지 않습니까?

 

커피마시기가 서구문화의 아류라고 한다면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적 마시기가 무엇이냐?

하하, 그것은 단연 술마시기.

모든 약속장소도 막걸리집으로 바뀌었고, 다방은 차츰 멀어졌습니다.

 

소주(혹은 막걸리)와 커피.

나는 지금도 커피보다는 소주 쪽이 훨씬 문화적인 음료라고 한사코 우기고 있거니와 그 시절 커피향 고상한 다방보다 퀴퀴한 막걸리 집의 데이트를 선택하셨던 무릇 여성 제위들의 문화적인 선택에 경의를 아니 드릴수 없습니다.

 

더불어 커피에 대한 다소의 혐오감을 위하여 에피소드 하나 덧붙입니다. (이 얘기는 전에 아네스님의 모 후배님께 들려드린바 있습니다만.)

 

다방을 드나들던 그 시절.

오전에만 제공하는 특별 서비스로 모닝 커피라는게 있었지요.

넘실대는 짙은 갈색의 바다위에 둥실 뜨는 보름달.

김 오르는 커피에다가 계란 노른자위를 띄워 내오는겁니다.

 

단골다방(광복동 수다방) 주방에서 엿본 엽기적인 장면 하나.

달걀을 깨뜨려 노란 자위만 깔끔하게 분리하여 떠내는 일련의 작업이 주방장에게는 번거로웠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날달걀 하나의 내용물은 이빨에 부딪쳐 주방장님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주방장님의 입술과 혀가 바로 흰자위와 노른자의 분리 도구가 되는 겁니다.

입 안에서 분리된 노른자위는 주방장님의 입술을 통하여 둥실 커피잔 속 갈색바다에 보름달로 띄어지고 흰자위는 주방장님의 목구멍을 통하여 넘어가면 작업 끝이랍니다. ㅎㅎ

 

++++

 

***melon***

2006.02.11 01:14

 

우핫. 나이들며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된 저

이제야 커피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제게 있어서 설탕도 우유도 계란도 ... 모든 것이 커피맛을 버리는 첨가 물일 뿐

커피는 순수한 커피라야만 한다는 주의 입니다. ㅎ

 

커피 예찬론을 한번 써야 할가 봅니다 ㅎㅎㅎ

 

***동우***

2006.02.16 04:54

 

히야, 멜론님 커피 맛의 오의에 도달하신 모양입니다그려.

커피예찬론 기대합니다.

또 초를 치더라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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