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전쟁 3권 '레판토 해전'>
-시오노 나나미 作-
***동우***
2020.11.17 05:22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전쟁 3부작中 제3권 ‘레판토 해전'
연재 시작합니다.
대략 스무번 남짓 나뉘게 될듯 싶습니다.
근대소설의 시효라고 평가받는 ‘돈키호테’
그 소설을 쓴 ‘세르반테스’는 이 전쟁에 참전하여 왼손을 잃어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세르반테스는 귀국 도중 해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알제리에서 5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고증에 충실하지만, 소설처럼 읽히는 역사의 현장
되게 재미있습니다.
함께 읽어요.
***동우***
2020.11.26 05:25
전쟁 3부작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아래 덧붙입니다,
++++
<전쟁 3부작을 읽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처음 읽은 것은 열여섯 살의 여름날이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달라진 것 같았다. 뭐라 말하기 힘든 막막한 감정으로, 자기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실치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글쓰기는 이 막막한 감정을 분명히 그려내려 한 시도였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남은 삶도 이를 위해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일리아스>를 통해 지중해 세계에 매료되었기에 전쟁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여느 전쟁이 아니라 `일리아스`에 묘사된 것 같은 다른 문명 간의 대결로서의 전쟁을.
이런 유의 전쟁 중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인 르네상스 시대에 지중해 세계에서 일어난 것으로는 세 가지밖에 없다.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1522년의 로도스 섬을 둘러싼 공방전, 그리고 1571년의 레판토 해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로서는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전쟁이 이렇게 세 번만 일어났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래도 역사적인, 바꿔 말해서 전쟁을 계기로 뭔가가 바뀌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 세 전투를 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열여섯 살때부터 이 세 전투를 써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썼을 때까지도 그런 생각은 없었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움트기 시작한 것은 역시 25년이 지나서 베네치아 공화국의 통사인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준비할 때였던 것 같다.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레판토 해전>은 베네치아 공화국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로도스 섬 공방전>도 베네치아쪽 사료가 없으면 도저히 쓸 수 없다. 즉 이 세 가지 `결정적 전투`는 베네치아에 지금도 남아 있는 상세하고 객관적인 사료들을 공부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꼴을 갖추었고, 그것이 운좋게도 열여섯의 그 여름날 이래 가슴 속에 품어온 지중해를 무대로 전쟁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과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쓴 뒤에야 이 지중해 전쟁사 3부작을 쓰기 시작한 사정은 그런 데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뭔가 가져올 게 있을까 하고 몇 번이고 읽어 보았지만, 인간을 그리는 것을 제일의로 한다는 것을 빼고는 달리 가져올 것이 없었다.
그 책에서는 신들의 응원이라는 유쾌한 부분이 꽤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군을 응원하던 것은 아테나 여신등 여러 신들이고, 트로이 쪽의 응원단장은 포세이돈이라는 식이어서 재미는 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두번째로, 흉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는데, 10년에 걸친 전쟁을 전쟁 10년째부터 쓰기 시작하는 호메로스의 방법이었다. 호메로스는 역시 천재라는 것을 통감하긴 했지만, 어쨌든 흉내는 낼 수 없었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둘러싼 공방전은 50일 남짓, 로도스 섬을 둘러싼 공방은 6개월, 그리고 레판토 바다의 전투는 5시간도 안 되어 결판이 났다. 이런 전투를 묘사하는데, 아무리 감격했다 할지라도 호메로스의 방식을 차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년 동안 계속되야 10년째부터 쓰는 방식이 살아날 수 있으니까.
결국 세 전투 각각을 이렇게 쓰는 게 제일 낫겠다 싶은 방식에 따라 썼다. 50일에는 50일에 어울리게, 6개월은 6개월에 어울리게, 그리고 5시간은 그 5시간으로 치닫는 부분은 크레센토(점점 강하게)로, 5시간이 지난 뒤에는 데크레센토(점점 약하게)로.
3부작 모두에 참고문헌은 붙이지 않기로 했다. 주요 참고문헌은 <바다의 도시 이야기 하편> 뒷부분에서 다 소개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베네치아 공화국사를 쓴 뒤에야 이 전쟁사 3부작을 쓸 수 있었던 사정을 반영한 것이겠다.
베네치아가 남긴 사료를 읽으면서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만큼 후세에 효과적으로 선전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1987년 봄 피렌체에서
시오노 나나미
++++
***동우***
2020.12.12 05:23
시오노 나나미 '레판토 해전'
이 작품에 대한 '코사카 마사타카‘(교토대학)의 해설을 덧붙입니다.
++++
<숭고하고 슬픈 전쟁 이야기>
해양 국가의 쇠퇴기는 용감무쌍한 전투와 역사적 의의를 지닌 승리로 채색된 것일지도 모른다. 1940년 여름, 홀로 나치 독일에 맞서 굴복하지 않은 `영국 전투`는 독일군의 무적의 이미지에 의심을 품게 한 점에서 역사적 전투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의의가 이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이 바로 1571년의 레판토 해전이다.
전쟁사의 전략론의 권위자 중 한 사람인 J.E.C. 풀러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프리드리히 대왕에 이르는 2천 년 간의 중요한 전투를 다룬 <세계의 결정적 전투>에서 그레나다 공략과 아울러 레판토 해전을 들어 대서양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라 했다. 그 중에서도 레판토 해전은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래 계속되어온 무적 투르크의 신화를 깨부순 점에서 “그 정신적 중요성이 압도적”이라 했다. “투르크가 자신의 불패 신화에 의심을 품음으로써 지중해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고, 이것은 다음 세기에 육상 지배권의 동요를 초래했다.”
레판토 해전과 영국 전투의 유사점이 하나 더 있다. 해양 국가가 전투를 수행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적의 몰락을 초래했어도 해양국가 베네치아의 국운이 쇠락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아니, 쇠락을 막기는커녕 이 전투가 초래한 막대한 인재 상실이 베네치아에 그나마 남아 있던 활력을 거의 다 소진시켜 버렸다 할 수 있다. 갑자기 동요하기 시작한 투르크와 천천히 하강 곡선을 그리던 베네치아를 대신하여 `영토형` 유럽 근대 국가가 역사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그 숭고하고도 슬픈 전쟁 이야기를 시오노 나나미 씨가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시오노 씨가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 섬 공방전>, 그리고 이번의 <레판토 해전>이라는 3부작을 구상한 이유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3부작이야말로 그녀의 주저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속편인 것이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홍륭기의 베네치아 이야기이며 그 역사를 한데 묶어 놓았다. 그 홍륭기 뒤에 찾아온 쇠퇴기를 전쟁사에 담아낸다는 아이디어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어쩌면 시오노 씨 자신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앞의 `독자들에게`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은 뒤부터 전쟁사를 쓰고 싶어한데다 베네치아에는 뛰어난 사료가 많이 있기도 해서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준비하는 와중에 3부작의 구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아마 이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글쓰기라는 것은 뛰어난 감각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힘은 이런저런 구차한 논리보다 훨씬 강력하고 정확하기까지 하다. 나는 여태껏 생각지 못한 바지만, 그리고 시오노 씨도 딱히 논리라고는 생각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써 놓은 글을 보고 있노라면 베네치아의 쇠퇴기는 전쟁사를 통해 그려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홍륭기 베네치아는 별다른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싸울 필요도 별로 없었거니와 교묘한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전쟁을 피하고 동지중해와 서지중해의 매개자로 활약한 데 그 성공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하여 커지고 풍요로워지면 다른 이의 주목을 끌어 항쟁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에 투르크까지 나타났을 때, 베네치아는 통상을 유지하기 위해 전투를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는 그 영토가 비할 데 없이 큰 국가였다. 베네치아는 무리한 전쟁을 강요당한 것이다. 그러나 무리해 보이는 것을 얼마나 훌륭히 처리해 내는지에 따라 그 문명의 위대함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바로 그러하기에 레판토 해전은 베네치아의 최후를 장식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즉 이 3부작은 베네치아가 역경에 처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에 저항하며 역사적 역할을 다할 때까지의 기간을 다룬 것이다. 첫번째 작품은 노쇠한 문명이 야만적이되 아직 젊고 활력이 충만한 나라의 노력에 의해 타도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노쇠한 문명의 몰락은 곧 베네치아의 호시절이 끝나감을 알리는 종소리이기도 했다. 두번째 작품에서는, 동쪽의 투르크에 대응하여 서쪽의 유럽에서도 중앙집권화된 대국이 출현함으로써 `몰락하는 계급`이라는 운명에 처한 유럽의 기사들이 그들의 몇 십 배에 달하는 투르크군의 내습에 맞서 로도스 섬을 지키려 한 절망적인 전투가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뒤 결국은 성문을 열어야 했다. 아마도 이때의 투르크는 최성기를 맞았다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 세번째 작품은 마지막 나날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날`을 그려낸 것이다. 내가 이런 수식어를 쓰는 이유는 시오노 씨의 전쟁사 3부작이 그런 분위기를 훌륭히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상뿐만 아니라 서술면에서도 그러하다. `분위기`라는 애매한 말을 쓰면 `시오노 독자`들과 전통적인 전쟁사가 양쪽 모두가 불평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문명에 있어서 전쟁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그 분위기가 말해 주는 것이다. 작전 지도의 기술적인 내용을 모르더라도 러일전쟁이나 태평양전쟁의 차이를 참전 장병이나 전투 양상이 띠는 분위기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은 그 한 예이다.
게다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이 정말로 기술적인 요소였을지도 의문이다. 레판토 해전을 예로 들면, 통설은 수많은 대포를 장착한 갈레아차를 전열에 배치하여 포격으로 투르크 함대의 진형을 혼란케 한 연합 함대 사령관 돈 후안의 전략을 결정적인 승인으로 들고있다. 물론 그 역시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육상의 백병전과 비슷했던 당시의 해전에서 사기와 기량 모두가 충실했던 베네치아 전사들 각자의 분투 쪽이 더 중요했다는 관점도 성립될 수 있다.
전투란 혼란이며, 뛰어난 지휘관인 나폴레옹의 전략, 전술이 아니라 조국을 지키는 러시아 병사들의 정열과 끈기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와 같은 전쟁관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라면 돈 후안의 전략을 결정적 요소로 들지 않는 데 찬성할 것이다.
잡다한 성분으로 이뤄진 함대에 대해서도 갖가지 해석이 자리잡을 수 있다. 돈 후안의 역량을 평가할 수도 있겠고, 베네치아의 참모장 바르바리고의 수완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 동맹군의 총사령관의 역할은 종종 과대평가되기 마련이고, 그뒤 돈 후안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의 정치적, 외교적 수완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기도 힘들 것 같다.
어쨌든 간에 시오노 씨는 역시 베네치아 편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사실 그것을 흐뭇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또 그런 입장에 나름의 미덕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오노 씨는 당시의 사료와 회화를 보고 거기서 얻은 인상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구성해 낸다. 당시 사람들이 써 남긴 것을 이리저리 짜깁기보다는 그쪽이 더 순수하고 독자의 상상력도 더 많이 북돋아 주는 것이다. 나의 이 비평도 그런 식이며, 설령 시오노 씨의 의도와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이 책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내가 그토록 깊은 감명을 받은 이유를 적어 보기로 한다. 이 책은 전쟁사이면서도 전쟁사가 아니다. 뛰어난 전쟁사 책은 모두 그렇다. 전쟁 전과 후에 행해진 외교적 노력이 실로 훌륭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레판토 해전은 제일 먼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에서 출발해 이어서 `피를 흘리는 정치`로, 최종적으로 다시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으로 끝났다.” 그 중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 즉 외교를 담당한 콘스탄티노플 주재 대사 바르바로가 원로원에서 한 보고 연설은 정말로 감동적이다.
“국가의 안정과 영속은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평가와 외국에 대한 의연한 태도에 의지할 때도 많은 것입니다. 최근 수년 간, 투르크인은 우리 베네치아가 결국엔 타협을 청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예를 갖춘다는 외교적 필요를 넘어선 비굴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네치아는 투르크의 약점을 지적하기를 꺼렸으며 베네치아의 강점을 보여주기를 게을리했습니다. 결국 투르크인의 타고난 오만함에 제동을 가할 수 없게 되어 그들을 불합리한 정열로 내몰게 된 것입니다. 피정복민이자 하급 관리에 지나지 않는 그리스인이 보내온 편지 한 통만으로 키프로스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놓아둔 것은 실로 베네치아 외교의 수치 외에 다른 무엇도 아닙니다.”
역시 베네치아는 쇠퇴기에 들어 있었다. 무익하고 무오한 허풍은 물론 절대 피해야겠지만, 어떤 순간에도 의연한 태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베네치아 외교가 그 미묘한 균형을 상실함으로써 베네치아는 타협에 안주해 버린 것이다. 앞에서 베네치아는 무리한 전쟁을 강요받았다고 썼다. 하지만 이 전쟁은 최고도의 기술을 발휘했으면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최고의 기술이란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설령 발휘되었더라도 피해를 좀 줄이고 수명을 약간 늘리는 데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명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바르바로 대사의 말이 문명국으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후세에 말해 주는 것으로서 한 문명, 한 시대를 넘어서는 무게를 지니는 것이다.
-코사카 마사타카(교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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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20.12.17 05:16
이 책을 옮긴이의 말을 아래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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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교체기를 살아간 이들을 위한 진혼가>
“...<일리아스>를 통해 지중해 세계에 매료되었기에 전쟁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여느 전쟁이 아니라, 일리아스에 묘사된 것 같은 다른 문명 간의 대결로서의 전쟁을.”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나이 열여섯에 품은 이 꿈을 세 전쟁 이야기에 담았다.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로도스 섬 공방전>에 이어 세번째에 위치하는 <레판토 해전>은 그 전쟁 이야기의 대단원이다. 그리고 이 세번째 책에 이르러 비로소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책의 `해설`에도 나와 있듯이, 그것은 오랜 지중해 시대가 어떻게 마무리되는가, 그 속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자기 앞에 놓인 난제에 맞섰는가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을 논평조로 담담히 기술한 책은 아니다.
1571년의 이 해전에 대해서 절대 다수의 책들은 그것이 육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일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돈 후안이 화기 사용에 중점을 둔 데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저자는 이를 무시해 버린다.
기울어가는 조국 베네치아를 지키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쓰는 외교관과 조국에 대한 충정 하나로 버티는 전투원들이 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공화국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70여년 간의 평화와 죽어간 사람들이 고국에 남긴 사랑하는 이들이 여운을 이룬다.
그러기에 이 책은 승리한 전쟁에 바치는 진혼가이다.
전쟁사는 재미있다. 어떤 게임보다도 재미있다. 전쟁사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 재미는 한편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독자는 2차원 지도 위에서 장기말처럼 오락가락하는 단위 부대들을 보며 `이렇게 했으면 어떨까` `저렇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심정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들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것이어서 자신이 어느새 잊어버린 것이 있음도 알지 못한다. 잊고 있는 것. 그것은 실제로 그 전투를 수행해야 했던 사람들의 피와 눈물, 땀이다.
그리고 이 `피를 흘리는 정치` 뒤에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 가로놓여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후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 국제정치학, 국제관계론이 발전하면서 어느 정도 보강되었다.
하지만 전자는?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미미하다. 영미권의 경우 존 키간이 1415년의 아젱쿠르 전투와 1815년의 워털루 전투 그리고 1916년의 솜 전투를 대상으로 분석한 <전투의 면모>와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을 토대로 키간의 방법을 도입한 핸슨의 <서구의 전쟁 방식-고대 그리스의 보병 전투>가 나와 있지만,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주류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투원들이 직접 남긴 자료가 부족한 이상 앞으로도 모든 전투에 대해 전투원의 입장에 서서 묘사하는 전쟁사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뙤약볕에 달구어진 40킬로그램짜리 갑주와 방패를 몸에 걸치고 500미터를 전속력으로 뛰어가 적 제1열과 충돌해야 했던 그리스의 보통 시민이 느낀 공포감을 생생히 복원해낸 핸슨의 작업 같은 것은 쉽사리 잊기 힘든 매력을 던져 주고 있다.
그리고 그 매력은, 네가 전장에 섰을 때 과연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역자는 과거의 전쟁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이야기는 전쟁 자체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2천 년을 이어온 지중해 세계가 그 역사적 역할을 매듭짓는 시기에 관한 애절한 송가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독자들에게`와 `해설`에서 언급되고 있느니만큼 줄이도록 하겠다. 또 이미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 곱씹고 느낄 문제이지 책을 번역했다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문제도 아닐 것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정리를 해두는 것으로 이 글을 맺어야겠다. 책에서도 이리저리 언급된 바이지만, 이 당시까지의 서양 해전의 양상에 대해서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갤리선이라는 것은 고대 페니키아의 상선인 3단노선(trireme)을 기원전 7세기경에 그리스가 도입하여 갸름하게 함으로써 기동성을 높인 배이다. 도입 당시부터 갤리선으로 치러진 전투는 일정한 양상을 띠게 된다. 핵심을 이루는 것은 적선에 올라타서 육전에서처럼 싸우는 방법이다(boarding).
하지만 본격적인 백병전이 벌어지기 전에 일단 적선의 기동성을 제거하는 방법이 선호되었다.
첫째는 뱃머리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쇠기둥, 즉 충각으로 들이받는 방법(ramming)으로, 영화 `벤허`에서 벤허가 노예로서 노를 젓던 배가 이런 방법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의 해적에게 당한다.
두번째는 아군의 배를 교묘하게 움직여 배의 동체를 적선의 동체에 맞닿을 정도로 비껴가게 해서 적선의 노를 부러뜨려 버리는 방법이다. 그리스 최강의 해양 세력 아테네가 종종 이 방법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고난도 기술이라서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듯하다.
기원전 7세기에 형성된 이런 양상은, 그뒤 중세의 상선을 개량한 대형 범선이 추가되긴 했어도 레판토 해전에 이르기까지 별 차이 없이 그대로 이어진다. 그런 면에서 레판토 해전을 최후 최대의 갤리선 해전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레판토 해전 당시에 유럽의 북쪽에서는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었다. 영국이 주도하던 함포 사격이다. 헨리 8세 치하의 영국(시오노 나나미의 이 3부작으로 따지면 로도스 시기에 해당된다)은 대함용 거포를 배에 장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1513년에는 함포 사격에 중점을 둔 메리 로즈호를 내놓기도 했다. 그 헨리 8세 휘하에서 영국 해군이 창설되었으며 74문의 대함용 포를 장착한 전함이 갤리선을 제치고 주력의 자리에 올랐다. 지중해와 멀리 떨어진 그곳 대서양에서 해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새로이 형성된 해군은 갤리선처럼 배를 맞대어 육전과 같은 백병전을 벌이지 않고 가능한 한 적을 비껴가면서 적선과 멀찍이 떨어져 뱃전을 죽 늘어세우고는 함포 사격을 가하는 것을 전술의 핵심으로 삼기 시작했다(이 책에서 도리아 함대가 근대의 해전 전술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고 하는 것은 이런 `기동` 때문이다).
이리하여 16세기 말에 이르면 우리에게 익숙한 해전의 풍경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나마 스페인이 버텨 주던 지중해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이 책 <레판토 해전>에서 오만한 강국으로 나오는 스페인은 레판토 해전이 벌어진 지 불과 17년 뒤인 1588년, 영국 앞바다에서 그 무적함대(armada)가 영국 해군에 패퇴하면서 대영제국 출범의 디딤돌이 되어 버리고 만다.
비록 그 전투 자체는 영국 해군의 힘보다는 스페인 해군이 맞닥뜨려야 했던 이런저런 불운에 기인한 바가 크다지만, 이미 지중해를 주름잡던 갤리선이 설 자리는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세 권의 책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부터 <레판토 해전>까지 애써 주신 한길사 편집부의 김경희 차장님과 한길사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님, 번역을 주선해 준 최성균 형에게도 또 한번 감사드린다.
예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최고 베스트셀러인 <로마인 이야기>를 출근길 지하철에서, 나른한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읽는 사람들을 가끔 보았다.
지금 내보내는 이 세 권의 책이 그 <로마인 이야기>처럼 고달픈 삶에 작으나마 위안이 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1998년 1월 최은석
++++
***동우***
2020.12.22 05:23
‘시오노 나나미’
‘로마 이야기’, ‘마키아벨리, ‘살로메유모이야기’그리고 ‘전쟁 3부작.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로도스 섬 공방전’에 이어 ‘레판토 해전’을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분명 역사가가 아닌지라 그녀의 책들이 역사서가 될수 없을겁니다.
어느 정도 고증에 충실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보다 돋보이는건 역사적 로망입니다.
오히려 그녀를 소설가라 불러야 적절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적 흔적, 기록 서한 문서 전승을 찾아 뒤지고 현장을 답사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플롯과 내러티브를 노련한 글솜씨로 구성하여 많은 대작을 창작한 그녀의 노력, 소설가의 취재라 하더라도 상찬받기에 마땅합니다.
고대로마 유럽 르네상스시대의 역사를 세상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각인시킨 공적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녀의 편향적 취향(‘율리우스 케사르’ ‘체사르 보르지아’ ‘마키아벨리’라던가 ‘베네치아’에 대한 지나친 애정), 그리고 지나친 영웅주의와 낭만주의 같은 것도 소설가로서라면 폄훼 받을바 그닥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로 인하여 내 빈약한 역사지식은 상당히 깊어졌고, 그보다 비좁았던 내 역사의식은 제법 확장되었습니다.
로마에 대하여, 그리스에 대하여, 이탈리아반도의 여러 도시에 대하여, 오스만 제국에 대하여, 르네상스에 대하여, 역사 속에서 부침하였던 정치가 군인 예술가들에 대하여...
‘시오노 나나미’
그동안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레판토 해전과 동세기에 일어났던 한반도의 전쟁.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올리려 합니다. (다음 차례가 될런지는.ㅎ)
한 위인의 실존이 겪어내는 칼끝같은 리얼리즘.
‘시오노 나나미’ 류와는 전혀 다른 정서로 읽히게 될겁니다.
그 또한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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