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사카이 사건>
-모리 오가이 作-
***동우***
2014.01.18 05:17
단호한 선택으로 수행하는 죽음의 형식.
서릿발처럼 명징한 냉정함과 침착함 절제와 극한의 인내로써 밟아가는 죽음의 과정.
타인에게 자긍과 명예를 보이기 위하여, 혹은 스스로 아름답기 위하여.
스스로 선택하는 정형화된 자살의 형식.
셋푸쿠(切腹), 또는 하라키리(腹切り).
소설 '대망'이 떠오른다.
다케다 신켄(이었나?).. 천수각 다락에서 '할복의 교범을 보이겠노라'하고서 배를 가르고 쏟아지는 내장을 양손으로 끄집어 내어 수많은 적군무리들에게 흩뿌리면서 떨어져 내리는 대목이 기억에 선하다.
++++
<할복은 오시(낮 12시:역주)로 결정되었다.
휘막 안에는 우선 병사들의 목을 칠 개착인(할복할 때 고통을 덜어 준다는 의미에서 목을 쳐 주던 사람:역주)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어젯밤 오사카 나가호리 진영에서 병사 20명에게 술을 대접했던 보초들로 대접이 끝난 후 자기들끼리 상의를 해 이미 누가 누구를 맡을 것인지 정해 놓은 상태였다. 병사와 이를 맡을 개착인들의 이름은 이러하였다. 우선 제6보병대를 보면, 미노우라는 바바 타로우, 이케노우에는 키타가와 레이헤이, 스기모토는 이케 시치스케, 카츠가세는 요시무라 사이키치, 야마모토는 모리 쇼우바, 모리모토는 노구치키쿠마, 키타시로는 타케이치 스케고, 이나다는 에하라 겐노스케, 야나세는 콘도우 시게노스케, 하시즈메는 야마다 안노스케, 오카자키는 히지카타 요우고로우, 카와타니는 타케모토 겐노스케가 맡기로 하였다. 한편 제8보병대는, 니시무라는 코사카 이누이, 오오이시는 오치아이 겐로쿠, 타케우치는 쿠스세 류우헤이, 요코다는 마츠다 야히라지, 도이는 이케 시치스케, 카키우치는 쿠몬 사헤이, 카네다는 타니가와 신지,타모리 칸노스케가 맡기로 했다. 이중 이케 시치스케는 스기모토와 도이, 두 사람의 목을 치기로 되었다. 이들 개착인 모두는 칼을 허리춤에 차고 할복장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휘막 바깥에는 별도의 가마 20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시신을 호우쥬인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었다. 시신을 우선 이 가마에 옮겨 실고, 호우쥬인으로 가 시신을 꺼내 다시 옹이 안에 넣어 매장하기로 되어 있었다.
임검석에는 외국사무총재 야마시나노 미야를 비롯해, 외국 사쿠께 다테 소장, 역시 같은 외국사무계의 히가시쿠세 소장, 호소카와, 아사노 두 진영의 중역들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의자에 앉았다. 토사 진영의 후카오는 북쪽에서 동남쪽을 보고 앉았다. 대감찰관 코미나미 이하 감찰관들은 서북쪽에서 동쪽을 보고 앉았고, 프랑스 공사는 무장한 부하 20명을 거느리고 정면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앉았다. 그의 사츠마, 나가토, 이나바, 비젠 등 다른 여러 진영에서도 관리들이 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호소카와, 아사노의 무사들이 나와 준비가 다 되었음을 병사들에게 알렸다. 이에 20명의 병사들은 본당 가장자리로 가 다시 가마에 올라타고 할복 장소로 향했다. 가마 양 옆에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병졸들이 따라 붙었다. 할복장에 도착한 가마는 휘막 밖에 줄 지어 섰고, 한 관리가 나와 병사들의 명부를 펼쳐들고 막 호명하려던 참이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하늘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더니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절 안팎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절 처마 밑으로 혹은 나뭇가지 아래로 뛰어들어가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할복은 잠시 미루어졌고 총재 미야를 비롯, 모두는 본당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비는 오후 2시쯤이 되어서야 그쳤고, 오후 4시 무렵에야 다시 할복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관리가 나와 '미노우라 이노키치'하고 호명하였다. 절 안팎은 물을 끼얹은 듯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미노우라는 나사로 만든 짧은 겉옷에 깡충한 바지차림으로 할복장에 나왔다. 미노우라를 맡은 개착인 바바는 3척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총재 미야와 이하 모든 관리들에게 예를 표한 미노우라는 하얀 무명천을 받아들고 단도를 오른손에 쥐어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벽력과 같은 소리를 질렀다.
"프랑스 놈들은 잘 들어라! 나는 네 놈들을 위해 죽는 게 아니다! 황국을 위해 죽는 것이다! 일본 사내 대장부의 할복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봐두어라!"
미노우라는 웃옷을 풀어헤치더니 단도를 왼손에 들고 왼쪽 옆구리를 힘껏, 그리고 깊숙이 찔렀다. 세 치 정도 내리 긋고 나서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른쪽으로 칼을 당겼다. 이어 이번에는 다시 왼쪽으로 세 치 가량 끌어올렸다. 칼을 깊숙이 집어 넣어서인지 그 상처는 몹시도 크게 벌어졌다. 미노우라는 단도를 내던지고 그 상처 안으로 오른손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창자를 쥐어들고 몸 밖으로 꺼내며 프랑스 공사를 노려보았다.
기다리고 있던 바바가 칼을 뽑아들고 목을 쳤으나 얕았다.
"바바! 어찌 된 건가? 좀더 침착하게 잘 보고 치게나!"라고 미노우라가 호령하였다.
바바의 두번째 칼이 목덜미를 내리치자 뚝하는 소리가 났다.
미노우라는 다시 호령하였다.
"아직 안 죽었다! 다시 베어라!"
이 소리는 지금까지 외쳤던 그것보다 훨씬 커, 족히 3정은 울려 퍼지고도 남았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미노우라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던 프랑스 공사는 점차로 얼굴이 경악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었는데, 미노우라의 이 예상치 못한 외침을 듣더니만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발 둘 곳을 모른 채 안절부절해대기 시작했다.
바바는 세번째 칼만에 간신히 미노우라의 목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호명된 니시무라는 매우 온후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성은 미나모토, 이름은 우지아츠로 토사군 에노쿠치 마을에 살고 있었다. 홍화 2년(1845) 7월생으로 당시 24세였으며, 녹봉 40석을 받는 말 탄 장수를 호위하는 무사였다. 보병소대사령으로는 경응 3년(1867) 8월에 임명되었다. 니시무라는 군복을 입은 채로 할복할 곳에 앉아 군복의 단추를 하나하나 정중히 풀었다. 그런 후 단도를 들고 왼쪽 옆구리를 찔러 천천히 오른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는 얕았다고 생각했는지 더욱더 힘을 주어 깊이 찌른 뒤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오른쪽으로 잡아당겼다. 한편 니시무라를 맡은 개착인 코사카는 이와는 달리 매우 긴장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는 니시무라가 아직 단도를 들 오른쪽으로 당기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만 뒤쪽에서 먼저 칼을 휘둘러 버렸다. 니시무라의 머리는 18척이나 날라갔다.
다음은 이케노우에로 키타가와가 목을 쳤다. 다음 차례인 오오이시는 눈에 띄게 덩치가 큰 사내였다. 그는 우선 양손으로 배를 쓱쓱 문질렀다. 그리고 나서 칼을 오른손에 쥐어들었다. 그는 그대로 왼쪽 옆구리를 깊숙이 찌른 후 왼손으로 칼등을 밀어 베기 시작했다. 오른 손을 왼손 위에 포개어 더욱 힘차게 칼을 오른쪽으로 끌어당겼다. 칼이 오른쪽 옆구리까지 왔을 때, 이번에는 다시 칼 등을 밀어 위로 당겨 올렸다. 그런 후 칼을 자리 오른쪽에 놓고 양손을 크게 펴들고 이렇게 외쳤다.
"자, 어서 날 베게!"
개착인 오치아이는 실수를 거듭한 끝에 일곱번째만에 오오이시의 목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할복한 많은 병사들 중 가장 시원스럽고도 멋진 칼놀림을 보인 사람은 바로 이 오오이시였다.
그리고 나서 스기모토, 카츠카세, 야마모토, 키타시로, 이나다, 야나세 순으로 할복하였다. 이중 야나세는 한 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끌어당긴 칼을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당겼기 때문에 창자가 상처 부위에서 가득히 쏟아져 나왔다.
다음 12번째 병사는 하시즈메였다. 하시즈메가 나와 자리에 앉을 즈음에는 이미 사방에 어둠이 깔려 본당 안에는 등불을 밝혀 놓았다.
프랑스 공사는 여전히 불안한 내색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안절부절했다. 이러한 공사의 불안한 모습은 곧바로 무장하고 서 있던 프랑스 병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자세는 모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손을 앞뒤로 내저으며 뭔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하였다. 하시즈메가 마침 할복하러 자리에 나와 앉자 공사는 병졸들을 향해 뭐라고 한 마디를 외쳤다. 그러자 프랑스 병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와 공사를 둘러쌌다. 그리고는 임검석을 떠나며 황족은 물론이고 같이 있던 관리들에게 인사말 한 마디 없이 허겁지겁 휘막 바깥으로 나갔다. 뜰을 가로질러 절 문을 나서자마자 공사를 에워싼 프랑스 병졸들은 걸음걸이를 갑자기 구보로 바꾸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항구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
할복.
내 등골에서는 전류가 흐른다.
끔찍한 혐오감으로 인한 전율일까.
삶의 그 헛헛한 미완(未完)을 최후의 불꽃으로 승화하여 완성하는듯한...
어떤 인간 궁극의 형식미.
어쩌면 그건 탐미적 오르가즘은 아닐까.
으흠, 탐미라니.
그 죽음 어디메 美가 있단말가.
아아, 일본의 저 할복에 대하여.
내 파토스는 도무지 정연(整然)할 수가 없다.
일간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올리려 하는데, 그 때 좀 지껄이기로 하지만 글쎄...
내 들끓는 파토스를 다스려 좀 더 정연하게 저런 죽음에 대하여 토로할수 있을런가 모르겠다.
'모리 오가이'(森 鷗外, 1862~1922)의 '사카이 사건'
명분은 없다.
의미도 없다.
소름 돋는 형식만이 있을 뿐.
다음은 이문열의 해설.
저 죽음을 설명하는데 이문열 역시 참으로 어쭙잖다.
++++
<단호함과 일치됨의 미학>
-이문열-
어떤 대의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껴안는 경우에도 불안과 망설임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죽음을 맞게 된 스무명의 사내들에게는 그런 흔적이 없다. 그들은 실로 단호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는 순간까지도 누구 하나 작은 흔들림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죽음을 보다 값지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일이다.
물론 그들은 이미 다수 속에서 길러진 사람들이고 또 그런 상황에 떨어진 뒤에는 달리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스무명의 사내들이 죽음 앞에서 보여주는 그런 단호함과 일치됨은 여전히 크나큰 감동이다. 세상의 여러 종족 중에서도 유독 일본인들이 자주 연출하는 별난 미학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조국이나 민족도 하나의미신적인 이데올로기일 수 있고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도 광기 같은 게 어려 있다. <우상 숭배자들>이 가학적인 서구적 광기에 휩쓸린 공격성의 형상화라면 이 작품은 피학적인 동양적 광기가 연출하는 자학극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신이라도 가치 있는 미신이고 광기라도 아름다운 광기이다. 이 미신과 광기의 시대가 없었다면 오늘의 일본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이 작품을 더욱 인상적이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냉정하기 그지없는 서술태도이다. 작가는 감탄하고 과장하지 않으려고 맹서라도 한 사람처럼 차분하게 담담하게 이 참혹하고도 격정적인 사건을 그려나가고 있다. 서술자의 감동이나 흥분을 드러내는 언사는 작품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원래 이 작품을 <죽음의 미학>편에 넣으려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미 미시마 유끼오의 <우국>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도 미학보다는 사내다움의 일본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아 이쪽으로 돌렸다.
작가 '모리 오가이'는 대정 연간에 활동한 일본의 근대작가이다. 동경제대 의학부를 나와 일생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독특한 작품들을 남겼으나 한글세대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모리 오가이는 원래 의사로 출발해서 소설가 희극작가 평론가 번역가로 활동한 당대 최고의 문필가이다. 시네마현 출신으로 본명은 하야시 타로우. 동경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육군 군의관 자격으로 독일에 의학공부를 떠났다. 귀국 후 군의관으로 활동하던 시절, 독일 문학작품을 번역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창작소설 <무희>와 평론집 <월초>등을 발표해 일본 현대문학의 기준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해 놓았다.
문학 비평뿐 아니라 의학 비평에 있어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루어 놓은 그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군의부장으로 참전하면서 대의를 위해 목숨을 끊는 일본 사내들의 숱한 자결과 자해를 목도한다. 이 같은 체험은 오가이의 향후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명치 천황 시절, 사카이라는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프랑스군과의 충돌을 소설화한 작품 <사카이 사건>도 그의 여러 역사소설 중 하나이다.
1916년, 54세의 나이에 일본 육군성 의무국장으로 퇴임하기까지 현역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새롭고 해박한 해외 사조, 문예 지식을 통해 동시대를 부단히 계몽하였던 오가이는 나쓰메 소세끼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거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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