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도시>
-작가미상-
***동우***
2018.11.24 08:02
작가미상의 SF, '도시(The City)'
어떤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2만년 동안 죽어있는 도시.
길고도 긴 세월 동안 폐허(廢墟)로 남아있는 어느 도시를.
++++
<도시는 2만년 동안 기다려왔다.
행성이 우주공간을 떠돌고 들판에 꽃이 피고 지고 할 동안 도시는 기다려왔다.
샘이 생겨나서 커다란 강줄기를 이루고 이윽고 말라붙어 먼지로 되돌아갈 동안에도 도시는 기다려왔다.
산들바람이 맹렬한 태풍으로 자라고 다시 가냘픈 미풍으로 잠잠해질 때까지, 하늘의 구름들이 줄지어 선 양떼를 이루었다가 광활한 창공의 한 점 조그마한 섬으로 이울 때까지 도시는 여전히 기다려왔다.
창문들과 흑요석의 벽들과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과 깃발이 꽂히지 않은 탑들과 인적이 없는 거리와 아무도 손대지 않은 문손잡이들과 함께 도시는 기다려왔다.
종이쪽지 한 장, 손가락 자국 하나 없이.
행성은 우주 공간에 커다랗게 호를 그리며 청백색의 태양 둘레에서 공전궤도를 돌고, 그 동안 계절은 얼음에서 불로, 푸른 초원에서 황금빛 여름 들판으로 바뀌어갔다.>
++++
그러나.
도시는 완전하게 죽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죽음 속에 깃들어있는 존재 이유, 그것은 복수였습니다.
2만년 전, 지구인이 가져온 질병으로 행성의 주민은 남김없이 멸절하고 말았습니다.
그 옛날 산 것들 복수의 염원만이 도시의 시스템에 투사되어 도시는 2만년 동안 음울한 침묵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방문할지도 모를 원수(怨讐)의 도래(渡來)를.
어느 날, 드디어 그들 지구인이 방문하였습니다.
도시의 시스템은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시스템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심어 지구로 귀환하게 합니다.
이제 지구의 인류는 멸망하고, 도시는 영원한 폐허로 남게 되겠지요.
도시는, 바야흐로 복수를 완성한 것입니다.
도시는 이제야말로 영원한 침묵 속으로 잠겨 들어갑니다.
죽음의 행복 속으로.
<천천히, 그리고 기꺼이, 도시는 죽음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 이 짧은 소설 속 시적 판타지 가득한 알레고리.
(작가가 의도하는바 없더라도) 상징적 이미저리의 포름에 나는 감탄합니다.
스톤헨지. 앙코르와트. 고인돌. 우리 동네 동삼동의 패총...
유허(遺墟)의 이끼 낀 자취에 숨어있는 그 옛날 산 것들의 슬픈 의지.
눈을 감고, 명상에 한번 잠겨 보시기를.
마추픽추의 돌덩이에 깃들어 있는 피사로에 대한 잉카의 원념(怨念)을....
좋은 주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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