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내 친구 영길이 (1,4,3,3)

카지모도 2021. 1. 2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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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내 친구 영길이>-

 

***동우***

2010.11.10

 

1.

 

시대.

역사적 소명.

벗님들의 치열하였던 청춘.

그 때 나는 무얼 했던가

 

영길이라는 이름의 메타포.

내 어줍잖은 청춘의 변증(辨證).

그것을 빌미로 끄적인다.

 

2.

 

내 나이 스무 두엇 무렵.

어떤 부류(部類)엔가 속(屬)하여는 있었을까.

관계이거나 시대이거나 세상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덜 익은 내면적 정의(定義) 어느 항목(項目)에라도.

알고 있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무엇엔가 취(醉)하여는 있었을까,

당(當)하는 생(生), 그것은 아픔이었을까.

그리하여 맞닥뜨릴 생(生)이란 공포의 미지(未知)였을까.

 

관계는 서로들 천박(淺薄)하여 한소절 귀띔해 줄 멘토(mentor)는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나의 기질(氣質)은 너무나 비범(非凡)하지 아니 하였다.

우물속 자의식은 마스터베이션의 점액성(粘液性) 음습함으로 가득하였으며, 나의 별(星)은 여기가 아닐 거라는 자기연민(自己憐憫)은 스스로 과잉(過剩)하여 스스로 버거웠다.

나의 우물 밖은 눈부시게 역동적이어서 도처에 맘몬(Mammon)과 헤돈(hedonism)의 삐끼들이 설쳐 댔고, 나남없이 욕망은 분수처럼들 솟구치고 있었다.

 

정중지와(井中之蛙)의 호리건곤(壺裏乾坤).

때로 우물안 개구리는 위로 뚫린 한뼘 하늘을 향하여 감자를 먹이곤 하였는데 그것은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내지르는 경련(痙攣)과도 같은 비명이었을 뿐이었다.

 

회억(回憶)컨대 무릇 그 시절 내 꼬라지는 배냇짓하는 어린아이였다.

 

3.

 

친구가 있었다.

나의 관계(關係) 중 가장 우미(優美)하고 가장 고상(高尙)하였던 인간,

징그러운 것들을 그토록 끔찍하게도 징그러워 하였던,

불쌍한 것들이 그리도 불쌍하여 도무지 견딜수 없어 하였던,

한 세상 땅에 부접(附接)하여 비벼대는 것을 그리도 어색해 하였고 불편해 하였고 괴로워 하였던,

징그럽고 불쌍한 것들 투성이의 한 시절 땅을 딛는게 두려워 언제나 하늘을 떠 돌았던,

순한 눈길로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 보았던.

 

영길이

지금도 모짜르트 선율에 넋을 얹고서 허허롭게 하늘을 날고 있을 친구.

지금은 40여년도 더 흘러 2010년 늦가을.

영길이의 그곳은 지금 어드메의 하늘자락일런지.

생각사록 그가 그리워 가슴이 에인다.

 

영길아, 이제 말한다.

아아, 나를 용서하여 주렴.

 

4.

 

골목이다.

까륵까륵 따드라쿵 따드라쿵.

예제서 울리는 자지러지는 교성과 부기우기 마도로스의 젓가락 장단 소리.

뱃속 막걸리는 오줌줄기로 쏟아져 수챗구멍을 범람한다.

바지춤 수습하고 눈 부릅 떠 둘러본다.

선정적(煽情的) 손짓이랍시고 빠알간 전등빛 우러난, 상자곽같은 아크릴간판들 줄줄이 늘어서 있다.

춘천집, 서산집, 목포집, 강능집, 전주집...

허어, 이나라의 온갖 고장들은 모두 손잡고 니나노 뒷골목에 줄지어 늘어서 열병(閱兵)을 하고 있었고나.

따라지 내 동무들과 분냄새 안쓰런 내 색시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곳은 무슨집 이었더라.

청도집이었던가, 순천집이었던가, 서울집이었던가.

아, 도무지 옥호(屋號)는 미상(未詳)이로다.

그려, 여기는 몬도가네. 악명높은 바가지 작부골목 몬도가네.

빠져 나가자 하지만 몬도가네는 미로(迷路)인지라 출구를 찾을 도리가 없다.

눈 치뜨고 술 취한 머리를 흔들어본다.

허어 갇혔구나. 갇혔어. 골목 안에 갇혀 버린게여.

노 웨이 아웃. 노 웨이 아웃.

불현듯 가려운듯한 겨드랑이,

돋아라 날개야. 날자. 날아 보자꾸나.

두 팔 벌려 날개짓 하며 발장구를 친다.

오르리, 한사코 오르리.

으응! 으응! 들입다 용을 쓰다보면 몸뚱이는 슬슬 떠오른다.

오, 상승(上昇)이로다. 상승.

높은 대기 속에 몸을 씻어라. 그리고 마셔라. 순수하고 신성한 술을 마시듯 맑은 공간을 채우는 저 밝은 불을 마셔라. 그리고 삶 위를 떠돌아라. 눈 아래 저 침묵의 무더기들, 저토록 완강한 그 말없음의 말을 들어보라.

어두운 하늘 어디쯤에서는 도시 저 너머에 있을 비릿한 바닷내음이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 영길이가 있었다.

양력(揚力)의 몸뚱이를 바람에 맡긴채 좀 슬픈 눈빛으로 나를 보고는 풀썩 웃었다.

내가 세상에서 본 가장 순한 눈빛이었고, 가장 선량한 웃음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목이 메었다.

나도 마주 풀썩 웃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5.

 

<年譜>

 

1968년 : 1월21일 북한무장특공대 청와대 기습/ 1월23일 푸에블로호 사건/ 4월1일 향토예비군 창설/ 8월25일 통혁당 사건/ 9월22일 선데이서울 창간/ 10월3일 쌍용시멘트 준공/ 11월3일 삼척 울진지역 무장공비 침투/ 11월21일 주민등록증제도 실시/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9년 : 1월31일 국토통일원 발족/ 6월 3선개헌 반대시위/ 7월21일 경인고속도로 개통/ 7월25일 닉슨 독트린 발표/ 10월17일 3선개헌안 국민투표/ 12월 제3한강교 개통

1970년 : 4월8일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4월22일 새마을 운동 제창/ 6월2일 오적 필화사건/ 6월 서울인구 500만 돌파/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10월31일 국토종합개발 10개년 계획 확정/ 11월13일 전태일 분신

1971년 : 3월 주한 미7사단 철수/ 4월19일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 4월2일 7대 대통령 선거/ 5월25일 8대 총선거/ 7월 낙태수술 합법화/ 8월23일 실미도 사건/ 9월20일 이산가족찾기 남북적십자회담/ 10월1일 장발족 일제단속/ 12월6일 국가비상사태 선포/ 12월10일 민방위훈련 실시

1972년 : 3차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6)/ 2월7일 파월 청룡부대 귀환/ 7월 74남북공동성명/ 8월3일 83조치(기업사채 동결)/ 10월17일 비상계엄령 선포/ 10월 울산석유화학단지 건설/ 11월21일 유신헌법 국민투표 통과/ 12월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8대 대통령 선거

1973년 : 1월 중화학 공업화선언/ 2월 도덕(국민윤리) 및 국사교육 강화, 국정교과서 등장/ 2월27일 9대 총선거/ 3월10일 유신정우회(유정회)창립/ 3월23일 파월한국군 철수 완료/ 7월3일 포항종합제철 준공/ 6월23일 623평화통일 선언/ 8월8일 김대중 납치사건/ 12월24일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개시

1974년 : 1월8일 긴급조치 1호 선포/ 4월 민청학련 사건/ 6월 국민윤리, 국사, 한문, 교련 교과독립/ 8월15일 육영수여사 피살사건/ 8월15일 서울 지하철 개통/ 11월 휴전선 땅굴 발견/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12월 동아일보 광고탄압

 

6.

 

그 시절.

겨우 스물두엇 애새끼의 작부집이라니.

그러하였다.

감히 작부집이었고 고작 작부집이었다.

바야흐로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의 주술 ‘잘 살아보세’의 시대였다.

‘잘 살아보세’의 주연(主演)들은 귀로만 들었던 무신 ‘별장’이라거나 ‘요정’ 따위에서 삐까번쩍 놀았을 터이고, 조연(助演)쯤은 중심가 네온 번쩍이는 무신 ‘빠’라거나 무신 ‘홀’따위에서 흥청거렸을 터이지만 엑스트라 따라지들은 그저 목로 대포집이나 주머니 좀 두둑하면 뒷골목 색시의 싸구려 시중을 받으면서 스텐레스 젓가락 부러져라 호마이카 술상을 두드려댔을 것이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술상에 얹힌 주전자 막걸리는 카바이트와 섞여 있을지언정 울긋불긋 연지곤지 한복차림의 색시는 애닯게 어여뻤다.

때로 상봉하는 머나먼 고향땅 국민학교 동창이기도 하였지만 놈이나 년이나 사릴 것도 없었다.

공돌이거나 똘마니거나 갸바이거나 버스차장이거나 학삐리거나 군바리거나 공순이거나 식모이거나 버스차장이거나 작부이거나 하였던 오라비들과 누이들은.

‘경제’라는 맘몬이 오로지한 ‘절대신’으로 좌정(坐定)하기 위하여 적나라하게 그 모습 벙글기 시작한 어수선한 시절.

이념구조는 지극히 편협하였고 미덕이란 단조로운 감동에 있었던, 무엇엔가 부딪쳐 승부를 짖고자 하여 목숨이 용감하였던 압축성장의 시절.

새로운 전범(典範)의 스스로 이쁜 것들은 분칠하여 난만(爛漫)하고 요염하였지만, 대대(代代)의 이쁜 것들 우르르 무너져 내리던 압축파괴의 시절.

될성부른 놈은 순치(順治)되어 용의 꼬리를 꿈꾸거나 될성부르지 않은 놈은 낙오하여 뱀꼬랑지가 되거나...

급조된 브루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무슨 무슨 의식(意識)따위 깃들 겨를 있었으랴.

 

7.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 엥겔스->

 

-上略-

부르주아지는 역사상 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부르주아지는 지배권을 장악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인 모든 관계를 모조리 파괴했다.

그들은 ‘타고난 상하관계’와 결부되어 있던 각종 잡다한 봉건적 유대를 가차없이 산산조각내고, 적나라한 이기심, 무정한 ‘현금계산’이외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무런 유대도 남기지 않았다.

신앙의 열광, 기사의 감격, 도시인의 감상이란 열정적 환희를 얼음같이 차가운 이해타산의 물에 빠뜨려버렸다.

인격의 가치를 교환가치로 해소시켜 버리고, 특허장으로 인정된 또는 자력으로 획득한 무수한 자유를 오직 하나인, 아무것도 꺼리지 않는 상업의 자유와 바꾸어 놓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및 정치적인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노골적이며 파렴치하고 야수와 같은 착취와 바꾸어놓은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이제까지 존경받고 외경의 대상이 되었던 모든 직업에서 그 후광을 박탈했다.

의사도 법률가도 승려도 시인도 학자도 그들이 고용하는 임금노동자로 바뀌었다.

부르주아지는 가족으로부터 그 감동적인 베일을 벗기고 가족관계를 순전한 금전관계로 전환시켰다.

부르주아지는, 반동파가 그토록 찬미하는 중세시대의 야수같은 힘의 과시가 어떻게 하여 가장 게으른 나태로서 훌륭히 보완되는가를 보여주었다.

인간의 활동이 어느 정도의 일을 할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 부르주아지였다.

부르주아지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수도(水道), 고딕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경이적인 대공사를 이룩하고 이전의 민족대이동과 십자군 따위는 견주지 못할 원정을 수행했다.

부르주아지는 생산용구를, 더 나아가서 생산관계를, 따라서 사회관계 전체를 끊임없이 변혁하지 않고서는 생존할수 없다.

그 반면 낡은 생활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모든 산업계급의 일차적 생존조건이었다.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상태의 부단한 동요(動搖), 영원한 불안정과 변동등이 이전의 모든 시대와 부르주아지 시대를 구별하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되고 얼어붙은 관계는 그것에 따르는 낡고 고귀한 관념이나 견해와 함께 해체되고, 새로 생긴 관계는 모두 굳어지기도 전에 낡아 버렸다.

신분적인 것과 항구적인 것은 모두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신성한 것은 모두 더러워진다.

이리하여 마침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상의 지위, 자신들 상호간의 관계를 차가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다.

-下略-

 

8.

 

그 시절 우리는 대체로 사이비(似而非)였다.

지방대학생류(類)중 특히 나처럼 농땡이가 표방하는 지식이란 알맹이라고는 거의 없는 폼잡기의 그것이기 십상이었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독서(讀書)는 잔뜩 과장되어 부풀려졌고, 예제서 한두마디씩 주워 들은 풍월(風月) 쪼가리들은 요리조리 편집되고 울긋불긋 치장되었다.

그것들이 마치 제 것인양 폼잡고 구사(驅使)하였던 그 뻔뻔스러운 위선(僞善)의 테크닉.

하나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기에는 도무지 역부족인 공허한 허영(虛榮)은 얼뱅이 문청적(文學靑年的) 구상유취(口尙乳臭)에 다름 아니었다.

생각사록 부끄러움이고 연민일 뿐이다.

간혹, 유신(維新)등에 대하여 짐짓 비분강개의 어조(語調)가 있었더라도 그 안에는 한조각 치열함도 있지 아니 하였다.

고산빙벽의 기성(旣成), 태상준령의 공권(公權)을 향하여 눈 흘기고 감자를 먹이고 똥침을 놓는 척 하였더라도 그것은 죄다 똥폼이었다.

장준하 리영희는 커녕 전태일의 내용에 대하여도 깊이있게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나, 우리의 생각들과 언어들은 죄 허영(虛榮)에 근거한 모방뿐이었을 것이다.

올바르다고 여기는 어떤 가치(價値)의 몸짓을 모방한 원숭이 시늉, 사이비(似而非)였다.

심하게 말하자면, 감정모체(感情母體)의 진실은 염량주의(炎凉主義:기회주의)에 속하였던 것이 아니라고 감히 단언할수 있으랴.

실제로 함께 어울렸던 어떤 녀석은 무소불위의 끝발이라는 중앙정보부 꼬랑지에라도 빌붙어 보고자 그토록 기를 썼으면서도 입으로는 곧잘 원숭이 시늉이었던 것이다.

시대정신에 있어서 정(正)의 엘리트이거나 부(負)의 엘리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회색빛 따라지들.

그리고 만연한 화이트칼라적 못난 우월감은 노동(블루칼라))에 편입되기를 전혀 기꺼워 하지도 않았다.

또한 보잘 것 없는 탈렌트들은 신성일도 나훈아도 될 수가 없었다.

내면은 황량하였고 불안하였다.

멘토는 없었다.

제도권의 선생들은 거의 폭력이었거나 형식이었거나 눈가리고 아웅이었다.

연좌제(連坐制)는 그때까지 내게 삼엄하였고, ‘젊은이여 야망(野望)을 가져라’라는 구호는 내게 공허하였다.

나의 야망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일견 연애는 좀 화려하였을까마는. 하, 들여다 보니 그 또한 침울한 사치(奢侈)였다.

 

9.

 

아아, 그만 두련다

현학(玄學) 흉내의 자기변명

쓰려니 스스로 역겹다

중동무이한 기록,

못난 내 청춘의 변증(辨證)이라니.

어림없다.

몇마디 못나빠진 찔찔거림... 이로써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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