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김중혁 1.2

카지모도 2021. 2. 27.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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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1-

 

 

<<<요요>>>

-김중혁-

 

***동우***

2016.09.09 07:03

 

처음 올립니다, 김중혁(1971~ ).

참신한 에스프리, 뛰어난 기량의 젊은 작가, 여러 문학상을 휩쓸었지요.

 

'요요'2012년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그로서는 이포크포인트적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6.09.10 04:49

 

적극과 능동과 긍정을 부르짖는 외침.

시간을 지배하라는.

관계를 정복하라는.

 

육식성 기질을 부추기는

그 외침이 무섭고 싫어...

식물성 기질에 안돈하여 자족하기.

 

외면하거나 도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곳이니까, 그 불확실성이 싫고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아를 벗어 난 상황에 대하여 이유없는 죄의식이 있습니다.

원인(因果)이 명확하지 않은.

다자이 오사무처럼.

 

관계를 부수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야 합니다.

자아를 떠난 곳에 풍덩 빠지기를 거부하는 것이지요.

 

어떤 부분 나를 닮은듯, 내 아들녀석과 비슷한 구석도 엿보이는.

 

유일하게 마음이 통하였던, 밝은 에너지를 가진 여자.

대학시절 장수영과의 사랑이 성공하였으면 좋았을걸.

인생이 좀 더 반짝거렸으련만,

 

장수영의 편지.

<네가 만들어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고 있는 중인 걸까. 난 생각했어. 나쁘지 않아. 그래, 나쁘지 않아.>

세리프가 몽롱합니다만, 이미 그녀는 차선재를 간파하고 있었던 걸까요.

 

시계침 3시라는 메타포.

6시의 180도나 12시의 0도가 아닌 딱 90도의 간격... 그것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시계침.

반복인가요, 흐름인가요.

 

매년 달력장을 뜯고 계절을 맞습니다.

반복인가요, 흐름인가요.

 

시계침의 단위나 계절의 단위가 아닌.

문득 세월의 단위로 시간을 느꼈을때...

그 명확한 흐름이 슬프시던가요.

 

관계의 간격.

시간의 간격.

 

관계와 시간이 명확하게 해석되는 것처럼 자신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차선재가 디자인한 시계 '시간은 흐른다'

장수영이 찍은 비디오 '거꾸로 가는 기차'

 

요요.

줄을 늘여 보내는 동작과 즐을 줄여 불러들이는 동작.

거기 무슨 은유가 있는겐지..

 

으흠, 관계를 부수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야 합니다.

 

 

 

<<<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동우***

2016.10.25 04:12

 

김중혁(1971~ )'악기들의 도서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것... 이 말은 콧수염 사장의 생각처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류의 의미가 아닐듯 합니다.

오히려 세상사 던적스러운 속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한세상 살다가라는.. 그런 말로 들립니다.

 

옛날 청나라 사람 원굉도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에 내뱉는 말이 무미건조하고 면목이 가증스런 세상사람은 모두가 벽(-취미-)이 없는 사람들이다. 만약 진정으로 벽이 있다면 그 속에 푹 빠져 즐기느라 성명과 생사도 모두 좋아하는 것에 맡길 터, 수전노나 관리 노릇에 관심이 있을까 보냐? 세상사 힘겨운 속박에서 벗어나 가증스런 속물의 면모를 부셔야 비로소 벽이 있다 할 것이다.>

 

()이라면 얼른 내 옛친구 음악광, SG이 떠오릅니다.

부산서 서울을 오가며 관람하는 연주회.(직장에 매인 몸, 그 시절 세계적 연주가의 내한공연때는 비행기까지 타면서)

고가의 오디오 시스템과 수만장의 레코드와 테이프....

그 친구의 소리찾아 삼만리 편력은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얼마전 블로그에서 해후하였는데 여전하더군요>

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추측건대 여태까지 아마 수십억은 쏟아부었을겁니다. <젊어 이혼까지 하였는데 여태 홀아비로 살더군요.>

 

이 소설 주인공의 벽()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 쪽인듯 합니다만.

음악이 되기전 악기에 존재하고 있는 본연의 소리를 수집하는.

 

그러고보니 악기뿐이 아니군요. 모든 사물은 소리를 머금고 있어 공기를 공명하여 제 목소리를 냅니다그려.

내 또래는 '이름이 이상하여' 기억하리다만, 옛날에 '김벌래'라는 음향전문가가 유명하였지요.

 

세상사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다 가는건가요.

빈틈없는 계획이나 의지라던가, 세상의 거대담론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건 아닐겝니다..

세미하고 즐거운... 아름답게 흠취할수 있는 소소한 것들...

태엽감는 자그마한 새 한마리... 미친 곡예사의 붉은 입술...

 

 

 

<<<나와 B>>>

-김중혁-

 

***동우***

2017.02.04 04:25

 

'김중혁(1971~ )''B와 나'

김중혁은 굉장한 음악애호가며 수집광이기도 하다는군요.

그의 소설은 전에'요요''악기들의 도서관'을 올렸더랬지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몸속에 저장해뒀던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인 B는 말합니다.

 

<", 나는요, 제일 겁나는 게 뭔지 알아요? 제가요, 유명해지기도 전에, 세상이 멸망해버리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을 해요. 한심하죠?">

 

'악기들의 도서관'에서도 주인공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자동차에 부딪혀 몸이 허공으로 치솟던 순간, 머릿속에 그 문장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아닌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두려움인가 봅니다.

그런가요?

 

<“누군가 밥 딜런에게, 아니, 밥 딜런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 , 기억해둬, 두려움이 없으면 열등감도 없어. 그게 지금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러고보니 욕망하는 바 지향하는 바가 없으면 열등감 같은게 있을리 없겠네요.

목적하는 바 없이 홀로 자족하는 무위의 삶에서는 두려움도 열등감도 생겨날 수가 없겠지요.

허나, 우리 세상 무위의 삶이 가당키나 하겠어요? 어디.

 

<“그게 아녜요. 어쿠스틱기타는 사람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요. 사람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 소리를 최대한 줄여놓은 거죠. 밥 딜런 선생님께서 전기기타를 들고 나타난 건 자신의 목소리와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가 되려면 전체 음악에 묻혀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전기기타가 필요했던 거예요. 실제로 관객들이 야유를 퍼부었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예요. 작전이 제대로 들어맞은 거죠. 의미보다는 음악이 중요해요. 밥 딜런 선생님께서는 무의미의 음악을 창조하셨어요. 음악에서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사 같은 건 들리든 말든 상관없어요.”>

 

언어 따위는 음악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듯.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에 대하여 시큰둥하였던 이유가 예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전기기타를 든 밥 딜런을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깁슨이다 잭 화이트다 들어본 풍월은 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어쿠스틱 기타의 팬이랍니다.

 

<B를 찍은 동영상에서 ", 좋아한다면 두세 번은 시도해봐야지, 두세 번 계속 시도하다보면 어느 순간 정말 좋아지거든." 이 말의 계기로 ''는 다시 전기기타를 배울 생각을 한다.>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B의 손가락 끝을 그리워하면서도 ''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타기 놀이처럼 한번 시작되면 절대 항로를 바꿀 수 없는, 규칙을 따라서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할 수밖에 없는 게임인지도 모른다. 그 목적지에 이라는 글짜가 씌어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나는 다시 기타를 잡습니다.

 

<한 달 전, 전기기타를 한 대 샀다.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좋아한다면 두세 번은 시도해봐야지라는 그의 말이 기타에 대한 얘기였을 것이라고, 나 혼자 결정했다. 기타를 치다보면 어느 순간 정말 기타가 좋아지게 될 거라고, 나 혼자 추측했다. 그때보다는 좀더 나은 기타를 샀고, 아직까지는 심장도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내 예상대로 햇볕 알레르기가 감쪽같이 사라져줄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내 손가락 끝은 너무 무르다.>

 

욕망은 묙망이로되 그러나 다시 확인하는 건 무른 손가락 끝인가 봅니다.

햇볕 알레르기는 결국 무엇의 알레고리였을꺼나.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음악 이야기를 했다. A부터 Z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쉴새없이 내뱉었다.>

 

무릇 영화나 음악의 애호가들은 해당 장르의 필모그래피를 줄줄 외우는 것으로 실력을 과시하곤 합니다.

옛날 나도 그랬었지요.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연표를 줄줄 외웠더랬습니다.

영문표기 스펠링으로 작곡가 이름을 누가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쓰는가 막걸리 내기도 하였습니다.

음악의 요소에 그 따위 것이 포함될리 없는데 마치 그런게 음악 실력인양.

진짜배기 애호가는 그런 방외(方外)의 것은 아랑곳하지 않을겁니다.

더불어 연주자의 테크닉이나 쇼맨십보다 넋으로 음악을 받아들일줄 아는 귀가....

 

음악 얘기 좀 늘어놓으려다가 접습니다.

지금 안방에서 코 자고있는 비니미니 곧 할비 방에 습격할터, 아기들 애니를 다운받아야 하므로.

 

 

 

 

 

[[김중혁]] -2-

 

 

<<<자동피아노>>>

-김중혁-

 

***동우***

2017.10.23 03:47

 

김중혁(1971~ ), 전에 리딩북에 그의 소설 'B와 나' '악기들의 도서관'을 올렸더랬지요.

 

자동피아노.

확연하게 만져집니다, 에스프리 넘치는 음악애호가의 면모.

 

작품 속에 음악을 용해하는 작가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재즈광 무라카미 하루키..

 

오디오에 일생을 소비한 친구 오SG,

피아노음악, 특히 글렌 굴드에 빠져드는 내 아들녀석...

 

비토 제네베제라는 영화음악가.

 

<음악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입니다. 어디에나 음악이 있습니다. 그 음악들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지금 이곳 어딘가에도 음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아니스트는 음을 만들어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음을 자신의 몸으로 소멸시키는 것이 피아니스트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저는 멀고 아스라한 소리들이 좋습니다. 콘서트홀에 가지 않는 이유는, 모든 소리들이 너무 가깝게 들리고 음악을 만들어내려는 피아니스트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비토 제네베제는 뉴욕 마피아갱으로 알고있는데, 아마 글렌 굴드를 패러디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파르티타 피아노, 그건 바흐의 건반음악(옛 피아노 하프시 코드) 파르티타를 얘기하는게 분명해보이구요.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불량한 연주자였지요.

그는 스스로 레코드형 인간임을 선언하고 연주회를 갖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콘서트를 싫어한 이유는 청중이라는 존재로 인하여 음악이 왜곡된다는 것이었답니다.

 

<피아노의 건반을 누를 때마다 세상의 어떤 음악이 나를 관통한 다음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라진 음악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나는 그 음악들이 비토 씨에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글렌 굴드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음악에 대하여 작가가 생각하는 바 은유하는 바를 완전하게 이해할수는 없지만.

 

김중혁은 정에 올렸던 소설 '나와 B'에서 등장인물을 빌어 이런 말을 하였었지요.

나는 작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쬐끔 불편한 사람입니다만.

 

<어쿠스틱기타는 사람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요. 사람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 소리를 최대한 줄여놓은 거죠. 밥 딜런 선생님께서 전기기타를 들고 나타난 건 자신의 목소리와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가 되려면 전체 음악에 묻혀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전기기타가 필요했던 거예요. 실제로 관객들이 야유를 퍼부었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예요. 작전이 제대로 들어맞은 거죠. 의미보다는 음악이 중요해요. 밥 딜런 선생님께서는 무의미의 음악을 창조하셨어요. 음악에서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사 같은 건 들리든 말든 상관없어요.”>

 

세상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에서 음악을 발견하는 사람과 언어의 소음으로 꽥꽥대는 사람..

 

 

 

<<<사백 미터 마라톤>>>

-김중혁-

 

***동우***

 

2018.03.14 00:55

 

재기 넘치는 젊은 작가 김중혁(1971~ )의 단편들, 리딩북에 몇편 올렸었지요. (그는 굉장한 음악 애호가랍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사백 미터 마라톤.

 

나와 녀석의 달리기.

400m 스프린터와 매니저 격인, 두 짝패 고등학생.

 

사이키델릭 전기 기타소리, 노이즈, 강렬한 비트, 오토바이의 질주...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엔 아이들 모두 박자를 제대로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음악과 어울려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 음악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각자의 스피드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 씨바, 좆나 달려보는 거야'로 시작하여 '그래, 좆나 달려보는 거야, '으로 끝나는 수미상응(首尾相應)하는 두 문장.

늙은 나는 십대 녀석들의 저 맹목의 스피드가 버겁습니다.

그러나 늙은 가슴에 끼처오는 젊은 녀석들의 초조와 불안과 소외와 노여움. <김중혁의 다른 소설에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라는 대목도 있습니다만>

그 배경은 신자유주의 헬조선일런지요.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늙은이들.

늙은 너구리 도쿠가와 아에야스는 이런 소리나 지껄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라.>

 

지혜로운 젊음... 에스프리.

자신에 알맞는 속도 찾기.

 

<어쩜 마라톤이란 것도 400미터와 똑같을 거야. 400미터엔 400미터에 알맞은 전력 질주가 있듯이 마라톤엔 마라톤에 알맞은 전력 질주가 있을 거 아냐. 그걸 찾기만 하면 돼. 빠르거나 느리거나 그런 건 상관없어.>

젊은 소설의 독해는 늙은 엿장수 마음대로.

 

 

 

<<<1F/B1>>>

-김중혁-

 

***동우***

2018.03.16 08:27

 

김중혁의 '1F/B1'

1st floor/ Basement 1

일층과 지하일층 사이, 1층도 아니고 지하 1층도 아닌 중간구역,

계단을 밟고 오르내려야만 볼수있는 표지판.

1F/B1

도시의 틈새가 골목이라면 건물의 층간 틈새 계단참.

1층도 아니고 지하1층도 아닌곳.

1F/B1.

둘 사이에 / (슬래시)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는 층간을 느낄수있는 프로세스가 없습니다.

닫힌 상자안의 단추를 늘러서 승강(昇降)하여 멈추어 문이 열리면 곧바로 그곳이 거기입니다.

층간을 나타내는 아이콘, 슬래시가 필요없지요.

슬래시 매니저(Slash Manager)

 

<건물 관리자는 자신의 몸에 집중하면 안 되는 거야. 건물의 리듬에 자신을 맡겨야지. 그래야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거든. 건물을 만졌을 때 느껴지는 진동만으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낼 수 있어야 해.>

건물과 건물 사이, 층과 층 사이, 벽과 벽 사이.

건물관리자는 분절된 관계의 사이에 비비고 들어가 그 틈새를 관리하는 사람들.

시간을 훔치는 도둑에게 빼앗긴 시간을 찾아주는 소녀 모모처럼.

<저는 늘 계단을 이용합니다. 5층이든 10층이든 언제나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운동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계단을 밟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저는 늘 층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봅니다. 표지판은 층과 층 사이에 있습니다. 1층과 2층 사이, 2층과 3층 사이, 3층과 4층 사이…… 저는 그 표지판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를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가 딱 저렇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하 1층과 1층 사이, 1층과 2, 2층과 3, 층과 층 사이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슬래시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미미한 존재들이지만 꼭 필요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누군가 저의 직업을 물어본다면 저는 자랑스럽게 슬래시 매니저(Slash Manager)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얘기하시길 바랍니다.>

집합건물의 구석구석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애써 모른척 하지만.

 

작가의 말.

 

<그곳은 도시계획 따위론 만들 수 없는 숨은 골목들과 예상치 못한 빈터가 나타나는 곳이고, 이야기의 전설이 만들어지는 냇가가 있는 곳이며, 도심 속 주택의 좁은 벽을 돌아나가면 괴식물들이 덩굴을 이루고 자라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또한 모든 '사이'에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이'01로 깜빡거리며 단절/분절되는 디지털의 세계에는 있을 수 없는 틈이며, 연속적인 파장의 일부, 한 과정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도시가 있었다. 모든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 있고, 미로와 대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며, 자신이 찾아온 길을 되돌아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갈래길이 존재하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도시의 외곽에는 바다가 있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다가 문득 코끝으로 비린내가 훅 끼치는 순간 파도가 자신에게 몰려드는 풍경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