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전략적 중간취향>>>

카지모도 2021. 2. 22.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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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중간취향>>>

 

 

***동우***

2014.10.08.

 

나는 어중간한 인간이다.

천성이 그러한지 환경이 그리 만들었는지, 요인은 모르겠으되.

우리집은 당근 부자가 아니었고, 다행히 째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그런대로 중산층 어름쯤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세남매중 가운데로, 홀어머니 슬하 어리숙한 중간 입장에서 성장하였다.

학교 또한 그러하다.

(공부 못한 놈들의 상투적 세리프라고 하더라만) 학교에서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하고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대학교 층층이, 1차는 죄 낙방하고 2차의 중간급 학교를 다녔는데.

두 자리수 아이큐는 아니었지만, 물론 100단위의 가운데를 넘어설 정도는 되지 못한 중간쯤의 두뇌.

게다가 소설책 만화책 영화 쪽이 그리 좋았던가, 공부라는건 참 싫어하였다.

그런 꼬라지에 상위 성적이란 언감생심, 꼬래비는 면하였다지만 대충대충 중간 아래 쯤에서 맴돌았을 것이다.

감투에 있어서, 무신 회장짜리는 커녕 (대학서클의 어줍잖은 회장 짓거리 한번 해보았던 기억 있기는 있지만) 줄반장이나 한번 해 보았을랑가 모르겠다,

중간 쯤의 고만고만한 또래에 묻혀 어영부영 지내왔을 것이다.

군인노릇에 있어서도 그렇다.

폼잡는 장교를 좀 부러워 하였건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지원병으로 등떠밀려 입대하여 고작 병장으로 제대하였다.

그나마 방위는 아니었으니, 그 또한 중간이 아닐수 없겠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 임원에는 미치지 못하여 부서장 쯤에서 얼쩡거리다가 쫓겨났으니 밥벌이 노릇마저 중간에서 중동무이한 셈이다.

이른바 스펙이 그 모냥이니 입거리 먹거리의 취향 또한 고급스러울리 있을손가.

시장바닥의 골라골라입거리를 사입지는 않지만, 고가의 브랜드는 그저 눈요기로 그친다. 발걸음 머무는 곳은 대부분 중저가 브랜드 입성들이 진열된 앞이다.

먹거리에 있어서도 다름없다.

회식이나 리셉션등 내 돈 아니내고 먹는거라면 모를까, 고급 요리는 처다보지도 않는다.

찾아먹고 시켜먹는 음식은 죄다 지극히 대중적인 음식들이다.

그리고 술.

나남없이 인정하여 주는바, 나는 술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평판이 그러하였으니, 직장생활중 값비싼 양주선물을 꽤 받았었다. (선주라거나 외주나 납품업체로부터.. 끝발있는 직책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풍조가 그러하였다)

허지만 받아챙기는 주제에 말을 못하여 그렇지 양주선물이 나는 자못 못마땅하였다. 명색 술꾼이라는 주제에 말이다.

스카치니 브랜디니 꼬냑이니하는 고급술은 전혀 내 취향의 술이 아니었던지라 (양주 모으는 취미가 있는) 내 가형(家兄)에게 대부분 전교(轉交)하였다.

와인 역시 내 저급한 혀의 취향으로서는 그 맛의 가치를 감미할 턱이 없으므로 와인빠에 가자고 소매 끄는 주객들을 나는 질색해 한다.

가끔 마리아주 맞는 중국술과 청요리를 즐기기는 하지만 내 음주의 주 레퍼토리는 어디까지나 맥주와 소주이다.

애주가라는 녀석의 술로서는 그야말로 중간어름에도 미치지 못하는 범속한 음주 취향이 아닐수 없다.

 

두루두루 나는 고급과는 거리가 먼 어중간치기이다.

어찌하여 늘 중간 어름에서만 서성거리는겐지 모르겠지만 인종이 그러한걸 어떡허나.

 

훈련소에서 열을 지어 집단이동중 똥푸는 사역에 차출 당한 경험, 군대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터이다.

()에서 끊던지 오()에서 끊던지, 언제나 선두나 후미 또는 좌우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사역병으로 끌려나가게 마련이다.

군대가는 장정들께 팁을 드리노니, 똥냄새 묻히기 싫거들랑 여럿 가운데 파묻혀 있는게 장땡이다.

교실에서 번호가 호명되어 일으켜 세워지는 경우, 대개 끝번호가 1이거나 0번이 걸릴 확률이 높다.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지만 키 순서로 번호를 정할때(대개는) 눈어림으로 순서를 살펴 눈치껏 위치하여야 중간에 파묻히기 좋은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여럿 속에서는 익명(匿名)으로 숨어있는게 안전빵이다,

가운데 묻혀 있어야 당해(當該) 처세(處世)에서 유리한 법이다.

anybody가 되려말고 nobody로서 자족할줄 알아야 한다.

익명의 범속함 속에 잠겨 있는게 두루 신상이 편편하다.

그런걸 중용(中庸)의 미덕 운운하기에는 어림없어 낯 뜨겁지만.

소인배의 못나빠진 방법론이라고라?

용기없고 진취성 없는 자의 안일한 타성이라고라?

비겁을 위장하는 위선일터라고라?

그래서 말하지 않나?

경험에서 우러난 전략적 중간취향이라고 말이다.

 

나는 커피를 마실줄 모른다.

커피가 내게는 문화향료는 커녕 아랫배가 불편해지는 고약한 음료일 뿐이다.

인도네시아 별달님께서 그 귀하다는 르왁커피를 보내주신다는걸 극구 사양한 적도 있다.

개발에 편자인지라.

그래 그런지 차()는 좀 즐기는 편이랄까.

오래 전부터 나는 새벽마다 차를 마신다.

책부족 향편님의 극진한 차사랑과 차에 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보도듣도 못한 차와 그를 다루는 예술적 손놀림에 경탄한 적이 있다.

향편님을 비롯한 몇분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귀한 차의 다향(茶香)에 황홀해 한적 있지만 그때 뿐이었다.

내가 마시는 차는 절대 비싸거나 귀한 차가 아니다.

보리차 종류는 아니지만 중간치도 못되는 지극히 저렴한 대중적인 차다.

 

그런 내게 어제 프랑스로부터 날아온 귀한 선물을 받았다.

고급한 포장 속 고상한 용기의 최고급 블랙티.

마리아쥬 프레르 마르코 폴로

 

곰곰 생각해 본다.

나이 들수록 삶을 풍성하게 하여주는 마음 기울어 좋아하는 것들.

취향의 색감, 취향의 퀄리티에 대하여.

다 늙어까지 중간지향의 취향은 바람직한가.

경제 문제를 따지기 전에 우선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있어서 말이다.

내게도 허름한 주머니 속에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없지 않을 것이다.

낭중지추는 남루(襤褸)속에 갇혀 불편해 하는 나의 자존(自尊)이 아닐런가.

스스로에게 귀한 자는 스스로를 높인다.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자는 한번도 Gracias a la vida를 노래하지 못한채 일생을 마감하는 자.

왜 스스로 고급하려 하지 않는가.

누군가 앙드레 김 특유한 어조로 말한다. “늙을수록 엘레강스하라고

원컨대 마음 속 남루를 벗어던져라.

청컨대 나로 하여금 로코코의 장식으로 날개달아 상승케 하라.

나도 차츰 어중간한 인간이 아니련다. .

 

마리아쥬 프레르 마르코 폴로

진홍의 럭셔리를 마신다.

고급스러우면서 세련되고 중후하면서도 달콤한 향취.

황홀하다,

고급 취향. 고상한 기품의 선물.

이토록 기분을 고급스럽게 만들어 주시는 그 마음.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

 

 

***eunbee***

2014.10.08 21:03

 

동우님은 귀족이십니다.

이미 로코코 궁전 속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향그러운 을 쓰시고

고고하고 품격높은 삶을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동우님의 피와 살과 정신에 넘치는 그 귀족적 성향과 바탕이 이미 그렇게 채워두고 있다는 것을

자신께서만 모르시나요? 알면서 그러시는 건 오만입니다요.ㅎㅎ

 

동우님의 품격에 맞추어 선물하려고, 물건이야, 값이야, 어떠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마련하는 장소만큼은 파리에서도 가장 정평있는, 이를테면 사진집을 사기위해 퐁피두센터엘 간다든가,

차를 사기 위해 마레지구 본매장엘 간다든가 하는..

 

벗의 정성과 마음을 알아 주심이 더 고맙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찬사를 주시는 거지요?

 

동우님,

생굴을 먹을 때마다 내엄마가 생각나듯

좋은 풍광을 만나는 낯선나라 어느 거리에 서면 내 아들이 생각나듯

나는 수준있는 문화,예술을 만나면 동우님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좋은 관계는 서로를 성실하게 한다지요.

동우님을 알게 되어 내 생활이 내실있어 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친구가 어디있을라구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두루두루 고맙습니다.

 

그리고 소박한 선물은 내가 파리에 있을 동안 자상하게 배려해 주시던

동우님의 모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고마워요. 동우님!

 

올려주시는 리딩북의 글들 아침마다 읽느라 치매가 수억만리나 도망가고 있답니다.ㅎㅎ

독후감 쓸 용기 생기면 또 한바탕 늘어놓을게욤~^^

 

이 가을.

멋지게 색칠하세요.

 

***동우***

2014.10.09 05:28

 

은비님 귀족이라 하시니 나는 귀족이올시다. ㅎㅎ

비록 남루는 걸쳤을 망정.

 

은비님의 삶의 양태를 닮고 싶어하는 열망.

윗글의 행간에서...

내 마음 아실겁니다. 은비님은.

 

마리아쥬 프레르, 그윽하면서도 어딘가 화려함이 배어있는 향취를 느낄때마다 은비님 정의 향취도 함께 맡습니다.

함께 보내주신 아세롤라 비타민, 시큼한 그 맛 씹을때마다 내 감기꺼정 걱정해 주시는 자상한 은비님의 시큼한 배려도 함께 씹습니다.

 

修辭, 부질없지요.

그냥 고맙습니다, 은비님.

 

언제 복수할 기회는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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