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2월 (1596년 2월)
2월 초1일 [양력 2월 28일] <戊戌>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활을 쏘았다. 권숙(권삽)이 이곳에 왔다가 취해서 갔다.
2월 초2일 [양력 2월 29일] <己亥>
맑고 따뜻하다. 울과 조기가 같은 배로 나갔다. 우후도 갔다. 저녁에 사 도첨사가 와서 어사의 장계에 따라 파면되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곧 장계를 초잡았다.
2월 초3일 [양력 3월 1일] <更子>
맑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혼자 앉아서 자식의 떠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침에 장계를 수정했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그 편에 적량만호 고여우가 장담년에게 소송을 당하여 순찰사가 장계를 올려 파면시키려 한다는 글을 보았다. 어둘 무렵 어란만호가 견내량 복병한 곳에서 보고하기를, "부산의 왜놈 세 명이 성주에서 투항해 온 사람들을 데리고 복병한 곳에 이르러 장사하겠다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장흥부사에게 전령하여 내일 새벽에 가서 타일러 보라고 시켰다. 이런 왜적들이 어찌 장사를 하고자 하겠는가. 우리의 허실의 정형을 엿보려는 것이다.
2월 초4일 [양력 3월 2일] <辛丑>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하여 사도 사람 진무성에게 부쳤다. 영의정과 신식 두 집에 문안 편지도 부쳤다. 저녁나절에 흥 양현감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여도만호· 거제현령·당포만호·옥포만호도 왔다. 저녁에 장흥부사가 복병한 곳에서 돌아와 왜놈들이 도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2월 초5일 [양력 3월 3일] <壬寅>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사도첨사·장흥부사가 일찍 왔다. 그래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권숙(권삽)이 와서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종이·먹 두 개와 대 검(패도)을 주어 보냈다. 저녁나절에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위로하는 음식을 먹이고, 겸하여 활을 쏘고 풍악을 잡히다가 취하여 헤어졌다. 웅천현감(이운룡)이 손인갑의 애인을 데리고 왔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가야금을 몇 곡조 들었다. 저녁에 김기실이 순천에서 돌아왔다. 그 편에 안부를 물었더니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고도 다행이다. 우수사의 편지가 왔는데 기한을 늦추자고 하니 우습고도 한탄스럽다.
2월 초6일 [양력 3월 4일] <癸卯>
흐렸다. 새벽에 자귀쟁이(이장목수) 열 명을 거제로 보내어 배를 만드는 일을 시켰다. 이 날 침방에 천장 흙이 떨어진 곳이 있어서 수리 했다. 사도첨사 김완은 조도어사의 장계로써 파면되었다는 기별이 또 이르렀다. 본디의 포구(골사도)로 내어 보냈다. 순천별감 유와 군관 장응진 등을 처벌하고 곧 수루로 들어갔다. 송한련이 숭어를 잡아서 왔기에 여도·낙안· 흥양을 불러 같이 찢어 먹었다. 적량 고여우가 큰 매를 가지고 왔으나 오른쪽 발가락이 다 얼어서 무지러졌으니 어찌하랴! 초저녁에 잠깐 땀이흘렀다.
2월 초7일 [양력 3월 5일] <甲辰>
아침에 흐리다가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몸이 좋지 않다. 저녁나절에 나가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였다. 장흥부사· 우후· 낙안군수· 흥양현감을 불러 이야기하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헤어졌다.
2월 초8일 [양력 3월 6일] <乙巳>
맑다. 이른 아침에 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아침에 벚나무 껍질을 마름질했다. 저녁나절에 손인갑의 애인이 들어와 한참을 있었다. 오철·현응원을 불러 군사에 대한 일을 물었다. 저녁에 군량에 대한 장부를 만들었다. 흥양현감이 둔전의 벼 삼백쉰두 섬 을 바쳤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배를 다니게 할 수가 없었다. 류황을 내보내려 했는데 떠나지 못했다.
2월 초9일 [양력 3월 7일] <丙午>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배가 다니지 못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권준이 와서 이야기하고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에 바람이 잤다. 견내량과 부산의 왜적선 두 척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웅천현감 및우후를 탐색하러 보냈다.
2월 10일 [양력 3월 8일] <丁未>
맑고 따사했다. 이 날 일찌기 박춘양이 대를 실어 왔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태구생의 죄를 다스렸다. 저녁에 몸소 곳집 짓는 곳을 보았다. 아침에 웅천·우우후가 견내량에서 돌아와서, 왜놈들이 겁에 질려 두려워하는 모양을 보고했다. 어두울 무렵 창녕사람이 술을 가져왔다.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2월 11일 [양력 3월 9일] <戊申>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보성의 계향유사(군량보급 책임자) 림찬(임찬)이 소금 쉰 섬을 실어 갔다. 임달영이 논산에서 돌아왔다. 논산의 편지와 박종백·김응수의 편지도 가지고 왔다. 장흥부사와 우우후가 왔다. 또 낙안군수와 흥양현감을 불러 활을 쏘았다. 막 해떨어질 무렵 영등포만호가 그 소실을 데리고 술을 들고 와서 권했다. 나이 젊은 계집도 왔는데 놔두고 돌아갔다. 땀을 흘렸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 <己酉>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전죽)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흥양현감도 같이 쏘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은 초저녁에 돌아갔다.
2월 13일 [양력 3월 11일] <庚戌>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봤다. 강진현감(이극신)이 기일 어긴 죄를 처벌했다. 가리포첨사는 보고하고 늦게 왔으므로 타일러 내보냈다. 영암군수(박홍장)를 파면시킬 장계를 초잡았다. 저녁에 어란포만호가 돌아갔다. 임달영도 돌아갔다. 제주목사(이경록)에게 청어·대구·화살대(전죽)·곶감(건시)·삼색부채를 봉하여 보냈다.
2월 14일 [양력 3월 12일] <辛亥>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동복 (동복)의 계향유사 김덕린이 와서 인사했다. 경상수사가 쑥떡과 초 한 쌍을 보내 왔다. 새로 지은 곳집에 지붕을 이 었다. 낙안군수·녹도만호 등을 불러서 떡을 먹었다. 조금 있으니 강진현감이 와서 인사하므로 위로하고 술을 먹였다. 저녁에 물을 부엌가로 끌여들이는데 물 긷는 수고를 편하게 했다. 이 날 밤 바다의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은데 홀로 높은 수루에 기대어 있으니 마음이 무척 어지럽다.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흥양의 계향유사 송상문이 와서 쌀과 벼를 합해 일곱 섬 을 바쳤다.
2월 15일 [양력 3월 13일] <壬子>
새벽에 망궐례를 하려 했으나, 비가 몹시 내려 마당이 젖었기 때문에 거행하지 않았다. 어두울 무렵 전라우도의 투항해 온 왜놈과 경상도의 투항해 온 왜놈이 같이 짜고 도망갈 꾀를 낸다고 들었다. 그래서 전령을 내어 알렸다. 아침에 화살대를 가려내어 큰 살대 백열 한 개와 그 다음 대 백쉰 네 개를 옥지에게 주었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 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는데, 웅천현감·거제현령·당포 만호·옥포만호·우우후·경상우후가 아울러 와서 보고 돌아갔다. 순천 둔전에서 거둔 벼를 내가 직접 보는 앞에서 받아들이게 했다. 동복의 계향유사 김덕린·흥양의 계향유사 송상문 등이 돌아갔다. 저녁에 사슴 한 마리, 노루 두 마리를 사냥하여 왔다. 이 날 밤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아 자려 해도 잠잘 수가 없었다.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마시고 노래했다.
2월 16일 [양력 3월 14일] <癸丑>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부사·우우후·가리포첨사가 와서 같이 활을 쏘았다. 군관들은 지난날 승부내기에서 진 편이 한턱 내었는데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이 날 밤은 너무 취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앉았다 누었다 하다가 새벽이 되었다. 봄철 노곤한 기운이 벌써 이렇구나.
2월 17일 [양력 3월 15일] <甲寅>
흐렸다. 나라제삿날(세종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아들 면이 본영으로 갔다. 박춘양과 오수가 조기 잡는 곳으로 갔다가 어제의 취기가 아직도 심하니 불안했다. 저녁에 흥양현감이 와서 이야기하다가 저녁 식사를 같이 했 다. 미조항첨사 성윤문의 문안 편지가 왔는데, "방금 관찰사(방백)의 공문을 받고 진주성(진성)으로 부임하게 되어 나아가 인사드리지 못한다. 자기 대신으로 황언실이 되었다"고 했다. 웅천현감의 답장이 왔다. 임금의 유서는 아직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그치지 않는다. 아들이 떠나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을 걷잡을 수 가 없다. 아픈 가슴을 말할 수 없다. 봄철 기운이 사람을 괴롭혀 몹시 노곤하다.
2월 18일 [양력 3월 16일] <乙卯>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 나절에 체찰사의 비밀 공문이 세 통 왔다. 그 하나는 제주목에게 계속하여 후원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등포만호 조계종을 심문하는 일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도 전선을 아직은 독촉하여 모으지 말라는 것이었다. 저녁에 김국이 서울에서 들어와서 비밀 공문 두 통과 역서 한 건 을 가지고 왔다. 승정원의 기별도 왔다. 황득중은 쇠를 싣고 와서 바쳤다. 절이 술을 가지고 왔다. 땀이 온몸을 적셨다.
2월 19일 [양력 3월 17일] <丙辰>
맑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면이 잘 갔는지 못 갔는지 몰라서 밤새도록 무척 걱정 했다. 이 날 저녁 소문에 낙안의 군량선이 바람에 막혀 사량에 대었다가 바람이 자야 떠날 것이라고 했다. 이 날 새벽에 경상도의 진에 남아 있는 투항한 왜놈을 이곳에 있는 왜놈 난에몬(난여문 :남여문) 등을 시켜 묶어 와서 목을 베게 했다. 경상수사 권준이 왔다. 장흥부사·웅천현감·낙안군수·흥양현감 ·우우후·사천현감 등과 같이 부안에서 온 술을 끝까지 다마셔 없앴다. 황득중이 가져온 총통 만들 쇠를 저울로 달아서 보관했다.
2월 20일 [양력 3월 18일] <丁巳>
맑다. 일찌기 조계종이 현풍수군 손풍련에게서 소송을 당했으므로 서로 마주하여 공술하려고 여기에 왔다가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공문을 적어 나누어 보냈다. 손만세가 사사로이 입대에 관한 공문을 만들었기에 그 죄를 처벌했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낙안군수·녹도만 호가 같이 왔다. 비가 올 것만 같다. 새벽에 기운이 노곤했다.
2월 21일 [양력 3월 19일] <戊午>
궂은비가 새벽부터 세차게 오더니 저녁나절에야 그쳤다. 그래서 나가지 않고 혼자 앉아 있었다.
2월 22일 [양력 3월 20일] <己未>
맑고 바람이 없다. 일찌기 식사를 하고 나가 앉아 있으니, 웅천현감·흥양현감이 와서 봤다. 흥양현감은 몸이 불편하여 먼저 돌아갔다. 우우후·장흥부사·낙안군수·남도포만호·가리포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가 와서 활을 쏘았다. 나도 활을 쏘았다. 손현평도 와서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이 날 밤 땀을 흘렸다. 봄철 기운이 사람을 노곤하게 한다. 강소작지가 그물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충청수사가 화살대를 와서 바쳤다.
2월 23일 [양력 3월 21일] <庚申>
맑다. 일찍 식사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둔전의 벼를 다시 되어 세 곳간에 백예순일곱 섬을 쌓았다. 없어진 것이 마흔여덟 섬이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고성현감·하동현감·강진현감·회령포 만호가 와서 봤다. 하천수·이진도 왔다. 방답첨사가 들어왔다.
2월 24일 [양력 3월 22일] <辛酉>
맑다. 일찍 식사를 하고 나가 앉아서, 둔전의 벼를 다시 되는 것을 감독했다. 우수사가 들어왔다. 오후 네시쯤에 비바람이 세게 일었다. 둔전의 벼를 다시 된 수량 백일흔 섬을 곳간에 넣었다. 없어진 것이 서른 섬이다. 낙안군수(선의경)가 갈렸다는 기별이 왔다. 방답첨사·흥양현감이 와서 모였다. 배를 본영으로 보낼려 할 적에 비바람 때문에 그만뒀다. 밤 내내 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오래도록 노곤하다.
2월 25일 [양력 3월 23일] <壬戌>
비가 오다가 오정 때에 개었다.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왔다. 나주판관도 왔다. 장흥부사가 와서, "수군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관찰사가 방해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진이 둔전으로 돌아갔다. 춘절·춘복·사화가 본영으로 돌아갔다.
2월 26일 [양력 3월 24일] <癸亥>
아침에 맑았는데 저물 무렵에는 비가 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갔다. 여도만호·흥양현감이 와서 영리들이 백성을 점점 움켜잡는 폐단을 말했다. 극히 해괴한 일이다. 양정언과 영리 강기경·이득종·박취 등을 중죄로 다스리고 곧 경상·전라수사가 있는 영리를 잡아들이라고 전령을 내렸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조금있으니,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서 보고 하기를, "왜적선 한 척이 견내량을 거쳐 들어와 해평장에 이를 적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고 하였다. 둔전에서 거둬들인 벼 이백 서른 섬을 고쳐 일백아흔여덟 섬으로 바로 잡아 서른두 섬이 줄었다고 했다. 낙안에게 이별 술을 대접해 보냈다.
2월 27일 [양력 3월 25일] <甲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이 날 녹도만호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흥양현감이 휴가를 받 아 돌아갔다. 둔전에서 거둬들인 벼 이백스무 섬을 고쳐서 바로 잡으니 줄은 것이 여러 섬이었다.
2월 28일 [양력 3월 26일] <乙丑>
맑다. 일찍 침을 맞았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장흥부사와 체찰사의 군관이 이곳에 이르렀는데, 장흥부사는 종사관이 발행한 전령으로 자기를 잡아러 온 일 때문에 왔다고 했다. 또 전라도 수군 안에서 우도의 수군이 전라좌·우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주와 진도를 성원한다고 했다. 우습다. 조정에서 꾀하는 정책이 이럴 수가 있나! 체찰사가 꾀를 내는 것이 이렇게도 알맹이가 없단 말인가! 나라의 일이 이러하니 어찌할꼬! 어찌할꼬! 저녁에 거제현령을 불러 와서 일을 물어보고 나서 돌려 보냈다.
2월 29일 [양력 3월 27일] <丙寅>
맑다. 아침에 공문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및 경상수사·장흥부사·체찰사의 군관이 왔다. 경상우도 순찰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2월 30일 [양력 3월 28일] <丁卯>
맑다. 아침에 정사립으로 하여금 보고문을 써서 체찰사에게 보냈다. 장흥부사도 체찰사에게 갔다. 해가 뉘엿할 때 우수사가 보고하는데, "벌써 바람이 따뜻해졌으니 협동작전할 계획이 시급하여 소속 부하를 거느리고 본도(전라우도)로 가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마음가짐이 몹시도 해괴하여 그의 군관 및 도훈도에게 곤장 일흔 대를 때렸다. 저녁에 송희립·노윤발 ·이원룡 등이 들어왔다. 희립은 또 술을 가지고 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밤새도록 식은 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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