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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42) -李舜臣-

카지모도 2021. 3. 9.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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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1월 (1596년 1월)

 

 

 

1월 초1일 [양력 1월 29일] <戊辰>

맑다. 밤 한 시쯤에 어머니 앞에 들어가 뵈었다. 저녁나절에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오위의 정6품의 군사직이며 부사직의 다음 벼슬)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하직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하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1월 초2일 [양력 1월 30일] <己巳>

맑다. 일찍 나가 병기를 점검했다. 이 날은 나라제삿날(명종 인순왕후 심씨의 제사)이다. 부장 이계가 비변사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월 초3일 [양력 1월 31일] <庚午>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들이 모두 배 위에 타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출항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오정에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바다 가운데에 이르니, 샛바람이 약간 불었다. 상주포(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잤다. 노를 재촉하였더니, 자정에 사량에 이르러 잤다.

 

1월 4일 [양력 2월 1일] <辛未>

맑다. 밤 두시쯤에 첫 나발을 불었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는데 이여염이 와서 봤다. 진중의 소식을 물으니, 모두 이전대로라고 했다. 오후 네시쯤에 가랑비가 세차게 뿌렸다. 걸망포(거망포)에 이르니, 경상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후는 먼저 배 위로 왔으나,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여서 곧 그 배로 갔다고 했다. 송한련·송한 등이 말하기를, 청어 천 여 마리를 잡아다 대강 늘었는데, 내가 나간 동안에 천팔백 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수들이 어두울 무렵에 떠났는데, 길이 질어서 자빠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효근과 김축이 휴가를 받아 갔다.

 

1월 5일 [양력 2월 2일] <壬申>

종일 비가 내렸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와 방답첨사·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했다. 나는 서둘러 세수하고 방밖으로 나가 그들을 불러들여 지난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첨사 성윤문·우후 이정충 ·웅천현감 이운룡·거제현령 안위·안골포만호 우수·옥포만호 이담이 왔다가 캄캄해진 뒤에 돌아갔다. 이몽상도 경상수사 권준의 심부름으로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1월 6일 [양력 2월 3일] <癸酉>

비가 내렸다. 오수는 청어 천삼백열 마리를, 박춘양은 칠 백여든 일곱 마리를 바쳤는데, 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렸다. 황득중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군량 오백 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월 7일 [양력 2월 4일] <甲戌>

맑다. 이른 아침에 이영남과 좋아 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이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에 피해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권준·우후 ·사도첨사·방답첨사가 오고 권숙도 왔다. 낮 두 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과 삼천포권관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놈 다섯 명 이 애산에서 왔다고 하므로 안골포만호 우수·공태원을 뽑아 보냈다. 날씨가 몹시 춥고 하늬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1월 8일 [양력 2월 5일] <乙亥>

맑다. 입춘인 데도 날씨가 몹시 추워 마치 한겨울 처럼 매섭다. 아침에 우우후와 방답을 불러 약밥을 같이 먹었다. 일찍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온 까닭을 물으니, 저희네 장수가 성질이 모질고 일을 또 많이 시키므로 도망하여 와서 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진 크고 작은 칼을 거두어 수루 위에 감추어 뒀다. 그러나 실은 부산에 있던 왜놈이 아니고 가덕도의 심안돈(심안둔:도진의홍)의 부하라는 것이다.

 

1월 9일 [양력 2월 6일] <丙子>

흐리고, 추워서 살을 에는 것 같다. 오수가 청어 삼백예순 마리를 잡은 것을 하천수가 싣고 갔다. 각처에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저물 무렵에 경상수사가 와서 방어대책을 논의했다. 하늬바람이 불어 종일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햇다.

 

1월 10일 [양력 2월 7일] <丁丑>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점쳤더니, 임금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괘였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우후가 어란포에 서 와서 봤다. 사도첨사도 왔다. 체찰사가 여러가지 물건을 나누어 주도록 세 위장에게 분부하였다. 웅천현감·곡포권관·삼천 포권관·적량만호가 아울러 와서 봤다.

 

1월 11일 [양력 2월 8일] <戊寅>

맑다. 하늬바람이 밤새도록 세게 불어 한겨울보다 갑절이나 더 춥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그도 수사의 옳지 못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광양현감이 들어왔다.

 

1월 12일 [양력 2월 9일] <己卯>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추위가 갑절이나 된다. 밤 두시쯤의 꿈에,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과 같이 한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의관을 다 벗어 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서로 털어 놓다가 끝내는 가슴에 메인 것까지 쏟아 놓았다. 한참을 지나니 비바람이 억세게 퍼부었는데도 흩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동안 서쪽의 적이 급히 들어오고 남쪽의 적도 덤비게 된다면, 임금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하고 걱정만 되뇌이며 할 말을 알지 못했다. 일찍 듣건대, 영의정이 담천으로 몸이 몹시 편찮다고 했는데, 나았는지 모르겠다. 글자점을 던져 보았더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고 했고, 또 오늘 중에 길흉이 어떤지를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 다. 엊저녁에 종 금을 본영으로 보냈는데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 염려가 된다. 저녁나절에 나가서 각처의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낙안이 들어왔다. 웅천현감이 보고한 내용에, "왜적선 열네 척이 와서 거제 금이포(금이포)에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보게 했다.

 

1월 13일 [양력 2월 10일] <庚辰>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하고 배를 타고 견내량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체찰사에게 올리는 공문을 내 보냈다. 성균관의 종은, 선비들이 성균관의 학문을 다시 세운다는 글을 가지고 온 자인데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사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은 낮과 같고, 바람 한 점 없다.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신홍수를 불러 휘파람을 불게 했다. 밤 열시쯤에 잠들었다.

 

1월 14일 [양력 2월 11일] <辛巳>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야 바람이 자며 날씨는 따뜻한 것 같다. 흥양현감이 들어왔다. 정사립·김대복이 들어왔다. 조기·김숙도 같이 왔다. 이 날 그 편에 연안옥의 외조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밤늦도록 이야기했다.

 

1월 15일 [양력 2월 12일] <壬午>

맑고 따뜻하다. 밤 세시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낙안·흥양을 불러 같이 일찍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안과 흥양의 전선·병기·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가장 엉성하다고 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1월 16일 [양력 2월 13일] <癸未>

맑다.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장 늦게 경상수사·우우후 등이 와서 봤다. 웅천쳔감도 와서 취하여 돌아갔다.

 

1월 17일 [양력 2월 14일] <甲申>

맑다. 방답첨사가 휴가를 받고서 변존서·조카 분·김숙 등과 같은 배로 나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오정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후를 불러 활을 쏠 적에 성윤문과 변익성이 와서 보고는 같이 활을 쏘고서 돌아갔다. 어둘 무렵 강대수 등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종 금이 16 일에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종 경은 돌아와서 말하기를 " 아들 회가 오늘 은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월 18일 [양력 2월 15일] <乙酉>

맑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복을 마름질했다. 저녁나절에 곤양군수(이수일)·사천현감(기직남)이 왔다. 동래현감(정광좌)가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왜놈들이 많이 반역하는 눈치가 보이고, 유격 심유경이 행장(소서행장)과 함께 1월 16일에 먼저 일 본으로 갔다."고 했다.

 

1월 19일 [양력 2월 16일] <丙戌>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와 여도만호가 왔다. 우후 ·곤양군수도 왔다. 경상수사가 왔다. 우우후를 불러 왔다. 곤양군수가 술을 차려서 내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부산에 들여 넣은 사람 네 명이 와서 전하기를, "심유경과 소서행장· 현소· 정성(사택정성)· 소서비(소서비 :내등 여안)와 함께 1월 16일 새벽에 바다를 건너갔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양식 서 말을 주어 보냈다. 이 날 저녁에 박자방이 서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말과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오늘 메주를 쑤었다.

 

1월 20일 [양력 2월 17일] <丁亥>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반 시간을 잤다. 오후 두시쯤에 메주 쑤는 것을 마치고 굴뚝에 넣었다. 낙안군수가 와서, "둔전에서 거둔 벼를 실어왔다."고 보고했다.

 

1월 21일 [양력 2월 18일] <戊子>

맑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봤다. 체찰사에게 보낼 순천 공문을 작성했다. 밥을 먹은 뒤에 미조항첨사 및 흥양현감이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미조항첨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니 사도첨사·여도만호·사천현감·광양현감·곡포권 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곤양군수도 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1월 22일 [양력 2월 19일] <己丑>

맑다. 몹시 춥고 바람도 몹시 험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경상우후가 와서 그의 수사(권준)의 경솔한 짓을 전했다. 이 날 밤은 바람이 차고도 매우니 아이들이 들어오기가 고생스러울 것이 걱정된다.

 

1월 23일 [양력 2월 20일] <庚寅>

맑다. 작은 형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아침에 헐벗은 군사 열일곱 명에게 옷을 주었다. 또 옷 한 벌을 주었다. 종일 바람이 험했다. 저녁에 가덕에서 나온 김인복이 와서 현신하므로 적의 정세를 물어 보았다. 밤 열시쯤에 아들 면·조카 완 및 최대성·신여윤·박자방이 본영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를 받아 보니 기쁘기 그지없다. 종 경도 왔다. 종 금은 애수 및 금곡에 사는 종 한성·공석 등과 같이 왔다. 한밤에야 잠들었다. 눈이 두 치나 내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하다.

 

1월 24일 [양력 2월 21일] <辛卯>

맑다. 된바람이 세게 불어 눈보라를 치며 모래까지 휘날리니 사람이 감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배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 견내량 복병장이 보고하기를, "어제 왜놈 한 명이 복병한 곳에 와 서 투항하며 들어오기를 빌었다"고 하므로 보내라고 회답했다. 저녁나절에 우우후 및 사도첨사가 와서 봤다.

 

1월 25일 [양력 2월 22일] <壬辰>

맑다.

 

1월 26일 [양력 2월 23일] <癸巳>

맑으나 바람이 고르지 못했다.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1월 27일 [양력 2월 24일] <甲午>

맑고 따사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배흥립)의 죄를 심의 한 뒤에 흥양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도 순찰사(서성)가 들어왔다. 그래서 오후 네시쯤에 우수사의 진으로 가서 보고, 한밤에 돌아왔다. 사도의 진무가 화약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1월 28일 [양력 2월 25일] <乙未>

맑다.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오정 때에 순찰사가 왔다. 활을 쏘고 같이 이야기했다. 순찰사가 나하고 활쏘기를 맞서서 겨루다가 일 곱 푼을 졌는데 섭섭한 빛이 없지 않았다. 혼자 웃었다. 군관 세 사람도 다 졌다. 밤이 든 뒤에 취하여 돌아갔다.

 

1월 29일 [양력 2월 26일] <丙申>

종일 비가 내렸다. 일찍 식사를 한 뒤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활을 쏘았는데, 순찰사가 아홉 푼을 졌다. 김대복이 홀로 즐겁게 활을 쏘았다. 피리 소리를 듣다 가 한밤 자정에야 헤어져 진으로 돌아왔다. 저물 무렵에 사도에서 화약 훔친 자가 도주하였다.

 

1월 30일 [양력 2월 27일] <丁酉>

비오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나가서 공무를 보고 군관이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윤홍년)· 여도만호(김인영)·적량만호(고여우)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이 날 저녁에 청주의 이희남이 종 네 명과 준복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