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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44) -李舜臣-

카지모도 2021. 3. 11.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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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3월 (1596년 3월)

 

 

3월 초1일 [양력 3월 29일] <戊辰>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해남현감 류형(유형)·임치첨사 홍견 ·목포만호 방수경에게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해남현감은 새로 부임해 왔으므로 곤장을 치지는 않았다.

 

3월 초2일 [양력 3월 30일] <己巳>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보성군수가 들어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이 노곤하고 땀이 배니, 이건 병이 날 원인이다.

 

3월 3일 [양력 3월 31일] <庚午>

맑다. 이원룡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반관해가 왔다. 정사립 등을 시켜 장계를 썼다. 이 날은 명절(삼짇날)이라 방답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 및 남도포만호 등을 불러 술과 떡을 먹였다. 일찌기 송희립을 우수사에게 보 내어 뉘우치는 뜻을 전하니, 은근하게 대답하더라고 했다. 땀이 배었다.

 

3월 4일 [양력 4월 1일] <辛未>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했다. 느지막이 보성군수 안홍국을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오정 때에 출항하여 곧바로 소근포 끝으로 돌아 경상우수사가 있는 곳에 이르니, 좌수사 이운룡도 왔다. 조용히 이야기하고서 그대로 자리도(좌리도:진해시 웅천동) 바다 가운데서 같이 잤다.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 <壬申>

맑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해·면·울 및 수원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한대·효대와 은진의 계집종이 왔다.

 

3월 6일 [양력 4월 3일] <癸酉>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새벽에 한대를 불러 까닭을 물었다. 아침에 몸이 불편했다. 식사를 한 뒤에 하동현감(신진)·고성현령(조응도)·함평현감 (손경지)·해남현감(류형)이 아뢰고 돌아갔다. 남도포만호(강응표)도 돌아갔는데, 기일을 5월 10일로 정했다. 우우후와 강진현감(이극신)에게는 8일이 지난 뒤에 나가도록 일렀다. 함평현감(손경지)·남해현감(박대남)·다경포만호(윤승남) 등이 칼을 썼다. 땀이 이토록 흘렀다. 사슴 세 마리를 사냥해 왔다.

 

3월 7일 [양력 4월 4일] <甲戌>

맑다. 새벽에 땀이 흘렀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리포첨사 ·여도만호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빗었다. 녹도만호가 노루 두마리를 (사냥해 왔다.)

 

3월 8일 [양력 4월 5일] <乙亥>

맑다. 아침에 안골포만호(우수)·가리포첨사(이응표)가 각각으로 큰 사슴 한 마리씩을 보내 왔다. 가리포첨사도 보내 왔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경상수사· 좌수사· 가리포첨사· 방답첨사· 평산포만호· 여도만호· 우우후· 경상우후·강진 현감 등이 와서 같이 종일 몹시 취하여서 헤어졌다. 저녁에 비가 잠시 왔다.

 

3월 9일 [양력 4월 6일] <丙子>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 개(개?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3월 10일 [양력 4월 7일] <丁丑>

비가 내렸다. 아침에 다시 좌수사를 청했더니 와서 작별의 술잔을 나누니 온종일 무척 취하여 나가지 못했다.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11일 [양력 4월 8일] <戊寅>

흐렸다. 해·회·완 및 수원은 계집종 세 사람과 더불어 나갔다. 이 날 저녁에 방답첨사(장린)가 성낼 일도 아닌데 공연히 성을 내어 상선의 물긷는 기전자에게 곤장을 쳤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곧 군관과 이방을 불러 군관에게는 스무 대, 이방에게는 쉰 대를 매로 볼기쳤다. 저녁나절에 구 천성보만호가 하직하고 돌아가고, 새 천성보만호는 체찰사의 공문으로 병사에게 잡혀 갔다. 나주판관도 왔기에 술을 먹여서 보냈다.

 

3월 12일 [양력 4월 9일] <己卯>

맑다. 아침 밥을 먹은 뒤에 몸이 노곤하여 잠깐 잠을 잤더니 처음으로 피로가 가신 듯하다. 경상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여도 만호·금갑도만호·나주판관도 왔다. 군관들이 술을 내었다. 저녁에 소국진이 체찰사에게서 돌아왔는데, 그 회답에 우도의 수군을 합하여 본도로 보내라는 것은 본의가 아니라고 하였다. 우습다. 그 편에 들으니 원흉(원균)은 곤장 마흔 대를, 장흥 부사는 스무 대를 맞았다고 했다.

 

3월 13일 [양력 4월 10일] <庚辰>

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에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 아뢰기를, "왜적선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도만호·금갑도만호 등을 뽑아 보냈다. 봄비가 오는 가운데 몸이 노곤하여 누워서 앓았다.

 

3월 14일 [양력 4월 11일] <辛巳>

궂은비가 걷히지 않는다. 새벽에 삼도에서 급한 보고가 왔는데, "견내량 근처의 거제땅 세 포(사등면 성포리)에 왜적선 다섯 척과 고성땅에 다섯 척이 정박하여 뭍에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삼도의 여러 장수들에게 배 다 섯 척을 더 뽑아 보내도록 전령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각 처에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아침에 군량 회계하는 것을 마쳤다. 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체찰사에게 공문을 보낼려고 서류를 만들었다. 봄철 노곤함이 이에 이르니 밤새도 록 땀이 흘렀다.

 

3월 15일 [양력 4월 12일] <壬午>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가리포첨사·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참례했는데, 우수사와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함께 술에 취하여 가면서 덕과 아랫방에서 수군거렸다고 했다. 이 날 저물 무렵 바다에 달빛이 어슴푸레 밝았다. 몸이 노곤하여 축 갈아 앉는다. 밤새도록 식은 땀이 흘렀다. 한밤에 비가 몹시 왔다. 낮에는 노곤하여 머리를 빗었는데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16일 [양력 4월 13일] <癸未>

비가 퍼붓듯이 내리며 종일 그치지 않았다. 오전 여덟 시쯤에 시마바람이 세게 불어 지붕이 뒤집힌 곳이 많고 문과 창이 깨지고 창호지도 찢어져 비가 방안으로 새어 들어 와서 사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정 때에야 바람이 잤다. 저녁에 군관을 불러와서 술을 먹였다. 한밤 한 시쯤에 비가 잠깐 그쳤다. 흐르는 땀이 어제와 마찬가지다.

 

3월 17일 [양력 4월 14일] <甲申>

종일 가랑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나주판관이 와서 봤다. 그래서 취하게 하여 보냈다. 어둘 무렵에 박자방이 들어왔다. 이 날 밤에 식은 땀이 등에까지 흘러 두겹 옷이 흠뻑 다 젖고, 자는 이부자리도 젖었다. 몸이 불편하다.

 

3월 18일 [양력 4월 15일] <乙酉>

맑다. 샛바람이 종일 불고 날씨는 몹시 싸늘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솟장을 처리해 주었다. 방답첨사·금갑도만호·회령포만호·옥포만호 등이 와서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이날 밤 바다의 달빛이 어슴푸레 비치고 밤기운이 몹시 차다. 자려해도 잠을 이룰 수 없어 앉았다 누었다 하기도 불편하고 다시 몸이 불편 해졌다.

 

3월 19일 [양력 4월 16일] <丙戌>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고 날씨는 몹시도 싸늘했다. 아침에 새로 만든 가야금에 줄을 매었다. 저녁나절에 보성군수가 부침하는 것을 살펴볼 일로 휴가를 받았다. 김혼이 같은 배로 나갔다. 종 경도 같이 돌아갔다. 정량은 볼일이 있어 여기 왔다 가 돌아갔다. 저녁에 가리포첨사·나주반자가 와서 봤다. 술을 취 하도록 먹여서 보냈다. 어두울 무렵부터 바람이 몹시 사나왔다.

 

3월 20일 [양력 4월 17일] <丁亥>

종일 바람불고 비가 내렸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비가 와서 종일 나가지 않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바람막이를 두 개를 만들어서 걸었다. 밤새도록 비가 왔다. 땀이 옷과 이불을 적셨다.

 

3월 21일 [양력 4월 18일] <戊子>

종일 큰 비가 내렸다. 초저녁에 도와리를 만나 구토를 한 시간이나 했는데, 자정이 되니 조금 가라앉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앉았다 누웠다 하며 괜스레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 한스럽기 그지없다. 이 날은 너무 심심해서 군관 송희립·김대복·오철 등을 불러 종정도를 내기했다. 바람막이 세 개를 만들어 걸었는데, 이언량과 김응겸이 감독했다. 한 밤이 지나서 비가 잠깐 그쳤다. 밤 세시에 이지러진 달빛이 비치어 방 밖으로 나가 거닐었다. 그래도 몸은 몹시 노곤했다.

 

3월 22일 [양력 4월 19일] <己丑>

맑다. 아침에 종 금이를 시켜서 머리를 빗게 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는 경상수사와 같이 와서 보므로 술을 먹여 보냈다. 그 편에 들으니 작은 고래가 섬위로 떠밀려와서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자방을 보냈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땀이 예사롭지 않게 흘렀다.

 

3월 23일 [양력 4월 20일] <庚寅>

맑다. 새벽에 정사립이 와서 물고기 기름을 많이 짜서 가져 왔다고 했다. 새벽 세시에 몸이 불편하여 금이를 불러 머리를 긁게 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각 곳의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조방장 김완 및 충청수군의 배 여덟 척이 들어오고 우후도 왔다. 종 금이가 편지를 가져 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초저녁이 지나 영등포만호가 그의 어린 계집을 데리고 술을 가져 왔다고 했다. 나는 거들떠 보지 않았다. 밤 열시쯤이 지나서 되돌아갔다. 이 날에 비로소 미역을 땄다. 한밤에 잠이 들었다. 땀이 흘러 옷을 적셨다. 그래서 옷을 갈아 입고 잤다.

 

3월 24일 [양력 4월 21일] <辛卯>

맑다. 아침에 미역을 따러 나갔다. 헌 활집은 베로 만든 게 여덟 장, 솜으로 만든 게 두 장인데, 활집 한 장은 고쳐서 만들려고 감을 내어 주었다. 아침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서, 마량첨사 김응황·파지도권관 송세응·결성현감 손안국 등을 처벌했다. 저녁나절에 우후가 가져온 술을 방답첨사·평 산포만호·여도만호·녹도만호·목포만호 등과 같이 마셨다. 나주판관 어운급에게는 4월 15일로 기한으로 휴가를 주었다. 몸이 몹시 노곤하여 흐르는 땀이 예사롭지 않다. 이 날도 비가 올것 같다.

 

3월 25일 [양력 4월 22일] <壬辰>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종일 퍼부어 잠시도 비가 끊이지 않았다. 수루에 기대어 저녁 까지 보내니 마음이 언짢았다. 머리를 한참동안 빗었다. 낮에 땀이 옷을 적셨다. 밤에는 두겹 옷이 젖고 방 구들막까지 젖었다.

 

3월 26일 [양력 4월 23일] <癸巳>

맑고 마파람이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조방장 및 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활을 쏘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체찰사의 전령이 왔는데, "전일(12일)에 우도의 수군을 돌려 보내라고 한 것은 회계를 잘못 본 탓이다."고 하였다. 우습다.

 

3월 27일 [양력 4월 24일] <甲午>

맑다. 마파람이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활을 쏘았다. 우후·방답첨사도 왔다. 충청도 마량첨사· 임치첨사· 결성현감· 파지도권관이 함께 왔다. 술을 먹여서 보냈다. 저녁에 신사과와 아우 여필이 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기쁘고 다행하기 이를 데 없다.

 

3월 28일 [양력 4월 25일] <乙未>

궂은비가 몹시 내리며 종일 개지 않았다. 나가 앉아서 공문을 만들어 나누어 보냈다. 충청도 뱃사람들이 다시 울짱을 설치하여 방비했다.

 

3월 29일 [양력 4월 26일] <丙申>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부찰사(한효순)의 통지문이 먼저 이곳에 왔는데, 성주에서 진으로 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