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윤8월 (1596년 윤8월)
윤8월 초1일 [양력 9월 22일] <乙丑>
맑다. 일식을 했다. 이른 아침에 비망 밑에 이르러 이곤변 등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서로 헤어졌다. 저물어서 진중에 이르니, 우수사·경상수사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수사와는 서로 만나서 이야기했다.
윤8월 2일 [양력 9월 23일] <丙寅>
맑다. 여러 장수들이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경상수사와 함께 활터 정자 마루로 갔다.
윤8월 3일 [양력 9월 24일] <丁卯>
맑다.
윤8월 4일 [양력 9월 25일] <戊辰>
비가 내렸다. 이 날 밤 열 시쯤에 땀을 흘렸다.
윤8월 5일 [양력 9월 26일] <己巳>
맑다. 활터 마루에 가서 아이들(아들들을 말함)이 말달리고 활쏘는 것 을 구경했다. 하천수가 체찰사 앞으로 갔다.
윤8월 6일 [양력 9월 27일] <庚午>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경상수사 및 우수사와 함께 활터 마루로 가서 말달리고 활쏘는 것을 구경하고 저물어서 돌아왔다. 이 날 밤 잠시 땀을 흘렸다. 방답첨사가 진에 이르렀다.
윤8월 7일 [양력 9월 28일] <辛未>
맑다. 아침에 아산의 종놈 상시(향시)가 들어왔다. 가을보리는 소출이 마흔석 섬이고, 봄보리는 서른다섯 섬이며, 물고기로 바꾼 쌀은 모두 열두 섬 네 말인데, 또 일곱 섬 열 말이 나고, 또 네 섬이 났다고 했다. 이 날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솟장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윤8월 8일 [양력 9월 29일] <壬申>
맑다. 식사를 한 뒤에 활터 마루로 가서 말달리고 활쏘는 것을 구경했다. 광양현감·고성현령이 시험관으로서 들어왔다. 하천수가 진주에서 왔다. 수하에 부리는 병졸 림정로(임정로)가 휴가를 받아 나갔다. 이 날 밤 땀을 내었다.
윤8월 9일 [양력 9월 30일] <癸酉>
맑다. 아침에 광양현감이 교서에 숙배했다. 조카 봉·아들 회 및 김대복이 교지(관교)에 숙배하고서 그대로 이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 날 밤에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윤8월 10일 [양력 10월 1일] <甲戌>
맑다. 이 날 새벽에 과거 초시를 보였다. 저녁나절에 면이 쏜 것은 모두 쉰다섯 보이고, 봉이 쏜 것은 모두 서른다섯 보이고, 해가 쏜 것은 모두 서른 보이고, 회가 쏜 것은 모두 서른다섯 보이고, 완이 쏜 것은 스무다섯 보라고 했다. 진무성이 쏜 것은 모두 쉰다섯 보여서 합격하였다. 어두울 무렵 우수사·경상수사·조방장 배흥립이 같이 와서 밤 열 시쯤에 헤어져 돌아갔다.
윤8월 11일 [양력 10월 2일] <乙亥>
맑다. 체찰사를 기다릴 일로 출항하여 당포에 이르니, 초저녁에 체찰사에게 문안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14일에 떠난다."고 하였다.
윤8월 12일 [양력 10월 3일] <丙子>
맑다. 종일 노를 바삐 저어 밤 열 시쯤에 어머니 앞에 이르니, 흰머리 카락이 에부수수하신데, 나를 보고는 놀라 일어나셨다. 기력은 숨이 곧 끊어질 듯하여 아침 저녁을 보전하시기 어렵겠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밤새도록 위안하며 기쁘게 해 드리면서 그 마음을 풀어 드렸다.
윤8월 13일 [양력 10월 4일] <丁丑>
맑다. 아침 식사를 곁에서 모시고 드시게 하니 대단히 기뻐하시는 빛이다. 저녁나절에 하직인사를 여쭙고 본영으로 왔다. 오후 여섯 시 쯤 작은 배를 타고 밤새도록 노를 바삐 저었다.
윤8월 14일 [양력 10월 5일] <戊寅>
맑다. 새벽에 두치(두치:하동읍 두곡리)에 이르니, 체찰사와 부찰사가 어제 벌써 도착하여 잤다고 한다. 뒤미처 점검하는 곳으로 가서 소촌찰방을 만나고 일찍 광양현에 이르렀다. 지나온 지역이 한결 같이 쑥대밭이 다 되어 그 참상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었다. 임시로나마 전선 정비하는 것을 면제해 주어 군사와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 주어야겠다.
윤8월 15일 [양력 10월 6일] <己卯>
맑다. 일찍 떠나 순천에 이르니 체찰사 일행이 순천부 청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정사준의 집에서 묵었다. 순찰사도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아들들이 참시관이 되었다고 들었다.
윤8월 16일 [양력 10월 7일] <庚辰>
맑다. 이 날은 그대로 거기서 머물렀다.
윤8월 17일 [양력 10월 8일] <辛巳>
맑다. 저녁나절에 낙안으로 향하여 그 군에 이르니 이호문·이지남 등이 와서 보고 고치기가 어려운 폐단이 오로지 수군에 있다고 진술했다. 종사관 김용이 서울로 올라갔다.
윤8월 18일 [양력 10월 9일] <壬午>
맑다. 일찍 떠나 양강역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나서 산성(고흥군 남양면 대곡리)으로 올라가 멀리 바라보며 각 포구와 여러 섬들을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다. 그 길로 흥양(고흥읍)으로 향했 다. 저물 무렵에 흥양현에 이르러 향소청에서 잤다. 어두 워서 이지화가 제 물건을 뽐내려고 거문고를 가지고 왔다. 영도 와서보고 밤새도록 이야기했다.
윤8월 19일 [양력 10월 10일] <癸未>
맑다. 떠나서 녹도(고흥군 도양면 녹도)로 가는 길에 도양(도덕면 도덕리)의 둔전을 살펴 보았다. 체찰사는 매우 기뻐하는 빛이 많았다. 녹도에서 잤다.
윤8월 20일 [양력 10월 11일] <甲申>
맑다. 일찍 떠나 배를 타고 체찰사와 부찰사와 함께 같이 앉아 종일 군사 일을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백사정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그 길로 장흥부에 이르렀다. 나는 관청의 동헌에서 잤다. 김응남이 와서 봤다.
윤8월 21일 [양력 10월 12일] <乙酉>
맑다. 그대로 머물러 자는데 정경달이 와서 봤다.
윤8월 22일 [양력 10월 13일] <丙戌>
맑다. 저녁나절에 병영(해남군 병영면 성남리 병영)에 몸을 던져 원균과 서로 만나 보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했다.
윤8월 23일 [양력 10월 14일] <丁亥>
맑다.
윤8월 24일 [양력 10월 15일] <戊子>
나는 부찰사(한효순)와 같이 가리포(완도군 완도읍 군내리)로 갔더니, 우우후 이정충도 먼저 와 있었다. 남쪽 망대(남망봉 해발 150m)로 같이 올라가니, 좌우에는 적들이 다니는 길과 여러 섬들을 역력히 헤아릴 수 있었다. 참으로 한도(일도)의 요충지이다. 그러나 형세가 외롭고 위태롭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이진(해 남군 북평면 이진리)으로 옮겨 합치기로 했다. 병영에 이르러서는 원균의 흉한 행동을 적지 않았다.
윤8월 25일 [양력 10월 16일] <己丑>
일찍 떠나 이진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곧 해남으로 갔다. 도중에 김경록이 술을 차고 와서 봤다. 어느 결에 날이 저물어 횃불을 밝히고 가니, 밤 열 시께에야 해남현에 이르렀다.
윤8월 26일 [양력 10월 17일] <庚寅>
맑다. 일찍 떠나 우수영(해남군 문내면)에 이르렀다. 나는 곧 태평정에서 자고서 우후와 함께 이야기했다.
윤8월 27일 [양력 10월 18일] <辛卯>
맑다. 체찰사가 진도에서 영(우수영)으로 들어왔다.
윤8월 28일 [양력 10월 19일] <壬辰>
비가 조금 내렸다. 바로 고쳐 놨다.
윤8월 29일 [양력 10월 20일] <癸巳>
비가 조금 내렸다. 이른 아침에 남여역(남녀역: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은 뒤에 해남현에 이르렀다. 소국진을 본영(전라좌수영)으로 보냈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B> 亂中日記 (52) -李舜臣- (0) | 2021.03.20 |
---|---|
<R/B> 亂中日記 (51) -李舜臣- (0) | 2021.03.19 |
<R/B> 亂中日記 (49) -李舜臣- (0) | 2021.03.16 |
<R/B> 亂中日記 (48) -李舜臣- (0) | 2021.03.15 |
<R/B> 亂中日記 (47) -李舜臣- (0) | 2021.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