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7월 (1596년 7월)
7월 초1일 [양력 7월 25일] <丙寅>
맑다. 인종의 나라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경상우순찰사(서성)가 진에 이르렀으나, 이 날은 서로 만나지 않았다. 그의 군관 라굉이 그의 장수의 말을 전하러 이곳에 왔다.
7월 초2일 [양력 7월 26일] <丁卯>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경상순찰사영의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함께 같이 이야기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새 정자로 올라가 앉았다. 편을 갈라 활을 쏘았는데, 경상순찰사 편이 진 것이 백예 순두 점(획)이다. 종일 몹시 즐거웠다. 등잔불을 밝히고서 돌아왔다.
7월 초3일 [양력 7월 27일] <戊辰>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순찰사와 도사가 이 영에 와서 활을 쏘았다. 순찰사 편이 또 진 것이 아흔여섯 점이다.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아침에 체찰사의 공문이 왔다.
7월 4일 [양력 7월 28일] <己巳>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경상도 영으로 가서 순찰사와 서로 만나 이야기했다. 조금 있다가 배로 내려가 같이 타고 포구로 나가니, 여러 배들이 밖으로 줄지어 있었다. 종일 이야기하고 선암 앞바다에 이르러 닻을 걷고 출항하여 나뉘어 가면서 바라 보며 서로 읍했다. 그 길로 우수사·경상수사와 함께 같은 배로 들어왔다.
7월 5일 [양력 7월 29일] <庚午>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활을 쏘았다. 충청우후도 와서 같이 쏘았다.
7월 6일 [양력 7월 30일] <辛未>
맑다. 일찍 나가 각 처의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저물 무렵에 거제현령·웅천현감·삼천포권관이 와서 봤다. 이곤변의 편지도 왔다. 그 사연 속에는 입석의 잘못을 많이 말했다. 우습다.
7월 7일 [양력 7월 31일] <壬申>
맑다. 경상우수사 및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이 아울러 와서 잠깐 활 세 쾌(관)를 쏘았다. 종일 비는 오지 않았다. 활장이 지이· 춘복이 저녁에 본영으로 돌아갔다.
7월 8일 [양력 8월 1일] <癸酉>
맑다. 충청우후와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체찰사의 비밀 표험을 받으러 갔다고 한다.
7월 9일 [양력 8월 2일] <甲戌>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갈 여러 공문에 관인을 찍어서 이전이 받아 갔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이곳에 와서 통신사가 탈 배에 풍석(풍석: 돛만드는 돗자리)이 마련하기 어렵다고 여러번 말했다. 빌려 쓰고자 하는 뜻이 그 말하는 속에 보였다. 박자방 (박자방)을 물을 끌
어들일 대나무와 서울가는 사람이 요구하는 부채만들 대나무를 얻어 올 일로 남해로 보냈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7월 10일 [양력 8월 3일] <乙亥>
맑다. 새벽 꿈에, 어떤 사람이 멀리 화살을 쏘았고, 어떤 사람은 갓을 발로 차서 부수었다. 스스로 이것을 점쳐 보니, 멀리 활쏘는 것은 적들이 멀리 도망하는 것이요, 갓을 차서 부수는 것은 갓은 머리 위에 있는데 발길에 차 보이는 것으로서 이는 적의 괴수를 모조리 잡아 없앨 징조라 하겠다. 저녁나절에 체찰사의 전령에, "첨지 황신이 이제 명나라 사신을 따라가는 정사가 되고, 권황이 부사가 되어 가까운 시일에 바다를 건너 갈 것이니, 타고 갈 배 세 척을 정비하여 부산에다 대어 놓아라."고 했다. 경상우후가 여기 와서 흰 무늬 돗자리 백쉰 닢을 빌려 갔다. 충청우후· 사량만호· 지세포만호· 옥포만호· 홍주판관·전 적도만호 고여우 등이 와서 봤다. 경상수사가 달려와서 보고 하기를, "춘원도(통영시 광도면)의 왜선 한 척이 도착하여 정박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을 뽑아 보내어 샅샅이 찾아내라고 전령했다.
7월 11일 [양력 8월 4일] <丙子>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행정선(통문선) 일로 공문을 써 관인을 찍어보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바다를 건너 갈 격군과 뒤 따라 갈 것을 의논했다. 바다를 건너갈 양식이 스무세 섬인데, 새로 찧으니 스무한 섬이라 두 섬 한 말이 줄었다. 나가 앉았다가 몸소 활 세 쾌를 쏘는 것을 보았다.
7월 12일 [양력 8월 5일] <丁丑>
새벽에 비가 잠시 뿌리다가 곧 그치고 무지개 가 한참이나 서 있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후 이의득이 와서 뜸 열다섯 번을 빌려 갔다. 부산으로 실어 보낼 군량 흰쌀 스무 섬·중쌀(중미) 마흔 섬을 차사원 변익성과 수사의 군관 정존극이 받아갔다. 조방장이 오고, 충청우후도 와서 활을 쏘았다.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남치온도 왔다.
7월 13일 [양력 8월 6일] <戊寅>
맑다. 명나라 사신을 따라 갈 우리나라 사신들이 탈 배 세 척을 정비하여 낮 열 시쯤에 떠나 보냈다. 저녁나절에 활 열세 순을 쏘았다. 어두울 무렵 항복해온 왜놈들이 광대놀이를 차렸다. 장수된 사람으로서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만, 붙좇은 왜놈들이 놀이를 간절히 바라기에 못하게 하지 않았다.
7월 14일 [양력 8월 7일] <己卯>
새벽에 비가 뿌렸다. 이 날도 벌써 보름날이다. 저녁에 고성현령 조응도가 와서 이야기했다.
7월 15일 [양력 8월 8일] <庚辰>
새벽에 비가 뿌렸다. 망궐례를 행하지 못했다. 저녁나절에 활짝 개었다. 경상수사· 전라우수사가 함께 모여 활을 쏘고서 헤어졌다.
7월 16일 [양력 8월 9일] <辛巳>
새벽에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북쪽에 툇마루 세 칸을 만들었다. 이 날 충청도 홍주 격군으로 신평에 사는 사삿집 종 엇복(어질복)이 도망가다 붙잡혔으므로 목베어 내다 걸었다. 하동현감·사천현감이 왔다. 저녁나절에 활 세 쾌를 쏘았다. 이 날 어두울 무렵 바닷달이 너무도 밝아서 혼자 수루 위에 기대었다. 밤 열 시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7월 17일 [양력 8월 10일] <壬午>
새벽에 비가 뿌렸다가 곧 그쳤다. 충청도 홍산에서 큰 도둑들이 일어나서 홍산현감 윤영현이 잡히고, 서천군수 박진국도 잡혀갔다고 한다. 바깥 도둑도 없애지 못한 이 마당에 나라 안의 도둑들이 이러하니, 참으로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다. 남치온 및 고성현령·사천 현감이 나갔다.
7월 18일 [양력 8월 11일] <癸未>
맑다. 각 곳에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보냈다. 충청우후 및 홍주 반자가 충청도 도둑들의 일을 듣고 와서 아뢰었다. 저녁에 투항해 온 왜놈 레나기(연은기)·야이(여이)·야몬(여문) 등이 난야몬 (남여문)을 해치려고 흉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였다.
7월 19일 [양력 8월 12일] <甲申>
맑으나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난야몬(남여문)이 레나기(연은기)·야이(여이)·야몬(여문) 등을 목베었다. 우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경상우후 이의득 및 충청우후(원유남)·다경포만호 윤승남이 왔다.
7월 20일 [양력 8월 13일] <乙酉>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본영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니 기쁘고 다행이다. 그 편에 충청도 토적(이몽학)이 이시발(순안어사)의 포수에게 총맞아 즉사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7월 21일 [양력 8월 14일] <丙戌>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거제현령·나주판관·홍주판관과 옥포만호·웅천현감·당진포만호가 왔다. 옥포에는 배 만드는데 쓸 양식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체찰사에 관계된 군량 스무 말을 주고, 웅천·당진포에는 배 만들 쇠 열다섯 근을 함께 주었다. 이 날 아들 회가 방자 수에게 곤장쳤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을 붙들어다가 뜰 아래에서 잘 타일렀다. 밤 열 시쯤에 땀이 줄 줄 흘렀다. 통신사가 청하는 표범 가죽을 가지고 올려고 배를 본영으로 보냈다.
7월 22일 [양력 8월 15일] <丁亥>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종일 나가지 않았다. 홀로 수루 위에 앉아 있었다. 종 효대 ·팽수가 나가서 흥양의 군량선을 탔다. 저녁에 순천 관리의 통지문(문장)에, "충청도 도둑들이 홍산에서 일어난 것을 곧 죽였다고 하는데, 홍주 등 세 고을이 포위를 당했다가 간신히 면했다"고 했다. 참으로 한심타. 한밤에 비가 많이 왔다. 낙안의 교대할 배가 들어왔다.
7월 23일 [양력 8월 16일] <戊子>
큰 비가 내렸다. 오전 열 시쯤에 맑았다가 이따금 쏟아졌다. 저녁나절에 홍주판관 박륜이 휴가를 얻어서 나갔다.
7월 24일 [양력 8월 17일] <己丑>
맑다. 현덕왕후(현덕왕후:문종의 왕후 권씨의 제사) 나라 제삿날이다. 이 날 우물을 고쳐 파는데로 갔다. 경상수사도 왔다. 거제현령· 금갑도만호·다경포만호가 뒤따라 왔다. 샘줄기가 깊이 들어가 있고 물의 근원도 길다. 점심을 먹은 뒤에 돌아와 활 세 쾌(관) 를 쏘았다. 어두울 무렵 곽언수가 표범가죽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 날 밤 마음이 답답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인기척은 고요하여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들었다.
7월 25일 [양력 8월 18일] <庚寅>
맑다. 아침에 공리가 사냥한 것을 헤아리니 뿔이 열 개라 창고에 넣게 했다. 표범 가죽 및 꽃돗자리를 통신사에게 보냈다.
7월 26일 [양력 8월 19일] <辛卯>
맑다. 이전이 체찰사에게서 와서 표험 세 벌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경상수사에게 보내고, 하나는 전라우수사에게 보냈다. 의금부의 나장이 윤승남(다경포만호)을 잡아 갈 일로 내려왔다.
7월 27일 [양력 8월 20일] <壬辰>
맑다. 저녁나절에 활터로 달려가서 길 닦는 일을 녹도만호에게 일러 주었다. 종 경이 아팠다. 다경포만호 윤승남이 잡혀 갔다.
7월 28일 [양력 8월 21일] <癸巳>
맑다. 종 무학·무화·박수매.우롬금(우로음금) 등이 스무엿새 날에 여기 왔다가 오늘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와 더불어 활 세 쾌를 같이 쏘았다. 철전 서른여섯 푼, 편전 예순 푼, 보통 화살 스무여섯 푼 모두 백스무 세 푼(계산 착오인 듯. 합이 백스무둘임)이었다. 종 경이 많이 앓았다고 한다. 무척 걱정이 된다. 고향 아산으로 한가위 제물을 보낼 때에 홍·윤·이 등 네 군데에 편지를 부쳤다. 밤 열시쯤에 꿈속에서까지 땀을 흘렸다.
7월 29일 [양력 8월 22일] <甲午>
맑다. 경상수사 및 우후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도 아울러 와서 활 세 쾌를 쏘았는데, 내가 쏘던 활은 고자가 들떠서 곧 수리하라고 하였다. 체찰사에게서 과거보는 자리를 설치한다는 공문이 와 닿았다. 저녁에 점장이의 집을 맡아 지키던 아이가 세간을 몽땅 훔쳐 달아나버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7월 30일 [양력 8월 23일] <乙未>
맑다. 새벽에 갈몰이 들어왔다. 밤 꿈에 영의정과 같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침에 이진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춘화 등도 돌아갔다. 김대인은 담제를 지낸다고 휴가를 받아갔다. 저녁나절에 조방장이 와서 활을 쏘았다.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한다. 임금의 분부가 두 통이 내려 오고 싸움에 쓸 말과 면의 말도 들어왔다. 지이와 무재가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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