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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亂中日記 (49) -李舜臣-

카지모도 2021. 3. 1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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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8월 (1596년 8월)

 

 

8월 초1일 [양력 8월 24일] <丙申>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충청우후·금갑도만호·목포만호·사도 첨사·녹도만호가 와서 참례했다. 저녁나절에 파지도권관 송세응이 돌아갔다. 오후에 활터로 가서 말을 달리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부산에 갔던 곽언수가 돌아와서 통신사의 회답 편지를 전했다. 어두울 무렵 비올 징후가 많았다. 그래서 비오기 전에 장만할 것들을 시켜놨다.

 

8월 초2일 [양력 8월 25일] <丁酉>

아침에 비가 몹시 왔다. 지이 등에게 새로 만든 활을 폈다가 굽혔다가 하게 했다. 저녁나절에 광풍이 세게 일어 빗줄기는 삼대 같아서 대청 마루에 걸어 둔 바람막이가 날라가 방 마루 바람막이에 부딪쳐 한꺼번에 두 바람막이가 깨어져 조가조각 나버렸다. 아까웠다.

 

8월 초3일 [양력 8월 26일] <戊戌>

맑다가 이따금 비가 뿌렸다. 지이에게 새로 만든 활을 펴게 했다. 조방장·충청우후가 와서 보기에 그대로 나가 활을 쏘았다. 아들들이 육냥궁(육양궁)을 쏘았다. 이 날 저녁나절에 송희립과 아들들이 이름이 적힌 황득중·김응겸의 통행을 허락하는 증명서를 써서 주게 했다. 초저녁에 비가 오다가 밤 두 시쯤에야 그쳤다.

 

8월 초4일 [양력 8월 27일] <己亥>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회·면·조카 완 등이 아내의 생일술을 올리려고 나갔다. 정선도 나갔다. 정사립이 휴가를 받아서 갔다. 저녁나절에 수루에 앉아서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보느라고 술잔이 시어지는 줄도 몰랐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활 두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활 쏘는 것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몸은 얼어 터지는듯 떨려 곧 옷을 두껍게 입고 땀을 냈다. 저물 무렵 경상수사가 와서 문병하고 갔다. 밤에는 낮보다 갑절이나 아팠다. 끙끙 앓으며 밤을 지냈다.

 

8월 초5일 [양력 8월 28일] <更子>

맑다. 몸이 불편하여 나가지 않고 앉아 있었다. 이의득 가리포첨사가 와서 봤다.

 

8월 초6일 [양력 8월 29일] <辛丑>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조방장 김완·충청우후·경상우후 등이 문병을 왔다. 당포만호는 그 어머니의 병환이 심하다고 와서 알렸다. 경상수사 및 우수사 등이 와서 봤다. 조방장 배흥립이 들어왔다. 날이 저물어서 돌아갔다. 밤에 비가 많이 왔다.

 

8월 초7일 [양력 8월 30일] <壬寅>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서울에 편지를 썼다. 이 날 밤 땀이 위·아래 두 옷을 적셨다.

 

8월 초8일 [양력 8월 31일] <癸卯>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박담동이 서울로 올라가는데 혼수를 승지 서성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강희로가 이곳에 와서 남해현령의 병이 차즘 나아진다고 했다. 그와 함께 밤이 되도록 이야기했다. 중 의능이 날삼(생마) 백스무 근을 가져와서 바쳤다.

 

8월 9일 [양력 9월 1일] <甲辰>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중 수인에게서 날삼(생마) 삼백서른 근을 받아들였다. 하동현감이 종이를 다시 두드려 만든다고 도련지 스무 권, 주지 서른두 권, 장지 서른한 권을 김응겸 곽언수 등에게 주어 보냈다. 마량첨사 김응황이 직무평가에서 하등급(거하)을 맞고 나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밤 열 시쯤 되니 땀이 흘렀다.

 

8월 초10일 [양력 9월 2일] <乙巳>

맑다. 아침에 충청우후가 문병을 왔다가 그대로 조방장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에 송한련에게 날삼(생마) 마흔 근을 그물을 만들도록 주어서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한참동안이나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저녁나절에 두 조방장 및 충청우후를 불러다가 상화를 만는데 이를 같이 했다. 저녁에 체찰사에게 보낼 공문에 관인을 찍었다. 어두워지니 달빛은 비단같고, 나그네 회포는 만갈래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밤 열 시쯤에 방에 들어갔다.

 

8월 11일 [양력 9월 3일] <丙午>

맑으나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갈 여러 공문에 관인을 찍어 내보냈다. 조 방장 배흥립과 함께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나절에 그와 같이 활터(사장)에 가서 말달리는 것을 구경하고서 저물 무렵에 영으로 돌아왔다. 초저녁에 거제현령이 달려와서 보고한 내용에, "왜적선 한 척이 등산(등산: 마산시 합포구 진동면)에서 송미포(송미포: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로 들어온다."고 했다. 밤 열 시쯤에 또 보고하기를, "아자포로 옮겨 대었다."고 했다. 배를 정하여 내어 보낼 즈음에 또 보고하여 말하기를, "견내량을 넘어갔다."고 했다. 그래서 복병장이 찾아서 잡았다.

 

8월 12일 [양력 9월 4일] <丁未>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어 동쪽으로 가는 배는 도저히 오갈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안부를 알지를 못했으니, 몹시도 답답하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땀이 두겹 옷을 적셨다.

 

8월 13일 [양력 9월 5일] <戊申>

맑다가 흐리며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충청우후와 함께 활을 쏘았다. 이 날 밤 땀이 흘러 등을 적시었다. 아침에 우씨가 곤장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장사지낼 물건을 약간 보냈다.

 

8월 14일 [양력 9월 6일] <己酉>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샛바람이 계속 불어 벼가 상했다고 한다. 조방장 배흥립과 충청우후와 같이 이야기를 중지시켰는데 땀나지는 않았다.

 

8월 15일 [양력 9월 7일] <庚戌>

새벽에 비가 내렸다. 망궐례를 못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경상수사 및 두 조방장과 충청우후· 경상우후· 가리포첨사· 평산포만호 등 열아홉 명의 여러 장수들이 모여서 이야기했다. 비가 종일 그치지 않았다. 초저녁이 지나니 마파람이 불면서 비가 많이 왔다. 밤 두 시 쯤까지 세 번이나 땀을 흘렸다.

 

8월 16일 [양력 9월 8일] <辛亥>

잠깐 맑다가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강희로가 남해로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누워 끙끙 앓았다. 저녁에 체찰사가 진주성(진성)에 왔다는 공문이 왔다. 다시 비 갠 뒤의 달빛이 너무 밝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밤 열 시쯤에 누워서 가랑비가 또 내리다가 잠시후에 그치는 걸 봤다. 땀이 흘렀다.

 

8월 17일 [양력 9월 9일] <壬子>

맑고 흐림이 서로 섞여서 개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했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거제현령이 아울러 와서 봤다. 이 날 샛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체찰사 앞으로 사람을 찾으러 내 보내었다.

 

8월 18일 [양력 9월 10일] <癸丑>

비가 오락가락 했다. 한밤 자정에 죄인에게 특사를 내리는 조칙문을 가지고 온 차사원 구례현감(이원춘)이 들어왔다. 땀을 흘리는게 예삿 일이 아니다.

 

8월 19일 [양력 9월 11일] <甲寅>

흐리다가 맑다가 했다. 새벽에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죄인에게 특사내리는 조칙문에 숙배하고 그대로 그들과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구례현감이 아뢰고 돌아갔다. 송의련이 본영에서 아들 울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다행이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과 금갑도만호가 이곳에 와서 이야기했다. 초저녁부터 한밤까지 땀에 젖었다. 어두울 무렵 자귀쟁이 (이장) 옥지가 재목에 치어서 중상을 입었다고 보고 받았다.

 

8월 20일 [양력 9월 12일] <乙卯>

샛바람이 세게 불다. 새벽에 전선을 만들 재목을 끌어내리는 일로 우도군사 삼백 명, 경상도군사 백 명, 충청도군사 삼백 명, 전라좌도군사 삼백 아흔 명을 송희립이 거느리고 갔다. 늦은 아침에 조카 봉·해와 아들 회·면·조카 완과 최대성·윤덕종·정선 등이 들어왔다.

 

8월 21일 [양력 9월 13일] <丙辰>

맑다. 식사를 한 뒤에 활터 정자에 가서 아들들에게 화살 쏘는 연습과 말달리며 활을 쏘는 것을 시켰다. 조방장 배흥립·조방장 김완과 충청우후가 아울러 왔다. 같이 점심을 먹고 저물어서 돌아갔다.

 

8월 22일 [양력 9월 14일] <丁巳>

맑다. 외조모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8월 23일 [양력 9월 15일] <戊午>

맑다. 활터에 가 보았다.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보았다.

 

8월 24일 [양력 9월 16일] <己未>

맑다.

 

8월 25일 [양력 9월 17일] <庚申>

맑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8월 26일 [양력 9월 18일] <辛酉>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사천에 이르러 머물러 잤다. 충청우후와 함께 종일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8월 27일 [양력 9월 19일] <壬戌>

맑다. 일찍 길을 떠나 사천현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그대로 진주성(진성)으로 가서 체찰사(이원익)를 뵙고 종일 의논했다. 저물 무렵에 진주목사(나정언)의 처소로 돌아와서 잤다. 김응서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이 날 어두울 무렵 이용제가 들어왔는데, 역적 도당의 편지를 지녔었다.

 

8월 28일 [양력 9월 20일] <癸亥>

맑다. 이른 아침에 체찰사 앞으로 가서 종일 여쭙고 의논하여 결정하고, 초저녁이 지나서 진주목사의 처소로 돌아왔다. 진주목사와 함께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청생도 왔다.

 

8월 29일 [양력 9월 21일] <甲子>

맑다. 일찍 떠나 사천현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은 뒤에 그대로 가서 선소리(사천시 용남면 선진리)에 이르렀다. 고성현령(조응도)도 왔 다. 삼천포권관과 이곤변이 술을 가지고 뒤따라 도착했다. 밤들도록 같이 이야기하고 구라량(구라량)에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