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그는 제가 제 손수 무슨 농간을 부리든지, 혹은 누구를 등골을 쳐서든지, 좌우간 군산을 떠나 북쪽으로 국경을 벗어날 그 시간 동안만 무사할 돈이면, 돈 만 원이고 이삼만 원이고 상말로 왕후가 망건 사러 가는 돈이라도 덮어놓고 들고 뛸 작정이다.
뛰어서는, 북경으로 가서 당대 세월 좋은 금제품 밀수(禁制品密輸)를 해먹든지, 훨씬 더 내려앉아 상해로 가서 계집장사나, 술장사나, 또 두 가지를 겸쳐 해먹든지 하자는 것이다.
그는 재작년 겨울, 이 군산으로 옮기기 전에 한 반년 동안이나 상해로 북경으로 돌아다닌 일이 있었고, 이 ‘영업목록’은 그때에 얻은 ‘현지지식(現地知識)’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면 돈 만 원이나 올가미를 씌울까, 육장 궁리가 그 궁리인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그처럼 형무소가 덜미를 쫓아다니는 위태한 것이 아니라 썩 합법적인 수단인데, 눈치를 보아 어수룩한 미두 손님 하나를 친하든지, 엎어 삶든지 해서 계제를 보아 쌀을 한 오백 석이고 천 석이고 붙여 달라고 한다. 아직도 미두장 인심이란 어수룩한 데가 있어서 그게 노상 그럴 수 없으란 법은 없다.
그렇게 쌀을 붙여 주면 그놈을 시세를 보아 가면서 눈치 빠르게 요리조리 되작거린다.
만일 운이 트이기만 하려 들면 한 일이 년 그렇게 주무르는 동안에 돈이나 한 오륙천 원 만들기는 그다지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그놈이 그처럼 여의해서 이삼 년 내에 오륙천 원이 되거들랑 그때는 미두장에서 손을 싹싹 씻고 서울로 올라간다. 올라가서 그놈을 밑천삼아 일이백 원, 이삼백 원, 기껏 커야 사오백 원짜리로, 이렇게 잔머리만 골라 ‘수형할인’을 떼어먹는다. 이것도 착실히만 하면, 한 십 년 후에 가서 몇만 원 잡을 수가 있다. 몇만 원 가졌으면 족히 평생이다.
그래야지, 만일 미두장에서만 어물어물하고 있다가는 피천 한푼 못 잡고, 근처의 수두룩한 하바꾼 신세가 되기 마침이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투기사답지 않게 염량을 차리고, 그러한 두 가지 계획을 품고서 늘 기회를 엿보던 차에, 언덕이야시피 다들린 게 태수의 일이다.
그는 태수가 만일 말을 들어, 돈을 만 원이고 둘러 빼만 주면, 태수야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저 혼자서 그 돈을 쥐고 간다 보아라, 북경 상해 등지로 내뺄 뱃심이다.
그래, 사뭇 침이 넘어가게 구미가 당기는 판이라, 벼르고 있다가 실끔 말을 내던진 것인데, 의외로 이건 도무지 맹숭맹숭, 좋은 말로 어물쩍하려고 하니 시방 속으로는 태수가 까죽이고 싶게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
‘요놈의 새끼, 네가 영영 내 말을 안 들어만 보아라. 아무 때고 한번 골탕을 먹여 줄 테니.’
형보는 마침내 이런 앙심을 먹고 말았다.
이야기가 흐지부지해서 둘이는 시무룩하고 앉았는데, 행화가,
“천냥 만냥 다아 했소”
하고 얼굴을 씻으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형보는 속이 좋잖은 끝이라,
“다아 했다네.”
“어찌 미잉밍한 게 술 얻어묵을 것 같잖다!”
행화는 경대 앞으로 앉아 단장을 시작한다.
“어디 지휘 받았나”
“아-니.”
“그런데 웬 세수를 벌써”
“나두 영업인데…… 이렇게 마침 채리고 있다가 인력거가 오거든 힝하니 쫓아가야지!…… 그래야 한푼이라두 더 벌지 않능기요!”
“치를 떠는구나.”
하다가 형보가 그 말끝에 생각이 나서 태수게로 대고,
“그런데 여보게 이 사람! 저것은 어떡헐려나”
쌀 붙인 것 말이다.
“내버려두지, 머!”
태수는 담배만 피우고 앉았다가 겨우, 봉했던 입같이 떨어진다.
“내버려두다니? 오륙십 원은 돈 아닌가…… 그러느니 차라리 날 주게…… 잘 되작거려서 담뱃값이나 뜯어쓰게시니.”
“쯧! 제발 그러게그려!”
태수는 성가신 듯이 얼핏 승낙을 한다. 그는 꺼림칙하게 꼬리를 물려 놓고서, 아주 끊어 버리기도 싫고 그런 것을 형보가 이렇다거니 저렇다거니 조르는 게, 그만 머릿살이 아프게 귀찮았던 것이다.
그러나 태수나 형보나 다 같이 그 끄트머리가 그 이튿날부터 크게 조화를 부릴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한 것은 물론이다.
“고마워이!”
형보는 태수의 승낙을 받고 싱글벙글 좋아한다. 어쩌면 내일로 닥쳐오는 그 쌀 천 석의 운명을 미리 짐작하고서 좋아하는 것같이도 되었다.
아닌게아니라, 그러니까 노름이란 도깨비살림이라지만, 그놈이 바로 그 다음날 가서 형보가 미처 끊을 겨를도 없이 한목 이십 정이 푹 올라간 것이며, 그것을 계제 좋다고 잡아 끊었다가, 그놈으로 들거리를 삼아, 다시 쌀을 몇백 석 붙여 놓고 요리조리 되작거려서 반년 후에는 돈 천 원이나 잡은 것이며, 다시 일년 남짓해서는 형보의 곡진한 포부대로 오륙천의 밑천을 장만한 것이며, 이러한 것은 태수는 물론 형보도 그 당장에야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형보는 그 이튿날 당장 시세가 그처럼 이십 정이나 올라서 우선 이백 원 가까운 이익을 보았다는 것이며, 그 뒤로도 부엉이 살림같이 차차로 늘어 간다는 것을 꽉 숨겨 버렸었다.
그러나 아무튼 그것은 그날이 밝는 그 다음날부터의 일이지, 이 당장에서 형보가 그것을 미리 짐작하고 그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혹시 귀신이 씌어 대었다는 말이나 거기에 맞을는지, 그래서 형보는 저도 모르고 좋아한 것인지는 몰라도,
“제엔장…… 세사는 여반장이요, 생애는 방안지라(世事如反掌, 生涯方眼紙)!”
형보는 끙! 하고 일어나 쪼글트리고 앉으면서, 미두꾼들이 좋은 때고 언짢은 때고 두루 쓰는 이 타령을 한바탕 외다가 갑자기,
“아차! 내가 깜박 잊었군!”
하더니, 추욱 처진 조끼 호주머니에서 불룩한 하도롱봉투 하나를 꺼내어 태수게로 던진다. 아까 은행에서 찾아온 돈 이백 원이다.
“……거기 그대루 다아 있네.”
실상, 잊었던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저한테 두어 두고 눈치를 보아 몇십 원 꺼낸 뒤에 태수를 주려고 했던 것이지만, 인제는 미두하던 끄트머리를 얻어 가졌으니 이 돈에까지 손을 댈 염치는 없었던 것이다.
태수는 형보가 미리서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고스란히 두었다가 주는 것이 도리어 이상했으나 말없이 받아 봉투를 찢는다.
“보이소 고주사, 예”
돌아앉아서 단장을 하던 행화가 태수가 너무 말이 없이 시춤하고만 있으니까, 그렇다고 그게 무슨 걱정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저 심심삼아 말을 청하던 것이다.
“응”
태수는 행화한테 주려고 돈 백 원을 따로 세면서 건성으로 대답을 한다. 그는 한 일주일 전에 오입을 하고 이내 다니면서 아직 인사를 치르지 못했었다.
“글쎄 고주사아!”
“왜 그래”
“와 그렇게 코가 쑤욱 빠졌소? 예…… 물 건너 첩 장인 죽었소”
“망할 것!”
“아니, 첩 장인이면…….”
형보가 거들고 내달으면서,
“……첩 장인이면 행화 아버지”
“우리 아배는 발써, 옛날에-- 옛날에 천당 갔소!”
“기생 아범두 천당 가나”
“모르제! 그래도 갔길래 펜지가 왔제”
“그건 지옥에서 온 걸 잘못 본 걸다!”
“아니, 천당이락 했던데? 아이고 몇 번지락 했더라…… 번지두 쓰고 천당 하나님 방(方)이락 했던데”
“아냐, 그건 지옥에서 문초 받으러 잠깐 불려갔던 길일세!”
“여보게 행화”
별안간 태수가 졸연찮게 행화에게로 버썩 돌아앉으면서,
“……자네 그럼 나하구 천당 좀 갈려나”
“천당요…… 갑시다!”
“정말”
“이 사람 그러다가는 천당으루 못 가구 지옥으루 따러가네!”
형보가 쐐기를 박는데, 행화는 그대로 시치미를 따고 앉아서,
“정말 아니고? 금세라두 갑시다.”
행화나 형보나 다 농담이다. 농담 아니기는 태수다.
태수는 행화의 얼굴을 끄윽 들여다본다. 여느때도 독해 보이는 그의 눈자는 매섭고 광채가 난다.
그는 시방 들여다보고 있는 행화의 얼굴에서 행화의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초봉이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계집과 둘이서 천당을 간다는 말에서 ‘정사(情死)’라는 것을 암시를 받았고, 그놈이 다시,
‘초봉이와의 정사!’
라는 데까지 번져 나갔던 것이다.
문득 생각한 것이나 그는 무릎이라도 탁 치고 싶게 신기했고, 장차 그리할 것이 통쾌했다.
태수는 이윽고 혼자서 싱긋 웃더니 갑자기,
“에라 모르겠다!”
소리를 치면서 벌떡 일어선다. 형보와 행화는 질겁하게 놀라서 한꺼번에 태수를 올려다본다.
“……자아, 일어들 나게. 자동차 불러 타구 소풍삼어 은적사루 놀러 가세.”
“은적사 조오치!”
형보는 선뜻 맞장구를 치고 좋아하고, 태수는 손에 여태 쥐고 있던 돈 백 원이 그제야 생각이 나서, 행화의 치마폭에다가 떨어뜨려 준다.
“어서 얼핏, 옷 갈아입엇!”
“아이갸! 이리 급해서!”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B> 탁류 (17) -채만식- (0) | 2021.04.23 |
---|---|
<R/B> 탁류 (16) -채만식- (0) | 2021.04.22 |
<R/B> 탁류 (14) -채만식- (0) | 2021.04.20 |
<R/B> 탁류 (13) -채만식- (0) | 2021.04.19 |
<R/B> 탁류 (12) -채만식- (0) | 2021.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