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봉이는 승재가 생각하기에는 속을 알 수 없게 뾰롱한다.
“애기가 좋잖어”
“좋긴 무에 좋아? 어른들 축에도 못 끼는걸.”
“어른이 좋은 게 아냐…… 그리지 말구 이거 봐요, 계봉이”
“응”
“저어, 계봉이 말야…… 내 누이동생이나 내자쿠”
“누이동생? 오빠 누이 그거”
계봉이는 말끄러미 승재를 올려다보다가 별안간,
“……싫다누!”
하면서 아주 얀정없이 잡아뗀다.
생각잖은 무렴을 보고서 승재는 얼굴이 벌개진다.
“싫여”
“응, 해애.”
계봉이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좋을 것을 너무 매몰스럽게 쏘아 준 것이 미안했던지, 제라서 배시시 웃는다.
“왜 싫으꼬”
“왜…… 응, 거저.”
“거저두 있나? 이유가 있어야지.”
“이유? 이윤…… 응!…… 없어 없어.”
“없는 게 아니라, 아마 계봉인 남서방이 싫은 게지? 그리니깐 누이동생 내기두 싫대지”
“누가 남서방이 싫여서 그리나, 머.”
“뭘!…… 싫으니깐 그리지.”
“아냐!”
“아닌, 뭘!”
“아니래두, 자꾸만!…… 남 속두 모르구서, 괜히…….”
계봉이는 필경 암상이 나서, 대고 지청구를 한다.
승재는 다시는 꿈쩍도 못 하고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거리로 걸어가면서 승재는, 계봉이가 소갈찌를 포르르 내면서,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런다고 쏘아붙이던 말을 두루 생각을 해본다.
결코 까부느라고 아무렇게나 한 말이 아니요, 영감같이 속이 엉뚱한 소리던 것이다.
철없이 함부로 굴고 응석을 부리고 하는 계봉이를 동기의 친누이동생인 양 승재는 단순하게 그리고 마음놓고 사랑했고, 그것을 그대로 길이길이 가꾸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방 보고 나온 계봉이로 해서 한낱 전설같이 아득한 것이 되고 말았다.
누이동생을 내자고 하니까, 말끄러미 올려다보던 그 눈, 남의 속도 모르고서 그런다고 암상을 떨던 그 눈, 본시 타고난 것이라 한껏 이지적이기는 하면서도 가릴 수 없는 정열을 흠뻑 머금어, 사뭇 위태위태해 보이던 그 눈을 생각하면 승재는 다시는 계봉이와 똑바로 마주 보지를 못할 듯싶게 그 눈이 무서웠다.
“그렇게도 조달을 하나!”
승재는 혼자서 탄식하듯 중얼거린다.
승재가 과실과 과자를 조금씩 사가지고 들어왔을 때에는 계봉이는 아까 일은 죄다 잊어버린 듯이 그런 눈치도 안 보였었다. 승재는 그것이 다행하고 안심이 되었다.
“안 먹으면 또 협박을 할 테니깐…….”
계봉이는 과자봉지를 풀어 놓고 승재와 둘이서 마악 먹기 시작하려다가 밑도 끝도 없이 묻는 말이다.
“……남서방, 그새 퍽 궁금했지요”
“궁금”
“응…… 언니 결혼하는 거 말이우.”
“으응, 난 무슨 소리라구!…… 머 거저…….”
“뭘 그래요! 퍽 궁금했으믄서…….”
“모르면 어떤가? 다아…….”
“글쎄 몰라두 괜찮다믄 그만이지만…… 그런데 말이우, 내 꼬옥 한가지만 이야기해 주께, 응”
“……”
“언니가아, 응? 언니가 말이우, 남서방을 잊지 못하나 봐!”
“괜헌 소릴!”
승재는 말과는 딴판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그는 울고 싶은 반가움을 미처 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냐, 정말이라우!”
계봉이는 우선 그날 밤 초봉이와 같이 앉아 모친한테 듣던 이야기를 그대로 다 되풀이해서 옮겨놓는다.
승재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태수가 그렇듯 집안이 양반 집안에 재산이 있고, 얌전하고, 전문학교까지 졸업을 했고 한 버젓한 신랑이란다니, 정주사네 내외며 당자인 초봉이며, 다 그러한 문벌이랄지 학식이랄지 그런 것에 끌려서 혼인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한편 구석에서는,
‘그렇지만 어디 원!’
하는 반발이 생기고, 자격이 모자라 떠밀렸구나, 뺏겼구나 하매, 저를 잊지 못한단 소리가, 슬프게 반갑던 것은 어디로 가고 마음이 앙앙하여 좋지 않았다.
『장한몽(長恨夢)』의 수일(洙一)이만큼은 아니라도 승재는 아무려나 초봉이가 야속하고 노여웠다.
그것은 그러하고, 일변 미심이 더럭 나는 것이 고태수라는 인물의 정체다.
무엇보다도 그가 전문학교니 대학이니를 졸업했다는 것이, 오늘 본 걸로 하면 종작없는 소리 같았다.
오늘 아까 병원에서는 그의 소위 이력이라는 것을 몰랐고 겸하여 딴 데 정신이 팔려 그냥 귀넘겨 들었었지만, 어떤 놈의 전문학굔지 대학인지 졸업을 했다는 사람이 (사실 중등학교만 옳게 다녔어도 그럴 리가 없는데) 데데하게시리 현미경을 요술주머니처럼 신기해하고, 게다가 현미경 검사를 하는 세균을 십 배냐고 묻다니!
정녕 무슨 협잡이 붙었기 쉽고…….
또, 얌전한 사람이요 처신이 조신하거든 ×× 같은 추한 병이 걸렸을 이치도 없거니와, 우연한 불행이나 한때 실수로 그렇다손 치더라도 치료와 조섭을 게을리 않고 조심을 하여 이내 완치를 했을 것이지, 결코 도로 도지고 도지고 하도록 몸가짐을 난하게 할 리가 없는 게 아니냔 말이다.
필경 주색에 침혹하는 게 분명하고…….
그러고 보니, 다른 것, 가령 문벌이 좋으네 재산이 있네 하는 것도 역시 꼭 같은 야바위 속이요, 자칫하면 그 녀석이 계집을 두어 두고서 생판 시방 초봉이를……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난 승재는, 이거 큰일났다고, 당장 쫓아가서 정주사더러든지, 제가 보고 짐작한 대로 사실과 의견을 토파하여 혼인을 파의하도록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 마음은 잔뜩 초조한데,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를 선뜻 해댈 강단은 또한 나지를 않고 물씬물씬 뒤가 사려진다.
가령 그 짐작이 옳게 들어맞았다고 하더라도 혼인이 파혼이 될는지가 의문인 걸, 항차 정주사네가 뒷줄로 다시 알아본 결과 (혹은 이미 알아본 걸로) 고태수의 그러한 제반 자격이 적실한 것이고 볼 양이면, 승재 저는 남들한테 저놈이 초봉이를 뺏기고서 오기에 괜히 고태수를 중상하여 혼인을 훼방을 놀려던 불측한 놈이라고 얼굴에다 침 뱉음을 당하게 될 테니 그런 창피, 그런 망신이 있으며 고태수를 죽이려던 약으로 승재가 죽어야 할 판이다.
더욱이 제 양심을 향하여, 내가 진실로 초봉이의 불행만을 여겨서 그렇듯 서둘고 나서자는 것이지, 은연중일 값에 그 혼인을 방해하고 싶은 욕심은 조금도 없는 것이냐고 물어 볼 때에 그는 제 사심이 부끄러워 (결과의 여하는 그만두고) 차마 기운이 나지를 않았다.
그러니, 그렇다고 끄먹끄먹 앉아서 보고만 있을 것이냐
안타까워 못 할 노릇이다.
그러면 들고 나서서 간섭을 해
그것은 안팎으로 사리는 게 많아 못 할 일이다.
대체 이 일을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해도, 대답은 나오지 않고 사뭇 조바심만 나서 승재는 마치 무엇 마려운 무엇에다 빗댈 형용이다.
“아, 그래서 난 그만 건넌방으로 쫓겨왔는데…… 그런데 글쎄…….”
계봉이는 승재가 하도 저 혼자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무엇을 생각을 하느라 입맛을 다시느라 심상치 않으니까, 저도 한동안 앉아 과실만 벗기면서 눈치를 보다가, 이윽고 그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던 것이다.
“……그 댐버텀 언니가 시추움하니 풀이 죽어 가지굴랑 혼자서 한숨을 딜이쉬고 내쉬고 그리겠지!…… 난 글쎄 그날 저녁에 언니가 그 자리에 앉아서 어머니한테 바루 승낙을 한 줄은 몰랐구려!…… 머, 어머니 아버지가 당신네끼리 다아 작정을 해놓구설랑 언니더러 이러구저러구 해서 다아 그렇게 된 거니 그리 알라구 일른 거니깐, 언니 성미에 싫더래두 싫다구 하지두 못했을 거야…… 언니가 글쎄 그렇게 맘이 약허다우…….”
계봉이는 과실을 한쪽 집어 주는 길에 승재의 동의를 묻는 듯이 말을 잠깐 멈춘다. 승재는 주는 과실을 받아 가진 채 그대로 묵묵히 말이 없고, 계봉이는 그 다음을 계속하여,
“……그래 내가 하루는, 그리니깐 그게 바로 약혼을 하던 그 전날 저녁인가 봐…… 언니더러 가만히, 아 그렇게 맘에 없는 것을 아무리 어머니 아버지가 시키는 노릇이라두 싫다구서 내뻗으면 고만이지 왜 억지루 당하믄서 그리느냐구 그잖었겠수? 그랬더니 언니 말이, 너는 속도 모르구서 무얼 그리느냐구, 내가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하믄, 인제 그 사람이 돈을 수천 원 장사 밑천으로 아버지한테 대준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혼인을 마다구 하겠느냐구 그리겠지! 글쎄 그 말을 들으니깐 어떻게 결이 나구 모두 밉살머리스럽던지 마구 그냥 몰아셌지…… 그래 이건 케케묵은 심청전을 읽구 있나 『장한몽』같은 잠꼬대를 하구 있나…… 그게 어디 당한 소리냐구…… 그리구 일부러 안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두 들으시라구, 그럴 테믄 애당초에 뭣 하려 자식을 길러야구, 저 거시키 돼지 새끼나 병아리 새끼를 인제 자라믄 팔아먹을려구 길르는 거나 일반이 아니구 무어냐구…… 마구 왜장을 쳤더니, 아 언니가 손으루다가 내 입을 틀어막구 꼬집구 그리겠지!…… 그래두 안방에서 다아들 듣긴 들었을 거야…… 속이 뜨끔했지 뭐…… 해해해.”
계봉이는 그날 밤의 일이 다시금 통쾌하대서 마침내 까알깔 웃어젖힌다.
승재는 그러나 마디지게 한숨을 몰아 내쉬고 묵묵히 앞벽을 건너다본다. 그는 시방, 방금 아까 초봉이의 위태한 결혼을 막지 못해 안타깝게 초조하던 불안도, 또 바로 그전에 초봉이가 못내 야속하던 노염도 죄다 잊어버리고 얼굴은 아주 딴판으로 감격함과 엄숙한 빛이 가득하다.
초봉이는 불쌍한 부모와 동기간을 위하여 제 한몸이나 제 사랑을 희생시키는 것이라서, 그 혼이 거룩하고 그 심정이 감격했던 것이다.
승재는 개봉동 양서방네가 딸 명님이를 기생집에 수양딸로 팔아먹으려고 조금 더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을 (계봉이가 방금 저의 부모더러 들으라고 내쏘았다는 그 말대로) 승재 저도 일찍이 그것을, 돼지 새끼나 병아리를 치면서 그놈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명님이네의 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따지고 보면 더 야박하다고 할 수 있는) 이번의 초봉이의 혼인에 대해서는 그러한 반감 같은 것은 조금도 나지를 않았다. 않았다기보다도 실상은 계봉이가 짐승의 새끼를 팔아먹는다는 그 비유를 하는 대목에서는, 승재는 벌써 정신을 놓고 다른 생각을 아무것도 하게 될 겨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종시 말이 없고 눈을 치떠 허공을 보는 승재의 얼굴은 차차로 황홀해 간다. 그는 시방 눈앞에 자비스런 초봉이가 한가운데 천사의 차림으로 우렷이 나타나 있고, 그 좌우와 등뒤로는 그의 가권들의 가엾은 얼굴들이 초봉이의 후광(後光)을 받아 겨우 희미하게 안식을 얻고 있는 그런 성화(聖畵)의 한 폭이 보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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