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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탁류 (28) -채만식-

카지모도 2021. 5. 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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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는 없어요! 절대루…….”

“그래두 그래선 안 됩니다. 첫째 환자 당자한테두 해롭구, 또 부인한테두…….”

승재는 여기까지 말을 하느라니까, 어느덧 그만 가슴이 뭉클하면서 사뭇,

‘아이구우!’

하고 소리쳐 부르짖기라도 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다.

그는 초봉이가 이자에게 짓밟혀 더러운 ××까지 전염받을 일을 생각하면, 방금 신성(神性)이나 모독되는 것 같아서 사뭇 열이 치달아 올랐다. 그는 열이 나는 깐으로 하면, 그저 주먹을 들어 이자를 대가리에서부터 짓바수어 놓고 싶었다.

눈치를 먹는 줄도 모르고 태수는 앉아서 조른다.

“그러니깐 그걸 상의하는 게 아닙니까? 근치되는 거야 어렵다구 하더라두 위선 임시루 아프지나 않구, 또 전염이나 안 되게시리…… 가령 농이 멎게 한다던지…….”

“물론 그렇게만이라두 해드렸으면야 생색두 날 것이구 해서 두루 좋겠지만…….”

승재는 입맛을 다신다. 그는 태수가 미운 것으로만 하면 이 녀석아 잔말 말라고 따귀라도 한 대 때려서 쫓기라도 하겠지만, 뒤미쳐 생각 할진대 역시 울며 겨자먹기로 제 힘과 재주를 다하여 태수가 청한 말대로 응급방편이라도 써보는 게 초봉이를 위한 도리일 성싶었다.

일변 태수는 도로 심정이 상해서 눈살이 장히 아니꼽다. 대체 의사라는 위인이 처음부터 보기 싫게 굴어 비위를 거슬리더니 내내 비쌔는 꼴이 뇌꼴스럽고 해서, 그만두어 버리고 벌떡 일어설 생각이 났다.

그는 지금 이 칼날 위에 올라선 판에 ××쯤 앓는다고, 또 초봉이한테 전염이 되는 게 안되었다고 그걸 치료하려고 아둥바둥 애를 쓰는 제 자신이 생각하면 우스웠다.

‘세상살이 마주막 날을 날 받아 놓다시피 했으면서!…… 초봉이두 그렇구…….’

이렇게 속으로 두런거리면서 이 작자가 인제 한 번만 더 같잖게 굴면, 두말 않고 일어서서 나가버리려니 했다.

“좌우간…….”

이윽고 승재는 과단 있게 말을 하면서 일어선다.

“……해볼 대루는 힘껏 다아 해봐 디리지요. 그리구 나서 원…….”

승재가 일어서니까 간호부는 벌써 알아차리고서 오십 시시(cc)짜리 주사기를 핀셋으로 집어 들고 주사준비를 시작한다.

“주사를 먼점? 균을 검사할 텐데…… 머, 주사를 먼점 놓아두 좋겠지…….”

승재는 혼자서 괜히 갈팡질팡하다가 현미경의 초자판(硝子板)을 꺼내 가지고 태수한테로 도로 온다.

간호부는 노랗게 마노빛으로 맑은 트리파플라빈 주사액을 솜씨 있게 주사기로 켜올리고 있다.

승재는 마치 최면술의 암시에나 걸린 듯이 끄윽 서서 그것을 노려본다.

보는 동안에 양미간이 이상스럽게 찌푸려진다. 발부리 앞에 가서 사지를 뒤틀고 나가동그라져 민사(悶死)하는 태수의 환영이 역력히 보이던 것이다.

하다가, 다시 주사에서 암시를 받아, 저기다가 ××××를 몇 그램만 섞었으면? 이 생각을 하던 참이다.

세상에도 유순한 그의 눈이 난데없는 살기를 띠고 힐끔 태수를 돌려다보는 것이나, 태수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눈만 팔고 앉았다.

간호부가 준비된 주사기를 손에 들려 줄 때에야 승재는 제정신이 들어 부질없이 흠칫 놀란다.

주사기를 받아 들고 서서 승재는 태수의 걷어 올린 팔을 내려다본다. 파아란 정맥이 여물게 톡톡 비어진 통통한 팔이다. 살결이 유난스럽게 희다.

이 팔이 가서 초봉이의 그 어여쁜 어깨를 쌍스럽게 휘감으려니 생각하매, 태수의 팔은 팔이 아니고 별안간 굵다란 구렁이로 보인다. 그만 징그러워서 온 전신의 소름이 쪽 끼치고, 차마 더 볼 수 없어 눈을 스르르 감는다.

눈을 감으니까, 감은 길이니 주사침을 아무렇게나 (아파서 깡총 뛰게시리) 푹 찔렀으면 고소할 것 같아 손이 옴질옴질한다.

알콜 솜으로 자리를 닦아 놓고서 기다리다 못해 간호부가 찔벅거리는 바람에 승재는 눈을 도로 뜨고 가까스로 주사 한 대를 마쳤다.

농(膿)을 초자판에다가 받았다. 실상 현미경 검사야 해보나마나 빠안한 것이지만, 그러니까 그것은 환자를 위해서 그런다느니보다, 다 우리 병원에서는 이만큼 면밀하고 친절하오, 하고 내세우는 병원 간판인 것이다.

승재는 농을 받은 유리 조각을 알콜불에 구워서 메틸렌 브라운으로 착색을 해가지고 현미경을 구백 배(倍)로 맞추어 들여다본다.

초점을 맞추어 가는 대로 파스르름하게 나타나는 신장형(腎臟型)의 반점은 갈데없이 ×균(菌)이다.

승재는 오도카니 앉았는 태수를 손짓해서 현미경을 들여다보게 하고 옆으로 비켜 선다.

“보입니까? 콩팥같이 생기구, 파르스름한 거…….”

“안 보이는데요…… 아니 무엇이 보이는 것 같은데…….”

“이러면”

승재는 초점을 다시 조절해 준다.

“응응, 네네, 보입니다. 똑똑하게 보입니다. 하하! 그러니깐 이게 빠꾸데리얀가요”

태수는 신기해하면서 박테리아냐고 묻는 것이나, 승재는 실소하려다 말고,

“그렇지요, 박테리안 박테리아죠. 그게 ××균입니다.”

“하하! 이게가 그렇군요!”

태수는 한참이나 더 현미경을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든다. 그는 이렇게 현미경을 들여다보기는 고사하고, 현미경을 구경도 못 한 사람이라 두루 희한했던 것이다.

“하하! 그렇구만요!”

태수는 현미경 옆에 가 붙어 서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밑천이 드러나는 줄을 모르고 한다는 소리가,

“……그럼 이게 한 십 배나 되나요? 빠꾸데리얀 퍽 작은 건데…….”

“그게 구백 배랍니다!”

“구백 배…… 아이구! 구백 배…… 하하, 네네…… 아 원, 고게…….”

태수는 연신 신기해하다가 도로 현미경을 들여다본다.

승재는 태수가 밉기는 하면서도 그의 하는 양이 어쩌면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명랑한 것이 일변 귀염성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 귀엽다는 생각은 시방 불시로 우러난 것이 아니요, 태수가 초봉이를 뺏어 가는 사람이어서 미운 생각이 와락 치달을 때 그때에 벌써 그 미운 생각과 같은 순간에 배태가 되었던 것이다. 초봉이를 빼앗아 가는 사람이니까 밉지만, 그러나 초봉이의 배필이 될 사람이니까 일변 귀엽던 것이다.

이 귀여운 생각은, 그런데 미운 생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그만 꺼눌려 버렸던 것이, 그랬다가 대수롭지 않은 일에 기회를 얻어 의식 위에 떠오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귀엽다는 생각은 순간만에 사라지지를 않고, 도리어 무럭무럭 자라났다. 승재는 이 모순된 두 개의 감정에 휘달려 속으로 몸부림을 쳐도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망연히 서서 있던 승재는 태수가 다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동안, 진찰실 한옆에 들여세운 책상에서 금자박이 술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다가 활활 넘겨 이편 진찰탁 위에 펴놓는다. ×균이 현미경의 원색대로 삽화(揷畵)가 있는 대목이다.

이윽고 태수가 이편으로 오기를 기다려 승재는 펴놓았던 책의 삽화를 짚어 가면서, ×균의 형상부터 시작하여 그 성장이며 전염 경로, 잠복, 활동, 번식, 그리고 병리와 ××이 전신과 부부생활과 제이세랄지 일반 사회에 미치는 해독이며, 마지막 치료와 섭생에 대한 설명을 아주 자상하게 들려준다.

태수는 승재를 다시 한번 치어다보았다.

태수는 승재의 설명을 듣고 나서 본즉 모두가 그럴듯했다. 그새까지 다니던 먼저 병원에서는 처음 가던 길로 펌프질(沃度銀注入)이나 해주고 주사나 꾹꾹 찔러 주고 했을 뿐 현미경 같은 것은 보여 주지도 않았는데, 자 이 병원에 오니까는 의사가 생기기는 고쓰가이나 도둑놈 같고 불쾌하게는 굴었어도 척 현미경을 보여 준다, 여러 가지로 자상 분명하게 설명을 해준다, 하는 게 썩 그럴듯했고, 불쾌하던 의사란 작자도 그러는 동안에 차차 인간이 차차 양순해 뵈고 해서 태수가 또한 뒤가 없는 사람이라, ‘박사’나 되는 것같이, 그리고 오랜 친구와 같이 신뢰하는 마음이 들었다.

승재는 처방을 쓰고 있다.

가루약을 쓰고 그 다음에 물약을 쓰노라니까, 그놈에다가 ××가리를 한 그램만(아니 반 그램만

도 족하다) 넣고 싶었다. 그랬으면 오늘 저녁에 식후 두 시간이 지나 물약을 먹을 테요, 먹으면 대번 경련이 일어나고 숨쉬기가 힘이 들어 허얼헐 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고 두 눈이 퀭해지고 맥이 추욱 처졌다가 삼 분이 다 못해서 숨이 딸꾹…….

승재는 그러한 장면을 연상하느라고 잠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어깨를 흠칫하면서 도로 철필을 놀린다.

마지막에,

‘물 백 그램.’

이라고 쓰고 나니까, 그 위에 조금 빈 데다가 자꾸만,

‘××가리 한 그람.’

이라고 쓰고만 싶어 철필 끝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제약사가 보구서 무어랄까’

‘미쳤다구, 야단이 나겠지!’

‘제약사가 마침 없었으면 좋겠는데…….’

‘가만있자, 내일 어디…….’

승재는 속으로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면서 내일 보자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늘 제약사가 없었으면 좋았을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제약사가 있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처방을 다 쓰고 나서 승재는 태수한테 여러 가지로 주의를 시킨다. 혼인 전날까지 매일 다니면서 주사를 맞고, 약을 정성 들여서 먹고, 찜질을 하고, 주색이나 그런 것은 일체로 끊고, 자극되는 음식이며 과한 운동도 하지 말고, 그렇게 치료와 조섭을 잘하면 혹시 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농은 멎더라도 ×사(絲)는 그대로 나오는 법인즉 전염이 된다. 그러니 그것은 맨 마지막 날 보아서 무슨 변법이라두 구처 해 줄 텐즉 우선 그리 알고 있거라, 결혼하는 여자한테 전염을 시켜서는 단연 안 된다. 그것은 죄 없는 여자한테 적악일 뿐 아니라, 생겨나는 자손에게까지도 죄를 짓는 것이니라…….

이렇게 순순히 타이르고 있노라니까 승재는 어쩌면 친동생을 훈계나 하는 듯이 다정스런 것 같았다. 사실 태수가 나이는 한 살 맏이라도 앳되고, 승재가 훨씬 노숙해서 그냥 보기에도 승재는 침착한 게 손윗사람 같고, 태수는 어린 수하사람 같았다.

승재는 태수를 돌려보내고 나서, 오늘 새로 얻은 방을 닦달하려고, 비와 털이개와 걸레 등속을 찾아 가지고 그 집으로 갔다.

그는 인제는 태수까지 알았는데, 태수를 저만 알고 시치미를 뚝 떼었으니, 만일 내일이라도 태수가 약혼까지 했다니까 혹시 초봉이네 집에를 온다든지 해서 섬뻑 만나고 보면 그런 무색할 도리가 없을 것이요, 그런즉 기왕 방까지 구해 둔 바에 오늘 저녁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옳겠다고 했다.

승재는 숱한 먼지를 뒤집어써 가면서 다다미야, 오시레야, 방 안을 말끔하게 털어 내고 한 뒤에, 다시 병원에 들러 아범더러 끌구루마꾼을 하나 얻어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해놓고서 둔뱀일 넘어갔다.

새삼스럽게 반가운 것 같은, 또 슬픈 것 같은 초봉이네 집 문간 안으로 문득 들어서려니까는 어쩐지 등갈이 나가지고 오랫동안 발을 끊었던 집에를 찾아오는 것처럼 서먹서먹했다.

그러려니 하고 보아서 그런지, 집 안은 안팎이 모두 어디라 없이 두선거리고 들뜬 것 같았다.

부엌에서 계봉이가 웬 낯모를 아낙네와 밥을 하느라고 수선을 피우다가 승재를 보더니 해뜩 웃는다.

조금만 웃는 웃음이라도 시원하니 사심이 없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 웃음이,

‘어제 저녁에 그렇게 몰아 세우기는 했어도 다아 공중 그런 것이고, 자아 나는 이렇게 반가워하잖우’

하면서 맞일 해주는 것이거니 싶었다.

승재는 계봉이가 웃고 반가워하는 것이 살에 배도록 기쁘고 고마웠다. 그러나 (그것이 기쁘고 고맙기 때문에 자연)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요, 꼬옥 동기간의 누이동생인 양 귀애도 하고 응석도 받아 주고 하던 것이 또한 그만이구나 하면, 차마 이 집을 떠나는 회포가 한량없이 애달파 방금 내려 덮이는 황혼과 함께 마음 둘 곳을 모르게 슬펐다.

마당 가운데로 지나면서도 초봉이와 얼굴이라도 마주치기를 꺼려하는 제 마음과는 정반대로, 마지막 얼굴이라도 한번 마주쳤으면 싶어 무심결에 안방께로 고개가 돌아간다. 그러나 이 구석 저 구석 안팎으로 보기 싫게 생긴 아낙네들만 움덕움덕 들끓지, 초봉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승재가 짐을 꾸리느라고 책을 죄다 책장에서 꺼내서 한 덩이씩 한 덩이씩 따로 동여매고 있는데, 계봉이가 가만가만 나왔다.

“아이유머니나!…… 이게 대천 웬 야단이우”

계봉이는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진다.

“……왜 책을 죄다 끄내 놓구 그리우”

“응, 저어…….”

승재가 책 동여매던 손을 멈추고 히죽 웃으면서 더듬는 것을, 계봉이는 그제야 알아채고서 얼른,

“이사허우”

“응.”

“이? 사……”

계봉이는 얼굴을 찡그릴 듯하다가 별안간 웃음을 가득 흩트리면서,

“하하!…… 오오라잇! 우리 남서방, 부라보…….”

승재는 어째서 하는 말인지 몰라 뻐언하고 있고, 계봉이는 상관 않고 고개를 깝신깝신하며서 들이 좋아서,

“……응? 남서방…… 나두 남서방이 어디루 가기나 허구 없으면 좋겠다 그랬는데…… 보기에 하두 딱해서 말이우, 괜히 잘못 알아듣구서 삐칠까 무섭다!…… 그랬는데 아무튼지 잘 생각했수!…… 소〔牛〕는 면했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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