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가 미처 무어라고 대거리를 못 하는 사이에 형보가 도로 말참견을 하고 나서던 것이다.
“……기생들두 버젓하게 연애만 하구, 다아 그러더라.”
“그기 연애라요…… 활량이 오입한 거 아니고? 기생이 오입 받은 거 아니고…… 오입 길게 하는 걸로 갖고 연애라 캐싸니 답답한 철부지 소리 아니오? 예? 장주사 나리님!”
“저게 끄은히 날더러 철부지래요! 허어 그거 참…… 그러나저러나 이 사람아, 글쎄 기생두 다아 같은 사람이래서 연앨 해먹게 마련이구, 그래서 더러 연앨 하기두 하구 하는데 자넨 어찌 그리 연애하는 기생이라면 비상 속인가”
“연애로 하문 다아 사람질하나? 체! 요번엔 저 앞에서 보니 개두 연앨 하던데”
태수는 형보와 어울려 한참이나 웃다가, 빈 담뱃갑을 집어 보고는 돈을 꺼내면서 바깥을 기웃기웃 내다본다.
“와”
“담배…….”
“아무두 없는데!…… 피죵 피우소.”
행화는 제 경대 서랍에서 담뱃갑을 꺼내다 놓는다.
“요전날 뭣이냐, 계집애 하나 데려오기루 한 건 어떻게 했나? 참.”
태수가 마침 심부름이 아쉽던 끝이라 무심코 생각이 난 대로 지날말같이 물어 보던 것이다.
“응? 계집애”
형보는 행화가 미처 대답도 할 겨를이 없게시리 딱지를 떼고 덤빈다. 임의롭고 한 행화의 집이니 혹시 제 소일거리라도 생기나 해서…….
“웬 거야? 어떻게 생긴 거야”
“와 이리 안주 없이 좋아하노…… 우리 딸로 데리올라 캤더니 아직 어려서 조꼼 더 크게로 두었소, 자아…….”
“허 거 참…… 그러나저러나 인제 어린것이 딸이라니”
“하아! 내 나이 한갑 아니오”
“기생의 한갑”
“뉘 한갑이거나 인제는 딸이나 길러야 늙밭에 밥이라두 물어다 멕여 살릴 기 아니오”
“아서라!…… 남의 계집애 자식을 몇 푼이나 주구서 사다갈랑은 디리 등골을 뽑아 먹을 텐구…… 쯧쯧!”
“등골은 와…… 다아 제 좋고 내 좋고 하제!”
“대체 몇 푼이나 주구서 사오기루 했던가”
“하아따, 장주사는 푼돈 크기 쓰나 보제…… 백 원짜리로 두 푼에 정했소, 정했다가 제도 마단다 하고, 내도 급하잖길래 후제 보자 했소, 속이 시원하오”
양서방네 딸 명님이의 이야기다. 그러나 태수고 형보고, 그들은 명님인 줄도 모르고, 또 코가 어디 붙은 계집아인지 알 턱도 없던 것이다.
“집을 도배를 하나? 원…….”
태수가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방바닥에 놓인 양복 저고리를 집어 들고 일어선다.
“좀…… 가보아야겠군.”
“어딘데”
“그전 큰샘거리…… 자네두 같이 가세. 오늘 가서 집을 알아 뒀다가, 도배 끝나거든 짐짝 떠짊어지구 가서 있게.”
“아니 내가 먼점 집을 들어”
형보는 두루마기를 내려 입으면서 속으로는 어찌하면 일이 이렇게도 군장맞게 잘 맞아떨어지느냐고 좋아한다.
“식모는 벌써 집하구 한꺼번에 구해서 집을 맡겨 뒀는데, 인제 살림을 딜여놓자면 식모만 믿을 수가 없으니까, 자네가 기왕 와서 있을 테고 하니 미리 오란 말이지.”
“원 그렇다면 모르거니와…….”
“행화두 미리서 집 알이 겸 가세그려…… 아무래도 또 만나서 저녁이나 먹어야 할 테니 아주 나갈 길에…….”
태수는 시방 태평으로 집을 둘러보러 가는 것이나, 그와 거의 같은 시각에서 조금 돌이켜, 초봉이도 계봉이와 같이 그 집에를 가게 된 것은 생각도 못 한 일이다.
집은 다른 서두리와 마찬가지로, 탑삭부리 한참봉네 아낙 김씨가 나서서 얻어 놓았다.
태수는 실상 돈만, 같은 솜씨로 소절주 농간을 해서 오백 원을 마련해다가 김씨한테 내맡겨 버리고 기껏해야 청첩 박는 것, 식장으로 쓸 공회당이며, 예식집에 전화로 교섭하는 것, 요릿집에다가 음식 맞추는 것, 이런 것이나 누워 떡 먹기로 슬슬 하고 있지, 정작 힘 드는 일은 김씨가 통 가로맡아서 하고 있다.
그러하되 그는 마치 며느리를 볼 아들의 혼인이나 당한 것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일을 했다.
돈도 태수가 가져다 준 오백 원은 거진 다 없어졌다. 정주사네 집으로 현금 이백 원에, 혼수가 옷감이야 무어야 해서 오륙십 원 어치가 가고, 다시 반지를 산다, 신랑의 옷을 한다, 집을 세로 얻는다, 살림 제구를 장만한다…… 이래서 그 오백 원은 거진 다 없어진 것이다.
인제는 돈이 앞으로 얼마가 들든지 제 돈을 찔러 넣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도 아깝지가 않고 도리어 그리할 수 있는 것이 좋아 신이 났다.
집을 얻어 놓고서 그는 정주사네 집에다가는, 새 집을 사려고 했었으나 마침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서 종차 새로 짓든지 사든지 할 테거니와, 급한 대로 우선 셋집을 이러이러한 곳에다 얻어 놓았다고 혹시 규수가 나올 길이 있거든 마음에 드는지 둘러나 보라고 태수의 전갈로 기별을 했다.
그러자 오늘 마침 초봉이가 계봉이를 데리고 목간을 하러 나가겠다니까 유씨가, 기왕 나갔던 길이니 구경이나 하고 오라고 두번 세번 신신당부를 했다.
초봉이는 보아도 그만 안 보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기별까지 왔고, 모친도 보고 오라고 해싸니까, 그런 것을 굳이 안 보려고 할 것도 없겠다 싶어 목간을 하고 오는 길에 들러 본 것이다.
새길 소화통(昭和通)이 뻗어 나간 뒤꼍으로 예전 ‘큰샘거리’의 복판께 가서 바로 길 옆에 나앉은 집이다.
밖에서 보기에도 추녀며 기둥이 낡지 않은 것이, 그리 묵은 집은 아니고,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장독대가 박힌 좁지 않은 뜰 앞이 우선 시원스러웠다.
좌는 동향한 기역자요, 대문을 들어서면 부엌이 마주 보이고 부엌에 연달아 안방이 달리고 마루와 건넌방이 왼편으로 꺾여 있다. 그리고 뜰아랫방은 부엌 바른편에 달려 있다.
도배꾼이 셋이나 들끓고, 방이며 마루며 마당이 안팎없이 종이부스러기야 흙이야 너절하니 널려있어 어설프기는 어설퍼도 집은 선뜻 초봉이의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이 집이 그다지 훌륭한 집인 줄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사는 둔뱀이 집에 빗대어보면 훤하니 드높고 뚜렷한 게, 속이 답답하지 않은 때문이다.
식모는 먼저 구해 두기로 했다더니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고, 건넌방에서 도배하던 사내들만 끼웃끼웃 내다본다.
초봉이는 그만 하고 돌아서서 나올까 하는데 계봉이가 별안간 반색을 하여,
“어쩌믄! 꽃밭이 있어!”
하면서 마당 귀퉁이로 뛰어간다.
아닌게아니라, 전에 살던 사람의 알뜰한 맘씨인 듯싶게 조그마한 화단이 무어져 있고, 백일홍과 봉선화와 한련화가 모두 망울망울 망울이 맺었다. 코스모스도 서너 포기나 한창 자라고 있고, 화단 가장자리로는 채송화가 아침에 피었다가 반일(半日)이 지난 뒤라 벌써 시들었다.
화단은 그러나 주인 없이 집이 빈 동안에 하릴없이 거칠었다. 꽃 목이 꺾이기도 하고, 흉한 발자국에 밟히기도 했다. 저편 담 밑으로는 ‘아사가오’ 서너 포기가 타고 올라갈 의지가 없어 땅바닥에서 덩굴이 헤매고 있다.
초봉이는 마음 깐으로는 지금이라도 꽃들을 추어 올리고, 아사가오도 줄을 매주고 이렇게 모두 손질해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차마 못 하고 돌아서면서, 집을 들면 그 이튿날 바로 이 화단에 먼저 손을 대주리라고, 꼬옥 염량을 해두었다.
초봉이가 마악 돌아서려니까, 대문간에서 뚜벅뚜벅 요란스런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사람들이 한떼나 되는 듯싶게 몰려들었다.
태수가 행화와 나란히 서고 형보가 그 뒤를 따라 처억척 들어서던 것이다.
양편이 다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초봉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계봉이는 덤덤하니 서 있고, 형보는 히죽이 웃고, 행화는 의아하고, 태수는 어쩔 줄을 몰라 허둥지둥이다.
그는 뒤를 돌려다보다가 초봉이를 건너다보다가, 뒤통수를 긁으려고 하다가 밭은 기침을 하다가 , 벙끗 웃다가 하는 양이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다.
다섯 남녀의 마음은 다 제각기 다르게 동요가 되었다. 얼굴마다 또렷또렷하게 마음을 드러내 놓는다.
초봉이는 행화가 웬일인가 싶어 이상하게도 했으나, 그런 것을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수줍은 게 앞서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가지고 빗밋이 돌아서 있다.
계봉이는 태수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으나 형보를 보고, 저건 어디서 저런 숭한 게 있는고, 또 태수가 웬 기생을 데리고 다니니 필경 부랑자이기 쉽겠다 하여, 눈살이 꼬옷꼬옷하고 이미를 찡그린다.
형보는 속으로 고소해서 죽는다.
‘너 요 녀석, 거저 잘꾸사니야!’
‘바짓가랭이가 조옴 캥기리!’
‘조롷게 생긴 계집애한테루 장가를 들랴면서 기생년을 뀌어차구 다니니 하눌이 알아보실 일이지.’
‘아무려나 초봉이 너는 내 것이니 그리 알아라, 흐흐.’
행화는 초봉이가 초봉이인 줄도 모르거니와, 그가 태수하고 결혼을 하게 된 ‘초봉이’라는 것도 몰랐고, 단지 제중당에서 친한 새악시가 와서 있으니까, 반갑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여 뽀르르 초봉이한테로 달려든다.
태수는 이리도 못 하고 저리도 못 하고, 그러나 이렇게고 저렇게고 간에 무얼 어떻게 분별할 도리도 없어 필경 울상을 한다.
행화는 초봉이의 손목이라도 잡을 듯이 호들갑스럽게,
“아이고, 오래간만이오!”
하면서 초봉이의 숙인 얼굴을 들여다본다.
초봉이는 입이 안 떨어져서 인사 대답은 하지 못하고 눈으로만 반가워한다.
“……근데, 웬일이오? 예”
웬일이라니, 행화 네야말로 웬일이냐고 물어 보아야 할 판인데, 그러고 보니 초봉이는 말은 못하고 이쁘게 웃는 턱 아래만 손으로 만진다.
형보는 제가 나서야 할 때라고, 아기작아기작 세 여자가 서 있는 옆으로 가까이 가더니, 아주 점잔을 빼어,
“아, 이 두 분이 진작 아십니까”
“아이갸, 알구말구요! 어떻게 친했다고! 하하.”
“원 그런 줄은 몰랐군그랴! 허허허허…… 저어 참, 이 행화루 말하면 나하구 그저 참 그저 다아 그렇습니다. 허허…… 그리구 행화, 이 초봉 씨루 말하면 바루 저 고주사하구 이번에 결혼하실, 응? 알겠지”
“아이갸아! 원 어쩌문!”
행화는 신기하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태수를 돌려다보면서 눈 하나를 째긋한다.
“거 참, 두 분이 아신다니 나두 반갑습니다. 허허…… 나는 이 사람하구 거기까지 좀 갔다 오느라구 이 앞으로 지나던 길인데 바루 문 앞에서 고군을 만났어요.”
이만하면 초봉이나 계봉이의 행화에게 대한 의혹은 넉넉히 풀 수가 있다.
그러나 실상 초봉이는 그들이 행화를 데리고 온 것을 계봉이처럼 태수한테다 치의를 하거나 그래서 불쾌하게 여기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좀 이상하게 보고 말았을 따름이다.
초봉이가 겨우 허리만 나풋이 숙여 뉘게라 없이 인사를 하는 체하고 계봉이를 데리고 대문간으로 나가는 것을, 행화가 해뜩해뜩 태수를 돌려다보고 웃으면서 따라나간다.
태수는 형보의 재치로 일이 무사하게 피어 가슴이 겨우 가라앉는데, 행화가 그들을 따라나가니까 혹시 무슨 이야기나 할까 봐서 대고 눈을 흘긴다.
“잘 가시오, 예…… 내 혼인날 국수 묵으로 가께요”
행화는 바깥대문 문지방을 짚고 서서 작별을 한다.
초봉이는 꼭 와달라는 말을, 말 대신 웃음으로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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