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봉이는 기어코 한마디 조롱을 하고서는 웃어 대다가 다시, 구누나 하는 것처럼 소곤소곤,
“……그리구우, 어디루 가는지 집만 아르켜 주믄 내가 인제 찾아갈게, 응…… 꼬옥 레포할 재료두 있구…….”
승재는 종이쪽에다가 이사해 가는 집 번지를 쓰고, 길목이며 드나드는 문간까지 알기 쉽게 대주면서, 앞으로 밤에 급한 병자가 있는 집에서 부르러 오든지 하거든 그대로 잘 가리켜 주라는 부탁을 얼러서 당부한다.
“내일이라두 봐서 가께? 여섯시쯤…….”
계봉이는 승재가 주소 적어 주는 종이쪽을 받아 들고 훑어보다가 허리춤에 건사를 한다.
“……우리 남서방 우-라- 하하하하…… 내일 기대리우”
계봉이는 승재가 저희 집에 그대로 끄먹끄먹 앉아 있지 않게 된 것이 좋기도 했거니와, 그보다도 승재가 딴 데 가서 있으면 놀러 다니기가 임의로울 테니까, 그래서 더 좋아했다.
이튿날 아침 승재는 병원에 가던 길로 독약 ××××를 조그마한 병에 다가 갈라 넣어 포켓 속에 건사해 두고 태수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더라도 저녁때나 올 줄 알면서도 그는 아침부터 그 저녁 때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열한점쯤 해서는 독약병을 치워 버렸다. 그러나 또, 한시에는 다시 준비를 했고, 세시에는 또 치워 버리고서 짜증이 나서 안절부절 못 하다가 네시 치는 소리가 들리자 또 장만을 해두었다. 이번에는 포켓 속에다가 건사하지를 않고, 진찰실 안의 약병들 틈에다가 끼워 두었다.
네시 반쯤 되어서 태수가, 윗입술을 한편만 벌려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진찰실로 들어왔다.
승재는 반가워서 웃고 맞이했다. 그는 어째서 반가운지는 몰라도 또 그걸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으나, 아무튼 태수가 반가웠다.
“그래, 밤새 좀 어떠십니까”
승재는 태수가 앞에 와서 앉기를 기다려, 의사 된 도리와 습관이 아니라 진정한 관심으로 인사를 한다.
“네, 뭐…… 별로 모르겠어요!”
“그럴 겝니다, 아직…… 그렇지만 더하지만 않으면 차차 나어 갈 테니까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간호부가 주사를 준비하려고 한다. 승재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주사액을 주문하라고, 만일 제중당에 없다거든 다른 데라도 물어 보아서 가져오게 하라고 간호부를 저편 전화 있는 낭하로 쫓아 보낸다.
그것은 ××에 놓는 주사라도 피하주사(皮下注射)요, 효력도 신통찮아 근자에는 잘 쓰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구하기가 어려운 약이요, 승재는 그것을 알고 시킨 것이다.
간호부를 쫓아냈으니 이 방에는 승재 저와, 그래서 꼭 필요한 인간 태수와 단 두 사람뿐이다. 이분이나 삼 분이면 넉넉히 조처를 댈 판이다. 승재는 마침내 일어섰다.
그는 이 제웅이 아무 속도 모르고, 속을 모를 뿐 아니라 오히려 탁 믿고서 무심히 앉아 있는 것이 다시금 귀여웠다.
승재는 간호부가 꺼내 놓고 나간 주사기를 집어 바른손에 들고 트리파플라빈의 이쁘장스럽게 생긴 유리단지를 줄로 꼭대기를 쓸어 따낸 뒤에 주사액을 주사기에다가 쪽 켜올린다. 노오란 주사액이 이십 시시까지 올라왔다.
그 다음에는 아까 약병들 틈에다가 숨겨 두었던 독약 ××××를 집어 왼손에 쥔 채 병마개를 뽑는다.
뽕! 나는 둥 마는 둥 작은 소리건만 승재는 움칫 놀란다. 사실 방 안은 그다지도 교교했었다.
승재는 독약병을 기울여 바른손에 든 주사기의 침끝을 담그고 속대를 천천히 잡아당긴다.
독약은 병 속에서 조금씩 준다. 주사기에는 한 시시, 두 시시, 셋, 넷 차차로 독약이 불어 오른다.
마침내 이십오 시시를 가리킬 때 주사침을 독약병에서 꺼내 든다.
침 끝에서는 가느다란 물방울이 신경적으로 바르르 떨면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승재는 준비가 다 된 주사기를 멀찍이 쳐들고 서서 한참이나 바라본다.
태수는 승재가 돌아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의 커다란 웃도리가 가리어 보이지도 않았거니와, 도시에 거기에는 주의도 하지를 않고 가만히 앉아 기다린다.
승재는 고개를 돌려, 인해 오도카니 앉아 있는 태수를 바라보다가 주사기를 치어다보고 또 태수를 돌려다보곤 한다.
‘이놈을 고 새파란 정맥에다가 쪼옥 들이밀면…….’
‘일 분, 이 분, 삼 분이면 안색이 질리면서 가슴을 우디고 몸을 비틀다가 고만 나가동그라져, 그리고 눈을 뒤쓰고 단말마의 고민을 하다가 이어 딸꼭!’
‘응!’
사람을 굳히겠다는 순간이면서, 승재는 긴장보다도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떠오른다.
승재가 선뜻 돌아서서 제 옆으로 오는 것을 보고 태수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팔을 내놓는다.
승재는 왼손에 쥐고 온 알콜 솜으로 주사 자리를 싹싹 씻는다.
“주먹을 꼬옥 쥐십시오.”
주의를 시키면서 주사기를 뉘어, 침끝을 볼록 솟은 정맥 위에다 누르는 듯 갖다 댄다. 침끝에서 약물이 배어 나와 살에 번진다.
인제는 침끝을 푹 찔렀다가 속대를 뒤로 뽑는 듯하면 검붉은 핏기가 주사기 안으로 배어 든다.
그럴 때에 속대를 진득이 밀기 시작하면 그만이다.
승재는 바늘끝으로 핏대를 누른 채 그대로 잠시 멈추고 있다.
태수는 주사침이 살을 뚫을 바로 직전임을 알고 눈을 스르르 감는다. 언제고 그러하듯이 따끔 아픈 것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간지러워서 못 하던 것이다.
눈을 감은 태수는 인제 시방 바늘끝이 따끔 살을 뚫고 들어오려니 기다린다.
그러나 암만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넉넉 삼십 초는 되었을 것이다. 태수는 기다리다 못해 감았던 눈을 뜨고, 승재는 갖다 댄 바늘끝으로 핏대를 푹 찌르는 것이 아니라, 주사기를 도로 쳐들고 싱겁게 피쓱 웃으면서 허리를 펴고 돌아선다.
태수는 웬일인고 싶어 뻐언히 앉아 승재의 등뒤를 바라다본다.
승재는 주사기의 뒷대를 눌러 약을 내뿜는다. 은침 같은 물줄기가 이쁘게 뻗쳐 나와 리놀륨 바닥에 의미 없는 곡선을 그려 놓는다.
승재는 미상불 태수를 죽이고도 싶었고, 그래서 죽여 보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그는 ‘죽여 보려’고 했을 뿐이지 죽일 ‘작정’을 한 것은 아니다.
신경(神經)의 게임(遊戱)이라고나 할는지, 의사쯤 앉아서 사람 한개 죽이고 살리고 하는 최후의 경계선 그것은 오블라토 한 겹보다도 더 얇게 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얇은 한 겹의 이편 쪽까지만을 애초부터 목표로 정하고서 승재는 독약을 준비하고, 그놈을 주사기에다가 켜올리고, 해가지고서 찬찬히 쳐들고 서서 제웅의 얼굴과 번갈아 빗대 보고 마침내는 혈관에다 갖다 대고 푹 찌를 듯이 숨을 들이마시고, 이렇게 살인행위의 계단을 천연덕스럽게 밟아 올라왔었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절대의 목적지였었다.
그렇게 살인의 한 계단 두 계단을 밟아 올라오고, 오다가 마침내 그 오블라토 한 겹을 남겨 놓고 우뚝 멈춰 서는 신경의 스포츠, 그것은 적실히 유쾌한 긴장일 수가 있었다.
승재는 주사액이 상한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는 것을, 태수는 그대로 속았을 따름이고…….
승재가 새 주사기를 꺼내다가 새 주사액을 따서 주사를 놓아 주니까, 태수는 이런 것도 다 이 병원이 세밀하고 친절해서 그런 거니 생각하고 무척 좋아한다.
태수는 주사를 다 마치고 나가다가 돌아서더니, 문득 그날 바쁘지 않거든 와달라고 제 혼인날 손님으로 승재를 청을 한다.
승재는 속으로 뜨윽해서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어림어림하고 섰다.
“바쁘시기도 하시겠지만, 잠깐 거저…… 허기야 뭐, 결혼식이라구 숭내만 낼 테면서 오시래기두 부끄럽습니다. 아무튼지 인제 청첩두 보내 드리겠지만 부디 구경이나 와주세요. 퍽 영광이겠습니다.”
“네, 되두룩 가서…… 그날 바쁘지만 않으면…….”
승재는 조르는 양이 졸연찮을 눈치 같아서 대답만 그만큼 해두는 것이다.
승재는 여섯시가 되기를 까맣게 기다려 병원을 나와서 어젯밤 새로 든 집으로 가다가, 집 모퉁이 가게 앞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는 계봉이를 만났다.
“남서방!”
“계봉이!”
둘이는 서로 이렇게 부르면서 마주 웃는다. 그들은 오래오랜만에 만나는 것같이 반가웠다.
그러나 겨우 어젯밤에 갈리고 났으니 무슨 짙은 인사야 할 말이 없다.
“그래…….”
“응…….”
둘이는 웃으면서 이런 아무 뜻은 없어도 마음은 통하는 말을 서로 한마디씩 한다.
“잘 왔군!”
“해애.”
“들어가자구.”
“응.”
둘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쳐 둔 쪽대문을 열고 좁은 처마 밑을 한참 지나 승재의 방 앞에 당도했다.
“일러루 오니까 이렇게 성가시어서…….”
승재는 계봉이를 돌려다보고 웃으면서 방문에 채운 자물쇠를 연다.
계봉이는 방으로 들어와서 앉을 생각도 미처 못 하고 방 안을 휘휘 둘러본다. 책은 벌써 전대로 책장 속에다 챙겨 넣었고, 또 몇 가지 안 되는 홀아비 세간이지만, 책상 외에는 구접지근한 것들을 다 오시이레 속에다가 몰아 넣었기 때문에 계봉이 저의 집에 있을 때보다 방 안이 한결 조촐하게 보였다.
방 안이 그렇게 침착할 뿐 아니라, 그새까지 어른들이 있고 해서 부지중 조심이 되던 저의 집이 아니고, 이렇게 단출하게 승재와 만날 수 있는 것이 기쁘기야 하지만 그러나 어쩐지 조심이 되던 저의 집에서처럼은 도리어 임의롭지가 않고, 무엇인지 모를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 장히 거북스러웠다.
왜 그럴까 하고 그는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 그럴 일이 없는 것 같고, 없는데 그래지는 것이 이상하기만 했다.
“왜 이렇게 섰어…… 좀 앉질랑 않구서…….”
승재가 재촉하는 말을 듣고서야 계봉이는 겨우 배시시 웃으면서 섰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승재는 계봉이가 이렇게 온 것이 반가웠고, 다 기쁘기는 해도 별반 할 이야기는 없다.
그야말로 시사를 말한다든지, 학문을 논한다든지야 말도 안 될 처지요, 그렇다면 집안 이야기를 묻는 것밖에 없는데, 집안 이야기도 할 거리라고는 초봉이의 혼인에 대한 것뿐인 걸, 이편이 불쑥 꺼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마 계봉이가 그새처럼 농담을 한다든지, 원 까불어 댄다든지 그랬으면 자연 무엇이고 간에 말거리도 생기고 이 서먹서먹한 기분도 스러질 텐데, 그 애 역시 가끔 무료하게 미소나 할 뿐, 얌전을 빼고 있어서 여간 거북스런 게 아니다.
“무어 과실이나 좀 사다가 둘 것을…….”
한참 만에 승재는 혼자말을 중얼거리고 일어선다. 겸사겸사해서 무엇 입놀릴 것을 사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 잠깐 다녀올게? 곧…….”
“무어? 무얼 사올려구…… 아냐, 난 먹구 싶잖어요!”
계봉이는 부여잡을 듯이 일어선다.
“먹구 싶지 않어두 내가 사주는 거니, 먹어야 하는 법야!…… 그래야 착하지.”
승재가 없는 구변으로 먼저 농을 건네니까, 계봉이도 그제야 어색스럽던 것이 얼마쯤 풀어져서,
“누굴 마구 위협하려 드나!”
“흐응, 그럼 잘못됐네…… 그런데 계봉이가 밤새루 갑자기 얌전해진 것 같으니, 거 웬일일꾸”
“하하하, 남서방 보게두 그런 것 같수”
“응.”
“아이 어쩌나!…… 글쎄 내가 생각해두 웬일인지 그런 것 같아서 지금…….”
“허어! 정말 그렇다면 야단났게”
“심청 허군!…… 남이 얌전해져서 야단이 나요”
“응.”
“어째서”
“난 얌전한 계봉이보다두, 까불구…… 아니 까불구가 아니라 장난하구 응석 부리구 그리는 계봉이가 좋아서.”
“그럼 난 머, 밤낮 어린애기구 말괄량이구 그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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