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화는 그대로 오도카니 서서, 초봉이가 계봉이와 나란히 가고 있는 뒤태를 바라보고 있다. (조금 가다가 계봉이가 해뜩 돌려다보더니, 초봉이한테로 고개를 처박고 무어라고 쌔왈거리는 모양인데, 그건 행화 제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행화는 제중당 전방에서 처음 초봉이를 만나던 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그가 좋았고, 그래서 말하자면 서로 터놓고 친해지기 전에 정이 먼저 갔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자 어저껜지 그저껜지는 마침 제중당에를 들르니까, 웬 낯선 사람이 있고 그는 보이지 않아서 물어 보았더니 며칠 전에 주인이 갈리면서 같이 그만두었다고 해, 그래 심심찮은 동무 하나를 불시에 잃어버린 것 같아서 적잖이 섭섭했어, 하다가 또, 오늘은 생각도 않은 곳에서 뜻밖에 그를 만나, 만났는데 알고 본즉, 그가 바로 초봉이--태수의 아낙이 될 그 색시가 아니냔 말이다.
행화는 그것이 마치, 모르고 구경했던 구경거리를 속내를 알고 나니까 깜빡 신기하듯이 인제야 비로소 일이 자꾸만 희한스럽고 재미가 나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그렇게 희한스럽고 재미가 나고 하기나 할 뿐이지, 가령 탑삭부리 한참봉네 안가 김씨처럼 태수를 놓고 초봉이를 질투하는 그런 마음은 역시 조금치도 우러나지 않았다.
질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역, 김씨가 강짜에 가슴을 쥐어뜯기는 하면서도, 일변 그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도맡아 가지고 일을 성취시켜 주듯이 그러한) 호의나 관심도 또한 생기지를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그것도 아주 담담한 정도의 애석한 생각으로 초봉이가 좀 가엾기는 했다.
행화는 보기에 태수라는 사람이 돈냥 있는 집 자식 같기는 해도, 그저 돈이나 있고 생긴 거나 매초롬하고 했지 그 밖에는 별수없는 사내였었다.
그렇다고 그가 태수를 나삐 여기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도대체 행화는 오입판에서 언뜻 만나 잠시 같이 지내는 사내가 하상 좋고 나쁘고가 없었다.
그처럼 두드러지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편벽되게 나빠하는 것도 아니요, 그런즉 태수가 별수가 있거나 말거나 또한 행화 저한테는 아랑곳이 없는 일이었었다.
그러해서, 그러므로 결코 태수에게 대한 관심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초봉이--제 마음에 좋아서 정이 끌리던 초봉이요, 더구나 저렇듯 손도 댈까 무섭게 애련한 처녀가 이건 마구 주색에 푹 빠져 세월 모르고서 덤벙거리는, 게다가 ××이 부글부글 괴는 천하 난봉이지 별반 취할 것이 없는 그러한 고태수의 아낙이 된다는 것이 그래서 좀 애석하고 가엾다 하는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남의 일 내가 와 알아서…… 쯧!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묵지…….’
초봉이 아우 형제가 휘어진 길 저쪽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을 때 비로소 행화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돌아선다. 마침 태수와 형보가 뭐라고 지껄이던 끝에 킬킬거리고 웃으면서 대문간으로 나온다.
10 태풍
마침내 태수와 초봉이의 결혼식은 별일이 없이 끝났다. 대단히 경사스럽고 겸하여 원만했다.
다만 청하지 않은 아낙네들 구경꾼이 많이 와서 결혼식장의 번화와 폐를 한가지로 끼쳐 준 대신 온다던 태수의 모친이 오지를 않은 ‘사건’이 있었을 따름이다.
정주사네는 중난한 미지의 사부인한테 크게 경의를 준비해 가지고 그를 기다렸던 것인데, 웬일인지 온다던 날짜인 결혼식 그 전날에 까맣게 오지를 않았고, 겨우 당일에야 결혼식장으로 전보만, 다른 축전 몇 장 틈에 끼여서 들이 닿았다. 갑자기 병이 나서 못 내려온다는 것이었었다.
태수는 사실 제가 결혼을 한다는 것을, 애오개의 남의 집 단칸 셋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저의 모친한테 알리지도 않았었다. 전보는 서울서 그의 친구가 미리 서신으로 부탁을 받고서 그대로 쳐준 것이다.
정주사네는 사부인의 그러한 불의의 급병이며 사랑하는 자제의 경사스런 혼인에 참례를 하지 못하는 섭섭할 심경이며를 사부인을 위하여 대단히 심통(心痛)해하는 정성을 표하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결혼식이 무슨 구애를 받을 것은 아니요, 그러므로 대망(大望)의 가장 요긴한 대목의 한쪽이 이지러지거나 할 며리가 없는 것이라 마음은 지극히 편안했었다.
식장에는 승재도 참예를 했다.
승재는 제 가슴의 아픔을 상관 않고 일종 비장한 마음으로, 그 소위 거룩하다 한 초봉이를 위하여 그의 결혼을 축하하려고 참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어그러져, 다시 새로운 슬픔을 한 가지 안고 돌아오지 않지 못했다. 초봉이가 지극히 슬퍼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흰 의복에, 흰 면사포에, 흰 백합꽃에, 이러한 흰빛만의 맨드리가 흰 빛이 지나쳐 창백한 것이며, 단을 향하여 고개를 깊이 떨어트리고 천천히 천천히 다만 항거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듯, 한 걸음 반 걸음 걸어나가는 그 고요함이라니, 그것은 마치 소리 없는 엘레지인 듯, 승재는 그만 어떻게나 슬프던지, 시방 초봉이는 정녕코 눈물을 흘리지 싶어 승재 저도 눈이 싸아 하면서 아프고, 차마 그 다음은 고개를 들어 정시(正視)하지를 못했다.
이게 실상은 옥구구요, 사실 초봉이는 누구나 처녀로 결혼식장에 임하여 경험하듯이, 아무것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 제법 슬퍼하고 기뻐하고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인데, 승재는 부질없이 제 슬픔에 잡쳐 가지고는 그게 초봉이에게서 우러나는 초봉이의 슬퍼함이라는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하고 보니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환멸이다. 물론 그렇다고 승잰들 초봉이가 오늘 결혼식장에서 벙싯벙싯 웃고 명랑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야 아니지만, 그러나 초봉이가 슬퍼하리라는 것도 또한 거기까지는 예측을 못 했던 일이다.
했다가, 초봉이가 신부라고 하기보다도 상청의 젊은 미망인인 듯 초초하고 슬퍼 보여, 그런데 거기에 또 한 가지 생각 못 했던 정경으로는, 초봉이만 빼놓고 그의 가족 전부가 누구 할 것 없이 만족과 기쁨이 싱글벙글 넘쳐흐르는 얼굴들이다.
이때에, 승재는 전날에 머릿속에서 우러러보던 성화는 전연 반대의 것으로 바뀌어, 그림의 전면에는 가족들이 살지고 만족한 여러 얼굴들이 웅기중기 훤하게 드러나고, 초봉이는 저편 뒤로 보일락말락하게 불쌍하게 서서 있던 것이다.
승재는 뜨고 있는 눈에도 선연히 보이는 이 불쾌한 그림을 차마 보지 않으려고 부지중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잔즉 그제는 검은 옷을 입은 ‘희생(犧牲)의 주신(主神)’이 지팡막대로 앞을 가로막으면서,
‘나를 알으켜 내야만 이 길을 비켜 주리라.’
고 짓궂이 수염을 쓰다듬던 것이다.
승재는 식이 끝나기가 바쁘게 자리를 빠져 나왔다. 피로연에는 애초부터 가지 않을 요량이었지만, 만약 누가 잡아 끌기라도 한다면 버럭 성을 냈을 것이다.
그날 바로 그 순간부터 승재는, 마음 아름다운 초봉이를 거룩하다고만 막연히 탄복하고 있지 못하고, 슬픈 양자로 시집가던 초봉이를 슬퍼하는 마음이 더했다.
그리하면서야 비로소 그는, 이 앞으로 초봉이의 운명이 자못 평탄하지가 못하고 어떠한 불행이 약속되어 있거니 하는 막연한 불안이며, 정주사 내외의 그 불순(不純)한 정책 혼인에 대한 반감이며가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아무려나 그렇듯 무사히 혼인을 했고, 다시 무사한 열흘이 지나갔다.
절기는, 유월로 접어들어 여름은 적이 완구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침 새벽은 아직도 좋다.
“뚜우.”
다섯시 반 첫 사이렌 소리에 (맞추듯) 초봉이는 친가에 있을 때의 버릇대로 퍼뜩 잠이 깨어, 깨던 맡으로 벌떡 일어나 앉는다.
일어나 앉으면서 그는 가벼운 경이의 눈으로 방 안을 둘러다본다. 덧문을 닫지 않은 위아래 앞문과 뒤창이 다 같이 희유끄름히 밝으려고 하는데 파아란 덮개를 드리운 전등은 아직 그대로 켜져 있다.
양지로 바른 위에다가 분을 먹여 백지로 덧발라 놓아서, 희기는 희되 가볍지 않고 침착한 바람벽, 윗목으로 나란히 놓인 양복장과 삼층장의 으리으리한 윤택, 머릿장, 머릿장 위에 들뭇하게 놓인 금침 꾸러미, 축음기 등속 모두가 눈에 생소한 것이면서 그러나 어젯저녁에 잠이 들기 전에 보았던 그것들 그대로다.
흐트러진 자리옷에 남색 제병 누비이불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앉았는 초봉이 제가, 보아야 역시 저다. 바로 제 옆에서 자줏빛 제병 처네를 걸치고 누워 자고 있는 고태수가, 장히 낯선 사람은 사람이라도 어젯저녁 잠이 들기 전에 보았던 초봉이 제 남편인 채 그대로다.
이, 다 그대로인 것, 잠을 깨서 보니 오늘도 다 그냥 그대로인 것이 번연한 일이데, 그래도 초봉이는 그것이 이상하고 그리고 신통하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잠이 깨고 난 첫순간에 인식되는 이 현실을, 거진 음성을 내어 중얼거릴 만큼 오늘도 이런가? 하고 가볍게 놀란다.
그러나 그래 놓고는 이어 다음 순간, 오늘도 이런가라니? 그럼 그게 어디로 갔을까 봐? 하고 번연한 노릇을 가지고 그런다고 혼자서 우스워한다.
생각하면 제가 하는 짓이 꼬옥 아기 같고, 그래서 하하하 소리를 내어 웃고 싶다.
잠시 혼자서 웃고 앉았던 초봉이는 이윽고 있다가 이번에는 고개를 꺄웃꺄웃,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이상하다고 태수와 저를 번갈아 보고 또 보고한다.
--결혼이라고 하는 것을 하고서, 어머니 아버지며 동생들은 다 집에 그대로 있는데 나만 혼자 이 집으로 오고, 와설랑은 이 사람--여기서 자구 있는 이 사람--색시 노릇을 하고, 대체 이 사람이 나하고 무엇이길래 나를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그렇게도 이쁜지 밤이나 낮이나 마구 좋아서 죽고, 그리고 나는 또 그걸 죄다 받아 주고…… 이게 다 무엇 하는 짓인지, 가만히 우습기만 하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
--나는 저 너머 둔뱀이 사는 초봉인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네 딸이고 계봉이네 언니고 형주 병주네 큰누나고 한초봉인데, 어째서 초봉이가 이 집에 와서 이 사람하고 이럴꼬 암만해도 초봉이 저는 따로 있고, 시방 저는 남인 것만 같다.
--남…… 그래 남! 나말고서 남…….
초봉이는, 이 제 자신이 남으로 여겨지는 자의식(自意識)의 분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그래, 나는, 정말 초봉이는 시방도 저 너머 둔뱀이 우리 집에 있다. 맨 먼저 일어나서 시방 몽당빗자루로 토방을 쓴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을 짓는다. 안방에서 병주가 사탕을 사달라고 아버지를 졸라 댄다. 어머니는 여태 자고 있는 계봉이더러 부엌에를 같이 나가지 않는다고 나무람을 한다. 짜악 소리 없던 뜰아랫방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만에 뚜벅뚜벅, 승재의 커다란 몸뚱이가 대문간으로 걸어나간다. 때르릉 전화가 온다. 몇 번 만에야 이번은 옳게 승재의 음성이다. 나 승잽니다. 나 초봉이에요. 저어, 무슨 무슨 주사 한 곽만…… 네, 시방 곧…… 조금 더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저편에서도 역시 그러고 싶은지, 잠깐 말이 없다가야 전화를 끊는다. 삐그덕 대문이 열리면서 승재가 뚜벅뚜벅 들어온다. 얼굴이 마주치고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나도 웃으면서 고개를 숙인다…….
환상 가운데의 웃음이 현실로 육체에로 옮아, 방긋이 웃던 초봉이는 문득 옆에서 태수가 잠덧을 하느라고 돌아눕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든다.
웃던 웃음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별안간 괴로운 고뇌가 좌악 얼굴을 덮는다.
얼마 만인지 겨우, 초봉이는 마디지게 한숨을 몰아쉬고는 강잉해 안색을 단정히 고쳐 가지고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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