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공교롭게도 재판은 오래 끌었다. 증인들과 감정인에 대한 개별 심문이 끝나고 노상 거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검사보와 변호인들의 쓸데없는 질문도 끝나자, 재판장은 배심원들에게 증거물을 검사하도록 제의했다. 증거물이란 아마도 굵은 둘째손가락에 끼고 있었으리라고 여겨지는 커다란 꽃무늬 다이아몬드 반지와 독약을 분석한 시험관이었다. 증거물은 하나같이 봉인되어 조그마한 딱지가 붙어 있었다.
배심원들이 그 증거물을 검사하려고 할 때 검사보가 다시 일어나서, 증거물을 검사하기 전에 의사의 검시 보고를 낭독하도록 요구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사건을 처리해서 그 스위스 여자인 가정 교사한테로 가고 싶었던 재판장은 그런 서류의 낭독은 지루하기만 할 뿐 아니라 식사 시간을 지연시키는 결과밖에는 아무 효과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검사보가 낭독을 요구하는 것은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으므로 동의했다. 서기는 서류를 끄집어내어, 문제의 L자와 R자의 발음이 분명치 않은 맥빠진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외부 검진에 따라서 판명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페라폰트 스멜리코프의 신장은 6피트 5인치임.
"꽤 덩지가 큰 사람이었군."하고 상인은 동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네플류도프에게 속삭였다.
2. 외모로 본 연령은 40세 가량으로 추청됨.
3. 시체는 부어 있었음.
4. 살결은 푸르고 군데군데 검은 반점이 있었음.
5. 피부 표면에는 크고 작은 물집이 생겨 있었고, 여러 군데가 터져서 커다란 헝겊 조각처럼 늘어져 있었음.
6. 머리칼은 밤색이고 숱이 많으며, 손으로 만지면 쉽게 빠졌음.
7. 눈은 눈구멍에서 튀어나왔고 각막은 흐려 있었음.
8. 콧구멍, 귀, 구강에서 거품을 품은 혈장성 점액이 스며나오고, 입은 벌어져 있었음.
9. 얼굴과 흉부가 부어올랐기 때문에 목을 거의 식별할 수 없었음.
등등...
이렇게 하여 4페이지 27개 항목에 걸친 검시 보고는 계속되었다. 그것은 이 거리에서 방탕 끝에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부어올라서 썩어간, 보기만 해도 무서운, 크고 뚱뚱한 상인의 시체에 관한 상세한 외부 검시 보고서였다. 네플류도프가 막연히 느끼고 있던 혐오감은 이 검시 보고의 낭독에 의해서 한층 더 커졌다. 카추샤의 생활, 콧구멍에서 흘러나온 혈장성의 액체, 눈구멍에서 튀어나온 눈알, 그녀에 대한 상인의 행동, 이런 것들이 모두 같은 종류의 것으로 생각되어 그는 사방팔방에서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파먹히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외부 검시의 낭독이 겨우 끝났을 때 재판장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이제야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서기는 곧 이어 내부검시 보고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재판장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한쪽 팔꿈치를 세워 턱을 괴고는 눈을 감았다. 네플류도프 옆에 앉아 있는 상인은 간신히 졸음을 참으면서 가끔 가다가 꾸벅거리고 있었다. 피고와 그 뒤에 서 있는 헌병들은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내부 검시에 의해서 판명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두 개골의 표피는 용이하게 두 개골에서 벗겨졌으며, 피하 출혈의 흔적은 전연 인정할 수가 없었음.
2. 두 개골은 보통 두께이며 상처는 없음.
3. 견고한 뇌막의 두 곳에서 변색한 작은 반점이 있으며, 크기는 약 4인치, 뇌막 그 자체는 윤기 없는 창백한 빛을 나타내고 있음.
등등 기타 13개 항목으로 되어 있었다.
그 후에 입회인들의 이름과 서명이 계속되고 마지막으로 의사의 의견서가 첨부되었다. 그 의견서에 의하면 해부할 때 발견되어 조서에 기입된 위 및 장과 신장의 작은 부분에서 볼 수 있는 변화는 술과 함께 위 속으로 들어간 독물 작용이 스멜리코프의 사인이 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결론을 내리는 근거가 되었다. 위장의 상태에서 결정된 변화만으로써는 어떠한 독물이 위 속으로 들어갔는지 단언하기 곤란하지만 이 독물이 술과 함께 위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스멜리코프의 위 속에서 다량의 술이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가 있었다.
"아마 대단한 주호였나 보군." 이내 잠이 깬 상인이 이렇게 속삭였다.
이 조서의 낭독은 약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으나, 그래도 검시보는 만족하지 않았다. 조서의 낭독이 끝났을 때 재판장은 그에게 말했다.
"내장 해부 결과 보고는 낭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아니, 나는 그해부의 결과도 낭독해 주길 요청합니다." 검사보는 비스듬히 몸을 조금 일으키면서 재판장 쪽은 보지도 않고 단호히 말했다. 그 말투에는, 이 낭독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의 권리이며 그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만일 거절한다면 상소라도 하겠다는 기세가 엿보였다. 진한 턱수염에 사람이 좋아 보이고 눈꼬리가 처진 위카타르를 앓고 있는 배석 판사는 피로를 느꼈음인지 재판장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을 읽습니까? 시간만 오래 끌 뿐입니다. 이런 풋내기 관리는 깨끗이 쓸어 버릴 줄은 모르고, 청소하는 데 시간만 잡아먹는단 말이야."
금테 안경을 쓴 배석 판사는 아무 말도하지 않고 어둡고 담담한 눈초리로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아내한테서나 자기 생활에서나 좋은 일이 라곤 아예 기대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보고서의 낭독이 시작되었다.
"188X년 2월 15일, 아래에 서명한 본직은 법의부 위임 제 638호에 의하여."하고 서기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잠을 쫓아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한층 목소리를 돋워서 단호한 어조로 읽기 시작했다.
법의부 검시관보의 입회하에 실시된 내장 검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우측 폐와 심장(6파운드들이 유리병 속에 들어 있음).
2. 위의 내용물(6파운드들이 유리병 속에 들어 있음).
3. 위(6파운드들이 유리병 속에 들어 있음).
4. 간장, 비장, 신장(3파운드들이 유리병 속에 들어 있음).
재판장은 낭독이 시작되자, 배석 판사 중의 한 사람에게 몸을 굽히고 무엇인가 귓속말로 속삭인 다음, 이번에는 또 한 사람의 배석 판사에게 소곤거리며 동의를 얻자, 여기서 낭독을 중지시켰다.
"법정은 보고서의 낭독이 필요없다고 인정합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서기는 서류를 챙기면서 입을 다물었으며, 검사보는 화가 난 듯이 무엇인가 기입하고 있었다.
"배심원 여러분, 증거물을 보셔도 좋습니다."하고 재판장이 말했다.
배심원장과 배심원 중 두세 사람은 일어서서 자기 손을 어디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난처해 하면서 테이블 곁으로 걸어갔다. 반지, 유리, 시험관 등을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상인은 반지를 자기 손가락에 끼어 보기까지 했다.
"흠, 손가락도 꽤 굵은데." 그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서 말했다. "커다란 오이만하군요."
하고 덧붙였다. 독살당한 상인을 옛날 얘기에 나오는 호걸처럼 상상하고, 혼자 재미있어하는
모양이었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B> 부활 (21) -톨스토이- (0) | 2021.07.24 |
---|---|
<R/B> 부활 (20) -톨스토이- (0) | 2021.07.23 |
<R/B> 부활 (18) -톨스토이- (0) | 2021.07.21 |
<R/B> 부활 (17) -톨스토이- (0) | 2021.07.20 |
<R/B> 부활 (16) -톨스토이- (0) | 2021.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