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증거물 검사가 끝나자, 재판관은 심리의 종료를 선언한 뒤, 한시바삐 마무리짓고 싶은 심정에서 휴정 시간도 없어 검사의 논고를 지시했다. 검사보도 인간인 이상 담배도 피우고 싶을 것이며, 또 여러 사람의 사정도 알아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검사보는 자기 자신에게도, 또 남에게도 동정을 베풀지는 않았다. 검사보는 천성이 우둔한데다가 불행하게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 금메달을 탄 외에도 대학에서는 로마법에 규정된 용역권에 관한 논문으로 상을 받기도 해서 형편 없이 자만하고 오만했다. 거기에다 여자 문제에도 성공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그는 형편 없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 자기에게 논고가 허용되었을 때, 그는 벌떡 일어서서 금몰로 수놓은 제복에 짐짓 의젓한 태도를 보이면서, 두 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피고들의 시선을 피해 법정 안을 한 바퀴 훑어본 다음 입을 열었다.
"배심원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재량에 맡겨진 사건은 본관의 견해에 따르자면, 매우 특이한 범죄라고 사료됩니다." 그는 조서와 보고서가 낭독되고 있는 동안에 논고를 준비해 두었다.
검사보의 논고는 그 자신의 의견에 의한다면, 이미 명성을 떨친 여러 변호사들이 한 바 있는 유명한 변론과 마찬가지로 으레 훌륭한 사회적 의의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청객이라야 고작 세 명의 여자-재봉사와 식모와 시몬의 누이동생, 그리고 마부가 한 사람 있을 뿐 이었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저 명성을 떨친 선배 변호사들도 처음에는 다 마찬가지였다. 검사보가 신조로 삼고 있는 것은 항상 자기 직업의 정상에 서 있겠다는 것, 즉 범죄의 심리적 의미를 깊숙이 연구하고, 사회의 병폐를 폭로하겠다는 것이었다.
"배심원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특색 있는, 말하자면 세기말적 범죄를 눈 앞에 보고 계십니다. 이를테면 현대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부패와 참상이라는 특수 양상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심문의 신랄한 정의 아래 뚜렷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검사보는 한편으로 자기 머리로 할 수 있는 멋진 문구란 문구는 모조리 생각해 내려고 애쓰면서, 또 한편으로는-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지만-잠시도 쉬지 않고 줄곧 한 시간 15분 동안을 청산 유수 같은 웅변을 토하려고 애쓰면서, 아주 장황하게 지껄여 댔다.
꼭 한 번 말이 막혀 오랫동안 침을 삼키고 있었으나, 곧 정상을 되찾고 더욱 열띤 웅변을 토하면서 잠시 동안의 정체를 만회하였다. 그는 가끔 배심원들을 바라보고 처음에는 한 다리에, 그러다가 또 다른 다리에 힘을 주면서 다정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하면서, 때로는 수첩을 들여다보며 나지막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바꾸었다가, 때로는 청중과 배심원을 번갈아보면서 큰 소리로 폭로하는 말투로 열변을 토하였다. 다만 뚫어질 듯 그를 지켜보고 있는 세 사람의 피고 쪽으로는 한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논고 속에는 그 당시 그들 사회에 유행되었고, 지금도 과학 지식의 최신 용어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새로운 어휘들이 총망라되었다. 유전성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선천적 범죄성도 나오고, 롬브로소(이탈리아의 형법학자)도, 타르트(프랑스의 사회학자)도, 심지어 데카당스까지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검사보의 정의에 의하면, 상인 스멜리코프는 성실한 성품을 지닌, 육체적으로 힘세고, 뱃심도 큰 러시아인의 전형적인 인물로서 너무나 남을 잘 믿는 관대한 성격 때문에 몹시 타락한 사람들 손에 빠져 그 희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몬 카르틴킨은 농노제의 인습적 산물로서 교육도 못 받고 뚜렷한 사상도 없고 종교조차도 갖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다. 예브피미야는 그의 정부로서 유전의 희생자이다. 그녀에게는 타락된 인간의 여러 가지 특성이 배어 있다.
그러나 범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마슬로바로서, 그 여자야말로 가장 퇴폐적인 최저급형의 한 표본이라고 했다.
"이 여자는,"하고 검사보는 그녀 쪽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 "방금 이 법정에서 유곽의 여주인한테서 들은 바와 같이 교육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읽고 쓸 줄 알 뿐만 아니라, 프랑스 말까지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고아이기 때문에 아마 범죄의 싹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양 있는 귀족 가정에서 양육되었기 때문에 건실한 노동으로 생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은인을 저버리고 욕정에 몸을 맡겼으며, 더구나 그 만족을 채우기 위해 사창가에 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녀는 동료들보다 단연 뛰어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교육을 받았다는 점도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는 배심원 여러분도 이 자리에서 여주인의 말을 들어 아시다시피 최근의 학자들, 특히 샤르코 일파에 의하여 연구되어 최면의 암시력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신비한 기능으로 사람들을 농락하는 비결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이 힘을 이용해서 러시아 민화 중의 용사 가드코처럼 선량하고 남을 잘 믿는 유복한 상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의 신뢰를 얻은 다음, 처음에는 돈을 훔치려고 했던 것이 끝내는 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그 신뢰를 악용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저 친구, 비약이 좀 심한데."하고 재판장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엄숙한 표정을 하고 배석 판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한심한 친구군!"하고 엄숙한 표정의 배석 판사가 내뱉었다.
"배심원 여러분," 하고 검사보는 가느다란 허리를 점잖게 움직이며 계속했다.
"이들 피고의 운명은 여러분의 수중에 달려 있습니다만, 사회 전체의 운명 또한 여러분들의 수중에 쥐어져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판결은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이 범죄의 의의를 잘 이해하시고 마슬로바와 같은 이른바 병리적 존재에 의하여 사회가 받고 있는 위험을 이해하시어, 그 전염을 예방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의 건전 무구한 요소를 감염과 멸망으로부터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기 스스로도 눈앞에 다다른 판결의 중대성에 압도된 것처럼, 검사보는 분명히 자기 자신의 논고에 도취되기라도 한 듯 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논고는 웅변상의 수식을 빼버리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마슬로바는 교묘하게 상인의 신용을 얻은 다음, 돈을 꺼내기 위해 열쇠를 가지고 여관으로 갔으며, 돈을 몽땅 가지려고 했으나 예브피미야에게 발각되자 부득이 그들과 나누어 가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상인과 함께 다시 여관으로 와서 거기서 그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검사보의 논고가 끝나자, 변호인석에서 풀을 먹여 빳빳한 흰 와이셔츠가 가슴을 커다랗게 반원형으로 드러낸 연미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일어서서 힘찬 어조로 카르틴킨과 보치코바의 변호를 시작했다. 그는 그들이 300루블로 의뢰한 변호사였다. 변호사는 이 두사람을 옹호하고 모든 죄를 마슬로바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는 마슬로바가 돈을 훔쳤을 때, 보치코바와 카르틴킨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피고의 진술을 허위하고 부정하면서 독살 용의자인 여자의 진술 따위는 믿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2500루블의 돈은 정직하고 근면한 두 사람이 일해서 번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여관에 묵고 있는 손님들로부터 하루 3루블 또는 5루블씩 팁을 맏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인이 가지고 있던 돈은 마슬로바가 훔쳐서 누구를 주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비정상인 상태에 있었으므로 분실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했고, 어쨌든 독살은 마슬로바 한 사람의 범행이라는 것이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변호사는 카르틴킨과 보치코바를 금전 절도죄에 관해서는 무죄를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설사 그들의 절도죄를 인정한다손치더라도, 독살에는 가담치 않았으며, 또한 범행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론으로서, 변호인은 검사보의 약점을 찌르기 위해, 유저의 주체에 관해 친절히 가르쳐 준 검사보의 고견은 이 문제에 관한 과학적인 설명이 될지는 모르나, 이번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보치코바는 부모를 알수 없는 사생아이기 때문이라고 공박했다.
검사보는 화난 표정으로 뭔가 자기 좋이에 적어 넣고는 경멸하는 듯한 얼굴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엔 마슬로바의 변호인이 일어서서 겁먹은 듯이 말을 더듬으며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슬로바가 절도에 가담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고 오직 그녀는 스멜리코프를 독살한 의도만은 결코 없었으며, 가루약을 준 것도 사내가 잠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역설했다.
그는 여기서, 웅변의 묘미를 보이려고, 마슬로바는 맨 처음 어떤 남자의 유혹에 빠져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인데, 그 남자는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그녀만이 타락의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대국적인 견지에서의 이 개관론을 시도했으나 그의 이런 심리적 영역에 속하는 논조는 너무 지루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그가 남성의 잔인성과 여성의 무력한 지위에 대하여 더듬거리면서 논하기 시작하였을 때 재판장은 그의 입장을 도와 주려는 심정에서 사건의 본질로부터 벗어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 변호가 있은 후, 다시 검사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첫 번째 변호인의 비난에 대해서 유전에 관한 자기의 학설이 옮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설사 보치코바가 부모를 모르는 사생아일지라도 유전학설의 진리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전 법칙은 과학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엔 우리는 유전에서부터 범죄의 원인을 추론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슬로바가 어떤 가상적인(그는 이 가상적이라는 말을 비꼬는 투로 발음했다.) 유혹자에 의하여 타락하게 되었다는 변호인의 가정에 대해서는 모든 자료가 오히려 그녀 자신이 그 많은 희생자의 유혹자였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잘라 말하고 나서 그는 의기양양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 다음에는 피고들의 진술이 허용되었다.
예브피미야 보치코바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며, 일절 관계가 없다고 되풀이하고 모든 책임은 마슬로바에게 있음을 끈덕지게 우겨 댔다. 한편 시몬은 몇 번이고 다음과 같이 되풀이하기만 했다.
"아무리 말씀하셔도 저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저는 결백합니다."
마슬로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변명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재판장이 권해도 그녀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처럼 여러 사람을 둘러보았을 뿐 곧 시선을 떨구곤 큰소리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오?" 갑자기 네플류도프가 지른 이상스런 소리를 듣고 옆 자리의 상인이 이렇게 물었다. 그것은 복받쳐 오르는 흐느낌을 참는 소리였다.
네플류도프는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자기가 현재 놓여 있는 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간신히 참고 있는 흐느낌과 솟구치는 눈물을 신경 쇠약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눈물을 감추려고 코안경을 끼고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었다. 만일 여기 이 법정에서 과거 자기가 저지른 행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자기는 커다란 모욕을 받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그의 가슴속에서 눈뜨기 시작한 양심의 소리를 억눌러 버렸다. 처음에는 이 두려움이 그의 마음속의 무엇보다도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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