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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31)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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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마슬로바는 흰빵 속에서 돈을 꺼내 가지고 지폐 한 장을 코라블료바에게 주었다. 코라블료바는 그 돈을 받았지만 글자를 읽을 줄 몰랐으므로 그저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모르는 게 없는 멋쟁이 여자가 그것이 2루블 50코페이카짜리라고 하니까 그 말을 믿고, 통풍구 속에 감추어 둔 술병을 꺼내러 갔다. 이것을 보자 자기 침대에서 나와 있던 여자들은 제각기 자기 침대로 돌아갔다. 한편 마슬로바는 스카프와 죄수복의 먼지를 털고 침대에 올라가 흰빵을 먹기 시작했다.

"차를 얻어 뒀는데 벌써 식었을 거야." 페도샤가 각반으로 싼 함석 주전자와 잔을 선반에서 꺼내며 말했다.

물은 식어빠지고 함석 냄새가 푹푹 났지만 마슬로바는 차를 잔에다 따라서 흰빵을 먹고 목을 축였다.

"피나시카, 이것 먹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빵을 한 조각 떼어서 자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사내아이에게 주었다.

그러는 동안 코라블료바가 술병과 잔을 가져왔다. 마슬로바는 코라블료바와 멋쟁이 여자에게도 술을 권했다. 이 세 여죄수는 돈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들인 물건을 서로 나누어 가지기도 하여 감방에서는 귀족 계급에 속했다.

몇 분 후 마슬로바는 비로소 생기가 나서 검사보의 흉내를 내며 명랑하게 법정의 재판받던 이야기와 재판소에서 자기를 놀라게 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재판소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었고, 또 자기를 보려고 일부러 죄수 대기실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그치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호송병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러 오는 것이라고 말이에요. 서류가 이러니저러니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서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모양이었어요."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이상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모두들 그럴싸하게 연극을 하던데요."

"그야 물론 그랬을 테지."하고 건널목지기 여자가 말을 가로챘다. 노래하는 듯한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사탕에 모여드는 파리 같은 거야. 다른 것으론 안 되더라도 그것만 보면 오금을 못 쓰거든. 세 끼 밥은 안 먹어도......"

"그런데 말이야."하고 마슬로바가 말을 가로 막았다. "여기서도 붙잡히고 말았어요. 돌아올 때 정거장에서 끌려온 한패를 만났죠. 어찌나 못살게 구는지 아주 혼이 났어요. 다행히 교도관이 와서 쫓아 주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어떤 녀석은 얼마나 끈질기게 달라붙는지 간신히 뿔리쳤다고요."

"어떻게 생긴 녀석인데?" 멋쟁이 여자가 물었다.

"살결이 거무튀튀하고 콧수염이 난 남자였어요."

"필시 그 녀석일거야."

"누군데요?"

"시체그로프야, 방금 지나간."

"시체그로프라니 어떤 사람이죠?"

"시체그로프도 모르다니! 두 번이나 탈옥한 사내야. 이번에도 붙잡혔지만 아마 또 탈옥할 거야. 그는 간수들도 무서워한다고."하고 멋쟁이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남자 죄수들의 편지를 전달해 주고 있었으므로 감옥 안의 사정은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곧 또 달안날 거야."

"아무리 달아난다 해도 우리들을 데리고 가지는 않을 테지."하고 코라블료바가 마슬로바를 향해서 말했다. "변호사가 상소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든? 곧 상소를 해야 할 텐데."

마슬로바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때 빨간머리의 여죄수가 기미투성이인 두 손을 숱이 많고 헝클어진 붉은 머리카락 속에 쑤셔넣고, 손톱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 귀족들에게로 다가왔다.

"카테리나, 내가 가르쳐 주지."하고 그녀는 말을 시작했다. "먼저 판결에 불복한다는 서류를 작성해 내고 그 다음에 검사에게 그것을 알려야 해."

"넌 왜 와서 참견이야?"하고 코라블료바가 그녀에게 화난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술냄새를 맡았나 보지? 위해 주는 척해도 소용 없어. 너 아니라도 할 수 있으니까. 너 같은 건 필요 없어."

"너한테 말한 게 아니니까 쓸데없는 걱정 마."

"왜, 술이 먹고 싶어? 그래서 어슬렁거리며 온 거야?"

"그럼 한잔 주지 그래요."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을 모조리 나누어 주는 마슬로바가 말했다. "저까짓 년에게 주긴 뭘 줘."

"아니 뭐라고!"하고 코라블료바에게 대들면서 빨간머리가 말했다. "네까짓 년은 무서울 게 없어."

"감방 쓰레기야!"

"그건 너야!"

"빌어먹을 년!"

"내가 뭘 빌어먹어? 이 마귀할멈 같은 년이!" 빨간머리의 여자가 악을 썼다.

"썩 꺼지지 못해!" 코라블료바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빨간머리는 더욱 어거지로 대들었기 때문에 코라블료바는 드러난 그녀의 살찐 가슴팍을 떼밀었다. 그러자 빨간머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번개같이 한 손으로 코라블료바가 재빨리 그 손을 잡았다. 마슬로바와 멋쟁이 여자가 그들의 손을 떼 내려고 했으나, 빨간머리는 머리채를 휘어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채를 더 휘어잡으려고 잡은 손을 잠깐 늦추었다. 코라블료바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여서, 한 손으로 빨간머리를 때리고 팔뚝을 물어뜯었다. 딴 여잗들은 싸우는 두 사람 옆으로 모여들어 싸움을 말리느라고 떠들어 댔다. 폐병 환자까지도 달려와서 기침을 해가며, 맞붙어 싸우는 두 여자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고 있었다. 그 때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서 여간수와 남자 간수가 들어왔다. 싸우던 여자들은 서로 떨어졌다. 코라블료바는 땋아내린 희끗희끗한 머리채를 풀어 뽑힌 머리칼 뭉치를 골라 내고 빨간머리는 찢어진 속옷으로 누런 가슴을 여미면서 제각기 변명과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다 알겠어. 모두가 술 때문이야. 내일 교도관한테 말해서 혼쭐을 내 줘야지. 말하나마나야. 술냄새가 나는군."하고 여간수가 말했다. "이봐,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 그렇지 않으면 혼날 테니. 너희들 시비 가려 줄 틈이 없다고. 가서 조용히 좀 있어."

그러나 그 뒤에도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여자들은 오랫동안 서로 욕지거리를 하며, 어떻게 돼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둥, 누구 잘못이라는 둥 서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마침내 간수들이 모두 나가자 여자들도 조용히 자리에 눕기 시작했다. 노파는 성상 앞에 가더니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징역수 년이 둘씩이나 모여 있으니 말이야." 갑자기 빨간머리가 저쪽 끝에서 말끝마다 악의에 찬 욕설을 쉰 목소리로 퍼붓기 시작했다.

"조심해, 또 혼구멍이 나기 싫으면 말이야." 코라블료바도 곧장 욕설로 대꾸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잠잠해졌다.

"말리지만 않았더라면, 네년의 눈깔을 빼 버렸을 거야." 다시 빨간머리가 이렇게 뇌까렸다. 그러자 코라블료바도지지 않고 당장에 응수했다.

더 오랜 침묵이 계속되었다가 다시 욕지거리가 시작되었다. 침묵하는 시간이 차츰 길어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잠잠해졌다.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벌써 코를 고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항상 오랫동안 기도를 드리는 노파만은 여전히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교회 부집사의 딸은 간수가 나가자 곧 일어나 감방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마슬로바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가 징역수가 된 것을 생각했다. 벌써 두 번이나 그런 욕을 들었다. 한 번은 보치코바한테서, 또 한 번은 빨간머리한테서...... 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등을 돌리고 누워 있던 코라블료바가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하고 마슬로바는 조용히 말했다. "별짓을 다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도 있는데 나는 죄도 없이 괴로움을 받아야 하다니."

"걱정할 것 없어. 시베리아에도 사람은 살고 있으니. 그리고 거기 간다고 곧 죽는 것은 아니니까." 코라블료바가 그녀를 위로했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해요. 그런 곳은 싫어요. 그래도 여태껏 편한생활만 해 왔는데."

"그러나 하느님을 거역할 수는 없는 거야." 코라블료바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암 거역할 수는 없지."

"알고 있어요, 할머니. 그래도 정말 괴로워요."

두 사람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들리지, 저 소리? 저건 그 잡년이 지르고 있는 소리야." 코라블료바가 저쪽 침대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마슬로바의 귀를 기울이도록 말했다.

그 소리는 빨간 머리가 흐느껴 우는 소리였다. 그녀는 지금 욕을 먹고, 얻어맞고, 또 그토록 마시고 싶었던 술도 마시지 못한 것이 분해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일생 동안 자기에게는 욕설과 조소와 모욕과 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서러워서 우는 것이었다. 그녀는 페지카 몰로죤코프라는 직공과의 첫사랑을 생각해 내어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으나 그 사랑을 생하니 그 사랑의 종말까지 아울러 생각났다. 그녀의 사랑은 몰로죤코프가 얼근히 술에 취해 돌아와서, 장난으로 그녀의 제일 소중한 급소에 다 황산을 바르고는, 그녀가 아파서 몸부림치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친구들과 웃어 댐으로써 끝장이 나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그것을 상기했다. 그러자 자신이 불쌍해져서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처럼 코를 훌쩍거리고 찝찝한 눈물을 핥으면서 울었다.

"가엾어요."하고 마슬로바가 말했다.

"가엽긴 하지만, 그렇다고 봐 줄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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