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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8)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2.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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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마슬로바는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겨우 감방으로 돌아왔다. 평소에 걷지 않던 다리고 15킬로미터나 되는 자갈밭을 걸어왔으므로 지치고 발이 아픈데다가, 뜻밖에도 중형을 선고받아 맥이 풀렸는데 무엇보다도 배가 몹시 고팠다.

휴식 시간에 호위병들이 그녀 옆에서 빵과 삶은 달걀을 맛있게 먹을 때 군침이 돌았기 때문에 배고프다는 것을 실감했으나, 그들에게 구걸하는 것은 치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세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먹고 싶다는 생각도 나지 않고 다만 피로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뜻하지 않던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혹시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방금 귀에 들어온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는데 자신을 징역수로서 생각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재판관들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이 선고를 받아들인 배심원들의 침착하고 사무적인 표정을 보자, 그녀는 분통이 터져서 법정 안이 떠나갈 듯이 자기는 죄가 없다고 고함을 쳣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으며, 사태를 변경시킬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알자, 자기에 대해서 행해진 이 가혹하고도 놀라운 부정에 대하여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자기에게 이러한 잔인한 판결을 내린 사림이 남자들, 그것도 늙은이가 아닌 젊은 남자들, 언제나 자기를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던 남자들이라는 점이었다. 단 한 사람 검사보만은 아주 다른 기질임을 그녀도 알아차렸다. 그녀가 개정을 기다리면서 죄수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휴식 시간에도 이들 사내들은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문 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방 안에 들어오기도 했으나, 사실은 그저 그녀를 보려고 그랬던 것이다. 바로 이런 사내들이 무엇 때문인지 느닷없이 그녀에게 징역을 선고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그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데 말이다. 처음에 그녀는 울었다. 그러다가 눈물을 거두고 아주 넋을 잃은 사람처럼 죄수실에서 호송을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지금 그녀의 단 한가지 소원은 담배를 피웟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이런 기분에 잠겨 있을 때, 보치코바와 카르틴킨이 들어왔다. 선고를 받은 다음 같은 방으로 끌려온 것이다. 보치코바는 느닷없이 마슬로바에게 욕지거리를 해대더니 '징역수'라고 불렀다.

"기분이 어떠냐? 아무리 수를 써도 빠져나가기는 글렀어. 이 더러운 년아! 자기 잘못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는 느릇이지. 징역을 살게 되면 이젠 몸치장도 못 한단 말이다."

마슬로바는 두 손을 죄수복 소매에 쑤셔넣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볓 발짝 앞의 마룻바닥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면서 다만 이렇게 대꾸했다.

"난 당신들 일에 참견하지 않을 테니, 당신들도 내 일에 참견 말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 않아요?" 그녀는 두세 번 이렇게 되풀이하고는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보치코바와 카르틴킨이 끌려나가고 다음에 간수가 들어와서 3루블의 돈을 그녀에게 주었을 때 카추샤는 비로소 간신히 기운을 차렸다.

"네가 마슬로바냐? 자 이걸 받아. 어떤 부인이 네게 전해 주라는 거야." 그는 돈을 주면서 말했다.

"어떤 부인이신데요?"

"잔말 말고 받아 두면 되는 거야. 네까짓 것들과 얘기할 시간이 어딨어!"

이 돈은 유곽 주인인 키타예바가 보내 준 것이었다. 그녀는 재판소에서 돌아가는 길에 정리를 붙잡고 마슬로바에게 돈을 좀 전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정리는 문제 없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하여 유곽 주인은 통통한 하얀손에서 단추 셋 달린 양가죽 장갑을 벗고 실코 스커트에 달린 뒷호주머니에서 유행되고 있는 지갑을 꺼내가지고 유곽에서 벌어 둔 이식금(利殖金)에서 갓 꺼내온, 상당한 양의 쿠폰 중에서 2루블 50코페이카짜리 한 장을 골라 내어 거기에 20코페이카짜리 은화 두 개와 다시 10코페이카 은화 하나를 더 보태서 정리에게 주었다. 정리는 간수를 불러 그녀가 보는 앞에서 그 돈을 간수에게 주었다.

"꼭 좀 전해 주세요." 하고 키타예바는 간수에게 말했다.

간수는 자기를 못 믿은 것에 화를 내고 그 화풀이로 마슬로바에게 퉁명스러운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마슬로바는 돈을 보고 기뻐했다. 왜냐하면 그 돈은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소망을 풀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담배를 구해서 한 대 피워 봤으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햇다. 그러므로 그녀의 온 신경은 그저 담배 한 대만 피웟으면 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미칠 듯이 담배가 피우고 싶었으므로 다른 방에서 복도로 흘러나오는 담배 냄새를 맡자 그 공기를 마구 들이마셨다.

그러나 다시 그녀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것은 그녀를 돌려 보내야 할 서기가 피고의 일은 잊어버리고 변호사 한 사람을 상대로 금지된 논문에 관한 얘기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으며, 그러다가 마침내 논쟁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과 늙은이 몇 사람이 재판이 끝난 뒤에 그녀를 보러와서는 뭐라고 서로 수군대고들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윽고 4시가 넘어서야 그녀의 퇴출 허가가 나왔으며, 니즈니 노브고로드 출신과 추바시 출신의 두 호위병이 재판소 뒷문으로 그녀를 이끌고 나왔다.

재판소 현관문을 나오자마자 그녀는 20코페이카를 주면서 빵 두 개와 담배를 사달라는 부탁을 했다. 추바시인은 웃으며 돈을 받고 말했다.

"그래, 사다 주지." 그리고 실제로 정직하게 담배와 빵을 사왔으며 거스름돈까지 갖다 주었다.

그러나 걸으면서 피울 수는 없었으므로 마슬로바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싶은 소망을 안고 감옥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문 앞까지 왔을 때, 백 명쯤되는 죄수가 기차에 실려 도착했다. 좁은 통로에서 그녀는 이 대열과 부딪쳤다.

죄수들-턱수염을 기른 사람, 수염을 깎은 사람, 젊은 사람, 늙은 사람, 러시아 사람, 다른 종족의 사람, 그 중에는 머리를 반쯤 깎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철거덕거리는 쇠고랑 소리와 말소리와 코를 찌르는 시큼한 땀 냄새로 통로를 가득 메웟다. 죄수들은 옆을 지나면서 모두 힐끔힐끔 그녀를 쳐다보았다. 개중에는 옆으로 다가와서 그녀의 몸을 건드려 보고 가는 자도 있었다.

"여어, 굉장히 예쁜데."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아가씨, 안녕하슈!"또 한 사람이 마슬로바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말했다.

뒷머리를 빡빡 깎고 면도질을 한 얼굴에 유별나게 콧수염만을 기른 시커먼 머리의 한 사나이가 쇠고랑을 철거덕거리면서 달려들어 그녀의 몸을 껴안았다.

"이봐, 옛 애인을 몰라 보기야? 너무 시치미떼지 말라고!" 마슬로바가 떼밀자 그는 이빨을 드러내고 눈을 부릅뜨며 고함쳤다.

"이놈들, 뭣들 하는 거야?"하고 교도소 부소장이 뒤에서 달려와서 소리 쳤다. 죄수는 몸을 움츠리고는 잽싸게 물러섰다. 부소장이 다짜고짜 마슬로바를 야단쳤다.

"넌 왜 이런 데서 우물거리는 거야?"

마슬로바는 재판소에서 이제 막 끌려오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주 녹초가 되도록 지쳐 버렸으므로 말도 하기가 귀찮았다.

"법정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하고 고참 호위병이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걸어나와 이렇게 말하면서 경례를 붙였다.

"그럼 빨리 간수장에게 인계해야잖아. 이런 데서 이렇게 추태를 부려야되나!"

"네, 알았습니다."

"소콜로프! 인계받아라!"하고 부소장이 외쳤다.

간수장이 걸어와서 마슬로바의 어깨를 화난 듯이 툭 치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여자 감방 복도로 끌고 갔다. 복도에 들어서자 그녀의 온 몸을 만지작거리며 구석까지 일일이 검사를 했으나 아무것도 없으니까(담뱃갑은 빵속에 쑤셔녛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침에 그녀를 데리고 나왔던 그 감방으로 그녀를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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