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네플류도프는 이 첫 면회 때부터 카추샤가 자기를 보고 그녀에게 봉사하려는 자기의 결심과 참회의 말을 듣고 나면 반드시 기뻐하고 감동하여 다시 그 옛날의 카추샤로 되돌아가 주리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옛날의 카추샤는 존재하지 않고, 지금은 타락한 마슬로바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기겁을 했다. 이 사실을 그를 놀라게 했고 무섭게 했다.
그를 특히 놀라게 한 것은, 마슬로바가 자기의 처지, 이를테며 죄수로서의 처지가 아니라(그 점에 있어서는 그녀도 부끄러워했다.) 매춘부로서의 처지가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만족을 느끼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인간이란 누구든지 전심으로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이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가령 인간의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의 일이 중대하고 훌륭한 일인 것처럼 보이도록 일반적으로 인생에 대한 관념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도둑이나 살인자나, 간첩이나 매춘부와 같은 사람들이 자기의 직업을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반대인 것이다. 운명이나 자기의 죄악이나 또는 과실에 의해서 특정한 입장에 처한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그 입장이 부정한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입장이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것으로 보이도록 인생관을 채택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관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채택한 인생관과 그들 자신의 생의 이념에 있어서의 자기의 위치를 인정해 주는 그러한 사회와 함께 혼합된 것을 옹호하려고 한다.
자기의 교묘한 솜씨를 자랑하는 도둑이나, 음탕함을 자랑하는 매춘부나, 잔인함을 자랑하는 살인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이런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나 환경이 좁고 한정되어 있고, 우리 자신은 그 밖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는 데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자기의 재산, 즉 약탈을 자랑하는 부자, 자기의 승리, 즉 살인 행위를 자랑하는 장군, 자기 권력, 즉 폭압을 자랑하는 위정자 등등. 우리들이 이런 사람들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왜곡하는 행위를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의 사회가 더 크고, 우리들 자신도 그 사회에 속해 있지 때문인 것이다.
마슬로바의 마음속에서도 자기의 생활과 사회에 있어서의 자기의 위치를 대한 견해가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징역을 선고받은 매춘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 자신을 정당한 것으로 믿고 있었고 자기의 처지를 남에게 자랑까지 할 수 있는 인생관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녀의 철학에 따르면 모든 남성의 가장 중요한 행복이란---늙은이, 젊은이, 중학생, 장군, 교양이 있는 자, 교양이 없는 자, 그 밖의 누구를 막론하고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매력 있는 여자와의 성행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남성은 모든 일로 바쁜 체하고 있지만 사실은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대자인 그녀는 매력이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느냐 않으냐는 오로지 자기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필요하고도 중대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의 생활 전체가 이 견해의 정당성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10년이란 세월을 그녀는 어디를 가건 네플류도프와 나이 많은 경찰서장을 비롯해서 감옥의 간수에 이르기까지 사내란 사내는 모조리 그녀를 탐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를 탐내지 않는 사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그녀의 눈으로 볼 때 전세계는 정욕의 폭풍에 휩싸여 사방 팔방에서 그녀를 노리고 기만, 폭력, 간계 등 모든 수단으로 그녀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마슬로바는 이런 식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눈으로 볼 때 그녀의 가치란 인간의 찌꺼기가 아니라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마슬로바는 이런 인생관을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존중하고 있었다. 또한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인생관을 바꾸게 되면 그것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확보되고 있던 그녀의 가지를 상실케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의 자기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기와 똑같이 인생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자기를 딴 세계로 끌어 내려고 하는 것을 눈치채자, 그가 데려가려는 그 세계로 들어가면 지금까지 자기에게 자부심과 자존심을 불러일으켜 주던 인생에 있어서의 지금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기에 그녀는 네플류도프의 생각에 반항하였던 것이다. 역시 같은 이유로 그녀의 처녀 시절의 추억도, 네플류도프와의 첫사랑의 추억도 몰아 내려고 했다. 그러한 추억은 현재의 인생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으므로 그녀의 기억으로부터 말살되고 있었다. 아니, 말살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기억의 한 구석에 손도안 댄 채 보존되고 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꿀벌이 자기들의 노동의 대가가 없어질까 봐 유충의 집을 밀봉해 버리고 완전히 격리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까닭으로 지금의 네플류도프는 그녀에게 있어선 한때 그녀가 순진한 처녀의 마음으로 사랑했던 사나이가 아니라, 오직 한 사람의 돈 많은 사나이에 불과했다. 이용할 수도 있고, 당연히 이용해야만 하는 사나이였으며, 또한 모든 사내를 대할 때와 같은 관계밖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는 그런 사내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하고 사람들과 함께 출구로 걸어나오면서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결혼할 작정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어코 그녀와 결혼하겠다.'하고 그는 다짐했다.
출구에 서 있던 간수들은 이번에도 역시 죄수가 밖으로 나가거나 면회자가 감옥 안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려고 사람들을 내보내면서 두 손으로 세고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이번에도 등을 얻어맞았으나 모욕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얻어맞았다는 사실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B> 부활 (45) -톨스토이- (0) | 2021.08.20 |
---|---|
<R/B> 부활 (44) -톨스토이- (0) | 2021.08.19 |
<R/B> 부활 (42) -톨스토이- (0) | 2021.08.17 |
<R/B> 부활 (41) -톨스토이- (0) | 2021.08.16 |
<R/B> 부활 (40) -톨스토이- (0) | 2021.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