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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44)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19.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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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네플류도프는 자기의 외적 생활 양식을 바꾸어 보려고 마음먹었다. 커다란 자기의 집을 세주고 하인들을 내보낸 다음, 여관으로 옮겨가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그라페나 페트로브나는 겨울까지는 생활 양식을 바꾼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며, 여름철에는 집을 세들 사람도 없고, 또 어디서 생활을 하든지 가구와 도구는 있어야 한다고 우겨댔다. 그래서 외적 생활을 변경하려던 네플류도프의 모든 노력은(그의 대학생과 같이 검소한 생활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수포로 돌아가 아무런 결과도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전과 똑같이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 안에서 모직물이나 모피류의 일광 소독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문지기나 그의 조수 코르네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 일을 도왔다. 처음에는 아직껏 아무도 사용해 본 일이 없는 예복과 괴상한 모피 의복들을 들어내다 줄에 널고, 그 다음에는 융단과 가구를 내놓고 문지기와 조수가 우람한 팔뚝을 걷어붙이고 장단을 맞추어 가면서 열심히 먼지를 털었다. 모든 방에서는 나플탈렌 냄새가 잔뜩 풍겼다. 뜰을 돌아 보기도 하고 창에서 내다보기도 하던 네플류도프는 물건이 엄청나게 많은 데에 놀랐고, 또 그것들이 아무 쓸모 없는 것임에 더욱 놀랐다. 이런 물건들의 유일한 용도와 목표라는 것은, 아그라페나 페트로브나, 코르네이, 문지기, 그의 조수, 식모에게 운동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일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마슬로바의 사건이 해방되기 전엔 생활 양식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하고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그녀가 석방되든지, 유형이 결정되어 내가 그 뒤를 따라가게 되면 모든 것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네플류도프는 변호사 파나린과 약속한 날에 그의 집에 찾아갔다. 커다란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창문에는 호화로운 커튼이 걸려 있었으며 대체로 벼락부자가 된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를테면 불로 소득으로 얻은 돈이라도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급 가구로 장식된 웅장한 저택이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 네플류도프는 마치 병원의 대기실처럼 지루함을 잊게 하려는 잡지가 놓여 있는 테이블 주변에서 침울한 얼굴을 하고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소송 의뢰인을 보았다. 높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변호사의 조수가 네플류도프를 보자 곁으로 다가와서 인사하고 곧 선생님께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수가 사무실 문까지 채 가기도 전에 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혈색 좋은 얼굴에 짙은 콧수염을 기르고 새 양복을 입은 뚱뚱한 중년 남자와 바로 이 집 주인 파나린의 떠들썩한 큰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두 사람의 얼굴에는 뭔가 부정한 돈벌이를 하고 난 인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정이 감돌고 있었다.

"그건 당신이 나빠." 파나린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천국에는 가고 싶은데, 죄가 많아 안 되겠지?"

"그래, 다 알고 있다네."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 공작님, 어서 들어오십시오." 파나린은 네플류도프를 보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가는 상인에게 인사하고, 네플류도프를 빈틈없이 꾸민 자기 사무실로 안내했다.

"자, 담배피우시지요." 변호사는 네플류도프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면서 방금 결말을 본 사건의 성공이 가져다준 자랑스런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실은 마슬로바 사건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네 네, 곧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본 땅딸보는 정말 골치덩이리랍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그자를 보셨지요? 그래도 재산을 1200만이나 가지고 있죠. 그런데 그 작자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25루블짜리 지폐 한 장이라도 얻어 낼 수 있다고 생각되면 입으로 물고 뜯어서라도 뜯어갈 놈입니다."

'그 사내가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한다고 하지만 그러는 너도 25루블 짜리 지폐라는 엉터리 같은 말을 쓰고 있지 않는가?'하고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네플류도프와 자기와는 같은 계급에 속하지만 여기에 모여드는 다른 의뢰인들은 자기와 계급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려는 이 무례한 사내에게 네플류도프는 참을 수 없는 혐오를 느꼈다.

"정말 그자한테는 질렸습니다. 무서운 악질이죠. 한 마디 따끔하게 쏘아 주려고 했습니다만." 변호사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에 대해 변명이나 하듯이 말했다. "그런데 당신의 사건 말입니다. 내가 일건 서류를 자세히 조사해 보았습니다만 투르게테프가 표현한 대로 '그 내용에는 찬성할 수 없다.', 즉 변호사가 돼먹지 않아서 상소의 이유를 모조리 놓쳐 버리고 말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결정하셨습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변호사는 때마침 들어간 조수에게 말했다.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내가 말한 대로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말이야."

"싫답니다."

"그럼 그만두게."하고 변호사가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쾌활한 표정으로 떠들더니만 점차 침울하고 화난 표정으로 변했다.

"모두들 변호사는 그저 돈만 뜯어먹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는 다시금 아까와 같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실은 내가 부당하게 파산 선고를 받은 자를 면소시켜 주었더니, 요즘은 그런 작자들이 밀어닥친답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모두 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작자가 말했듯이 우리들은 가슴의 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건, 아니 당신이 관심을 갖고 계시는 사건은,"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아주 졸렬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상소할 만한 좋은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상소할 수는 있어서 이렇게 서류를 작성해 놓았습니다."

변호사는 새까맣게 써넣은 서류를 집어서 흥미도 없고 형식적인 대목은 어물어물 넘기고, 그 밖의 대목은 억양을 붙여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대심원 형사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상소. 모년 모월 모일 모 재판소에서 성립된 판결에 의하여 마슬로바라는 여자는 상인 스멜리코프를 독살했다는 것이 유죄로 인정되어 형법 제1454조에 의거하여 ......징역의 선고를 받았음."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끊더니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나 있어서 자기가 작성한 문장에 대하여 흐뭇한 듯 자기 도취에 빠져들었다.

"이 판결은 지극히 중대한 사법상의 위반과 착오의 결과이므로,"하고 그는 힘을 주어 가면서 계속했다. "마땅히 취소되어야 함. 첫째로 본건 심의 중 스멜리코르의 내장 해부에 관한 보고서 낭독이 재판장에 의해서 중지되었음. ......이것이 그 이유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낭독은 검사가 요구했습니다." 네플류도프는 놀라서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변호사도 같은 요구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낭독은 전혀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찌 되었던 상소의 이유는 됩니다. 다음은......둘째로 마슬로바의 변호인은,"하고 그는 계속했다. "변론 도중 마슬로바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녀가 타락한 내적 원인을 언급하려 하자, 이것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하여 재판장의 제지로 중지되었음. 그러나 형사 사건에 있어서는 전부터 대심원에서 누누이 지적한 바와 같이 피고의 성격과 일반적인 도덕적인 인격에 관한 설명은 형사상 중대한 의의를 갖는 것임.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하고 그는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변호사의 변론이 너무 서툴러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걸요." 네플류도프는 더욱 놀라면서 말했다.

"그야 물론, 어리석은 풋내기니까 제대로 말도 못했을 겁니다." 파나린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이것도 상소의 이유가 됩니다. 그럼 그 다음으로는 ......셋째로, 재판장은 결론에 있어서 형사소송법 제 81조 제 1항의 필연적인 요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죄의 개념을 규정하는 법률상의 모든 요소를 배심원에게 설명하지도 않았고, 또 마슬로바가 스멜리코프에게 독약을 준 사실을 승인하더라도, 그녀에게 살해의 의사가 전혀 없을 때는 그 행위만으로써 그 여자에게 죄를 돌릴 것이 아니라, 그럴 경우에는 형사상의 범죄가 아니라 다만, 그 여자로서는 뜻밖에 상인의 사망을 초래케 한 과실에 불과한 것이며, 그 행동에 대해서만 죄를 인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심원들에게 주의하지 않았음. ......이것이 제일 중요한 점입니다."

"네, 우리들도 곧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과실이었습니다."

"끝으로......넷째로,"하고 변호사는 계속했다. "마슬로바의 유죄에 관한 법정의 자문에 대한 배심원의 답신서는 그 자체에 있어서 명백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 마슬로바는 오로지 탐욕 때문에 고의로 스멜리코프를 독살한 것으로 기소되었으며, 그 살해의 유일한 동기가 금전욕에 있다고만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그 답신서에서 마슬로바는 절도의 의사가 있었다는 것과 귀중품을 절취하는 데 참가하였다는 것을 부정하였음.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피고에게는 살해의 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재판장의 불완전한 결론으로 말미암아 생긴 오해에 의해서, 그점을 답신서에 충분히 표현하지 않은 것이 명백함. 따라서 이와 같은 배심원의 답신은 현사소송법 제 816조 및 제808조의 적용을 요함. 즉, 재판장은 배심원에 대하여 그들이 범한 오류를 설명하고 답신서를 반환하여 피고의 죄의 유무에 관해 새로 심의케 하고, 그 질의에 대한 또 다른 답신을 제출토록 해야 함."하고 파나린은 읽어 내려갔다.

"그럼 어째서 재판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나도 역시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파나린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대심원이 이 잘못을 수정하겠군요?"

"그것은 그 때의 담당자들에게 달렸죠."

"담당자들이라니요?"

"범죄자 노역장에 보낸 담당자지요. 그래서 또 이렇게 써두었습니다. 이 같은 판결은,"하고 그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마슬로바에게 형벌을 가하는 권리를 법정에 부여하지 않고, 또 그녀에게 형법 제 771조 제 3항을 적용하는 것은 우리 형법의 근본 원칙에 대한 명백하고 중대한 위반임. 상술한 이유로써 형사소송법 제 909조, 제910조, 제912조에 의거하여......원 판결을 파기하고, 또한 본건을 재심하기 위하여 재판소의 다른 부로 이관할 것을 청원하는 바임.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러나 모든 걸 대심원 담당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지요. 아는 사람이 있으시면 힘써 보세요."

"좀 아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그러시다면 한시라도 빨리 서두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모두들 치질을 치료하러 떠날겁니다. 그렇게 되면 석 달은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래도 성공하지 못하면 최후 수단으로 황제에게 청원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만, 그때에 또 도와 드리기로 하지요. 배후 운동이 아니라 청원서 적성에 대해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례금은......."

"그것은 비서가 정서한 상소장을 내드릴 때 말씀드릴 것입니다."

"한가지 더 물어 보겠습니다. 나는 검사에게 서 마슬로바에 대한 면회 허가증을 받고 그 여자를 면회하러 갔습니다만, 감옥에서 듣기에 보통 면회날이 아니 날에 면회실 이외의 곳에서 면회를 하려면 지사의 허가가 꼭 필요하다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네, 그럴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사가 없어서 부지사가 직무를 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형편없는 인간이라서 그자를 상대로 일이 될까 모르겠군요."

"마슬레니코르 말입니까?"

"네."

"그 사람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네플류도프는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이 때 아주 못생긴, 들창코에 뼈만 앙상하여 누런 얼굴에 작달만한 여자가 총총걸음으로 방에 들어섰다. 변호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자기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듯이 노란색과 푸른색의 비로드와 비단으로 몸을 휘감은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숱이 적은 머리를 지져 붙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뛰어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키가 크고 얼굴이 검은 비단깃의 프록 코트를 입고 흰 넥타이를 맨 남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왔다. 그는 작가였는데 네플류도프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나톨리!"하고 그녀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 "내 방으로 가십시다. 지금 세묜 이바노비치가 자작시를 낭독하시겠다니까요. 당신도 가르신(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작가)를 낭독해 주셔야겠어요."

네플류도프가 나가려고 하던 참에, 변호사의 아내는 남편과 소곤거리더니 곧 그에게 말을 걸었다.

"잘 오셧어요, 공작님.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소개는 필요 없겠군요. 저희들의 문학회에 와 주시겠어요? 정말 유익하답니다. 아나톨리도 낭독을 썩 잘하고요."

"어떻습니까, 나도 여러 가지 면에서 재주가 많지요?" 변호사는 두 팔을 벌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매력적인 여자에게는 아무런 반대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아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슬프고 엄숙한 표정을 하고 지극히 정중한 태도로 변호사 부인에게 초대해 준 데 대한 감사를 한 다음, 시간을 핑계로 거절한 뒤 응접실을 나왔다.

"어쩌면 저렇게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변호사의 아내는 그가 나가자 이렇게 말했다.

대기실에서 조수가 네플류도프에게 미리 마련된 상소장을 내주었다. 사례금에 대해 묻자, 파나린이 천 루블로 정했다고 말한 다음, 파나린을 다른 때 같으면 이런 사건을 맡지 않으나 이번엔 특별히 네플류도프를 위해 맡았다고 설명했다.

"이 상소장에는 누가 서명을 합니까?"하고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피고 자신이 하는 겁니다만 그러기가 어려우시다면 본인의 위임장을 받아 파나린이 대신해도 무방합니다."

"아니, 그렇다면 내가 피고한테 가서 직접 서명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지정된 면회일 전에 카추샤를 만나게 될 기회가 마련된 것을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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