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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41)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1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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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러나 여기에 온 목적만은 수행해야 한다.'고 그는 자기 자신을 격려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관리를 찾았다. 그러자 장교 견장을 달고 콧수염을 기른, 작달막한 키의 야윈 사내가 면회자들의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음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역시 긴장한채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집합소에서 계실 때 말씀하실 걸 그랬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만나시렵니까?"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입니다."

"정치범입니까?"하고 부소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저 보통......."

"그럼 선고를 받았나요?"

"네, 그저께 선고를 받았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에게 호의를 보이는 듯한 이 부소장이 기분을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여죄수라면, 이리로 오십시오." 부소장은 네플류도프의 외모와 보아 정중히 대우해야 할 인물이라고 판단을 내렸는지 이렇게 말했다. "이봐 시도로프!"하고 그는 가슴에 여러 개의 훈장을 단 턱수염이 많은 하사를 불렀다. "이분을 여죄수 면회실로 안내해 드리게."

"네, 알겠습니다."

이 때 철망 옆에서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곡 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울어댔다.

네플류도프는에게는 모든 것이 다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이 건물 안의 잔인한 모든 행위를 실천자인 부소장이나 간수장에 대해서 은혜를 느끼고, 또한 감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간수장은 네플류도프는를 남자 죄수 면회실에서 복도로 나가 맞은편에 있는 문을 열고 여죄수 면회실로 데리고 갔다.

이 방도 남자 죄수 면회실과 같이 두 겹의 철망으로 둘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그 규모와 면회자들이나 죄수들의 수에 있어서 남자 죄수 면회실보다 훨씬 적었다. 그러나 아우성과 떠들어 대는 소리는 남자 죄수 면회실과 다를 바 없었다 여기서도 철망 사이를 간수가 거닐고 있었다. 이 곳 감독은 소매와 금줄을 두르고 암청색 파이핑을 단 제복을 입고 남자 간수와 같이 혁대를 찬 여간수였다. 이 곳도 역시 남자 죄수 면회실처럼 사람들이 철망 양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쪽에는 하얀 죄수복을 입기도 하고 자기 옷을 입기도 한 여죄수들이 있었다. 철망은 사람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잘 들리게 하려고 님의 머리 위로 발돋움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나 그 차림새가 모든 여죄수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머리칼이 흩어진 말라빠진 집시 여자였다. 그녀는 곱슬곱슬한 머리에서 스카프가 벗겨진 채 철망 저쪽 방 한복판의 기둥 옆에 서서 푸른색 프록코트 아래에 단단하게 허리띠를 졸라맨 집시 남자에게 재빠르게 손짓을 해 대면서 무엇인가 소리지르고 있었다. 집시 남자 옆에는 한 병사가 마룻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여죄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턱수염을 기르고 짚신을 신은 젊은 농부가 철망에 달라붙어서 울음을 참느라고 얼굴을 붉히고 서 있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금발의 한 여죄수는 파란 눈으로 상대방을 보면서 농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페도샤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들 옆에는 남루한 옷을 입은 남자가 머리를 흐트러뜨린 얼굴이 넓적한 여자와 함께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여자가 둘, 그리고 남자, 그리고 또 여자가 있었고, 그들 앞에는 여죄수가 한 명씩 마주 서 있었다. 그런데 마슬로바는 그 속에 없었다. 그러나 맞은편 여죄수들 뒤에 한 명의 여자가 서 있었는데, 네플류도프는 곧 그 여자가 카추샤임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별안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바야흐로 운명을 결정할 최후의 순간이 닥쳐온 것이다. 철망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시 틀림없는 그녀였다. 카추샤는 파란 눈의 페도샤의 뒤에 서서 살며시 미소를 띤 채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카추샤는 그저께처럼 죄수복이 아닌 잘록하니 허리를 졸라매서 가슴을 도톰하게 한 흰 윗옷을 입고 있었으며, 그 스카프 밑으론 법정에서 보던 것과 같이 까만 곱슬머리가 비어져나와 있었다.

'드디어 모든 것이 결정되는구나.'하고 네플류도프는 생각했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 혹시 그녀가 먼저 내게 와 주지는 않을까?'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에게 와 주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인 클라라가 온 줄로만 알았고 이 남자가 자기를 면회하러 온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누구를 면회하시렵니까?" 철망 사이를 거닐던 여간수가 네플류도프의 곁으로 걸어와서 이렇게 물었다.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입니다." 네플류도프는 큰마음 먹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마슬로바, 면회!"하고 여간수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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