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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봐도 좋습니까?"
"좋고 말고요, 원하신다면." 부소장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간수에게 뭔가를 묻기 시작했다. 네플류도프는 구멍 하나를 들여다보았다. 까만 턱수염을 기르고 키가 큰 젊은 사나이가 셔츠 바람으로 재빨리 감방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문 쪽에서 발소리가 나자 그 사나이는 힐끗 돌아다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네플류도프는 다른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안에서도 역시 이쪽을 보고 있던 놀란 듯한 커다란 눈이 네플류도프의 눈과 마주치자 그는 곧 물러섰다. 네플류도프는 세 번째 감방에서 무척 키가 작은 사나이가 몸을 구부리고 겉옷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네 번째 감방에는 얼굴이 넓적하고 창백한 사나이가 머리를 푹 숙이고 무릎에다 팔꿈치를 괴고 앉아 있었다. 발소리를 듣자 그 사나이는 머리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았다. 얼굴 전체에는, 특히 그 커다란 눈에는 온갖 희망을 상실한 슬픔이 어려 있었다. 그는 누가 자기의 감방을 들여다보든 말든 그것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네플류도프는 무서워졌다. 그는 들여다보는 것을 중지하고 메니쇼프가 있는 21호 감방으로 갔다. 간수는 자물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목이 길고 몸집이 좋은, 선량해 보이는 둥근 눈과 짧게 턱수염을 기른 젊은 사나이가 나무 침대 옆에 서 있다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른 겉옷을 걸치고 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의심이 가득하고 놀란 표정으로 네플류도프에게서 간수로, 간수에게서 부소장에게로 잽싸게 시선을 돌리는 이 선량하고 동그스름한 눈에 네플류도프는 몹시 놀랐다.
"이분이 네 사건에 대해서 물어 보시겠단다."
"고맙습니다."
"나는 당신의 사건에 대해서 남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지만," 네플류도프는 쇠창살이 끼여 있는 더러운 창을 향해 감방을 가로지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한테서 직접 듣고 싶어서 온 거요."
메니쇼프도 창가로 다가와서 곧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소장을 흘끔흘끔 보고 겁을 내면서 이야기를 하더니 차차 대담해졌고, 이윽고 부소장이 무슨 용무로 복도로 나가 버리자 더욱 대담해졌다. 그의 말하는 태도나 어조로 보아서 지극히 순박하고 선량한 평범한 농부 같았으며, 따라서 이런 이야기를 감옥에서 수치스런 죄수복을 입은 사람의 입으로부터 듣는다는 것이 네플류도프에게는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다. 네플류도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방을 둘러보고 짚이 깔린 낮은 침대며, 굵은 쇠창살이 낀 창이며, 더러워지고 젖어서 끈적끈적한 벽이며, 죄수화에 죄수복을 입은 초라하고 불행한 농부의 가련한 얼굴과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점점 더 마음이 우울해졌다. 이 선량해 보이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정말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단지 모욕을 주기 위해서 그를 잡아다가 죄수복을 입히고, 이러한 무서운 곳에 가두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도 선량한 얼굴을 한 사람이 말하는 참된 이야기가 기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했다. 젊은이는 결혼한 후 곧 마을의 여인숙을 겸한 술집 주인에게 아내를 빼앗겼다. 그는 백방으로 법에 호소했다. 그러나 술집 주인은 관리들을 매수했는지라 언제나 주인이 승소했다. 한번은 아내를 억지로 끌어왔으나 아내는 이튿날 도망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러 갔었다. 그러나 술집 주인은 아내가 없다고 하면서(그는 들어가면서 아내의 모습을 언뜻 보았다.) 꺼지라고 했다.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술집 주인과 일꾼들이 합세하여 그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마구 때렸다. 그 이튿날 술집에서 불이 났다. 그들 모자는 방화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 그는 방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때에는 자기 집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 정말 방화하지 않았나?"
"방화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그 악당이 자기네 집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듣기론 얼마 전에 보험에 들어 놓았다는 것이에요. 그래 놓고는 나와 어머니가 와서 방화를 했다고 둘러 대지 않겠어요? 그 때 내가 너무 화가 치밀어서 실컷 욕을 퍼붓고 오기는 했어요. 그러나 방화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불이 났을 때에는 거기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걸 놈들은 나와 어머니가 거기 갔을 때 불이 났다고 꾸민 것입니다. 보험금을 타려고 불을 질러 놓고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겁니다."
"정말인가?"
"정말이고 말고요.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 발 아래 엎드려 절하려는 그를 간신히 말렸다.
"부탁입니다. 전 아무 나쁜 일도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일생을 망치게 되었습니다."하고 그는 계속했다.
그는 별안간 뺨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겉옷의 소매를 걷고 더러운 셔츠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끝났습니까?"하고 부소장이 물었다.
"네, 끝났습니다. 자, 너무 슬퍼하지 말게나. 될 수 있는 대로 힘써 볼테니까."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말하고 나왔다.
메니쇼프는 문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간수가 닫는 문에 쾅 부딪쳤다. 간수가 문에 자물쇠를 잠그는 동안 메니쇼프는 구멍으로 바깥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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