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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48)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23.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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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그렇다,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당연해.' 감옥을 나오면서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야 비로소 자기 죄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자기 죄를 속죄할 생각을 먹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모든 죄를 깨닫지 못하였으리라. 더구나 그녀도 자기가 받은 모든 악행을 느끼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그 모든 것이 무섭고도 분명하게 표면에 드러났다. 그는 이제야 이 여자의 영혼에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녀 역시 자기가 당한 일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여태까지 네플류도프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회오의 감정을 음미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저 두렵기만 했다. 그녀는 버린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는 이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그녀와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감옥문을 나서려고 할 때, 가슴에 십자 훈장과 여러 개의 메달을 단 간수가 네플류도프에게로 걸어와서 아첨하는 듯한 불쾌한 표정을 짓고 몰래 편지를 내주었다.

"어느 부인이 나리께 이 편지를 전해 달라시는데요."

네플류도프에게 봉투를 건네면서 간수가 말했다.

"어떤 부인인데요?"

"읽어 보시면 아실 겁니다. 국사범으로 수감된 분입니다. 저는 그 감방 담당자이죠. 그래서 부탁 받은 겁니다. 이런 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만, 인정상 할 수 없이......." 간수는 어색하게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정치범 담당 간수라는 자가 감옥 안에서 이토록 공공연히 편지 연락을 하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때까지는 아직 그가 간수인 동시에 첩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감옥을 나오면서 그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경음부(경음부는 고대 러시아에서는 자음으로 끝나는 단어 뒤에 붙여 썼는데 혁명 후 폐지되었음. 경음부를 생략하고 썼다는 것은 혁명 사상을 가진 자가 썼다는 것을 암시함.)를 생략하고 활달한 필적으로 다음과 같이 연필로 쓰여 있었다.

 

당신이 어느 형사범에 관심을 가지고 감옥에 오신다는 것을 알고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만나주세요. 면회는 허락될 것으로 압니다. 당신이 돌봐 주고 계시는 분이나 우리들 정치범을 위한 중요한 자료를 많이 제공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있는 베라 보고두호프스카야

 

베라 보고두후프스카야는 네플류도프가 곰 사냥을 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들렀던 노브고르드 현 벽촌의 여교사였다. 이 여교사는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네플류도프에게 학자금을 청한 일이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돈을 주었는데 이미 그것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부인이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모든 소문을 듣고 이렇듯 자진해서 도와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당시는 모든 것이 간단하고 단순했지만 지금은 만사가 어렵고 복잡하기만 했다. 네플류도프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때의 일과 보고두호프스카야와 알게 되었던 경위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사육제를 앞둔 어느 날 철도길에서 10킬로미터나 떨어진 벽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곰을 두 마리씩이나 잡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사냥이 끝난 후 돌아갈 채비를 하면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그들이 머물고 있던 농가의 주인이 와서 부제의 따님이 네플류도프 공작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해 왔다.

"미인인가?"하고 누군가가 물었다.

"농담은 그만두게!"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말하고 정색을 하고는 식탁에서 일어나 입을 닦고 부제의 딸이 무슨 일로 자기를 만나려고 하는지 이상하게 여기며서 안채로 건너갔다.

방에는 펠트 모자에 털외투를 입은 튼튼한 몸집에 해쓱하고 못생긴 얼굴을 한 처녀가 앉아 있었다. 다만 눈썹 밑에서 반짝이는 두 눈만은 아름다웠다.

"자, 베라 예프레모브나, 이분에게 얘기해 봐요."하고 늙은 주인 여자가 말했다. "이분이 공작님이셔. 나는 나가 보겠어."

"무슨 일이시죠?"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저......저...... 공작님은 돈이 많으시니까 그런 쓸데도 없는 사냥에 돈을 허비하지만, 저는......"하고 처녀는 몹시 수줍어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다만 한 가지 소원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입니다만, 아는 것이 없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눈이 성실하고 선량해 보이고, 게다가 결의가 굳어 보이면서도 수줍어하는 표정이 몹시 감동적이어서 네플류도프는 전에도 흔히 있었던 일이지만 그녀의 처지를 자기와 바꾸어 생각하고 동경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말씀이시죠?"

"저는 여교사예요. 대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만, 마음대로 안 되는군요. 그렇다고 집에서 보내 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돈이 없기 때문이에요. 혹시 돈을 빌려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학교를 마치고 나면 반드시 돈을 갚아 드리겠어요. 돈 맣은 사람들이 곰을 잡고 농민들에게 술을 먹이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 그런 분들은 좋은 일을 하지 않으실까요. 제게는 단돈 80루블만 있으면 족해요. 그러나 싫으시다면 아무래도 괜찮아요."하고 그녀는 화난 듯 말했다.

"아닙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곧 갖다드리죠."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그는 현관으로 나왔다. 그 때 그는 거기서 둘의 이야기를 엿듣고 섰던 친구 하나와 마주쳤다. 그는 친구들이 놀리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그녀에게 갖다 주었다.

"자, 어서 받으시오. 감사는 필요 없습니다. 도리어 내가 감사를 해야 할테니까요."

네플류도프는 이러한 것들을 회상하는 것이 무척이나 유쾌했다. 이 때문에 짓궂은 농담을 하던 장교와 하마터면 싸울 뻔한 일과 또 다른 장교 하나가 자기편을 들어주던 일과, 그 때 사냥의 성과가 퍽 좋아서 즐거웠던 일, 밤에 정거장까지 되돌아왔을 때의 상쾌했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두 필의 말이 끄는 썰매의 행렬은 마치 기러기떼 처럼 어떤 때는 높고 어떤 때는 낮은 숲속의 좁은 길을 소리 없이 질주했다. 숲속에는 눈 방석에 뒤덮인 전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빨간 불빛을 내며 향기 높은 궐련을 피웠다. 몰이꾼인 오시프는 무릎까지 눈에 파묻히면서 이 썰매 저 썰매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시중을 들어주었고 깊은 눈 속의 굴속에 틀어박혀 숨구멍으로 훈훈한 입김을 내뿜고 있는 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네플류도프는 이 모든 일, 특히 건강과 정력과 평온을 의식하던 저 행복한 감정을 회상하고 있었다. 폐는 양가죽 외투가 꽉 죄도록 싸늘한 공기를 가슴 깊숙이 들이마시고, 언제나 화살대가 머리 위 나뭇가지를 건드려 신선한 눈이 얼굴에 떨어졌다. 몸은 따듯하고 얼굴은 상쾌하고 마음에는 어떠한 걱정도 가책도 공포도 욕망도 없었다. 참으로 좋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아, 어째서 모든 것이 이렇게 괴롭고도 어려운 것일까?

분명히 베라 보고두호프스카야는 혁명가로서 지금 혁명운동 때문에 수감되어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꼭 만나야겠다. 더구나 카추샤와의 문제에 도움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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