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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50)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2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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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 날 네플류도프는 마슬레니코프의 저택에서 곧장 감옥으로 가서 낯익은 소장의 관사를 찾았다. 요전처럼 낡은 피아노 소리가 들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광상곡>이 아니라 클레멘티(이탈리아의 작곡가)의 <연습곡>이었는데, 역시 몹시 힘차고 명확하고 빠른 템포로 연주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한 눈을 가린 하녀가 문을 열어 주더니 소장님이 집에 계시다면서 네플류도프를 조그마한 객실로 안내했다. 객실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털실로 짠 테이블보 위에는 한쪽이 누렇게 된 장밋빛의 종이갓을 씌운 커다란 램프가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침울하고 쓸쓸한 얼굴을 한 소장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용무시죠?" 그는 제복 한가운데의 단추를 채우면서 말했다.

"지금 막 부지사한테서 허가증을 받아 왔습니다." 네플류도프는 허가증을 내밀면서 말했다. "마슬로바를 만나고 싶습니다."

"마슬로바를?" 소장은 피아노 소리 때문에 잘 알아듣질 못했는지 되물었다.

"마슬로바 말입니다."

"아, 네!"

소장이 일어서서 클레멘티의 <롤라드>(빠른곡조)가 들려오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마루샤, 잠깐만 멈춰라."하고 마치 피아노 소리가 그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의 두통거리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안 들리잖아."

피아노 소리가 멎었다. 그러고는 불안스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가 문에서 이쪽을 들여다보았다.

소장은 피아노 소리가 멈추자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굵고 연한 빛깔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네플류도프에게도 권했다. 네플류도프는 사양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마슬로바를 만나고 싶습니다."

"마슬로바는 오늘 만나기 어려우신데요."하고 소장이 말했다.

"왜요?"

"그건 당신의 실수 때문에" 빙그레 웃으면서 소장은 말했다. "공작님, 제발 그들에게 직접 돈을 주지 마십시오. 주시려거든 제게 주십시오. 그러면 다 그녀의 것이 됩니다. 어제 그녀에게 돈을 주신 모양인데 그녀는 그 돈으로 술을 구해서-이 폐단은 도무지 근절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오늘은 곤드레만드레 취해 가지고 형편없이 난폭해졌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엄격한 조치를 취해서 독방으로 옮겼을 정도입니다. 평소에 얌전한 여자입니다만 제발 돈은 주지 마십시오. 그런 여자들은......"

네플류도프는 어제 일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소름이 끼쳐졌다.

"그럼 정치범인 보고두호프스카야는 만날 수 있습니까?" 네플류도프는 잠시 후에 물었다.

"네, 됩니다."하고 소장은 말했다. "아니, 넌 무엇하러 왔니?" 그 때 마침 방에 들어온 대여섯 살 난 계집아이에게 소장이 말했다. 그 계집애는 네플류도프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버지한테로 왔다. "조심해라, 넘어지겠어." 교도관은 계집아이가 앞을 보지도 않고 양탄자에 걸려 비틀거리면서 아버지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면회할 수 있다면 곧 가 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소장은 이렇게 말하고 아직도 네플류도프를 바라보고 있는 계집아이를 안고 벌떡 일어서더니 다시 계집아이를 살그머니 옆에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왔다.

소장이 한 눈을 안대로 가린 하녀가 내주는 외투를 입고 채 문을 나서기도 전에 다시 클레멘티의 활발하고 빠른 <롤라드>가 들려왔다.

"콩세르바투아르(프랑스의 국립 음악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만, 교풍이 문란해서요. 그러나 소질은 있는 모양이에요." 계단을 내려가면서 소장은 말했다. "연주회에 나가고 싶어하죠."

교도관과 네플류도프는 감옥으로 갔다. 교도관이 가까이 가자 옆문이 활짝 열렸다. 간수들은 경례를 붙이고 눈으로 전송하였다. 머리를 절반쯤 깎인 4명의 죄수가 무엇인가 통을 메고 오다가 입구에서 이들과 마주치자, 모두 소장을 보고 몸을 움찔했다. 한 사람은 유달리 몸을 굽히고 까만 눈을 반짝이며 기분 나쁜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물론 재능을 길러 주어야지요. 묻어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조그마한 집이고 보니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소장은 죄수들에게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피로한 듯이 다리를 질질 끌면서 네플류도프와 같이 면회실로 갔다.

"누구를 만나시겠습니까?"하고 간수가 물었다.

"보고두호프스카야입니다."

"탑에 있는 여죄수군요. 데려올 때까지 좀 기다려 주십시오."하고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말했다.

"그럼 그 동안에 메니쇼프 모자를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방화범으로 기소되어 있는."

"그건 21호실입니다. 좋습니다. 불러 드리지요."

"메니쇼프를 그의 감방에서 만날 수는 없을까요?"

"그러나 면회실이 조용해서 더 좋으실 텐데요?"

"아니, 제겐 그것이 더 흥미가 있습니다."

"대단한 흥미시군요!"

이 때 옆문에서 말쑥하게 차린 부소장이 나왔다.

"저, 공작님을 메니쇼프가 있는 감방으로 안내해 드려. 감방은 21호실일세." 소장이 부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동안에 그녀를 사무실로 데려오겠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을 뭐라고 하셨던가요?"

"베라 보고두호프스카야."하고 네플류도프가 대답했다.

부소장은 콧수염을 염색하고 콜로뉴 향수의 꽃향기를 뿌리고 다니는 금발 청년이었다.

"그럼 이리로 오십시오." 그는 유쾌한 미소를 지으면서 네플류도프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시설에 흥미를 가지고 계십니까?"

"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이 곳에 수감되어 있다고 하기에 마음이 끌린 것입니다."

부소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네, 그런 일이 간혹 있기는 하지요." 그는 공손하게 길을 비켜서서 넓고 냄새나는 복도로 손님을 앞세우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거짓말을 잘하지요. 자, 이리로 들어가십시오."

감방문은 열려 있었고, 여러 명의 죄수들이 복도에 나와 있었다. 부소장은 간수들에게 가볍게 머리를 끄덕여 인사하고 벽에 달라붙다시피하여 감방으로 들어가는 죄수와, 두 손을 옷솔기에 착 대고 군대식으로 상관을 보내면서 문 옆에 서 있는 죄수들을 곁눈질하며, 복도를 빠져나가 왼쪽으로 돌더니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다른 복도로 네플류도프를 안내했다.

이 복도는 처음 복도보다 좁고 어둡기도 하려니와 퀴퀴한 냄새가 더욱 강하게 풍겼다. 복도 양쪽에는 자물쇠로 잠긴 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모든 문에는, 소위 눈구멍이라고 불리는 지름 2,30센티미터 가량의 문구멍이 뚫려 있었다. 복도에는 초라한 얼굴에 주름살이 많은 간수가 하나 서 있을 뿐이었다.

"메니쇼프는 어느 감방에 있나?"하고 부소장이 간수에게 물었다.

"왼쪽으로 여덟 번째 감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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