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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49)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2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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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튿날 아침 네플류도프는 눈을 뜨자 어제 었던 일을 하나하나 회상해 내고는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에도 불고하고 그는 전보다 더 굳은 마음으로 일단 시작한 일을 끝까지 계속하리라 결심했다.

이러한 자신의 의무감을 의식하면서 그는 집을 나와 마슬레니코프한테로 마차를 몰았다. 그것은 마슬로바의 일 외에도 그녀에게서 청을 받은 메니쇼프 노파 모자에 대한 면허 허가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밖에도 마슬로바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도 모를 보고두호프스카야의 면회에 대해서도 부탁해 볼 참이었다.

네플류도프는 마슬레니코프와 옛날 연대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다. 그 당시 마슬레니코프는 연대의 경리 장교였다. 그는 다시 없는 호인으로서, 연대와 황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이제 네플류도프는 연대에서 현청으로 자리를 바꾼 행정관인 그를 생각해 내고 만나러 간 것이다. 그는 유복하고 활달한 여자와 결혼했는데 아내의 강요로 군무로부터 문관으로 전직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깔볼 뿐만 아니라 마치 애완 동물처럼 귀여워해 주는 여자였다. 네플류도프는 지난 겨울에 한 번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 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후론 다시 찾아가지 않았었다.

마슬레니코프는 네플류도프를 보자 무척 반가워했다. 기름기 도는 붉은 얼굴하며, 뚱뚱하게 살찐 몸매며, 군대 시절과 다름없는 말쑥한 복장이며,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옛날부터 그는 언제나 어깨와 가슴이 꼭 끼는 최신식 날씬한 군복이나 평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도 역시 널찍한 가슴과 뚱뚱한 몸에 꼭 끼는 최신 유행의 문관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양식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연령의 차이는 많았으나(마슬레니코프는 40세에 가까웠다.) 그들은 서로 말을 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참 잘 왔네. 집사람한테 가세. 회의에 나갈 때까지 꼭 10분 남았어. 지사가 부재중이라서 내가 대신 현쳥 일을 맡아 보고 있지." 그는 기쁨을 참을 수 없는 듯이 말했다.

"오늘은 자네에게 용건이 좀 있어서 온 걸세."

"무슨 용건인데?" 갑자기 경계하듯 다소 놀라는 어조로 마슬레니코프가 물었다.

"실은 내가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감옥이라는 말을 듣더니 마슬레니코프의 얼굴은 한층 더 굳어졌다.), 그 사람을 일반 면회실이 아닌 사무실에서 만나고 싶네. 그것도 정해진 날이 아니라도 언제든 만나고 싶은데, 그것이 모두 자네 손에 달려 있다고 해서."

"물론이지. 자네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도와 주겠네." 마슬레니코프는 자기의 위엄을 덜기라도 하려는 듯이 네플류도프의 무릎위에 두 손을 올려 놓으면서 말했다. "그야 가능한 일이지만,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임시 주인일세."

"그래도 그 여자와 만날 수 있는 허가증을 내줄 순 있겠지?"

"여자인가?"

"응."

"무엇 때문에 들어갔지?"

"독살 사건이야. 그러나 억울하게 들어간 걸세."

"그것 보라고, 그것이 정당한 재판이라는 거야. 그 친구들은 그 따위 짓밖에 할 줄 모른다네." 그는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프랑스어로 말했다. "자네는 찬성 안하는 줄 아네만 할 수 없지. 이건 나의 굳은 신념이니까." 그는 1년 동안 보수주의 신문에서 주워 읽은 의견을 늘어놓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자네가 자유주의자라는 것도 알고 있어."

"자유주의자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를 일이지만,"하고 네플류도프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는 사람을 재판하는 데 있어서는 우선 피고의 말을 들어 보아야 한다는 것, 재판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또 모든 사람, 특히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사람을 고문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했을 뿐인데도, 자기를 어느 당파에 쓸어 넣어서 자유주의자라고 간주하는 데는 항상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유주의자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를일이지만, 다만 한 가지 오늘날의 재판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옛날의 재판보다는 그래도 역시 낫다는 것만은 나도 잘 알고 있지."

"그래 변호사는 누구를 골랐나?"

"파나린에게 부탁했네."

"뭐 파나린이라고!" 작년에 마슬레니코프가 증인으로서 법정에 나갔을 때, 파나린이 자기를 범인 다루듯 심문했을 뿐만 아니라, 반 시간 이상이나 능글능글한 태도로 자기를 조롱하던 일을 생각하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놈과는 관계하지 않는 게 좋겠네. 파나린이란 작자는 평이 좋지 못한 인간이야."

"또 한가지 청이 있는데." 네플류도프는 그의 말에는 대꾸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전부터 알고 있는 여교사 한 사람이 있는데 참 불행한 여자야. 지금 그 여자도 역시 감옥에 있네만, 그녀를 만날 수 있는 허가증도 내줄 수 있겠지?"

마슬레니코프는 한쪽으로 약간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정치범인가?"

"응, 그런가봐."

"실은 정치범의 면회는 친적에게만 허용되네만 자네에게만 통용될 수 있는 허가증을 내주지. 자네는 남용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 여자의 이름이 뭐지? 자네가 돌봐 주는 여자 말이야. 보고두호프스카야라고? 미인인가?"

"못생겼어."

마슬레니코프는 못마땅한 듯이 머리를 흔들면서 테이블로 가자 표제만 인쇄되어 있는 종이 위에다 시원스럽게 다음과 같이 썼다.

'본 증명서 지참자인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플류도프에게 수감중인 평민 마슬로바 및 여교사 보고두호프스카야와의 감옥 사무실에서의 면회를 허가함.'이라고 쓰고 나서 굵은 필치로 서명을 했다.

"자, 이제 자네도 거기 질서가 어떤지 알게 될 걸세. 만원인데다가 특히 이송 유형수들이 많아서 질서를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어. 그러나 나는 엄중하게 감독하고 있고, 또 이 일이 내 마음에 들어. 가 보면 알 테지만, 그들은 대단히 우대받고 있고 또 만족하고 있어. 하지만 그들을 다룰 줄 알아야 하네. 최근에 불유쾌한 일, 즉 사건이 있었다네. 딴사람이면 폭동으로 인정하고 많은 희생자를 냈을 거야. 그러나 우리들은 잘 수습했지. 한쪽으로는 고삐를 늦추고 다른 한쪽으로는 단단히 나꿔채야 하거든." 금 커프스 단추가 달린 희고 빳빳한 와이셔츠 소매에서 내민 터키석을 박은 반지를 낀 토실 토실한 흰 주먹을 불끈 쥐면서 그는 말했다. "친절한 배려와 단호한 위력이지."

"글세, 그건 잘 모르겠네만,"하고 네플류도프는 말했다. "난 그 곳에 두 번 가 봤는데 몹시 마음이 아프더군."

"아니, 알고 있다고? 그러면 말이야, 파세크 백작 부인과 일단 친해 둘 필요가 있겠네." 마슬레니코프는 흥에 겨워 말을 계속했다. "그 부인은 이 사업에 온몸을 바치고 있네. 자선 사업을 많이 했지. 덕택에 나는 허물없이 말하네만, 감옥을 일신할 수가 있었어. 전과 같은 참혹한 것들을 없앴더니 죄수들이 기뻐하고 있다네. 가보면 알거야. 그런데 그 파나린 말일세. 나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거니와, 또 나의 사회적인 지위로 봐서라도 서로가 합치될 리 만무하지만 그는 확실히 좋지 못한 인간이야. 게다가 법정에서 덜된 소리를 마구 지껄여 대고......"

"여러 모로 고마웠네." 네플류도프는 서류를 집으면서 말했다. 그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옛 친구에게 작별을 고했다.

"집사사람을 만나지 않겠나?"

"실례하겠네, 시간이 없어서."

"그럼 하는 수 없지. 이따 야단맞겠는걸." 옛 친구를 계단의 중턱까지 배웅하면서 마슬레니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일 중요한 손님이 아니라 다음으로 중요한 손님을 배웅할 때는 여기서 전송하곤 했으므로 그는 네플류도프를 두 번째 중요한 손님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지 말고 잠깐만 만나 주게." 그러나 네플류도프는 끝까지 사양하면서 하인과 문지기가 달려와 외투와 단장을 내주며 밖에 순경이 서 있는 문을 열어 주었을 때, 오늘은 아무래도 그냥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럼 목요일에 꼭 와 주게. 그 날은 아내가 손님을 접대하는 날이니까. 그렇게 말해 두겠네!" 마슬레니코프는 계단에서 이렇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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