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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복도를 되돌아서서(마침 점심 시간이었으므로 감방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연한 갈색 겉옷에 짧고 통이 널찍한 바지를 입고 죄수화를 신은 죄수들이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는 사이를 지나가며 네플류도프는 이상한 기분에 잠겼다. 여기 갇혀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그들을 여기에 가둔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의혹, 또 이런 것을 태연하게 조사하고 다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유 모를 수치심을 느꼈다.
어느 복도에서 누군가가 죄수화 소리를 내면서 감방 안으로 뛰어들어가자, 거기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네플류도프의 길을 막아서며 인사를 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나리, 제발 우리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달라고 말씀을 좀 해주십시오."
"나는 관리가 아니라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높은 사람에게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화난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아무 죄도 없는데 벌써 두 달째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니, 왜요?"하고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그저 이렇게 감옥에 갇혀만 있습죠. 벌써 두 달이나 됩니다만 왜 그런지 저희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사실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하고 부소장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여권이 없어서 구류되었죠. 자기네 현으로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만, 그 곳 감옥이 타 버렸기 때문에 현청에서 보내지 말아 달라는 통지가 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현의 사람들은 모두 보냈습니다만, 이 사람은 그대로 구류시키고 있습니다."
"뭐요?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네플류도프가 문에서 걸음을 멈추고 외쳤다.
죄수복을 입은 40명 가량 되는 사람들이 네플류도프와 부소장을 둘러쌌다. 한꺼번에 몇 사람의 소리가 시끄럽게 튀어나왔다. 부소장이 그것을 제지했다.
"누구 한 사람만 말해요."
그러자 그 중에서 한 50세 가량 되어 보이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 농부가 나섰다. 그들은 돈벌이를 위해서 나왔으나, 단지 여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구류되어 있다는 것을 네플류도프에게 설명했다. 그것도 여권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한이 2주일쯤 경과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여권 기한이 경과하는 경우는 매년 있던 일로서 그 때문에 문책을 받은 일이 없었는데 유달리 금년엔 붙들려 벌써 두 달째나 죄인처럼 이런 데 갇혀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석공이며 같은 조합원입니다. 현의 감옥이 타 버렸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그것은 우리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제발 저희들을 도와 주십시오."
네플류도프는 말을 듣고는 있었지만 이 풍채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발이 많이 달린 잿빛의 커다란 이가 석공의 볼수염 속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것에 한눈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다만 그런 이유로?" 네플류도프는 부소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 당국에서도 실수가 있긴 합니다. 모두 송환해서 자기네 고장에서 살게 해야 하지요."하고 부소장이 말했다.
부소자이 말을 마치자 사람들 속에서 역시 죄수복을 입은 키 작은 사람이 튀어나오더니, 입을 기묘하게 일그러뜨리면서 아무 죄도 없이 여기서 고생하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개만도 못한......"하고 그는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작작하고 입 닥쳐!. 그렇잖으면 따끔한 맛을 보여 줄 테야!“ "무슨 맛을 보여 준다는 거야?" 키 작은 사내는 울화통이 터져서 소리질렀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야?" "닥쳐!" 부소장이 호통을 쳤다. 키 작은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하고 네플류도프는 감방을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문에서 구멍을 통해 내다보는 죄수, 또는 도중에서 만나는 수백의 죄수들의 눈총이 자기를 쫓는 것 같았다.
"정말 죄도 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수감해 두어도 괜찮은가요?" 복도로 나오면서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물론, 그 자들은 거짓말을 이만저만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자들 말만 들으면 그자들은 모두가 무죄입니다."하고 부소장이 말했다.
"그러나 사실 저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지 않습니까?"
"저자들은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정말 돼먹지 않은 자들이 있기 때문에 엄격히 하지 않으면 당해낼 수 없다는걸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망나니들이 있으니까요. 어제만 해도 어쩔 수 없이 두 놈을 처벌했지요."
"어떻게 처벌합니까?"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명령에 의해서 몽둥이로 치는 거지요."
"그러나 체형은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건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은 사람에 한한 거죠. 이런 자들에겐 아직 적용되지 않습니다."
네플류도프는 어제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목격한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가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무렵에 태형을 행하고 있는 중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디었다. 그러자 호기심, 우울, 어리둥절함과, 그리고 거의 육체적인 것으로까지 변해 가는 정신적인 구토증에 뒤섞인 이상한 감정이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는 힘으로 그의 마음속에 치솟아올랐다. 전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긴 했으나, 지금처럼 전신을 휩 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부소장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곱바로 급히 복도로 나와 사무실로 갔다.
소장은 복도에 서 있었지만 다른 일에 바빠서 보고두호프스카야를 부르는 것을 잊고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비로소 그녀를 부르기로 한 일이 생각났다.
"곧 부르러 보내겠습니다. 좀 앉아 계십시오."하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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