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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53)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8. 29.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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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사무실은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 방에는 칠이 벗겨지고 불룩 튀어나온 망가진 아주 큰 난로가 있고 두 개의 더러운 창문이 나와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죄수의 키를 재는 데 사용하는 시꺼먼 야드 자가 있었고 다른 한쪽 구석에는 고문하는 데는 어디나 있게 마련인 커다란 예수의 상이 '그분'의 가르침을 조롱하듯이 걸려 있었다. 첫 방에는 간수가 몇 명 서 있었다. 다른 한 방에는 스무 명 가량의 남녀가 한 무리 또는 두 사람씩 짝이 되어 구석에 앉아서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창 옆에는 필기용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소장은 테이블 앞에 앉아서 네플류도프에게 옆에 있는 의자를 권했다. 네플류도프는 앉아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중 제일 먼저 그의 주의를 끈 사람은 짧은 재킷을 입고 명랑한 얼굴을 한 젊은 사나이였다. 그는 눈썹이 검은 중년 부인 앞에 서서 무엇인가 열심히 손짓을 해가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란 색안경을 쓴 노인이 그 옆에서 죄수복을 걸치고 있는 젊은 여자의 손을 잡고는 꼼짝도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중학생인 듯한 한 소년이 놀라운 얼굴로 눈을 노인에게 고정시킨 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젊고 아름다웠는데 짧게 자른 금발머리에 정력적인 얼굴을 한데다 옷은 유행에 따라 입고 있었다. 남자는 품위 있는 얼굴과 물결치듯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닌 말쑥한 청년으로 방수복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구석진 곳에 앉아서 사랑에 취해 속삭이고 있었다. 테이블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검은 색의, 보기에 그와 같은 방수복 재킷을 입은 폐를 앓는 듯한 청년의 모친인 듯싶은 백발의 부인이었다. 그 부인은 청년을 커다란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으나,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못하고 있었다. 여러 번 말을 꺼냈다간 그만 막혀 버리고 말았다. 청년은 손에 종잇조각을 든 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화난 표정으로 그 종잇조각을 구겼다 폈다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회색 옷에다 좁고 긴 테이프를 두른, 뽀얀 빰이 포동포동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유난히 놀란 눈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상냥하게 어머니의 등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이 소녀는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하얗고 큰 손, 탐스러운 짧은 머리칼, 오똑한 코, 입술 등이 모두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것은 양같이 부드럽고 진실해 보이는 갈색의 눈이었다. 네플류도프가 들어올 때에 한순간 그 아름다운 눈이 어머니의 얼굴에서 떨어져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러나 곧 눈길을 돌려 어머니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쌍의 연인들이 앉은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우울한 얼굴빛에 머리를 헝클어뜨린 한 남자가 스코페츠 교도같이 보이는 수염없는 남자에게 화를 내며 말을 하고 있었다.

소장 옆에 앉은 네플류도프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머리를 짧게 깎은 사내아이가 가까이 와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묻는 바람에 그의 주의가 깨드려졌다.

"아저씬 누구를 기다리세요?"

네플류도프는 이 소리에 깜짝 놀랐으나, 그 소년의 조심성 있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착실하고 영리한 얼굴을 대하고는, 지금 아는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솔직히 말해 주었다.

"아저씨의 누님이세요?"하고 소년이 물었다.

"아니야, 누이가 아니야." 네플류도프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그런데 누구하고 왔니?"하고 그가 소년에게 물었다.

"엄마하고요. 엄마는 정치범이에요."하고 소년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콜랴를 그리로 데리고 가요." 네플류도프와 그 소년의 대화가 위법이라고 생각했는지 소장이 이렇게 말했다.

네플류도프의 시선을 끈 양같이 순한 눈을 가진 단정한 소녀 마리야 피블로브나는 발딱 일어서서 남자 같은 걸음걸이로 힘차게 네플류도프와 소년의 곁으로 가까이 왔다.

"이 아이가 당신이 누구신가 물었나요?"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지금껏 순수하고 형제처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졌었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듯한 순진하고 신뢰하는 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애는 뭐든 알고 싶어한답니다."하고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말하며 그녀가 소년에게 너무나도 따스하고 친절한 미소를 짓는 바람에 소년과 네플류도프도 무의식중에 따라 웃었다.

"누구를 만나러 왔으냐고 묻더군요."

"마리야 파블로브나, 외부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안 돼요. 잘 알잖아!"하고 소장이 말했다.

"잘 알아요, 잘 알아요." 소년은 이렇게 말하곤, 하얀 손으로 자기에게서 줄곧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콜랴의 조그마한 손을 잡고 폐를 앓는 청년의 어머니한테로 되돌아갔다.

"저 앤 누굽니까?" 네플류도프는 소장에게 물었다.

"애 엄마는 정치범인데 감옥에서 낳았습니다." 소장은 자기네 감옥 안에서 일어난 진기한 일을 이야기한다는 듯 다소 으쓱해서 말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번엔 어머니는 시베리아로 갈 갑니다."

"저 소년은?"

"그건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하고 소장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말했다. "아, 보고두호프스카야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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