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R/B> 부활 (3부, 1)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1. 2. 00:21
728x90

 

 

3부 1

 

네플류도프는 물살이 빠른 넓은 강을 바라보면서 뱃전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마차의 요동으로 머리를 흔들리며 울분의 감정으로 죽음에 다다르고 있는 크르일리조프의 모습은 그를 괴롭고 처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른 또 하나의 인상, 시몬손과 같은 훌륭한 남자의 사랑으로 지금은 착실하고 올바르며 선한 길로 들어선 생기찬 카추샤의 모습은 기쁜 일임에도 불구하고 네플류도프의 심정을 언짢게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거리 쪽에서 오호트니츠키 사원의 커다란 종소리와 물결치는 금속성의 여운이 강을 타고 울려왔다. 네플류도프 곁에 서 있던 마부와 여러 마차의 마부들은 모두 차례로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그러나 뱃전에서 가장 가깝게 서 있던 키가 작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한 노인만은 성호를 긋지 않고 머리를 똑바로 든 채 유심히 네플류도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누덕누덕 기운 코트에 나사 바지를 입고 또 역시 다 해진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에는 그리 크지 않은 보따리를 메고 머리에는 닳아빠진 높은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영감님은 어째서 기도를 안하는 거요?" 네플류도프의 마부가 모자를 고쳐쓰면서 말했다.

"영세를 받지 않았소?"

"도대체 누구를 향해 기도하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노인은 도전하는 듯이 빠른 어조로 마디마디 분명하게 되물었다.

"누구긴, 하느님께지." 마부는 비웃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자네, 어디 보여 주게나, 그 하느님이 어디 있는지?"

노인의 어투에는 무언가 진지함이 느껴져서 마부는 잘못 걸렸다는 생각으로 약간 당황했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듣고 있는 앞에서 남자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얼른 대꾸했다.

"어디라고? 뻔한 것이지, 하늘에 계신다는 건."

"그럼 자네는 하늘에 올라가 봤나?"

"가보든 안 가보든 하느님께 기도드려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 아니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은 본 사람은 하나도 없어, 아버지의 품속에 안긴 외아들에게만 그걸 보여 주셨지." 노인은 엄숙한 표정의 얼굴을 찡그리며 여전히 빠른 투로 말했다.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영감님의 신앙은 어떤 것이오?"하고 뗏목배 한구석에서 짐마차와 나란히 서 있던 그리 젊지 않은 한 남자가 물었다.

"나는 신앙 같은 게 없소. 나는 아무도 믿지 않으니까. 나 자신밖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아." 노인은 아까처럼 단호하게 빨리 대꾸했다.

"그러나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하고 네플류도프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끼여들었다.

"자기라도 잘못하는 때가 있을 텐데요."

"아니,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를 흔들면서 분명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신앙이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여러 가지 신앙이 있는 까닭은 사람들이 남을 믿고 자기 자신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나도 남을 믿다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도 헤어날 수 없을 만큼 아득하게 빠져 있었어요. 구교도, 신교도, 안식교도, 편신교도, 승려파 교도, 무승려파 교도, 오스트리아 교도, 몰로칸 교도, 스코페츠 교도 등 어떤 종파나 모두 자기네만 옳다고 떠들어 댑니다. 모두가 그런 꼴들이니까 눈먼 강아지처럼 떠돌아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신앙은 많이 있지만 영혼은 하나뿐이지요. 당신도 나도 저 사람도 영혼은 있습니다. 말하자면 누구든지 다 자기의 영혼만 믿게 되면 전부 하나가 될 겁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만 믿으면 모두 하나로 될 수 있습니다."

노인은 언성을 높여,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들으란 듯이 끊임없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신앙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습니까?" 네플류도프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요? 벌써 오래됐지요. 그래서 쫓겨다닌 지가 햇수로 23년이나 됩니다."

"쫓겨다니다니, 왜요?"

"그리스도가 쫓겨났던 것같이 나도 쫓겨난 거지요. 나는 붙들려서 재판소에 나간 적도 있고 신부 앞에 나간 적도 있고 학자와 바리새인들 앞에 끌려간 적도 있고 정신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지요. 나는 자유인이니까 말이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렇게 묻더군요. 모두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름이 없습니다. 나는 뭐든지 다 내버리고 말았지요. 이름도 직업도 조국도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다. 나는 그저 나일 뿐입니다. 그래 이름이 뭐냐기에 인간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이번엔 '그럼 나이는 몇살이냐?'고 하겠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이는 세어 본 일도 없고 또 셀 수도 없다고 말이에요. 그 이유는 나는 언제나 존재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부모는 누구냐?' 물으면 내게는 하늘과 땅 외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하늘이 아버지요 땅이 어머니라고 대답해 줬지요. 그러면 그 때엔 '황제를 인정하는가?'하고 묻지요. 왜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황제는 그분 자신이 황제이고 나는 나 자신이 황제입니다. 그러면 '너 같은 작자하고는 말할 수도 없다.'고 하기에 나도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나도 말을 해달라고 원한 적은 없다고요.' 그래서 나는 추방된 것입니다."

"그래 영감님은 지금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네플류도프가 물었다.

"어디라고 정해진 데가 없어요. 하느님이 가라는 데로 갑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요. 일이 없으면 빌어먹지만."하고 노인은 뗏목배가 맞은편 강가에 가까이 온 것을 알자 이야기를 멈추고 득의 만면한 표정으로 자기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룻배는 맞은편 강가에 닿았다. 네플류도프는 지갑을 꺼내 노인에게 돈을 주었지만 노인은 사양했다.

"나는 그런 건 받지 않아요. 빵이면 받겠습니다만."

"그럼 실례가 됐군요."

"별로 잘못된 건 없어요. 당신은 내게 수치를 준 것은 아닙니다. 또 내게 수치를 줄 수도 없지만." 노인은 이런 말을 하고 내려놓았던 보따리를 어깨에 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 네플류도프의 마차가 육지에 내려져 말을 매기 시작했다.

"나리도 호기심이 참 많으시군요. 저런 늙은이하고 말씀을 다 나누시다니."하고 마부는 네플류도프가 사공들에게 수고비를 준 뒤 마차를 탔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저까짓 쓸데없는 부랑자를 가지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