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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3부, 3)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1. 7.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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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 묵고 계시지요?" 장군은 네플류도프를 전송하면서 물었다.

"쥬코프 여관? 아니, 거기도 그리 좋지 않을걸요. 우리 집에 오셔서 저녁 식사나 하시지요. 우리는 5시에 식사합니다. 영어를 할 줄 아시죠?"

"네, 합니다."

"그럼 더욱 잘됐는데요. 실은 여기에 영국인 여행가 한 명이 와 있는데 시베리아의 감옥과 유형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지요. 마침 그 사람도 저녁 식사를 함께 하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도 꼭 참석해 주십시오. 식사는 5시에 시작입니다. 우리 안사람은 제법 사무적인 사람이지요. 당신이 말씀하신 여죄수와 병자의 건에 대해서도 그 때 대답해 드리기로 하지요. 어쩌면 누군가 한 명쯤은 간호를 위해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군과 작별을 한 뒤 네플류도프는 기운이 솟는 것을 느끼면서 우체국 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우체국은 낮고 둥근 천장의 건물이었다. 몇 명의 직원이 사무용 책상에 앉아서 몰려든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직원 한 사람은 고개를 기웃이 하고 앉아서 밀려나오는 봉투에 능숙하게 소인을 찍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의 이름을 듣고는 곧 아주 많은 우편물 뭉치를 내주었다. 거기에는 송금 수표도 있었고 편지도 몇 통 있었다.

그리고 책과 조국잡기 최근호도 있었다. 자기의 우편물을 받아들고 네플류도프는 사병이 수첩을 들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나무 벤치로 가서 그 곁에 앉아 우편물을 훑어보았다. 그 중에서 등기 우편 한 통은 새빨간 봉랍으로 단단하게 봉해지고 소인이 뚜렷이 찍힌 훌륭한 봉투였다. 봉투를 뜯던 그는 무슨 공문서 같은 것과 함께 들어 있는 셀레닌의 편지를 발견했을 떄, 별안간 피가 얼굴로 끓어오르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카추샤 사건의 결정서였던 것이다. 대체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까? 기각된 것은 아닐까? 네플류도프는 판별하기 어려운 잔글씨로 딱딱하고 서투르게 쓰여진 편지를 단번에 읽어내리고 기쁨에 넘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결정서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여!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는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네. 마슬로바의 사건에 관한 자네의 생각은 옳은 것이었네. 세밀하게 그 사건을 검토해 본 결과 나는 그녀에 대하여 엄청난 부정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놀랐다네. 이것을 수정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자네가 출원한 청원 위원회에 의뢰할 수밖에 없었네. 다행히도 내가 이 사건의 해결에 다소나마 도움을 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 특사 지령서의 사본을 동봉하여, 백작 부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가르쳐 준 주소로 자네에게 보내는 것이네. 원본은 그녀가 재판 진행중 수감되었던 곳으로 발송되는 것이니까, 아마 곧 그리로부터 시베리아 행정부로 회송될 것일세. 우선 이 기쁜 소식부터 급히 전하는 것이네. 자네의 셀레닌

특사 지령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황제 폐하 직속 청원 사무국. XX과 XX계. X년 X월 X일.

황제 폐하 직속 청원 사무국장의 명령에 의해서 평민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에게 다음과 같이 선고함. 황제 폐하께 상신된 보고에 의하여 마슬로바의 청원에 대해서 원판결의 중노동형을 취소하며 시베리아의 원격지가 아닌 지방으로의 이주형으로 변경할 것을 통고함.

이것은 너무나 기쁘고도 중대한 소식이었다. 네플류도프가 카추샤를 위하여, 그리고 또 자기 자신을 위하여 희망하던 모든 것이 성취된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녀의 환경에서의 이러한 변화가 그녀와의 관계에도 새롭고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녀가 징역수로 있던 지금까지는 그가 청했던 결혼이라는 것도 공상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녀의 고통을 다소라도 덜어 주겠다는 의미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이 같이 사는 것을 방해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 네플류도프는 아직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다 시몬손과 그녀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제 그녀가 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만약 그녀가 시몬손과의 결합에 동의를 한다면 그것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네플류도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낼 도리가 없어서 당장은 생각을 않기로 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어떤 해결이 나겠지.'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 할 일은 무엇보다 먼저 그녀를 만나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또 그녀를 자유의 몸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그렇게 하는 데는 지금 자기 손에 있는 이 사본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우체국을 나서자 곧 마부에게 감옥으로 가자고 말했다.

조금 전 아침에, 장군은 감옥 방문을 허락해 주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상급 관리에게서 얻지 못한 허가가 더러는 그 밑의 관리들에게서는 쉽게 받아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한번 감옥과 맞서 보아서 일이 뜻대로 되면 카추샤를 만나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될 수 있으면 석방이 되도록 서둘러 주고, 또한 크프일리조프의 병세도 물어 보고 그와 마리야 파블로브나에게 장군이 했던 말을 전해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형무관은 아주 키가 크고 비대하며 콧수염이며 구레나룻이 모두 입주위로 말려든 풍채가 당당한 사내였다. 그는 네플류도프에게 아주 엄격히 대하면서 장관의 허가가 없는 한 절대로 외래인의 면회를 허락할 수 없다고 냉정히 잘라 말했다. 모스크바의 감옥에서도 자기는 허가를 얻었다고 말했지만, 형무관의 대답은 이랬다.

"그야 그런 일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허락하지 못합니다."

이 말 속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된 듯했다. '당신네 도시 사람들은 우리를 곯려 주고 당황하게 만들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동부 시베리아인들도 규율과 질서가 어떤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그것을 한번 가르쳐 드리지!'

황제 폐하의 직속 사무국에서 보내온 공문서의 사본도 이 형무관에게는 전혀 효력이 없었다. 그는 감옥 구내로 들어가는 것을 딱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 그 사본에 의해서 카추샤를 석방시켜 주어도 좋지 않느냐고 하는 네플류도프의 물음에 대해서도 그는 경멸하듯 웃을 뿐 직속 상관으로부터 직접 명령이 없는 한 누구를 불문하고 석방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그에게서 약속받을 수 있었던 것은 특사가 내려졌다는 것을 카추샤에게 전해주고, 자기의 상관에게서 영이 떨어지는 즉시 한시도 지체 없이 그녀를 석방하겠다는 것뿐이었다.

크프일리조프의 병세에 관해서도 형무관은 어떠한 말도 전하기를 거부하며 심지어 그러한 죄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리하여 네플류도프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마차를 돌려 여관으로 돌아왔다.

형무관이 이런 태도를 취한 이유는 거의 정원의 두 배나 처넣은 감옥 안에서 티푸스가 유행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네플류도프를 태운 마부는 돌아가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감옥에서는 사람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 가고 있으며 무슨 나쁜 병이 번져 매일 스무 명 이상씩이나 죽어서 매장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