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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41) -톨스토이-

카지모도 2021. 10. 30.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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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네플류도프가 탄 찻간은 승객으로 반쯤 차 있었다. 그들은 하인, 직공, 노동자, 백정, 유대인, 점원, 여자들, 그리고 노동자의 아내들이었으며, 군인이 한 사람, 부인 같은 여자가 두 사람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여자는 젊었고, 또 한 여자는 드러나 보이는 팔뚝에 팔찌를 낀 중년 부인이었다. 그리고 꽃모양의 모표가 붙은 챙 있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위엄 있는 표정의 신사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리가 정리되어 안심이 되었다는 듯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바라기씨를 까는 사람, 담배를 피우는 사람, 옆 사람과 활기차게 잡담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타라스는 네플류도프의 자리를 잡아 두고, 행복스러운 듯이 통로 오른쪽에 앉아서 맞은편에 앉은 단추가 풀어지고 소매 없는 외투를 입은 체구가 큰 남자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남자는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정원사였다. 네플류도프는 타라스에게로 다가가다가 농부 옷차림을 한 젊은 여자하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 소매 없는 무명 외투를 입고 턱수염이 난 풍채가 좋은 노인 옆에서 발을 멈추었다. 젊은 여자 옆에는 사라판(러시아 농촌에서 주로 입는 긴 여자 옷, 소매는 없고 밸트를 맨다.)을 입고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달랑거리며 쉴 새 없이 해바라기씨를 까고 있었다. 그 노인은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더니 혼자 앉아 있던 번들거리는 좌석에서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친절하게 말했다.

"여기, 앉으시지요."

네플류도프는 고맙다고 말하고, 그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네플류도프가 자리에 앉자마자, 여자는 중단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남편이 일하고 있는 도시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사육제 때도 갔었지만, 하느님 덕분으로 이번에도 놀다가 오는 거예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크리스마스 때에 또 갈까 해요."

"그건 좋은 일이야." 노인은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가끔 가보는 것이 좋지. 그렇지 않으면, 도시 생활을 하는 젊은 사내들은 못쓰게 되거든."

"아니에요, 할아버지. 우리 주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안 해요. 순진한 사람이에요. 돈은 한푼도 남기지 않고 꼬박꼬박 보내 줘요. 이애 보는 것을 어찌나 기뻐하는지 그 기뻐하는 모습이란 뭐라 말할 수 없어요." 그녀는 방글방글 웃으면서 말했다.

해바라기씨를 까서는 껍질을 뱉으면서 어머니의 얘기를 듣던 계집아이가, 어머니의 말이 옳다는 듯이 침착하고 영리한 눈으로 노인과 네플류도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똑똑한 사람이군, 그렇다면 더욱 만나러 가야지."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런데 술은 하지 않소?" 통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공장 직공인 듯한 부부를 눈으로 가리키면서 노인이 덧붙였다.

직공인 듯한 남편은 보드카 병을 입에다 대고 꿀꺽꿀꺽 들이켜고 있었고, 아내는 병을 받아들고 웃으며 고개를 흔들더니 그녀 또한 술병을 입에다 갖다 대었다. 자기를 바라보는 네플류도프와 노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직공은 그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왜 그래요, 나리? 우리가 술을 마셔선 안된다는 거요? 우리가 일할 땐 누구 한 사람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술을 마시면 모두들 흘끔흘끔 쳐다본단 말이야. 내가 벌어서 내가 마시고, 여편네한테도 한턱 쓰고 있는데, 그게 잘못된 거요?"

"아, 옳은 말이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리, 내 여편네는 이래봬도 꽤 착실해요. 그리고 나를 소중히 생각하니까 나도 만족하고 있지요. 그렇지, 마브라?"

"자, 당신이나 더 마셔요. 난 됐어요."하고 그녀는 남편에게 술병을 내주면서 말했다. "또 쓸데없는 소릴 하는군요."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보세요, 이렇답니다."하고 직공은 이어 말했다. "귀여운 여편네죠. 그러나 이따금 기름 떨어진 바퀴처럼 삐걱삐걱 소리를 내서 야단이죠. 그렇잖아, 마브라?"

마브라는 취한 듯이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또 시작이로군!"

"그렇잖아, 귀여운 여편네지. 하지만 그것도 고비를 잡고 있을 동안만 그렇지, 조금이라도 고삐를 늦추기라도 하는 날에는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습죠... 정말입니다. 용서하십시오. 술에 취하고 보니, 어쩔 수가 없군요." 직공은 이렇게 말하더니, 빙그레 웃고 있는 아내를 무릎을 베개삼아 자려고 드러누웠다.

네플류도프는 잠시 동안 노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노인은 자기의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노인은 난로를 만드는 사람이었으며 53년간이나 그 일을 해 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숱한 난로를 만들었으므로, 이제는 좀 쉬려고 해보았지만 도무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모스크바로 가서 자식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이제부터 집안 일을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타라스가 잡아 둔 자리로 갔다.

"자, 나리, 이리 앉으시지요. 배낭은 이쪽으로 치우겠습니다." 타라스의 맞은편에 앉은 정원사가 네플류도프의 얼굴을 쳐다보며 상냥하게 말했다.

"좁긴 합니다만, 그런 대로 괜찮습니다."하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타라스가 노래를 부르듯이 말하고는, 그 힘센 두 팔로 2파운드나 되는 배낭을 솜뭉치를 쳐들듯이 번쩍 들어 창가로 옮겼다. "자리는 넉넉합니다. 저는 있어도 상관 없고, 없다면 의자 밑에라도 들어갈 수 있으니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불편할 것도 없어요." 선량하고 친절한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면서 그가 말했다.

타라스는 스스로 자신을 평하길,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말문이 열리지 않으나 술만 마시면 말이 줄줄 나와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건 다 말하게 된다고 했다. 사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의 타라스는 꿀먹은 벙어리였다. 그가 술을 마시는 일이란 좀처럼 없었고 특별한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었지만, 일단 술이 들어가면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그런 때는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로, 특히 그 선량해 보이는 파란 눈에 친절한 빛을 띠고 입가에는 연방 벙글벙글 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늘어 놓곤 했다. 타라스는 오늘 마침 그런 상태에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왔기 때문에 잠시 그의 얘기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배낭을 치우고 전과 같이 자리에 앉아, 그는 억센 농부다운 무릎위에 놓고 정원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그는 자기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이 새로 사귄 친구에게 모조리 털어놓고 있었다. 어째서 아내는 시베리아로 유형되었으며, 왜 자기가 시베리아로 따라가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이제껏 한번도 이 사건을 상세하게 들은 적이 없었으므로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왔을 때는 이미 독살 미수가 일어나 그것이 페도샤의 소행이라는 것을 집안에서 모두 알게 되었다는 대목이었다.

"지금 저 자신의 슬픈 신세를 얘기하고 있던 참입니다." 타라스는 친근한 얼굴로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렇듯 자기 일처럼 들어주는 친절한 분을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만 그 이야기를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요?"하고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그렇게 돼서 모든 것이 탄로가 나버렸지요. 나리한테 한번 얘기해서 잘 아시다시피, 어머님은 독이 든 밀떡을 가지고 '경찰한테 가겠다.'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버님은 워낙 사리가 밝은 노인이셔서 말입니다. '여봐요, 할멈. 며느리는 아직 어린애라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동정을 해줘야지. 자기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하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나 어머님은 아버님의 말을 듣지 않고 '그런 계집을 그대로 놔두면 진딧물처럼 집안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말 거야.'하면서 종내 경찰한테로 갔답니다. 곧 경관이 오고.. 증인을 부르는 소동이 난 거죠."

"그래 당신은 어떻게 됐소?"하고 정원사가 물었다.

"나 말이오? 나는 배가 아파서 뒹굴며 토해 버렸어요. 오장이 막 뒤집히는 것 같아서 말은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곧 짐마차에 말을 달고, 페도샤를 태워서 지서로 갔다가 예심 판사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말예요, 페도샤는 처음부터 자기 죄를 인정하고 예심 판사에게 사실대로 고백했답니다. 어디서 비상을 얻었으며, 어떻게 밀떡 속에 섞었다는 걸 말이오. '왜 그런 짓을 했나?'하고 물으니까, '그런 사람은 정나미가 떨어져요. 그런 사람하고 같이 사느니보다 차라리 시베리아로 가는 게 나아요.' 이건 나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타라스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요컨대 모든 것을 고백한 셈이죠. 그러니 감옥에 가게 된 건 당연하죠. 아버님이 혼자 투덜거리며 돌아오셨어요. 마침 농사 일이 바빠지고 집안에 여자라곤 어머님분인데, 그 어머님마저 몸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보석으로 꺼낼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버님이 어느 관리 한 사람을 찾아갔으나 별수 없었고 딴 사람한테도 부탁하러 갔었으나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만 모두 단념해 버리려던 참에 우연히 어떤 관리 한 사람을 알게 되었죠. 그자는 무척 약삭빠른 인간이었습니다. 3루블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난 페도샤의 옷가지를 저당잡혀서 그 돈을 마련해 주었습죠. 그는 이런 서류를 써 주더군요." 타라스는 총 쏘는 이야기라도 할 때처럼 손을 벌렸다. "그래서 일은 즉석에서 해결이 났지요. 나도 그 무렵엔 일어나 있었으므로 거리까지 아내를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무슨 일이오?'하고 묻기에 이러저러한 일로 아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류는 가지고 있소?'하더군요. 난 서류를 내주었더니, 그는 그것을 보고 나서 '기다리고 있어.'하더군요. 난 거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지요. 정오가 지났을 때였습니다. 이윽고 관리가 나와서 '바르구쇼프가 당신이오?' '네, 접니다.' 그러자 '그럼 데리고 가요.'하더군요. 곧 문이 열리더니 아내가 집을 나갔을 대와 같은 차림으로 끌려나왔어요. '자, 갑시다.' '당신, 걸어 왔어요?' '아냐, 마차로 왔어.'하는 말을 주고받고 나서, 우리는 여관에 들러 셈을 치른 다음, 말을 마차에 달고 나머지 건초를 죄다 망태에 쑤셔 넣었습니다. 아내는 수건을 푹 쓰고 그 위에 앉았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아내도 나도 말이 없었습니다. 집에 가까이 오자 아내가 '어머님은 안녕하세요?'하고 묻기에 '무사하시지.' '아버님은?' '편안하셔.'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여보, 타라스. 용서해 주세요. 내가 바보였어요. 난 무엇을 했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나도 말을 줬지요. '그렇게 걱정할 건 없어. 난 벌써부터 용서하고 있으니까.' 그러고는 더이상 말이 없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곧 어머님 발밑에 엎드려 빌었지요. 어머님은 '하나님이 용서하신다.'하고 말했지요. 아버님은 무사한 것을 기뻐하시고 '지난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더 훌륭하게 잘 살아야지. 지금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야. 추수도 해야 한다. 밭을 갈아 비료를 잔뜩 주었더니, 보리도 다행히 손을 댈 수가 없을 만큼 익어서 자리를 깔아 놓은 듯이 덮여 있단다. 이젠 빨리 거둬들여야 한다. 너도 내일 타라스하고 함께 나가서 거둬들이도록 해라.' 그 때부터 아내는 곧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일을 잘했답니다. 우리 집엔 그 무렵 3정보 가량의 밭을 빌려 붙였는데, 다행히도 보리도 귀리도 근래에 보기 드문 풍작이었습죠. 내가 베어 놓으면 아내가 묶고, 때로는 둘이서 베었습니다. 나도 일에는 능숙합니다. 아내는 더 능숙해서 무슨 일이든지 다 해치웠습니다. 아내는 재빠르고 젊고 또 튼튼했지요. 그래서 너무나 일을 열심히 하므로 오히려 내 편에서 좀 일찍이 끝내도록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손가락이 붓고 팔이 쑤시고 해서 좀 쉬어야 할 텐데도 아내는 저녁도 먹지 않고 헛간으로 달려가서 다음날 쓸 단 묶을 새끼를 준비했습니다. 정말 딴사람이 되어 버렸습죠."

"그래, 당신한테도 친절해졌겠군?" 정원사가 물었다.

"말할 것도 없이 한마음으로 결합됐지요. 그토록 화를 내시던 어머님도 '우리 페도샤가 아주 변했구나. 전연 딴사람이 되었어.'하고 말하셨지요. 어느 날 우리 둘이서 마차를 타고 묶은 보릿단을 거두러 간 일이 있었는데 둘이 마부석에 나란히 앉았을 때 내가 물었어요. '페도샤, 왜 그런 일을 생각 했어?' '왜라뇨? 당신과 같이 살기 싫어서죠.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난 또 물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때?' '지금은 당신 생각뿐이에요.'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타라스는 말을 멈추고 기쁜듯이 벙글벙글 웃다가 놀란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보리 타작도 끝났기에 내가 삼에 물을 적시러 나갔다 돌아와 보니," 잠시 그는 말을 끊었다. "뜻밖에도 소환장이 와 있지 않겠습니까. 재판을 한다는 거죠. 우리는 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일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야말로 악마의 짓이라고 말할 수밖엔 없었겠군." 정원사가 말했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죽일 생각을 품을 수 있겠소? 우리 마을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하고 정원사가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이 때 기차가 정거하려 했다.

"역인가 보군."하고 그는 말했다. "한잔 마시고 올까."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네플류도프는 정원사를 따라서 찻간에서 나와 비에 젖은 플랫폼 위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