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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로 올라오자 마부는 네플류도프를 돌아보았다.
"어느 여관으로 모실까요. 나리?"
"최고급 여관은 어딘가?"
"시비리스크 여관보다 좋은 데가 또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쥬코프도 괜찮습지만요."
"어디든지 좋은 데로 가게."
마부는 또다시 옆으로 비스듬하게 앉아서 속력을 냈다. 도시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다락방이 있는 푸른색 지붕의 집들이 나란히 서 있었고, 똑같은 모양의 교회, 조그만 가게, 번화가의 상점, 순경들마저도 똑같아 보였다. 다만 대부분의 집이 목조인 것과 거리가 포장되지 않았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번화가인 듯한 곳에서 마부는 어떤 여관 앞에 마차를 세웠다. 그러나 그 여관에는 빈방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여관으로 가야만 했다. 그 여관에는 빈방이 있었으므로 네플류도프는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그래도 비교적 깨끗하고 편리한 이전의 환경과 비슷하게 지낼 수 있었다.
네플류도프가 안내받은 방은 그리 훌륭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어쨌든 여행 마차와 시골 여인숙과 수인 중계소 등, 이런 데서만 지내 온 터라 아주 기분이 풀렸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수인 중계소를 방문하고 나서부터 아무리 애써도 완전히 없앨 수가 없었던 벼룩과 이를 말끔히 퇴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여장을 풀고 즉시 목욕을 한 뒤 도시인의 복장을 하고 -풀 먹여 잘 다린 와이셔츠에 줄이 선 바지, 그리고 프록 코트에 외투를 입고- 이 곳의 지방 장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여관 문지기가 불러 온 마부는 덜컹거리는 마차에 살찐 커다란 키르기스 종의 말을 달고 와서, 보초병과 경관이 서 있는 아주 크고 훌륭한 저택 앞으로 네플류도프를 데리고 갔다. 그 저택에는 앞에도 뒤에도 정원이 있었는데 포플러와 자작나무가 잎이 떨어져 엉성한 가지만을 뻗고 있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전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노간주나무들이 싱싱한 진록색으로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장군은 몸이 불편하다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네플류도프는 억지를 써서 명함을 전해 달라고 하인에게 부탁했다. 하인은 금방 회답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들어오시랍니다."
현관, 하인, 전령, 층계, 반질반질하게 닦여진 파키트로 바닥을 깐 홀 등 모두가 페테르부르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 깨끗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대로 장엄하게는 느껴졌다. 네플류도프는 서재로 안내되었다.
장군은 아주 몸집이 비대했으며, 주먹코에 이마가 훌렁 벗겨진 대머리에는 혹이 여럿 있었고, 눈밑의 살이 주머니처럼 축 늘어진 다혈질의 사내였다. 그는 타타르식의 비단 가운을 입고 담배를 손에 든 채 은접시에 놓인 찻잔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잠옷 바람으로 실례가 되지만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용서하십시오." 그는 굵고 주름살이 진 목덜미를 가운으로 감싸면서 말했다.
"몸이 좀 불편해서 쉬고 있었습니다. 한데 무슨 일로 이렇게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저는 죄수 대열을 따라왔습니다. 죄수 중에 가까운 사람이 하나 있어서요." 네플류도프가 말했다.
"그래서 사실은 그 죄수의 일과 또 한 가지의 다른 일 때문에 각하께 말씀드리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장군은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 차를 또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담배를 공작석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부은 것 같은 가늘고 광채 있는 눈을 네플류도프에게 떼지 않으며 진지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장군이 네플류도프의 말을 중단시킨 것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시렵니까'하고 묻던 그 때 뿐이었다.
원래 장군은 자유주의와 인도주의를 자기 직무와 조화시키려는, 풍부한 교양을 갖춘 군인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현명하고 선량한 인간성을 지닌 장군은 그 조화가 불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항상 자기의 내면적인 모순을 보지 않으려고 군인 사회에서 성행되고 있던 폭주의 습관에 물들었던 것이 마침내는 그 습관에 흠뻑 빠져 버리게 되어 35년간의 군무 생활을 보낸 지금에 와서는 의사로부터 알코올 중독자라는 진단을 받게까지 되었다. 현재의 그는 전신이 흡사 술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어떤 술이라도 마시기만 하면 취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술을 마시는 것은 이미 필수적인 조건이 되어 버렸고 술이 없이는 잠시도 살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이면 항상 취해서 얼근한 상태에 있곤 했으나 워낙 그렇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휘청거리는 일도 없고 또 말을 그리 함부로 하지도 않았다. 만일 말이 좀 지나쳤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 지방에서는 제일 높은 직위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현명한 말인 줄 알고 들었다. 다만 아침 한때는, 즉 네플류도프가 찾아온 이 무렵에는 현명한 사람같이 상대편의 말을 옳게 이해할 수도 있었고 항상 입버릇처럼 즐겨 말하는 '취해서 현명하면 두 가지의 이익을 본다.'라는 속담을 별탈없이 실행할 수 있었다. 상부에서도 그가 술꾼인 줄을 알고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그가 교양이 있었으며 대담하고 민활하며, 풍모가 당당하고, 또한 아무리 취중이라도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수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중책에 임명되어 그 지위를 지키고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장군에게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여죄수라는 것과 그녀가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황제 폐하에게 그녀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했다는 것 등을 말했다.
"아, 그래요. 그래서요?"
"그녀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늦어도 이 달 안으로는 그 통지가 이 곳의 저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장군은 여전히 네플류도프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손가락이 뭉뚝하게 손을 탁자로 뻗쳐 초인종을 누르고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서는 아주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러한 사정이라서 그 청원서에 관한 기별이 있을 때까지 될 수 있으면 그녀를 이 곳에 체류할 수 있게 허가를 해주십사 하는 부탁입니다."
군복은 입은 당번병이 들어왔다.
"집사람이 일어났는지 알아봐." 장군은 당번병에게 말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더 가져와. 또 하나의 용건이란 것은 뭐죠?" 그는 네플류도프를 향해 물었다.
"또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하며 네플류도프는 말을 계속했다.
"역시 죄수 대열 중의 정치범에 관해서입니다."
"아, 그래요!" 장군은 의미 있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 정치범은 중환자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 곳의 병원에 남게 되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역시 정치범인 여죄수가 한 사람 그를 간호하기 위해 남기를 희망하고 있어서..."
"여죄수는 그 남자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만약 결혼을 해야만 같이 남을 수 있다면 기꺼이 결혼하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장군은 광채나는 눈으로 뚫어지게 그를 쏘아보면서 눈초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듯 잠자코 담배만 피워 댔다. 네플류도프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장군은 탁자 위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더니 손가락 끝에 침을 발라가며 책장을 재빠르게 넘겨서 결혼에 관한 조문을 찾아 읽었다.
"그 여죄수는 무슨 형을 받았습니까?" 그는 책에서 눈을 떼면서 물었다.
"중노동형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결혼을 해봤자 환경이 지금보다 좋아지지 않을겁니다."
"그렇지만 말씀입니다..."
"아니, 잠깐만. 가령 그 여죄수가 보통 사람과 결혼을 한다 해도 역시 그 형기만은 어차피 치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그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형이 중한가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중노동형을 받았습니다."
"아, 그것 참. 어쩔 도리가 없군요." 장군은 웃으면서 말했다.
"둘 다 죄가 같군요. 그러나 남자만은 병 때문에 남게 될 수가 있습니다."하고 그는 말을 계속했다.
"그의 처지를 돕기 위해 가능한 한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만, 여자 쪽은 설사 그 남자와 결혼을 하더라도 이 곳에 남을 수가 없습니다."
"부인께서는 지금 커피를 마시고 계십니다." 당번병이 보고를 했다.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 봅시다. 그 두 사람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기다 써주십시오."
네플류도프는 그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것도 곤란한데요."하고 장군은 그 병자와의 면회를 허락해 달라는 네플류도프의 청원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 사내나 다른 죄수들에 대해서도 대단한 관심을 가시진 것 같고 돈도 가시고 계신 것 같군요. 이 지방에서는 돈이면 만사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뇌물을 근절시키라는 말을 늘 듣고는 있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다 뇌물을 받고 있는 판에 어떻게 없앨 수 있겠습니까? 지위가 낮은 축일수록 더 심하지요. 5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 감독할 수가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그 지방의 조그만 왕이지요. 내가 이 곳의 왕인 것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웃었다.
"당신도 지금껏 정치범들과 면회해 왔겠지만 그 때마다 사례금을 주고 들어가셨지요?" 장군은 빙글거리며 물었다.
"어때요, 맞지요?"
"네, 사실은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치범과 만나고 싶고 또 그들이 불쌍하게 여겨졌을 겁니다. 그리고 형무관이나 호송병들은 얼마든지 뇌물을 받지요. 하기야 20코페아카짜리 은화 두 닢의 봉급으로 가족을 부양해 나가야 하니 뇌물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나라도 그들이나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다면 틀림없이 그들이나 당신 같은 일을 서슴없이 하겠죠. 그러나 이런 지위에 있는 나로서는 준엄한 법 조문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는 일은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야 나도 인간이니까 인정에 끌리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행정관으로서 정해진 조건 밑에서 정부의 신임을 얻고 있으니까 의무를 다함으로써 그 신임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이쯤으로 끝냅시다. 이번엔 어디 당신께서 모스크바의 이야기나 들려 주시렵니까?"
이렇게 말하고 장군은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자기 얘기도 했다. 최근의 소식을 알고도 싶고 동시에 또 자신의 중요성이며 인도주의를 과시하고도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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