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98 1988. 3. 1 (화)
꿈. 꿈. 꿈.
꿈의 바라이어티 쑈!
6시 넘어 일어난 머릿속은 무겁다.
엇저녁 본 TV 프로 '인간시대'
제주 해녀할머니- 반벙어리, 남편은 반신불수, 전실자식 일곱남매, 혼자 물질로 모두 키워낸다.
그 할머니에게 메어진 운명의 중량은 얼마나한 무게인가.
그런데 그녀는 웃는다.
아, 나의 삶의 무게는 고작!
14999 1988. 3. 2 (수)
어제 할아버지 忌日.
가야숙모네등 함께 모여 예배드린다.
가야숙모의 예배인도는 참 조용조용하고 지성적이기까지 하다.
에스겔서의 '뼈의 골짜기' 말씀.
-에스겔 37장 1-10-
15000 1988. 3. 3 (목)
술 취한채 쓰러져 죽은 듯 파묻힌 잠.
어둔 새벽.
어딘가 숨어있을까? 요즘 내 진면목은?
<밤>
퇴근 만월의 달빛 밟으며 돌아오다.
달빛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는 천연스레 누워있고.
경건을 잃은지 벌써 며칠인지.
팽이는 때려야 돈다.
작금의 느껴지는 나의 상황은 나를 살게 하시려는 채찍인지도 모른다.
마음의 질고- 외부에서 보다 마음 속 질투, 탐욕, 게으름등 온갖 부덕한 품성에서 비롯된 질고임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어찌할수 없다.
요즘 내게 어찌하여 기쁨이 없는가.
나의 신앙은 사못 엉터리다.
이제 신앙에서 실패한다면 나는 완전한 파멸이다.
오. 너 불쌍한 영혼아.
내일 새벽 경건을 찾거라.
15002 1988. 3. 5 (토)
어제 대취.
기능직 사원 채용 문제로 시글쩍.
J, 웅진 아이큐 세일즈 시작.
시작한지 며칠 된 모양.
착잡.
15003 1988. 3. 6 (일)
어머니 모시고 교회.
英이는 오늘부터 교회나갈 시간이 없다. 상위 그룹의 스터디 클럽. 일요일 공부.
박치복 목사님 설교.
'성전만 밟는 사람들'
-이사야 1장 10-14-
나야말로 성전만 밟는 사람이다.
일요일 한낮.
막걸리 두명.
문득 떠오른 생각, 소설을 쓰자.
그 주제는 첫째, 상처 난 심령. 둘째, 삶의 디테일. 셋째, 로스 타투.
상처 난 심령은 영혼을 뜻하고, 삶의 디테일은 현실을 뜻하고 로스타투는 추억을 뜻한다.
이것을 꾸며서 써보자는 생각은 지금 술이 취해오기 때문일까?
아, 닫자.
15005 1988. 3. 8 (화)
분주한 듯, 싫어 싫어하면서 보낸 피곤한 하루 일과.
현장에서의 관계들의 부딪침이란 이토록 껄그럽건만, 겉으로는 아주 부드러운 듯, 능숙한 듯, 즐거운 듯 하는 작위적인 몸짓... 그 자괴감이란.
아무도 나의 이러한 지킬과 하이드적인 이중의 놀음을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다.
15006 1988. 3. 9 (수)
5시 넘어 겨우 일으킨 몸.
기도.
단순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예민한, 심리의 난해함을 좀 단순하게 하여 주십시오. 단순한 담대함으로 더러운 세상을 살게 해 주십시오.
터널- 어둡고 긴 터널, 지금 그곳을 지나고 있으나 출구는 뵈지 않고.
영육간에 이토록 너덜너덜하게 헤어졌는데.
신문에서 읽은 고려 의종의 동생 익양후의 품성.
"그러나 익양후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원한을 품을줄 몰랐다. 또한 기개를 세워 포부를 갖지도 않았다. 기질이 졸렬하여 더불어 사람을 사귀지도 않았고, 천품이 좀스런 나머지 조그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기를 잘하여 내시들조차 자주 입을 비쭉거렸다. 사내답지 못하여 폐인들이 낳은 아이들을 구차에 싣고 뜨락을 사뿐사뿐 오가면서 입으로는 싯귀를 중얼거렸다. 게다가 성질까지 어진 사람이어서 집을 빼앗기고 나서도 간혹 태자궁에 들러 의종의 안부를 먼 빛으로 알아보곤 하였다."
익양후라는 고려적 사람은 나와 같은 사나이다.
15007 1988. 3. 10 (목)
어제 오후부터 날씨가 풀려 사뭇 봄이다.
봄은 이제 내 살갗 근처에서 어른거리고 있구나.
봄의 온유함 속에서는 자연은 모조리 긍정이 된다.
온유함 속에서는 영과 육은 균형감각을 되살린다.
온유함은 날뜀이 아니다, 흥분이 아니다.
온유함이 유지되도록 쉬지말고 기도하라.
4시 기상.
모처럼 마음은 경건을 찾다.
데살로니가 후서, 디모데 전서.
기도. 좀 울다.
노동절 휴무.
유엔 국제 용서주간의 취지문.
"용서하겠노라고 결심하라. 분노는 유독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자신을 왜소하게 하고 게걸스럽게 한다.
가장 먼저 용서하고 미소를 지으며 첫발걸음을 내디뎌라.
그러면 형제 자매들의 얼굴에 활짝 피는 행복을 볼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앞장서고, 타인의 용서를 기다리지 마라.
용서를 함으로써 당신은 운명의 주인이 되고 생활의 모범자가 되고 기적의 실천자가 되는 것이다.
용서함은 사람의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당신은 말할수 없는 평화와 행복을 누릴 것이다.
오직 용기있는 사람만이 용서할줄 알 뿐이다.
용서는 비겁한 사람의 품성이 아니므로 비겁한 사람은 용서를 하지 못한다."
15009 1988. 3. 12 (토)
어제 가뭄 끝에 비 내리다.
목마른 땅 해갈은 된 셈일까?
새벽.
화장실 앉아 에스겔서 앞부분 읽다가 덮는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시무시한 저주의 말씀.
책상 앞에 앉아 유다서.
기도.
기도후 소리내어 빌립보서 다시 읽다가 울컥 치미는 눈물.
까닭은 모르겠으되 그것은 기쁨이고 평안이다.
15010 1988. 3. 13 (일)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의 일요일.
현장의 어지럼 속으로 출근해야 하는 아침.
그저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말자는 강박으로 기록되는 이 기록.
작년 초, 내 신앙의 약속으로 쓰기로 한 이 기록이 갈수록 형식적이고 진부하고 메마른 것이 되고 있다.
좀 정서를 가다듬어 풍성한 마음 밭을 만들어 놓고 공책을 피자.
정능의 산기슭, 어느 양지바른 무덤가에 누워, 푸르른 하늘 먼 곳 구름을 바라보며 그 소년은 무얼 생각하였을까?
설레임으로 꿈꾸었던 것들, 미래의 아름다움...
그 미래의 아름다움이 지금의 나란 말가?
오늘 어머니랑 교회에 앉아 좀 더 청정해지자.
<밤>
휴일임에도 회사를 잠시 빠져 나오는 것도 되게 눈치가 보인다.
어머니 감기, 형수도 오늘은 가지 않고.
나 혼자 가서 예배.
홀로 드리는 예배는 또다른 아늑함이다.
목사님 설교.
누가복음 16장 19-31.
천국과 지옥, 낙원과 음부, 부자와 나자로.
그 중간은 없다.
아내를 어서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한다.
15011 1988. 3. 14 (월)
어제 J, 어머니께 다녀오다.
역시 이사가는데 경제의 도움은 전혀 기대해서는 안되는 건가?
J에게 듣는 그러한 언어의 편린들은 작은 아들에게는 상당한 아픔인데...
오후부터 쏟아지는 빗줄기.
英이 반장, 학생 회장은 출마 포기.
경제적인 이유로 제 어미의 종용이 있었다.
참 무능한 부모짜리...
俊이 최고 득표로 운영위원 당선. 의외로 俊이한테는 막내를 보는 부모의 선입견과는 또다른, 학교생활에서 숫기도 있고 아이들한테 인기도 있다는 건가?
기쁘고 예쁜 나의 아이들.
공상한다.
조그맣지만 깔끔하고 개성적으로 꾸며진 가게 하나, 레코드가게나 책방같은.
바지런하고 친절한 그 가게의 주인, J.
적은 수입이지만 가득 동기가 부여되어 있는 우리집의 또다른 터전과 일.
15012 1988. 3. 15 (화)
회색수면.
꿈꿈꿈..
동인의원 대머리의사와 조용기목사가 오버랲된 인물... 이것은 寬容병이다 寬容병이다하고 주문 같이 병명을 뇌인다.
꿈 속에서의 관용이라니?
새벽.
다니엘서.
기도.
책상위 스탠드 불빛도 소멸시키고, 어둠과 고요에 잠긴다.
어머니의 영혼을 시시때때로 움켜잡는 마귀의 발톱을 뽑아주십시오.
어머니가 그 순간의 도취 속으로 도망하지 말고, 명징한 정신으로 하나님의 진리에 의지하게 하십시오. 삶에의 긍정과, 가족들의 둘러싸임 속에서 기쁜 여생을 누리는 은총을 주십시오.
나와 내 식구가 어머니의 기쁨이 되게 하십시오.
순정한 아내를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소원하심을 넓은 가슴으로 감싸 이해할줄아는 내 아내를 감사합니다. 여기서 더하여 아내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을 일으켜 주십시오. 아내의 순정한 단순함은 오히려 나보다 더욱 하나님적이올시다.
아이들, 형네, 媛네, 처가네...
직장, 상황을 개선하여 주십시오.
주십시오. 주십시오. 주십시오....
그러나 아버지 나의 하나님.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십시오.
아버지 나의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바 그것이 내게 최선일 것입니다.
소설이라도 쓸거나?
'나'.
성장함에 따라 점점 상황에 맞추어 순치되는 '나'.
그것은 또하나의 '나'로서 형성되고 굳어져 버린다.
그것이 이른바 타인의 '나'이다.
내 안에 숨어있는 '나'와는 얼마나 다른지...
그 두 '나' 사이의 괴리를 견디다 못해, 그 두 '나'의 합일을 위하여 일생 일대의 연극을 꾸미는 어느 젊은이 이야기.
거듭 난다는 말씀과 연계하여.. 치밀한 구성과 종장의 반전과... 云云.
15013 1988. 3. 16 (수)
어제 취하여 돌아오다.
어제 형수와 이야기나눈다.
어머니 문제에 이르러... 아, 어느새 어머니는 폄훼의 대상이 되었는가?
어머니에 대하여 그토록 못마땅한 것이 많았단 말인가?
나 또한 어떠한가?
큰집에서 돌아 온 내게, J는 명확히 지적한다.
말로만 효자인척, 표면적으로만 가장 걱정하는척, 당신이 실제적으로 어머니에게 무얼 해드렸단 말이냐. 어머니의 진정한 의논상대가 되 보려고 노력이나 하였느냐.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어머니의 주변을 파악하고 처리하고 해결한 적이나 있느냐. 경제적 능력없음을 한탄하고만 있으면 제일이냐. 다 큰 어른이 어머니가 저 지경이 되도록 수수방관하였다는게 제대로 된 것이냐. 는 J의 신랄한 지적은 너무나 구구절절 옳다.
그저 내게는 순전히 유아적 집착으로서의 어머니였을 뿐이다.
아아!
15014 1988. 3. 17 (목)
새벽. 밖에 저 막막한 어둠 속을 내리는 빗소리.
어머니는 이 신새벽 저 빗소리를 들으며 무얼 사념하고 있을까?
그 사념이 허무와 괴로움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가 스스로 혼미코자하시는 것은 이런 부정적 사념탓일 건데.
아아!
15017 1988. 3. 20 (일)
어제 한껏 취한다.
큰집 들러 교회 갈 의욕은 식어버린 재가 되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 왔는데..
가득 울음 섞인 어머니의 목소리.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
아아!
15020 1988. 3. 23 (수)
어제 역시 대취.
오늘 회사 빼먹고...
자기모멸과 회한.
15023 1988. 3. 26 (토)
새벽.
기도.
경건과 균형감각은 이제 좀 회복되었는가.
헬만헷세.
시인의 기억 속의 느낌은 이를테면 이 정도다.
"내가 태어 난 때는 7월의 따스한 날 초저녁이었다.
내가 일생에 걸처 무의식적으로 사랑하고 추구해 온 것은 바로 그 시각의 온도였다."
나에겐 이와 같은 그 시각의 온도 같은걸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가 아마도 밝은 한낮의 정적이었을 것 같다. 정오의 절정, 그 정적은 아주 익숙한 분위기로서 내가 사랑하는 그림이다.
"나는 나무와 새와 나비를 알고 있었고 노래를 부를수 있었으며 휘파람을 불거나 그 밖에 중요한 많은 것들을 할수 있었다."
俊이도 이와 같을 것이다. 홀로 많은 것들을 이렇게 스스로 습득해 가고 있을 것이다.
유모어 감각이라는 것.
성경을 읽다보면 그 세계에는 줄곧 유모어감각이 흐르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나타날 수 있는 기능임이 분명하다.
인생에 대해서 무지하고, 슬기롭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편협한 인간은 슬랍스틱 코메디로 남을 웃길수는 있을지언정 그에게 유모어감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러니까 탁월한 인격만이 가질수 있는 특권이다.
내게는 이 유모어감각이 없다!
15024 1988. 3. 27 (일)
형수는 훌쩍 먼저 교회로 향하고, 어머니는 가지 않으시고, 나는 홀로 간다.
앉아서 강대상에서 행해지는 세례, 성찬식등 교회의식을 바라본다.
어떤 소외감이 밀려온다.
젊은 부부가 갖난아이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하는데 그 가족의 단란한 경건이 참 보기에 좋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눈보라치는 창밖에서 정겨운 어느 가정의 크리스마스 만찬을 들여다 보는듯한...
캐토릭의 제의만이 엄숙하고 거룩해 보이는 것은 아니구나.
성찬식-
화체설이면 어떻고, 성체공존론이면 어떻고, 기념론이면 어떻고, 영적임재론이면 어떻단 말이냐?
어차피 부박한 인간의 어떤 감정의 현을 자극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면 되는 것, 예수그리스도를 느끼고 간직하는.
다시 어머니께로.
어머니, 슬픈듯 졸린 듯..
누가 늙은 어머니 곁에 있을까?
술은 카니발-
도피가 아니고 카니발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으니, 그 생명이 유캐하여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다.
도피가 아니란 말이다.
15025 1988. 3. 28 (월)
"지난 날을 어떻게 잊으랴.
새벽 닭 울때마다
삶은 노엽고 원통했다"
-이승훈 -
그래, 이토록 나의 삶은 노엽고 원통하다.
루시퍼가 옛날부터 내 발목을 잡고 있다.
어머니의 영혼과 함께 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래서 내 삶은 이토록 노엽고 원통하다.
15026 1988. 3. 29 (화)
새벽.
필사적으로 경건을 부른다.
다시 프란시스코를 펼치고, 시편을 소리내어 읽고...
밤의 한 경점같은 목숨을, 아 하나님 나의 아버지여 도우소서.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15027 1988. 3. 30 (수)
소설을 써 보았으면.
제목은 '이름'.
심리적이고 형이상학이 있는가 하면,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의 귀결은 영원이다.
어릴 때 잃어버린 누이, 그 누이는 그가 꿈꾸는 새이다.
그 누이에 대한 기억은 그 영혼을 순수하게 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옷을 입고 나타날 것이다.
신의 물리적인 현존은 도무지 느낄수 없는 사람이라도, 조금만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여 그 꿈꾸는 새를 떠올릴수 있다면 기억한다면 그의 현실에는 이미 신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충실하고 세련된 구성과 담담한 문체, 온유한 전개... 따뜻한 충격.... 그런 소설.
15028 1988. 3. 31 (목)
부산, 특히 영도의 봄은 봄이 아니다.
바람의 스산하기가 겨울보다 더 하다.
새벽 기상.
다시 펼치는 마태복음.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