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88. 6

카지모도 2016. 6. 2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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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0 1988. 6. 1 (수)


풍광 수려하고 정결한 나의 집.

지극히 만족스럽다.

俊이의 흐뭇해 함이란.

J의 일처리는 나에 비하여 지극히 능숙한 솜씨이다.

일사불란하게 맺고 끊고 하는 성격이 효율적으로 발휘된다.

낡은 태림아파트, 그것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조금의 앙금도 남기지 않은채 멋지게 처리한다.


15091 1988. 6. 2 (목)


4시30분 기상.

창문을 여니까 쏴-하는 빗소리.

멀리 수평선이 아득한 운무에 잠겨 있다.

요한1서.

기도.

새집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은밀한 손길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나의 모자람을 채우고 현실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는 이와 같은 아내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이 새로운 집에서 아내의 영혼에 소망,진리,믿음의 씨앗을 심어 주시고 이 가정을 찬송과 감사와 기도가 넘치는 가정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어머니의 영혼을 도와주십시오. 진리로써만 기뻐하시고 혼미 속으로 빠지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어머니께 허락하여 주십시오. 내 마음 속 어머니를 향한 불만,원망,섭섭함등 순수치 못한 앙금일랑은 없이 하시고 사랑으로만 어머니를 생각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힘이 되고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자식이게 하십시오.

눈물.

사랑. 이 새벽 이 새집에서의 눈물이 따뜻한 등불이 되어 꺼지지 말기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15094 1988. 6. 5 (일)


화창한 날.

일요일.

어제 현장의 피곤- 그 매연과 고함과 어거지도, 이 화창한 아침 저 드넓은 풍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저번 일요일은 못갔으나 오늘은 교회 가리라.


15095 1988. 6. 6 (월)


어제 교회.

설교.

'하나뿐인 하나님 여호와'

옆 자리에서 예배보던 중년여인 찬송가 부를 때 참 아름다운 소프라노, 듣기 너무 좋았다.

J는 늘 얘기한다.

어머니께 형에게 자주 찾아가고 자꾸 대화를 하라고.

홀로 예배보고 들른 큰 집- 어머니의 무덤덤함, 형의 소원함, 나의 이사에 대하여는 일부러 한마디의 인사도 건내지 않는다.

짐짓 웃고 떠드는 내 마음의 슬픔을 아무도 눈치챌수 없을 뿐 아니라 짐짓 눈치채려 하지를 않는 것이다.


15097 1988. 6. 8 (수)


4시 기상.

짓누르는 듯한 딴 세계의 수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로서 나온 빛과 따뜻함의 세계는 아니다.

음울한 흑백의 영상, 기억도 못할 꿈들.

기도.


회사사람들 집들이는 다음주 쯤, 이번 토요일쯤엔 어머니,형네 모셨으면 하는 내 생각, J는 어떨른지.


15098 1988. 6. 9 (목)


흐리고 바람불다.

6월답지 않게 써늘하다.


6월10일 대학생들의 남북 판문점회담 관계로 매스컴 떠들석.

잘 하는 짓인지, 위험한 발상은 아닌지 나는 모르겠으되.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젊음은 적어도 그 열정이 순수하고, 계산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기성세대라면 어림없는 생각이 아닌가?

기성꾼들이 붙들고 고수해야만 할 가치라는 것은 뒤집어 놓고 보면 쓰레기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때묻고, 안일하고, 수구적이고, 제 욕심채우기에서 나온...

그런데 이들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 역시 기성꾼들...


15100 1988. 6. 11 (토)


어제 어머니,형수,마산고모님,김선생님,彦이,哲이 집에 오다.

하이타이 사들고 우 와서는 남처럼 뚝딱 저녁들 들고 금새 떠난다. 내다보이는 경치에게만 덕담을 한채.

슬픈 기분.


상승하라. 저 높은 공간의 찬란한 불꽃을 마셔라. 그리하여 말없는 것들의 말을 알아 내어라.


15101 1988. 6. 12 (일)


회사 들렀다 어머니와 교회.

'전능하신 하나님'

목사님 강론중 쏟아지는 졸음.

어머니는 찬송가 401장을 무척 좋아하신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메마른 정서에 스스로도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오, 랄라. 내 꿈꾸어 오던 찬란한 사람들이여.

그대들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서 모두 잠자고 있는가.

아, 어쩌면 그대들 모두 죽어 버린 것은 아닌가.

그건 전율.. 전율...


15103 1988. 6. 14 (화)


4시 기상.

요한계시록, 우찌무라 간죠.

기도.


어제 KH근 에게서 전화, PS곤 또하나 점포 개점한다고.

PS곤 에게 장사술을 배우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P이사, J대리에 대한 암시, 그를 적극 옹호치 못한 나의 편협한 이기주의.

한두달내 인사이동 있을 듯. 목구멍까지 올라온 나의 전보문제, 그러나 말이 되어 나오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즐겁고 행복한 사람에게는 쉽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고뇌하는 인간이 주로 쉽게 찾아낸다.

고뇌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변적으로만 치달은 그런 고뇌도 아니리라.

현세는 우리의 이상을 실현시키기에는 너무나 불완전한 곳.

그리하여 괴로운 생애의 체험이 없이는 영원이라는 관념은 생겨날 수 없다."

"진리는 모두 사유의 작용에 의해서만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하나님이 추리적 탐구에 의하여 발견된다면 그것은 겨우 우리의 이성을 만족시켜 주는 진리일뿐이며 우리의 성품 전체를 감화시킬수 있는 진리는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느 배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초추리적이다.

이성 이외의 기능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진리가 아니면 하나님에 관한 진리가 아니다.

나의 전신, 나의 전 존재에 의하여 하나님을 깨달아야 한다."

-우찌무라 간죠.


눈을 감으라. J야.

영원을 묵상하고, 당신의 영육을 일관하여 흐르고 있는 그 보편성을 묵상하라.

당신이 깨달아 알수 없는 것. 생각하여 도달할수 없는 무엇이 보일 것이다.


15104 1988. 6. 15 (수)


어제 회사사람들 초대.

집들이.

최석교,박세동 마누라들 와서 도와줬지만 J의 수고.

음식 솜씨 칭찬이 입에 발린 소리일지언정 귀에는 달다.

그만 취하다.

마루에 쓰러져 잠든다.


어제 P이사와 J대리에 관하여 장시간 대화.

권고하여 사직토록 하라는 암시.

혹은 어느 부서로의 전보, 전보가 된다면 그에게는 전화위복일 것.

현장을 벗어 나는 절호의 기회.

정작 그 절실함은 내가 몇십배나 강할 터인데.


15105 1988. 6. 16 (목)


SB-339 진수.

무더운 날씨.


英이 오늘 식물원에 사생대회 다녀오다.


저녁 식탁에서 英이 한마디 말.

"아빠. 오늘 문득 행복하다는걸 느꼈어."

아, 행복.

잊어버리고 있던 단어. 행복.

그 단어가 너무 생경해서 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발음에 물컹 사무치는 무언가가 있다.

열다섯의 소녀가 푸른 자연 속에 둘러 쌓여 있을 때, 그 소녀에게 세상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답고 인생은 얼마나 빛난 것이었을까?


행복.

그렇다.


나는, J는 아이들의 행복을 이해할수 없는 것이다.

J여, 英俊이의 행복이 어떤 색깔인지 우리는 아느냐?


그러나 행복은 우리 시구에게서는 동일하다.

엄마도 英이도 俊이도 아빠도 또한 행복해야 한다.


이제 우리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행복. 행복. 나는 행복하다. I'm happy, I'm happy...

노여워 하지 말라... 노여워 하지 말라...

행복.

英이의 행복,

俊이의 행복.

이정화, 이상헌의 행복...


15106 1988. 6. 17 (금)


인간이란 그렇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살아가는 동물이다.

타인의 시선이 부여해준 고정 관념에 스스로 옭매여져서 벗어날 수 없는 동물이다.

그 시선을 깨고 벗어나는 사람이 이른바 영웅이고, 위인이고, 기인이다.

소유보다 존재의 삶을 선택할줄 아는 뛰어난 사람이다.


무덥지근한 날씨.

블록의 탱크 속을, 선대의 배 위를, 내업공장을, 쇼트블라스팅 기계 속을 돌아다닌다.

파김치의 육신이 오히려 정신을 평온케 하여 준다.

이 곳 현장에서 조금의 만족을 찾는 길은 그저 육체를 혹사하는 길 뿐이다.

다행히 내 나귀는 더 부려 먹어도 좋으리라.


몇 개의 아포리즘.

"작은 지식은 위험하다. 깊이 마셔라. 그렇지 못하면 아예 마시지 마라"

"조금의 광기를 갖지 않은 천재는 절대로 없다."

"절제는 만족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또하나 성경의 말씀.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고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


15107 1988. 6. 18 (토)


5시 기상.

화장실에서 조선일보에 실린 샤갈의 그림을 보며 황홀해 하다.

얼마나 행복해지는 그림인가.

하늘을 나는 여인, 파스텔조의 하늘 빛깔, 봄 밤과 같은 환상적 그림이다.

샤갈의 현실은 그러했는지.

천재는 현실을 살지 않는다.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는 수준은 지극히 범속 한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로부터 철저히 숨어버리는 도피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그 현실 자체는 그의 영혼에 각인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할 뿐이다.

천재는 현실에서 좀 더 영원한 것, 가치있는 것, 절실한 것, 기쁜 것, 아릅다운 것, 혹은 좀 더 고통스러운 것, 절망적인 것을 추출해 낼수 있는 것이다.


15108 1988. 6. 19 (일)


어제 J와 서면 지하상가 PS곤 의 가게 다녀 오다.

그 서너평의 가게가 억이 넘는다니.

봉급장이는 기가 질린다.


어머니 고모님과 교회.

설교.

'창조주 하나님'

진화론과 창조론, 영혼과 내세와 목적론적 우주의 존재를 거부하는 심령의 불행.


비디오 '양철북'

선명치 못한 자막.

인생, 사회속 인생의 더러움에 대한 항변, 자라기를 거부한 오스카, 계속 두드려대는 양철북....


15109 1988. 6. 20 (월)


다소 선선.

기능직사원 채용시험 감독관 노릇, 개개인의 딱함이나 선량한 인상등 채용하고 싶은 인물은 제쳐 놓는데 그건 내 책임회피의식.


J의 친구들이 이사선물로 사 온 진공청소기로 바닥, 창틀 구석구석 청소하는 J의 천진스런 포즈는 사랑스럽다.

어둑어룩 저물어가는 아홉시의 먼바다, 회색빛 바람이 분다. 내일의 바람.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그 요이는 전적으로 하나님 그 절대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할수 있는 신앙에서 나오는 것이다.


온유한 복종, 둥굴게 둥굴게 사는 것.

상황을 수렴하는 것과 저항하는 것.

부당한 것에 일관되게 노하는 것.

나는 복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항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하며 타인에게 관대하다는 말.

외유하며 내강할 것.


15110 1988. 6. 21 (화)


펜테코스트계의 목사님이 쓴 '기적을 외면하지 말라' 다시 읽다.


"기적을 낳게 하는 성령의 힘은 사도들 및 사도들의 손이 닿았던 사람들이 죽음으로서 이미 끝났다. 기적은 하나님이 교회의 발족을 돕기 위해 쓰신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교회가 세워지자 그런 초자연적인 선물은 사라졌다."

이것이 굳어버린 보수교단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영혼에게는 이러한 굳은 관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거칠고 풍성한 원시림의 세계, 그 풍요함.

정말 그렇다. 참다운 가치도 없는 관습적 생각, 우리가 만들지도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태도야 말로 훌륭한 태도일 것이다.

작년 내게 임한 그것은 교회가 준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디 깊은 산속 기도원에 들어가서 몇날이고 금식하며, 거칠지만 순수한, 새롭고 말할수 없이 편안한, 그 열정, 그 신비한 감동의 세계, 그것을 되찾고 싶다.

세상이 주는 어떤 쾌락보다, 어느 산해진미보다, 어느 한스런 情보다, 어느 심리의미묘한 일락보다, 어느 음악보다, 어느 예술보다 더 열망케하는 대상, 신께 향한 열린 그 세계.

다시 오라.


15113 1988. 6. 24 (금)


새벽 4시 기상은 하였으나 경건한 시간은 갖지 못하다.

처가에서 사준 정수기.

그 물을 마셔 그런가 속이 한결 편한 느낌.

물, 고마운 물과 고마운 장인 어른.


흐린 날씨.

먼 남쪽 바다에 폭풍이 세력을 넓히고 있다.

그 전초병의 바람 덕분에 선선한 현장의 일과.

그러나 계속 터지는 오작, 오작.

SB-342 화물선 선수 FASHION부에 기능미숙 오작.

2공장 SB-340,341의 외판 오작.

공손비용을 따지면 엄청나다. 강판 값만 해도 얼마인가?


회사 의장반 구석에 있는 책 한권 가져다 읽는다.

권중욱 '터잡이'

대단한 입심의 작가다.

도시 뒷골목 구석구석에 널려있는 쓰레기같은 살이들.

그 오욕스런 삶에 비하면 나는 뭐가 어떻단 말이냐.


15114 1988. 6. 25 (토)


몹시 바람이 부는 하루.

서른여덟번째의 6.25

그 역사적인 사건은 내게 참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아버지. 극히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북녘땅 어드메 살아 계신건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운명하셔 어느 곳에 묻히셨는지...

창백한 인텔리- 나약한 부잣집 큰아들께서 그 얼마나 고독하셨겠는지, 처자식은 얼마나 그리셨겠는지.

아버지가 곁에 계셨으면 내 인생의 색채는 아마 엄청나게 달라졌으리라.

한 소년의 성장에 아버지라는 존재의 절대성은 얼마나 큰 것인지는 나이를 먹으면서 절감케 되는데...

내 모순된 길, 미망의 길은 그토록 헤매지 않아도 되었을터인데..


아버지는 어떻게 사셨으며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우리 형제들에겐 다만 신화만 남아 있을 뿐이다.


15115 1988. 6. 26 (일)


아침, 俊이와 목욕.

국민학교 6학년, 막내며 하나뿐이 없는 내 아들.

그 애에게서는 늘 달콤한 향기가 난다.

내 아버지도 내게 이 향내를 맡으셨을까.


면도기 소제, 발톱깎고, 구두닦고, 근 반년 넘게 장전되어 있던 카메라 필림 뽑아낸다.


어머니에게서 전화.

오늘 교회갈수 없다는.

어머니는 날보고 오지말라고 하는 암시를 주시는 것인데, 슬픔 한조각.


15116 1988. 6. 27 (월)


맑은 날씨, 그러면서도 초여름답지 않게 선선하다.

새벽 경건은 맞지 못한다.


회사, 그 현장의 일상이라는 것은 때로 견딜만 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부닥치는 것은 환멸과 어처구니없음이다.

J대리 관리과로 전보, 내가 옮기고 싶었는데 그가 간다.


난조, 오후 무렵 찾아오는 감정 또는 기분의 흐트러지는 리듬.

무질서의 마음밭, 카오스에의 동경같은...


15117 1988. 6. 28 (화)


가뭄에 대지는 갈라지고 있다.

내 마음의 대지도 갈라지고 있다.

경건의 단비는 며칠째 맞지 못한다.


15118 1988. 6. 29 (수)


새벽기상. 꿈은 기억하지 못하겠으되 다소 설친 수면이었던 듯, 머리 속은 그리 맑지 못하다.

출애급기.

거실 소파에 앉아 불끄고 어둠에 잠겨 기도.


나는 참으로 감사할줄 모른다.

천성이 비관적이고 의심이 많아 그런 것이다.

단순하게 표면에 나타나는 그것을 그대로 단순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배후에 숨겨진 어떤 복잡한 것이 있을거라는 짐작, 그래서 그것을 간파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인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어떤 상황을 대할 때 내게는 밝은 표면보다 어두운 이면을 보고자 한다.

낙천가만이 감사를 느낀다.

웃을줄 알아야 감사할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게는 얼마나 많은 감사할 거리가 있는가?

그런데 그 밝고 빛나는 부분은 짐짓 외면하고 자꾸 어두운 쪽으로만 보려고하니, 하나님. 이 발칙함을 어이할꼬.


15119 1988. 6. 30 (목)


어제 서면기업 김상용 사장의 접대술로 늦도록 취하다.

슈베르트를 좋아한다는 드문 조선쟁이, 클래식에 대한 매니아적 풍모에 그만 그가 좋아져 버린다.

남포동에서 선박연구소 사람들과 대동조선 조부장 마주쳤다.

되지도 못한 조선 엘리트 의식, 그 기술이란 것의 관념성.

그들은 김상용사장에 비하여 한참 덜 성숙한 인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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