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88. 8

카지모도 2016. 6. 22. 00:48
728x90




15151 1988. 8. 1 (월)


5시 기상.

화장실에서 함석헌 '죽어도 죽지 않는다' 읽는다.

씨알, 그것은 역사를 인식하는 한사람의 민초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땅에서도 이루기 위하여 행동하는 신앙, 기복적이고 내세적인 신앙과는 다른 신앙, 분명 하나님의 오소독스한 세계와는 다른 부분이 있지만 전혀 배리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에게는 분명한 이중성이 있지 않은가?

마루에 앉아 시편 90을 소리내어 읽는다.

함석헌씨와는 대립되는 명제, 티끌같은 인간의 허무함, 그 헛됨이 가져다주는 순진무구한 신앙의 태도.


기도.

아버지 나의 하나님.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오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인생을 주님께서 주셨을 지언데, 부디 가치있게 하소서. 인생의 죄악에서 눈을 돌리시고 그 인생에다가 의미를 부여해 주십시오.

하나님. 주님께서 심어주신 씨앗을 창대하게 만들기는커녕, 점점 시들게 만들고 있는 까닭은 주신 영혼의 그릇이 너무 작은 까닭인 듯 합니다. 세상의 방법에 너무 급급하여 주님의 방법을 종종 도외시하는 이것은 주신 정신의 그릇이 너무 작은 까닭인 듯 합니다.

넓혀 주소서.

또는 이 그릇이 감당할수 있도록 내게 오는 세상의 방법을 조정해 주소서.


출근하는 날이다.


15152 1988. 8. 2 (화)


어제의 하루 일과, 그다지 무덥지 않아 다행.

새벽.

俊방에서 마태복음.

기도.

감사해야한다. J의 요즘 온유함을. 어머니 생신을 우리집에서 치르자는 갸륵한 발상을. 방학중인 아이들이 새서리처럼 지저귀는 그 명랑함을. 빚을 갚아 말할수없이 후련해 하시는 어머니의 기쁨을. 이해가능하며 위안과 힘이되는 여지가 충분한 형제간의 마음들을.


오늘 11:30 SB-334 진수예정.


15153 1988. 8. 3 (수)


가장 무더운 날씨.

어제밤 12시 넘어 잠자리들어 짧은 수면 취하였으나 숙면이다.

꿈도 없이.

숙면덕인지 그다지 곤비한 하루일과가 아니었다.

허지만 오후들어 들입다 퍼붓는 졸음.

잠자리에서 이렇게 잠이 퍼부어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뿌연 광막, 여름의 태양도 그 뿌연 용접연기, 가스연기의 매연에 가려 빛을 잃고, 땅에서 뿜어오르는 열기, 대기에 배어있는 열기, 강판에 복사되어 후끈거리는 열기가 위협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작업에 임하는 근로자의 듬직함은 나처럼 게으른 자에게는 하나의 경이가 아닐수 없다.

산다는 것은 이토록 치열한 것인데.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장로 세상을 뜨시다.

가치있는 삶이었다.


15154 1988. 8. 4 (목)


꿈- 회사, 그 곳에 방문한 어머니, 媛이도 등장, 냉정함에 꿈 속에서도 느껴지는 섭섭함과 슬픔과 분노의 감정.

미상불 내 심층심리 속에는 말못할 큰 응어리가 있는 모양이다.


새벽.

창문을 연다.

자욱한 안개.

어둠에 잠긴 시커먼 바다는 안개 저편에 마치 거대한 짐승의 몸뚱이처럼 누워있을 것이다.


俊의 방.

마태복음.


15155 1988. 8. 5 (금)


어제 생산부 회식.

우리집 이웃의 닭백숙집에서 먹고는 몇몇 젊은 아이들과 미니공원까지 맥주지고가서 12시까지 노래부르며 마시다.


늦잠, 결국 회사는 오늘 쉬기로 한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를 들으며, 결근의 불안을 달래며, 밖의 불볕더위와 현장의 그 무시무시한 열기와는 사뭇 다른 별장같은 나의 집에서 노닥거리는 것이다.


媛에게서 전화, J가 받는다.

어머니생신, 우리집에서 치르고자하였으나 어느 음식점에서 하자고.

형은 휴가, 가족들과 함께 어디 피서를 떠난 모양이다.


15158 1988. 8. 8 (월)


어제 중앙동의 중국음식점 신천지에서 모두 모여 어머니 생신 회식.

형네, 媛네, 김선생님, 장로님 내외분.

그곳에서 음식들 먹고 어머니 뺀 모두는 우리집으로.

늦도록 고스톱판.

이런 핏줄끼리의 모임은 얼마나 유익한가.

또한 김선생님, 장로님등 어머니의 주위 분들이 때로 우리 형제의 못남이나, 그 아내들의 좁음을 일깨우며, 어머니의 기쁨에 힘이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


보생의원 마지막 어머니 생신 축하차 서울서 고모님들, 숙모님들 내려오시고 媛네는 올라갔다.앞으로 형네의 역할이 지대하다.

형수님, 크리스찬의 향기로서 화목과 배려와 넓음으로 어머니를 중심한 우리 핏줄의 소금이 되어 주세요.


폭염. 근 열흘째 들끓는 가마솥의 현장.

그러나 온유하게 일과 마치다.


英이 청도로 캠핑 출발.

홀로 남은 俊이, 내일 피아노집에서 곤포의집 풀장 간다고.


내일 새벽 기도하라.

너의 창조주께 감사하여라.

나보다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의 건강하심을. 가족들의 둥그런 모임을 주심을...

그들을 감사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15159 1988. 8. 9 (화)


올여름의 오르가즘.

철판의 복사열과 더물어 현장은 용광로 그 자체다.

그 치열한 현장을 벗어나 퇴근길의 바다는 어찌 그리 천연덕스러운지.. 쪽빛 하늘에 흰 구름 흩날리며 푸르른 새색씨처럼 고즈넉히 앉아 있다.


줄곧 생각한다.

이제 어머니가 형네와 함께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신다면, 나와 J는 누가 뭐래도 어머니를 모시는 형네에 먼저 마음을 써야한다.

어머니는 물론이려니와 형수께, 조카들에게...

변해야 한다. 변해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 마음을 필사적으로 닮도록 하자꾸나.


한병의 투명한 액체, 소주.

'그 순수'라고 발음해 본다.


15160 1988. 8. 10 (수)


역시 끓는 날씨.

태양의 리듬에 맞추어 온갖 피조물들은 나름대로의 목숨의 엑스터시를 만끽하고 있다.

다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들만이 더위를 푸념하면서 자연이 아닌 사회를 살고 있을 뿐이다.


공상- 어머니를 중심한 모든 가족들의 우애,애정,우정,사랑.. 이들이 만들어 내는 앙상블, 그 하모니의 꿈과 같은 정경.

그리스도 예수의 수채화.


英이 캠핑에서 돌아오다.

이쁜 내 딸.


15161 1988. 8. 11 (목)


맹위를 떨치던 더위는 오늘 한풀 꺾이다.

잠시의 소나기.


오늘은 줄곧 J의 부업문제를 공상하며 홀로 즐거워하다.

책방, 4평짜리 서점, 500만원 전세에 10만원 월세.

나의 현실적인 능력이란 이렇게 J가 제시한 것들을 공상하는게 고작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향해 행동으로 어프로치하는 실천력은 도저히 J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J에게는 신기하게도 진실한 친구들, 도와주려고 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이 있는데 나로서는 블가사의하다.

뻣뻣하고 불친절한 성격인 반면 솔직, 담백, 꾸밈없음, 신의같은 덕목이 좋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모양이다.

하나님의 섭리같은걸 느낀다.

내게 모자른 것을 J에게 채워주시는.

이것 또한 은총이 아니겠는가?


내일 숙직, 모레 SB-342 진수.

오후 한나절, 정말 미치게 퍼부어 오는 잠.

그런데 밤의 불면은 도대체 무슨 노릇이람.


내일 새벽은 회복하여라. 거룩한 나의 경건을.


15163 1988. 8. 13 (토)


조선의 꽃이라면 그것은 아무래도 FAT 진수의 순간일 것이다.

거대한 쇳덩어리의 선체가 춤추듯 바다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그 순간은 실로 감동적이다.

SB-342 진수.

진수 도끼를 찍는 부산상선 사장의 손녀에다 우리 英이를 대입시켜 본다.

우리 英이가 부자집에 태어났다면.


J는 가게문제로 공연히 설레이며 바쁜 듯.


15165 1988. 8. 15 (월)


어제 오후 안방에 앉아서 소주잔 기울이며, 앨범을 보면서 아이들과 옛 얘기 나눈다.

옛날 흑백사진 혹은 칼라사진들- J의 어여쁨. 아이들의 사랑스럽고 준수함이 빗물처럼 촉촉하게 마음을 적신다.


잠의 뿌리를 뽑다. 7시경 누워 중간에 잠이 깬 것이 12시 30분경, 그때까지 J와 아이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영화 보느라 잠자리 들지 않고 있었다.

다시 내처 자서 5시 넘어 깨어난다.

번개와 천둥. 밤새 비 내린 듯.


갈라디아서.


흐린 날씨, 간혹 흩뿌리는 빗방울.

뒷산 숲은 아침바람에 수런거린다.

회사에 나가야 하는 휴일, 광복절.


15166 1988. 8. 16 (화)


어제 휴일의 오전은 현장에 있다.

오후 드니 쨍쨍한 햇볕.

8월 17일 J의 생일,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사려고 시내를 돌아다녔으나, 도무지 우유부단의 극치인 나의 쇼핑체질은 아무것도 고를수가 없고, 오직 구매에 자신있는 품목인 신간서적 한권 산다.폴 데이비스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대략 훑어보니까 기초 물리학의 지식없이는 접근하기 힘든 책인 것 같다.

과학이 발견할수 있는 신의 개념.

나는 호교한다는 의미에서라도 이 책을 완벽하게 읽어내야 하리라.


J는 가게문제 때문에 점쟁이한태 갔던 모양.

오죽 답답하였으면.

나는 무슨 아이디어로 J에게 용기를 줄수있단 말인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이 흐르는 안방, 여름 밤.

내일 아침 식탁에 우리 식구 둘러앉아 이 집의 주부, 아이들의 어머니 생일을 감사하고 축하하는 자리를 갖자.


15167 1988. 8. 17 (수)


모처럼 맞는 새벽의 경건.

英이 책상 앞 불밝혀 앉아 기도.

나의 하나님. 나약하며 우유부단한 성격에 주님의 강하고 단호함을 가르처 주십시오.

오늘 아내의 마흔 두 번째의 생일, 축복해주십시오. 아내의 심령에 심긴 믿음의 씨앗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가 뻗어올라 잎과 꽃이 무성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집안의 반석인 아내의 육체를 건강하게 하여 주십시오.

나와 함께 주신 그 도정을 걸어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며 용기가 되며 지혜가 되며 위로가 되며 감사가 되며 자랑이 되는 가시버시이게 하여 주십시오.

그것을 하나님 나의 아버지 지켜보아 주십시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 나와 아내로 하여금 주님이 저희를 사랑하듯이 형수를 사랑하게 하여 주십시오.

만일 누구의 마음 속에 시기나 욕심이나 원망이나 그런 것들이 있다면 먼저 사랑함으로써 그를 변케하시고 그것이 어머니의 여생에 충만한 기쁨이게 하소서.


눈물흐른다.

어둔 새벽.

번개, 빗소리.


15169 1988. 8. 19 (금)


어제 취하다. 과원들 데리고 회식.

P대리 그는 심술궂고 욕심 많으나 일견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는 훌륭하다.


아침 늦잠, 결근으로 이어지는 도식.

어제 처제들과 동거하는 할매들 다녀갔다고.

작은 처제 솜씨, 지점토의 해바라기 시계.


라 트라비아타 듣는 정오, 비오레타의 소프라노, 콜로라투라.

우리 英이가 꾀꼬리처럼 따라 부른다.


15171 1988. 8. 21 (일)


일요일.

어머니께 들른다.

교회는 가지 않고.


英이와 俊이, 그리고 彦이 哲이, 나의 아이들과 나의 조카들 데리고 시내 나간다.

책을 사주려고 광복문고 들렀으나 너무 넓다란 그곳에서 아이들 책 고르기가 쉽지 않다.

넓은 매장, 시원한 에어컨.

한권씩들 고르다.

내 책은 미우라 아야꼬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

英이는 쉘 실버스타인 '다락방의 불빛을'

俊이는 아트 링클레터 '꼬마들은 엄청난 사실을 말한다'

彦이는 '꼬마 니콜라'

哲이는 '만화광장'

동광동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만두의 점심을 사주는데 나는 물론 백알마신다.

만두사들고 다시 어머니한테.

2층에서 哲이 미술숙제 해주고.

오늘 나는야 꼬마대장.


어머니, 형, 형수, 彦이, 哲이.

그들은 한 무더기로 수렴해야 할 나의 가족들이다.


15174 1988. 8. 24 (수)


어제 밤늦도록 俊이와 彦이의 방학 과제물 만들다.

선박에 관련된 스크랩북 두권 완성.

俊편에 彦이에게 보내다.


J의 서울친구, 내려와 집에 묵는다.

노처녀, 세자매가 모두 독신이란다. 막내동생이 서른 넷이라나.

신념도 아니고 무슨 뚜렷한 이상이 있어 그런 것도 아니고 무슨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 독신이 되었단다.

독신이 이상스럽게 보이는 건 순전히 관점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두 처제를 생각한다.


15176 1988. 8. 26 (금)


어제 과우회 모임.

12시 넘어까지 3차에 걸처서 마셔대다.

늦잠, 흔들어 억지로 일어나게 하지 못한 J에게 신경질 부리면서 허둥지둥 출근 준비.

나는 이 허둥지둥이 참 싫다. 쫓기듯이 하는 짓거리는 정녕 못마땅하다.

유유자적, 여유를 가지고, 이런 것이 내게 맞는 것인데..


피곤한 현장의 하루.

11시경 잠시 회사를 빠져나와 동회에서 서류하다.

J와 俊이, 그리고 J의 친구 아들 형민이와 동회근처에서 참 맛대가리도 없는 돈까스 먹다.


15178 1988. 8. 28 (일)


늦더위 기승 부리는 일요일.

느즈막히 11시경 회사 나가다.

생산부 정문을 들어서려니 부장의 사람찾는 방송소리가 들린다.

그만 사무실 들어설 마음이 싹 가셔버려 단호하게 몸을 돌린다.

탈무드 서점, 그곳에서 두시간가량 책의 향기에 젖어 있는다.

술을 주제로 한 테마 에세이 '떠날 사람과의 마지막 잔'

한수산 '안개'

음악동아와 신동아 과월호.

벼르던 국어사전 '미중서관 에센스 국어사전'

이제 아이들과 국어사전으로 다툴 일은 없겠다.

일본 추리소설 두권 '파계재판' '나비부인 살인사건'

번화한 남포동 광복동거리를 어정거린다.

노점상 기웃거려 양말도 사고, 찬송가 테이프도 사고.


문화여, 내 몸에 딱 들어맞는 그 문화여.

여유여, 내 존재의 생산성을 극대화 시켜 주는 그 여유여.

아름다움이여, 일상의 틈새에 존재하는 그 아름다움이여.


15180 1988. 8. 30 (화)


어제 밤늦도록 베란다 꾸민다.

J의 아이디어, 바닥에 스치로폴을 깔고 그 위에 장판을 덮은 방하나 생긴다.

하늘과 바다에 둘러쌓인 안온한 방하나가 마술처럼 생겨나다.

이제 나만의 공간, 기도와 독서와 사색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아파트로 파견나온 사법서사와 주택은행에 이 집의 소유권과 근저당 설정 절차를 밟는다.

소유권 이전이 640만원 가량, 700만원 주택은행 융자인데 설정금액은 910만원. 그에 대한 세금 채권 할인 37만원 가량.

이런 절차의 내용을 내 어찌 알까마는 J가 알아서 하는 일.


15181 1988. 8. 31 (수)


8월의 마지막 날.

그러나 한낮의 잔서는 뜨거웁다.

여름은 확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머뭇머뭇대며 싫은 듯 가는 것이다.


해상크레인 동원하여 SB-345 선미 BLOCK 탑재하다.

비계공 박희성씨는 원숭이를 방불케 한다. 곡예를 하듯 움직이는 몸놀림.

아마 알피니스트로 나섰다면 크게 성공했을 것.

왼종일 현장에 있다가 돌아와 앉은 사무실. 1선대 보수문제, 그 놈의 레미콘의 도착 타이밍 때문에 P이사 큰소리.


내집- 바다와 하늘의 풍광에 둘러쌓인 안온함은 그 현장과 얼마나 다른가?

퇴근 길 집으로 오르는 언덕길 걸으면서 하나님을 생각한다.

나의 존재주, 나의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내 곁에 계신다.



'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 > 部分'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8. 10  (0) 2016.06.22
1988. 9  (0) 2016.06.22
1988. 7  (0) 2016.06.22
1988. 6  (0) 2016.06.22
1988. 5  (0) 201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