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덕순의 안해 이씨의 친정에서 유명한 장님에게 덕순이 내외의 사주를 본 것이
있었는데, 내외가 백년해로하지만 자손궁이 부족하여 아들이 없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덕순이가 이씨에게 있는 사주 적은 것을 본 뒤에 "첩을 두어야겠다." "
아들을 못 낳으면 출처하는 수밖에 없다." 하고 이씨의 골을 지른 일이 한두번이
아닌 터이었다. 그날 밤에 이씨가 베개 위에서 "여보세요, 주무세요?" 하고 덕순
의 몸을 건드리니 이때껏 가만히 소리없이 누워있던 덕순이가 갑자기 코를 드르
렁드르렁 골았다. 이씨가 덕순의 몸을 흔들며 "아이구, 곤하게도 주무시네. 다 새
었어요. 고만 일어나 나가시지요." 하고 소리를 죽이어 가며 웃었다. 자는 체하던
덕순이가 "닭도 울기 전에 날이 새어? 가짓말이 일쑤로구려." 하고 머리를 이씨
에게로 가까이 옮기어 숨기운이 이씨의 얼굴에 끼치니 이씨가 성낸 목소리로 "
가짓말이 다 무어요. 어떻게 그렇게 낮잡아 말하시오. 내가 당신더러 가짓말로
코를 곤다고 말이나 해보아. 당신은 화를 산같이 내실 것 아닌가." 하고 덕순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게서가 성을 내신다면 이곳이 말씀을 잘못했소.” 하는 덕
순의 말에 “낮잡아 말하고 게다가 빈정거리기까지 하시는구려.” 하고 다시 덕
순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덕순이가 자는 체하듯이 이씨는 성내는 체한 것이라
풀 것도 없고 풀릴 것도 없었다.
“여보세요. 갖바치가 사주를 잘 안다셨지요? 장님 사주에 있는 말이 맞나 아
니 맞나 한번 물어보시구려.” “아들이 없다는 말을 물어보란 말이지? 나이 새
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들 말을 묻기가 좀 창피해.” “갖바치 선생은 창피치 않
고 아들 말은 창피하시담 아들이니 딸이니 말씀하실 것 없이 장님의 사주를 가
지고 가셔서 이 사주가 잘 본 것이냐고 물으면 자연 말이 있을 것 아니에요?”
“되었소, 그렇게 합시다. 나는 그 생각은 못하고 사주를 한번 보아 달래려고 맘
을 먹고 있었지.” “그것도 좋지요.” “그렇지만 장님 사주를 보이고 묻느니만
못해. 게서의 것도 내것을 내일 다 나를 주시오.” “내일은 고만두고 지금 곧
달라셔도 불 켜놓고 찾아 드릴 터이에요.” 이날 밤 내외간 수작한 것과 같이
이튿날 덕순이는 장님의 사주 두 장을 가지고 갖바치를 찾아왔다. 처음에 이 말
저 말 하다가 덕순이는 말을 사주 편으로 가까이 끌려고 점 이야기부터 시작하
였다.
“홍계관이 점은 참말 용하던 모양이지요. 홍계관이 살던 골목을 홍계관골이
라고 부르게 된 것만 보더라도 당시에 유명하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지요만, 홍
윤성이를 보고 그가 뒤에 귀히 될 것을 미리 알 뿐 아니라 그 아들이 홍윤성이
손에 죄를 당하게 될 것까지 미리 알고서 아들을 살려 달라고 당부하였다고하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니오? 지금도 이 홍계관이와 같은 점쟁이가 있을까요?” “점
쟁이는 왜 묻소? 무어 점 쳐주고 싶은 일이 있소?” “아니 요사이 점쟁이니 사
주쟁이니 자칭하고 다니는 것들은 모두가 거짓말쟁이 같습디다. 그래서 지금 세
상에도 홍계관이 같은 사람이 있나 하고 말씀을 물었소.” “홍계관이는 고사하
고 관로, 곽박, 이순풍같은 사람도 없으란 법은 없지요.” “점도 점이지만 사주
를 잘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겠지요.” “사주를 볼 줄 아신다지요? 이
사주가 잘 본것인가 못 본것인가 좀 보아주시오.” 하고 덕순이가 장님의 사주
두장을 내놓으니 갖바치가 그것을 받아서 한 번씩 휙휙 보고 접어서 무릎 앞에
놓으며 “내외가 백년해로하면 아들 없을 리 없지요. 되지도 못한 사주쟁이의
사주가 종작이 있겠소. 얼마 아니 있으면 용한 사주쟁이 하나가 서울을 올 터이
니 그 사주쟁이에게 사주를 한번 보시오.” 하고 빙그레 웃고서 “나도 사주 볼
줄을 짐작하지만 이때까지 사주 한 장을 본 적이 없소. 대체 사주란 것이 꼭꼭
다 맞는다면 보는 사람이 볼 재미가 없을 것이오. ‘설마’나 ‘혹시’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덧정이 없어질 것이 아니겠소.” 하고 허허 웃었다. 덕순이가 “
그 용한 사주쟁이가 언제 서울 올까요? 오거든 꼭 알으켜 주시오.” 하고 부탁
하니 갖바치가 다시 빙그레 웃으며 “내가 알으켜 드리지 아니하여도 자연 보시
게 되리다.” 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눈으로 덕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6
갖바치가 김덕순이와 같이 이야기하는 중에 행길로 난 방문 밖에서 “주인 있
소?” 하고 곧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덕순이가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을 한번 치어다보더니 얼른 몸을 일어 그 사람 앞으로 나아와서 공손히 절
을 하고 “어르신네께서 어찌 행차를 하셨습니까?”하고 물은즉 그 사람이 “자
네는 어째 왔나?” 하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었다. 덕순을 따라 일어섰던
갖바치가 “저리 앉으십시오.” 하고 아랫목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여 그 사람이
앉은 뒤에 갖바치가 그 사람을 향하여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서 “제가 이 집에 사는 갖바치올시다.” 하고 다시 고개를
드니 그 사람이 한동안 아무 말이 없이 갖바치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허허 웃고 나서 “나는 최원정이란 사람이오. 원정이래서는 모를까? 최수성이라
면 혹 들었겠지?” 하고 “압니다. 함자를 들어 뫼신 지 오랩니다.” 말하는 갖
바치를 여전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최원정이 서 있는 김덕순이를 흘긋 치어다보더니 “자네도 거기 앉게.” 하고
말하는데 덕순이가 “시생은 온 지가 오래라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하고 말하
다가 “거기 앉게. 좀 있다 나하고 같이 가세.” 하는 최원정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여 한 옆에 꿇어 앉았다. 최원정이 또다시 갖바치를 바라보며 “효직이가
가끔 온다지?” 하고 덕순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의 어르신네 노천에게서 말을
들었어.” 하고 말하여 갖바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을 보이고 곧 말
을 이어서 “효직이를 어떠한 사람으로 보았소?” 하고 물으니 갖바치는 “물으
시는 뜻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선뜻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최원정이
이윽히 잠자코 앉았더니 “내가 초면이라도 믿고서 말을 묻는 터이야.” 하고
“내가 효직이의 사람됨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학문의 힘이 좀
부족하지 아니한가 의심하는 까닭에 묻는 말이오.”하고 갖바치의 대답을 기다
리다가 갖바치가 “무엇으로 학문의 힘을 말하오리까?” 하고 돌이켜 물은즉 “
글쎄, 나도 의심뿐이야. 그러나 지금 예판으로 있는 남곤이라든지 작년에 형판을
지낸 심정이라든지 이와 같은 자들과 동조하여 벼슬 다니는 것을 보든지 일을
좋아하는 젊은 간관들의 납뛰는 것을 누르지 못할 뿐이 아니라 도리어 탄핵을
당할 뻔한 것을 보든지 효직이의 학문의 힘이 부족해서 그렇지 아니한가 하는
의심이 생기오그려.” 하고 말을 그치자 갖바치가 적이 얼굴을 붉히며 “조대헌
영감은 산으로 치면 태산이고 별로 치면 북두올시다. 때를 못 만나신 양반이라
일의 성패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인물은 길이 천추에 빛날 줄로 생각합니다. 말
하자면 조대헌 영감이 학문의 힘은 조금도 부족하시지 아니하시지만 임금사랑은
너무 과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험절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겠지요.” 하고 최원정
의 의심이 부당한 것을 말하니 최원정이 “조대헌에게 반했군. 실상은 나도 반
한 사람이야.” 하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효직이가 아무래도 화패는 면치 못하지.” 하고 최원정이 조대헌의 장래를
걱정하다가 가만히 앉았는 덕순이를 바라보며 “너는 너의 아버지 덕에 썩은 배
를 타고 나서게 되었다. 너 힘이 장사라더구나. 위태할 때 배에서 뛰어내리겠니?
어, 위태한 일이야!” 하고 어깨를 웅숭그리는데 갖바치가 “남들이 큰 소매옷을
입고 다니는데 팔이 간신히 들어가는 옷을 입는 것도 썩는 배를 타는 것입니다.
” 하고 말하니 최원정이 좁은 소매옷을 들어보이며 “이것이 위태하단 말이지?
그래도 내 소매가 이 세상보다는 넓다고 하고 평안도 하지.” 하고 일어서서 같
이 가자고 붙든 덕순이를 바라보고 “나는 먼저 가네.” 하고 방문 밖으로 나가
는데 그의 허허 웃는 소리가 멀리 가도록 방안에 들리었다.
제 2장 술객
1
소격서골에 있는 소격서는 삼청성신을 제사하는 곳이니 국초 적부터 말없이
내려오던 것인데, 지난해에 와서 혁파하게 되었었다. 처음에 사헌부와 사간원과
홍문관과 예문관에서 소격서 같은 좌도의 일은 없이 하는 것이 옳다고 임금에게
혁파하기를 청하였으나 임금이 좇지 아니하여 여러 달을 두고 다투다가 나중에
조제학이 임금께 면대하여 말씀으로 아뢰고 이튿날 또 여러 동료들과 같이 합
문밖에 엎드려서 청하는데 해가 지고 밤이 들고 닭 울때가 되기까지 물러가지
아니하여 임금이 하릴없이 대신들에게 수의하여 혁파한다고 허락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임금이 좇고 싶지 아니한 것을 부대끼다 못하여 좇게 된 모양이다. 조
제학 이하 여러 문신이 임금의 허락을 받고 물러나간 뒤에 임금이 내전에 들어
가니 연세가 열여덟밖에 아니 된 왕비 윤씨가 그때까지 침소에 들지 않고 촛불,
아래 단정히 앉아 있다가 일어나 맞아들이었다.
"복합한 분신들이 인제 물러 나갔읍니까? 소격서 일은 어찌하셨읍니까?" 하고
중전이 여쭈어 보니 상감은 "귀찮아 견딜수가 있어야지. 대신에게 수의한다고 말
해서 내보냈소. 그렇지만 대신들도 혁파하자는 측이야." 말씀하고 상을 찡그리었
다. 중전이 무릎을 도사리고 앉아서 "대체가 모를일입니다. 소격서가 좌도라고
말합다니다만 열성조에게서 어련히 알으시고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더구나 장헌
대왕 같으신 동방 요순시절에도 혁파합시지 아니하고 강정대왕같이 유학을 숭상
합시던 때에도 좌도란 말이 없던 것을 지금와서 좌도라고 혁파하잔다니, 조광조,
김식등 일대가 유학으로 전무후무한 사람들이겠습니까? 대체가 모를일입니다.
그리고 신자된 도리에 닭울때까지 임금을 참수못하시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
습니까? 성현을 본받는 사람으로는 그럴법이 없을것 같읍니다.“ 하고 길게 말
하였는데 상감은 중전말씀이 낱낱이 옳은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신에게 수의한 결과로 구경 혁파하지 아니치 못하게 되었었다. 소격
서가 혁파된 뒤에 관원은 없어지고 나라에서 지내던 제사가 없어졌으나, 궐내에
서 나오는 치성과 여염에서 들어오는 치성은 그치지 아니하여 태일전과 삼청전
에 삼색실가와 노구메가 떠나는 날이 드물었다. 태일전은 칠성을 위하여 놓은
곳이고, 삼청전은 옥황상제와 태상로군과 보화천촌을 위하여 놓은 곳이요, 이밖
에 있는 여러 제단은 사해용왕과 제천신장과 명부시왕과 수부제신을 위하여 놓은
곳이니 여러 목상외에 수백개나 되는 위패가 있어서 소격서에 있는 중도 아니고
속한도 아닌 것들과 밥그릇이 되었다.
이때 소격서에 시골서 온 술객이 하나 있었는데 점 잘치고 사주 잘보기
로 유명하였다. 점치고 사주보러오는 사람이 나날이 많아져서 얼마뒤에는 사람
이 줄을 대서 소격서 안으로 드나들게 되니 소격서의 번잡한 것이 혁파전의 제
삿날보다 더하였다. 그 술객은 간원도 사람으로 성명이 김륜이라고 하는데 나이
삼십가량 되었었다. 소격서에 치성나왔던 내인이 소문을 궐내에 퍼트려서 곤전
에서 이것을 알고 일부러 내인하나를 내보내어 사주를 보이었는데 곤전의 사주
를 내인의 사주라고 속이게 하였다. 김륜이가 ‘신유 십이월 이일 묘시’라는
연월일시를 보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사주풀이를 적었는데
그 첫구에는 덕배지존에 만성지모라고 하였고 그 아랫구중 안구에는 종사지경은
일왕사주라고 하였으니 첫구는 신분이 왕비인것을 말하는 것이요, 그아래에 있
는 구는 왕 한분과 공주 네분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곤전의 사주를 보아 드린
뒤에 궁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김륜의 사주 한 장을 얻으려고 애를 쓴 까닭에
김륜의 사주가 여러 백장이 궐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중에 희빈 홍씨의 사주에
는 부녀합심이 화급조정이란 구가 있으니 부녀가 합심하면 화가 조정에 미친다
는 뜻이요, 경빈 박씨의 사주에는 서혜서혜여 자모수혜라는 구가 있으니, 쥐여쥐
여 모자가 해를 받으라는 뜻이라 희빈과 경빈은 사주를 감추고 남을 보이지 아니
하고 “사주가 지나간 일이나 맞지, 앞일이야 맞나.”하고 김륜의 사주를 믿지
아니하였다.
2
이때 조신중에 승무원 판사 벼슬을 지낸 신경광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사람
은 이왕 사람이나 당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의 생년월일을 지성스럽게 적어모
으는 괴벽이 있어서 묵은 책력안장에 잔글씨로 적은 것이 두서너권이 되었었다.
서울안에 유명한 사주쟁이가 나타나면 신판사는 친히 가서 보거나 또는 집에 데
려가 보거나 하여 사주쟁이로 서울에서 유명한 자 치고는 거의 만나보지 아니한
자가 없건마는 자기나 자기 자질의 사주를 보는일은 이때까지 한번도 없었다. 그
것은 사주를 너무 과히 믿는 대신에 사주쟁이를 좀처럼 믿지아니하는 까닭이 있
었다. 사주쟁이를 처음으로 만나면 신판사는 책력안장에 적힌 생년월일을 한둘
을 뽑아서 주고 사주를 보이고서 사주풀이가 그 생년월일 임자의 일생과 조금만
틀리면 무명필을 주고 오거나 장국그릇을 먹여 보낼 뿐이고, 자기나 자기자질
의 사주는 보일생각도 아니하였다.
신판사가 김륜의 이름을 듣고 어느날 저녁때 소격서 안을 찾아 와서 인사를
마치고 사주 이야기를 하다가 사주 하나를 보아달라고 말하고 점필제 김종직의
연월일시를 적어 주었더니, 김륜이가 이를 받아가지고 이윽고 들여다보다가 웃
으면서 “실없으신 일입니다. 벌써 두번 죽음당한 이의 사주를 왜 보라고 하십
니까?” 말하여 신판사는 놀라기는 하였으나 이자가 점필제 선생의 사주를 본적
이 있는것이 아닌가 속으로 의심하여 “용하오. 내가 그대의 재주를 보려고 옛
날 양반의 사주를 적어 주었소. 알아내는 것이 용하오.” 하고 칭찬한 뒤에 월전
에 낳은 자기 집 개새끼의 일시를 적어주며 “어린것의 사주를 하나 보아주시
오.” 하고 말한즉 김륜이가 “재주껏 보리다.” 말하고 받아보앗더니 “이것이
댁 어린아기의 사주오이까?” 하고 물어서 신판사는 그렇다고 하기도 어렵고 그
렇지 안다고 하기도 어려워서 우물쭈물 대답하였다. 김륜이가 “이 사주가 괴상
합니다. 사주로만 보면 세살되는 해에 박살을 당하고 사지를 찢길 모양이니 댁
아기로야 이런 일이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육축의 새끼를 가지고 저를
속이시는것 같읍니다.” 말하여 신판사는 참으로 놀라고 김륜의 재주에 반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신판사가 틈틈이 김륜을 찾아올 뿐만 아니라 김륜을 가끔 집
으로 청하여 큰손님과 같이 융숭히 대접하였다. 어느날 신판사가 김륜을 가끔
집으로 데려다 앉히고 자기의 사주와 자질의 사주를 보인 뒤에 당시 유명한 조신
들의 사주를 보이었는데, 김륜의 말로보면 그때 유명한 사람치고 말로가 좋은
사람이 드물었다. 좌의정 신용개는 수한을 박두하였다 하고, 여의정 정광필만은
일시 액이 없지 아니하나 후분이 좋다고 하였다. 정승들이 이럴뿐 아니라 유명한
중에도 유명한 대사헌 조광조 이외에 형조판서 김정과 대사성 김식과 부제학 김
구와 우승지 윤자임과 좌부승지 박세희와 동부승지 박훈과 예문관 응교 기준등
일대 명류가 모두 비명에 죽지 아니하면 귀양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고 조신들의
사주를 가지고 미루어 보면 불구에 조정에 큰변이 생기리라고까지 단언하였다.
신판사는 김륜의 말을 믿고 의심치 아니하였다. 잔치 음식같이 잘차린 점심으로
김륜을 대접한 뒤에 신판사가 자기의 적어놓은 책력의 안장을 김륜이와 같이 훑
어보며 좋은 사주를 평론하는 중에 김륜이가 언사를 보고 놀라며 “이것이 뉘사주
오이까? 하고 물으니 신판사가 ”머리에 쓴것을 보면 뉘것인지 알지.“ 하고 들
여다보고서 ”정허암의 사주로군“ 하고 말하였다. 김륜이가 ”정허암이 누구
이오까?“ 하고 재차 물으니 ”정희량 정한림이야.“ 하고 대답하였다. 김륜이가
고개를 기울이고 ”이것이 우리 선생님의 사주이올시다. 우리 선생님 이천년이
라는 이의 사주이올시다.“ 하고 한참 있다가 다시 ”우리 선생님의 원명성은 저
도 이때껏 몰랐읍니다.“ 하고 말한 까닭에 신판사는 정한림이 조장에서 빠져
죽지 아니한 것이 적실한 사실인 것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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